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84
84
19. 별 여섯개로 향하는 길 (3)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크리스를 찾아갔다.
익숙해진 에이전시 일은 최대한 간추려서 했고 그 외의 시간은 전부 크리스를 위해 썼다. 크리스가 요청한 아이스 체임버도 해리의 인맥을 통해 5천 파운드 싸게 구매했다.
크리스는 매일같이 훈련에 매진하면서도 조급해 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개인 훈련 프로그램 강도를 올렸는데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달래주느라 많이 애를 먹고 있었다.
다행히 성과가 금방 나오기 시작해 달래주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체력관리가 되기 시작하니 크리스는 바로 다음 경기에서 원래의 경기력을 찾았고, 한 달 동안 꾸준한 훈련과 출장을 반복해 스탯을 더해갔다.
오늘 정오에 있던 경기에서는 크리스 최고의 폼을 볼 수 있었다. 크리스의 대활약으로 또 한 번 승리한 풀햄은 2위와 승점을 13점 차이로 벌렸다. 벌써부터 승격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였다.
크리스의 오늘 플레이는 마치 지난 시즌의 세바스티앙을 보는 것 같아 혹시나 해서 헬퍼를 확인해봤지만, 크리스의 현재 능력은 여전히 별 다섯 개였다.
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경기가 끝나자마자 차를 몰고 공항으로 향했다.
평소였다면 시간을 꾹꾹 눌러 담아 크리스를 픽업해 데려다 놓은 후 공항으로 향했겠지만, 내일은 풀햄에서 휴가를 줘 크리스에게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기에 크리스의 집에서 성대한 저녁 식사를 할 예정이었고, 나는 내 가족이자 크리스의 집에 데려갈 손님을 데려가야 했다.
바로.
“오빠!”
갈색 코트를 입은 보통 체구의 여자애가 캐리어를 끌며 다가왔다. 세 달 만에 만나는 막내 동생, 다은이였다.
다은이는 어차피 남자친구도 없다며 영국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다고 해, 내가 비행기표를 끊어 줬다. 여름휴가 때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혹여나 엇갈릴까 한 시간 전부터 와 있었는데 정확한 시간에 도착했다.
“피곤하지?”
다은이는 내 앞에서 캐리어를 놓고 폭 안겼다.
금발, 갈색, 붉은 머리만 보다 다은이의 검은 색 머리를 보니 반가운 마음이 더 커졌다.
“눈이 말똥말똥 하네. 비행기에서 푹 잤구나?”
“응, 잠 잘 오더라.”
다은이는 헤실헤실 웃으며 내게 더 달라붙으며 부비적댔다.
“오빠, 진짜 고마워. 나 해외여행은 십 년 쯤은 뒤에나 갈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빠 덕에 이런 호강도 해 보네.”
나와 누나는 나이차이가 별로 안 나지만, 막내 다은이는 나이차이가 여덟 살이나 났기 때문에 사랑받으며 자란 다은이는 우리 집안에서 유일하게 애교가 많은 아이였다.
나는 다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엄지로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뭘 이런 거 가지고. 일단 가자. 차 가져왔어.”
“차?”
“정신 사나우니까 가만히 있어 봐.”
다은이는 시트랑 차량 내부를 열심히 만지작대며 사진까지 찍어대고 있었다. 다은이는 내게 또 한 번 물었다.
“이게 진짜 오빠 차야?”
주차장에서도 워낙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주변 보기가 민망해 억지로 조수석에 집어넣었었다.
나는 앞을 본 채 어깨만 으쓱하며 말했다.
“운이 좋아서 그렇지 뭐. 대표님이 통 큰 사람인 것도 한 몫 했고.”
나는 옆으로 보이는 다은이의 얼굴에 겹쳐지는 누나를 떠올리며 말했다.
“아무튼 누나한테 잘 말해줘. 누나는 아직도 내가 사기 당한 거 아닐까 걱정하더라.”
다은이는 구경을 마쳤는지 기지개를 쭉 켜고 말했다.
“언니 걱정이 하루 이틀이야? 나 이번 여행도 위험하다고 못 가게 하려고 했다니까··· 아! 깜빡했다. 언니가 오빠 먹으라고 밑반찬도 잔뜩 싸 줬는데. 도착하자마자 냉장고에 넣으라고 했거든? 우리 지금 오빠 집으로 가는 거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워낙 출장이 많아서 보통 호텔이나 선수 집에서 잔다고. 지금 가는 데는 선수 집이야.”
“그럼 이거 어떡하지?”
“거기서 반쯤 살고 있으니 그 집 냉장고에 넣어두면 될 거야.”
다은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나 런던에 있을 동안 신세질 집이라는데가 거기야?”
“응, 맞아.”
크리스와 에린, 이자벨에게도 미리 말해두었다. 그들은 내 동생이라는 말에 흔쾌히 허락해줬다.
“조금 불편하지 않을까? 오빠 선수 집이라지만···.”
“걱정 마. 여자애는 수업 들으러 나가거나 방에서 공부만 하니까. 남자애는 밖에서 훈련하는 거 아니면 방에서 전술 공부만 하거든. 일단 자주 마주칠 일도 없겠지만, 만약 마주쳐도 괜찮을 거야. 둘 다 너랑 동갑이거든.”
“나랑 동갑? 재미있겠다. 드디어 갈고 닦은 영어 솜씨를 뽐낼 때가 된 건가.”
다은이는 어릴 때부터 날 졸졸 따라다녔다. 내가 외국어로 된 기사만 보고 있으면 다은이는 옆에서 영어로 된 책을 읽었다. 처음에는 내게 물으며 읽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대학교 후배로 들어오게 됐다. 다만, 통역 쪽으로 진로를 잡았던 나와 다르게 번역 쪽으로 가겠다고 했다.
“해리 포터 스튜디오~.”
다은이가 가이드북을 펼친 채 흥얼거리고 있었다. 다은이는 해리 포터의 열광적인 팬이었다. 영국에 놀러오라고 했을 때 꼭 가보고 싶다고 했던 곳이 여기였다. 아쉽게도 축구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크리스의 이름을 얘기해도 별 반응이 없었다.
얼굴을 보고 놀라는 모습이 약간 기대됐다.
다은이가 가이드북을 집어넣으며 물었다. 조심스러운 목소리다.
“오빠 근데 런던에 있을 때는 이 집에 있겠는데, 다른 지역으로 갈 때 도미토리(공동 숙소, 보통 8, 12인실) 이런데서 자 보면 안 돼? 로망이었단 말이야.”
“절대 안 돼.”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갓 성인이 된 여자애 혼자 그런 여행을 하게 둘 순 없었다. 돈이 없으면 빌려서라도 그렇게 보낼 수는 없다.
다은이가 투덜댄다.
“오빠도 언니랑 다를 거 없어. 너무 과보호야.”
“여행자금 반으로 줄여버린다.”
“죄송합니다. 충성하겠습니다.”
울상이 된 다은이를 보며 나는 큭큭 대며 차의 속도를 줄였다.
어느새 크리스의 집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다은이의 로망은 크리스의 집에 도착하고 얼마 안 있어 사라지게 된다.
“분위기 좋다···.”
다은이가 집집마다 설치된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고 있었다.
“이브니까.”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크리스마스는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날 중 하나였기에 크리스를 비롯한 풀햄 선수진이 바쁜 와중에도 휴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오늘 풀햄은 크리스마스 전후로 시작되는 박싱 데이의 첫 날을 마쳤고 아직 3일 간격으로 세 경기가 남아 있었다. 약 열흘 동안 네 경기를 연달아서 치러야 하는 지옥 같은 일정에 체력 관리 차원에서 휴가를 준 것이기도 했다.
크리스는 팀원들이 주최하는 파티에도 초대됐지만, 완곡하게 거절했다.
이번에는 꼭 가족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해 크리스의 사정을 알고 있는 선수들은 이해해줬다.
영국인 여자 친구를 사귀기 시작한 세바스티앙은 팀 파티에 참가한다고 했고, 조던은 재활 훈련, 레온은 집에서 가벼운 파티, 에이전시 직원들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생각은 여기까지, 나는 다은이의 어깨를 톡 건드리며 말했다.
“들어가자.”
“헉, 여기야?”
다은이가 크리스의 집을 보며 놀랐다.
“집 되게 좋다. 오빠 선수 부자야?”
나는 잠시 생각해봤다. 크리스를 부자라고 할 수 있을까. 고민은 짧았다.
“음··· 우리나라로 치면 부자 맞겠다. 너랑 동갑인데 연봉이 수십억이니까.”
“수십억?”
다은이는 놀라면서도 나를 졸졸 잘 따라왔다.
초인종을 누르니 문이 바로 열렸다. 문 바로 앞에 누군가가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얼굴을 확인하고 손을 들며 말했다.
“다녀왔다.”
“다녀오셨어요? 앗, 안녕하세요. 에린 앨런이라고 합니다.”
에린은 앞치마를 두른 채 빗자루를 들고 현관에 나와 있었다.
다은이는 에린의 얼굴을 보고 충격을 받은 건지 멍하니 있다가 엉겁결에 한국식으로 허리까지 꾸벅 숙이며 말했다.
“안녕하··· 아니 he, hello···.”
에린은 당황하지 않고 마주 꾸벅 숙여 인사를 받고 있다. 다은이가 놀랄 만도 하다. 웬 헐리우드 배우 급 미모의 여자아이가 갑자기 나타났으니 내가 크리스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 정도는 받았겠지.
나는 허리를 핀 에린에게 물었다.
“크리스는 뭐 해?”
“몸이 근질근질하다고 엄마 도와서 요리중이에요.”
요리중이라니.
“마사지는 받고 왔대? 아이스 체임버는?”
“다 했어요.”
“좋아.”
나도 빨리 한 손을 거들어야 겠다. 간만 맞추면 먹을 만한 음식은 되니까.
에린은 청소를 위해 남았고, 나는 다은이와 함께 주방으로 향했다.
크리스의 어머니, 이자벨이 먼저 나와 있었다. 그리고 나와 다은이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왔어요?”
“제 동생이에요. 일주일만 신세 질게요.”
“얼마든지요. 이층의 빈 방을 쓰면 될 거예요.”
이자벨은 나와 가볍게 포옹하고 다은이와도 포옹하려 했다.
하지만 다은이는 이자벨 뒤에 있는 후라이팬을 잡고 있는 아주 치명적인 남자에게 시선을 빼앗겨 버린 후였다.
발그레해진 양 볼에 멈춘 숨. 그리고 넋 놓은 것 같은 시선까지. 쿵쿵거리는 심장소리가 내 귀에도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쉬고 말했다.
“야, 정신차려.”
바로 정신이 돌아오지 않았던 다은이는 미쳤어를 반복하며 깨어났다.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진짜 미쳤어. 오빠 선수가 쟤야?”
“어.”
“커뮤니티에서 짤방으로 본 적 있어. 세계에서 가장 잘 생긴 축구선수라고. 쟤 이름이 크리스였던 거야? 와 근데 사진은 50%도 못 담은 거네. 입체감 봐. 와 진짜··· 너무 잘생겼다···. 아 죄송해요. 안녕하세요!”
호들갑을 떨던 다은이는 멋쩍게 있던 이자벨과 황급히 포옹했다.
뭔가를 굽고 있던 크리스가 불을 줄인 후에 멋진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다은이는 수줍게 손을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이자벨은 다은이를 보고, 나와 눈을 맞추며 부드럽게 웃었다. 둘이 귀엽지 않냐고 말하는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따라온 에린이 다은이를 보며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쟤는 또 왜 저래.
크리스가 입을 연다.
“다-은 맞죠? 잘 부탁해요. 크리스 앨런이라고 합니다.”
크리스와 악수하고, 가볍게 포옹까지 한 다은이의 얼굴은 벌써 해리 포터 스튜디오에 도착해 감동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중 얘기지만.
다은이는 한국에 돌아갈 때까지 도미토리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다른 지역 여행을 가질 않았다. 왜냐면 다은이는 한국에 돌아갈 때까지 크리스 집에서만 버텼으니까.
크리스의 가족과 나와 다은이는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크리스와 가족들은 다은이의 입을 통해 한국에서의 내 모습이 어땠는지 들었다. 가끔 튀어나오려고 하는 흑역사를 막으며 변명을 늘어놓기도 했다.
식사 내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내일은 휴가라 마음도 편안했다.
디저트까지 마무리하자 에린이 다은이에게 방 안내를 해주겠다며 데려갔다. 다은이는 크리스와 못 간 게 못내 아쉬운 얼굴이었다.
나는 크리스와 함께 소파에 앉아 있었다.
“다은이 되게 밝네요.”
“응, 우리 집에서 가장 밝은 애야.”
크리스는 미소지은 채 끄덕이다가,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나를 봤다.
“근데요 태···.”
어? 혹시 얘 다은이가 맘에 들고 그런 건가. 그러면 어떡하지, 아무래도 다은이의 마음이 중요한 건데···.
“소화 시킬 겸 가벼운 훈련 어떨까요?”
···?
“오늘 낮에 경기했으니 저녁에는 회복훈련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 축구에 미친 놈 보게. 크리스마스 이브 날에 훈련을 하겠다고? 오늘 경기도 풀타임으로 뛰어놓고서?
나는 확실하게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무조건 쉬어야 해. 내일도 마찬가지야.”
“지금 컨디션 엄청 좋은데···.”
“박싱 데이잖아. 작년에는 네가 골키퍼로 뛰어서 모르겠지만, 필드 플레이어는 체력관리가 필수라고.”
“폼이 떨어지면 어떡해요···.”
“너 지난달 말 경기 때 키패스가 몇 개였는지 기억해?”
내 물음에 크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걸 어떻게 기억해요?”
“한 개 였어.”
“기억하는군요···.”
크리스의 황당해하는 얼굴에 대고 나는 크리스의 기록들을 쏟아놓았다.
“그 다음 경기는 두 개, 그 다음 경기도 세 개, 오늘 경기에서는 무려 다섯 개야. 활동량도 11.5km에서 11.9km, 12.2km 그리고 오늘은 12.4km를 뛰었다고. 패스성공률도···.”
크리스는 끊임없이 자신의 기록을 늘어놓고 있는 나를 무슨 괴물 보듯이 보고 있었다.
“공격 포인트는 쭉 없었지만 괜찮아. 오늘 어시스트 한 개 했다고 언론들이 평점 9점, 10점을 줬어. 기록으로만 봐도 나아진 게 보이지 않니? 너무 다급하게 생각하지 마, 훈련 프로그램은 효과가 있었고, 오늘 너는 휴식이 필요해.”
“그런 걸까요···.”
몸이 근질근질한 모양이었다.
“동료 컨설턴트들이랑 선수들도 강조했어. 박싱 데이 때는 팀 훈련도 감각 유지 훈련 정도만 해야 한다고. 그 이상으로 훈련하면 경기 때 퍼진다고.”
드디어 크리스가 납득한 얼굴이 됐다.
“그렇군요.”
알아들었구나.
“그러니까 감각만 살리게 패스랑 트래핑 연습 정도만 하면 괜찮다는 거죠?”
크리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나는 결국 한숨을 쉬며 백기를 들었다. 내비 두면 방에서라도 공을 찰 놈이다. 같이 나가서 훈련량 조절해주는 게 속 편하지.
“내가 졌다. 그래. 가자. 대신 30분만이다. 절대 뛰면 안 되고 스트레칭 확실히 해야 한다.”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