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86
86
19. 별 여섯개로 향하는 길 (5)
추첨으로 리버풀이 뽑힌 건 한 달 전의 일이었다.
나는 그날의 구단 분위기를 기억한다. 모든 스태프가 허탈한 얼굴로 욕설을 내뱉었었다. 이렇게 기세가 좋은데 하필 챔피언스리그 급 팀을 만나느냐고, 재수가 오질 나게 없다고 하늘이 무심하다고.
FA컵을 거의 포기한 분위기였기에 내 앞의 요카노비치도 그런 식으로 얘기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카노비치는 예상외의 말을 꺼냈다.
“1군으로 나갈 겁니다.”
“네?”
“리그에는 여유가 있으니 보드진에서 FA컵 8강 정도까지는 노려보자고 합니다. 상대가 아무리 리그 3위라지만 얇은 스쿼드로 박싱데이를 거쳤으니 많이 지쳤을 테고, 무엇보다···.”
요카노비치가 씩 웃으며 말했다.
“리버풀은 알 수 없는 팀이잖아요? 약팀한테 약하고 강팀한테 강한.”
알 수 없는 팀.
리버풀에 딱 들어맞는 말이기는 했다. 우리나라 커뮤니티 팬들은 리버풀을 강팀에게 승점을 벌어 약팀에게 나눠주는 의적 같은 팀이라고 까기도 하고 놀리기도 하고 자학하기도 했다.
“그리고 요즘 좀 뒤숭숭하기도 하고요.”
지난 여름이적시장 바르셀로나로 떠나겠다고 했던 필리페 쿠티뉴가 다시 한 번 바르셀로나 이적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래도 리버풀은 강하잖아요.”
나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었다.
리버풀은 11월부터 한 경기도 지지 않았다.
12월부터 오늘 경기까지만 따져도 6승 3무였다.
마지막으로 진 경기가 10월 중하순 토트넘에게 4-1로 패한 경기다. 대한민국 축구계의 자랑 우리흥이 결승골을 넣었던 경기로 기억하고 있다.
“괜찮습니다. 지면 지는 대로 배우는 게 있을 거고, 이기면 좋은 거고요. 무엇보다 저는 크리스가 한 건 해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카노비치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대체 미스터 태가 무슨 마법을 부리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팀 훈련에서 크리스의 성장세가 엄청납니다.”
나는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풀햄이 이기든 지든 별로 상관없었다.
다만, 강팀과 충돌하며 크리스가 마지막 한 계단을 올라서지 않을까 기대가 되긴 했다. 요카노비치의 말을 들으니 크리스를 적극 활용할 것 같아 보였고.
“아무튼 새해 인사로 이런 좋은 선물이라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제 슬슬 일해야 돼서···.”
요카노비치는 내가 사온 보드카를 흔들며 말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닙니다. 별거 아니에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감독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미스터 태도요.”
*
박싱데이 다음 날에는 박싱데이 동안 있었던 모든 경기를 총정리하는 리뷰 기사들이 올라왔고, 그 다음 날인 오늘은 FA컵 프리뷰 기사가 올라왔다.
그리고 주목해야 할 경기 중 첫 번째로 풀햄 vs 리버풀 전이 뽑혔다.
왼쪽에는 세세뇽과 크리스가 어깨동무를 하는 모습이, 오른쪽에는 리버풀의 유망주 아놀드와 우드번이 포효하고 있는 모습이 기사의 첫 페이지를 채우고 있었다.
–
[팬들이 주목해야 할 FA컵 64강전 ① : 풀햄 vs 리버풀]새 해가 밝아오며 잉글랜드의 리그들도 중반에 접어들었다.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맨체스터 시티, 챔피언십 리그에서는 풀햄의 독주로 리그 경쟁이 한결 시들해진 이때 FA컵이라는 새로운 자극이 팬들을 찾아왔다.
우리 스카이스포츠에서는 FA컵을 더 쉽게 즐길 수 있게 FA컵의 32경기 중 가장 흥미로운 네 경기를 뽑아 보았다.
그 중 첫 번째는 크레이븐 코티지에서 열리는 풀햄 vs 리버풀이다.
한 팀은 2부 리그, 한 팀은 1부 리그에 소속돼 있어 싱거운 결과가 나올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싱거운 결과보다는 화끈한 결과가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이 경기에는 멋진 볼거리가 있다.
일단 두 팀의 기세가 모두 무섭다. 두 팀 모두 11월부터 한 번도 지지 않고 있는 팀이고 평균 득점이 2점대 이상인 공격적인 팀들이라 무조건 골을 기대할 수 있는 경기다.
무엇보다 두 팀에게는 다음 세대의 영국 축구를 이끌 유망주들이 다수 포진해 있어 경기를 보는 맛을 늘려줄 것이다.
리버풀의 트렌트-알렉산더-아놀드와 벤 우드번, 풀햄의 라이언 세세뇽과 크리스 앨런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리버풀의 아놀드는 ···(중략)··· 활약을 펼쳤고, 풀햄의 라이언 세세뇽은 ···(중략)··· 으로 잘 알려진 선수다.
이 중 가장 주목해야 할 선수로 본 기자는 크리스 앨런을 말하고 싶다.
기존의 세 선수는 위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지난 시즌부터나 국가대표에서 이름을 알린 선수지만, 18세의 크리스 앨런은 이번 시즌 처음 등장해 2부 리그 1위 팀의 주전 자리를 꿰찼고, 생애 처음으로 1부 리그 팀을 상대하게 된 선수다.
그동안의 많은 우려와 비판들을 크리스 앨런은 나날이 발전하는 모습으로 깨부쉈고, 이번에는 그 상대가 리버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축구팬으로서 가지고 있다.
그리고 새 이적생의 활약도 중요 체크 포인트다.
7500만 파운드(약 1,131억)의 가격으로 리버풀에 이적한 버질 반 다이크 ··· (중락).
양팀 예상 선발 라인업
···
···
–
나는 휴대폰에서 눈을 뗐다.
기자 이름이 엘리자베스가 아닌데도 크리스를 주목하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생각보다 커진 크리스의 위상에 으쓱하면서도 조금 걱정이 됐다.
이런 기사가 한 두 개가 아니어서 더 그랬다.
그리고 요즘 부쩍 경기력이 올라온 크리스에게 관심을 두는 무리가 또 있었다.
“어때요 크리스? 자신 있나요?”
원래라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찾아와 경기만 찍고 가는 아디다스의 촬영 팀들이 요즘은 매일같이 찾아오고 있었다.
크리스는 여름 이적 시장 때 시작된 에서 가장 성공한 선수였다. 아디다스의 디렉터도 크리스가 광고한 물품들이 유난히 잘 팔려나간다고 좋아한다는 얘길 PD에게 들었었다.
“긴장되죠. 그냥 열심히 훈련할 뿐이에요.”
크리스는 카메라에 대고 겸손하게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크리스가 재미없는 대답만 하자 촬영 팀들은 몇 번 더 질문하다가 쉬고 있는 다른 선수를 찾아갔다.
나는 크리스에게로 다가갔다.
“진짜 긴장돼?”
크리스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뇨, 태가 겸손하게 인터뷰하라고 했잖아요. 사실 완전히 기대돼요. 1부 리그 팀, 그것도 리버풀이랑 경기라니. 꿈만 같아요.”
긴장하는 기색이 없어 다행이었다.
혹여나 속으로 걱정하고 있을까 봐 나도 태연하게 말했다.
“좋은 마음가짐이야. 리버풀이라고 대단할 거 없어. 2부 상위권 팀들이나 1부 하위권 팀들이랑 큰 경기력 차이는 없으니까. 오히려 지난번에 이긴 울버햄튼 같은 경우는 1부 중위권 정도는 되지. 그것보다 조금 더 잘한다고 생각하면 돼.”
2위를 달리고 있는 울버햄튼은 풀햄이라는 변수만 없었더라면 무조건 1위를 차지하고 있어야 할 팀이었다.
조르제 멘데스라는 거대 에이전트를 등에 업고 1부 리그에서 뛰어야 하는 선수들을 잔뜩 데려온 구단이니까.
“너무 설레요. 앞으로 이틀이나 남았다니···.”
크리스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제 실력이 리버풀에 먹힐까요?”
“응. 먹힐 거야.”
강팀을 상대할 땐 대담해야 한다. 나는 크리스에게 자신감을 주기 위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리버풀은 수비진이 약하니 실제로도 할 만 할 것 같았다.
다만,
“반 다이크는 조심해야겠지만.”
1000억이 넘는 몸값을 지닌 수비수 반 다이크는 영입된 지 얼마 안 됐기에 선발로 출전할게 훤히 보였다. 대단한 수비수였지만 기존 수비와의 불협화음을 노린다면 못 뚫을 것도 없었다.
리버풀이 어떤 스쿼드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풀햄이 2부 리그 1위였기에 2군은 아니고 1.5군 정도의 전력으로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큰 규모의 클럽이기에 FA컵을 쉽사리 버릴 수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
“살라만 없는 1군이잖아···.”
프리미어리그에서 센세이셔널한 활약을 펼치고 있는 리버풀의 ‘파라오’ 모하메드 살라를 제외한 나머지 1군 선수들이 전부 나왔다.
“1군? 그럼 저 선수들이 베스트인 거야?”
다은이가 해맑게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져도 리그에는 큰 영향이 없었기에 이자벨과 에린은 평소보다 편안한 얼굴로 경기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필드 위의 크리스도 태연한 기색이었다.
경기 전에 기대만발이던 모습과는 다르게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한 얼굴로 피르미누, 알렉스 옥슬레이드 체임벌린, 마네 등과 악수를 하고 있었다.
휘슬이 울리고 경기가 시작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크리스는 그 어느 때보다 얌전하게 경기를 풀어갔다.
뜬금없이 반 다이크와 부딪히기도 하고, 체임벌린이나 엠레 찬 같은 선수들에게는 바로 덤벼들지 않고 어떻게 플레이하는지 관찰하며 여유 있는 몸놀림을 보였다.
크리스의 경기를 많이 보다 보니 이제는 크리스가 뭘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사전 분석과 실제를 맞춰보는 과정이었다. 저 과정이 끝나면 크리스는 본격적인 몸놀림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크리스는 생각보다 일찍, 경기가 시작한 지 10분 만에 웃음을 보이기 시작했다.
*
‘먹힌다.’
크리스는 자신을 제임스 밀너와 엠레 찬이 번갈아가며 맡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크리스는 몇 번의 터치와 부딪힘, 관찰로 그들에게 자신의 플레이가 통한다는 걸 깨달은 상태였다.
‘태랑 함께한 훈련은 헛되지 않았어.’
프리미어리그의 명문팀과 붙어도 괜찮을 수준이라니. 그동안 2부 리그에서만 뛰어서 몰랐지만, 자신은 분명 성장해 있었다.
“라이언! 달려!”
크리스는 같은 팀 미드필더의 패스가 엠레 찬에게 끊기려고 하는 걸 보면서도 세세뇽에게 전진을 요청했다. 세세뇽은 아무런 의심 없이 수비가 아닌 공격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높은 확률로 트래핑이 길어질 거다.
계산한 건 아니었지만, 크리스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골키퍼 시절 때부터였을지도 몰랐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크리스는 경기 중에 일어날 일들을 미리 알 수 있었다. 그걸 확실히 깨달은 건, 필드 플레이어로 뛰기 시작한 그날, 세바스티앙의 마당에 있는 풋살장에서부터였다.
‘태는 어떻게 내 재능을 알아본 걸까.’
크리스의 생각대로 엠레 찬은 투박한 트래핑을 해 공을 1m 이상 떨어뜨렸다. 크리스는 망설임 없이 공을 빼앗고 보지도 않고 왼쪽 사이드로 길게 패스했다.
그리고 엠레 찬의 당황한 모습을 보지도 않고 바로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자신의 패스를 세세뇽이 받는 게 보였다.
‘자 여기서 반 다이크가 튀어나오겠지.’
반 다이크는 새로 팀에 왔는데도 불구하고 수비라인의 커맨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반 다이크는 곧장 아놀드에게 세세뇽을 마킹할 것을 지시하고 크리스에게로 달려나왔다.
반 다이크가 앞을 마킹하고 발 빠른 마팁이 뒤의 빈 공간을 커버한다. 리버풀의 기본 수비 패턴이었다.
예상하고 있었던 플레이다. 크리스는 반 다이크가 붙는 순간 속도를 확 죽이며 방향을 틀었다. 몇 개월 안 됐지만 세세뇽과 자신은 이 정도 호흡에는 자신 있었다.
준비했던 플레이기도 했고.
“크리스!”
세세뇽은 크게 외치며 크리스에게 패스하고 반 다이크가 빠져나온 빈 공간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크리스는 발뒷꿈치를 이용해 원터치로 세세뇽에게 패스를 돌려주었다.
‘쉽다.’
세세뇽은 공이 자기 앞에 떨어지자마자 반 다이크의 자리를 커버하려는 아놀드와 마팁의 사이로 공을 세게 차며 속도를 올렸다.
넓은 공간은 스피드스타의 주 무대. 고메즈와 마팁은 허우적거리며 세세뇽의 등만 바라봐야 했고, 리버풀의 골대에서는 카리우스가 급히 뛰어나오고 있었다.
‘키패스 1회 적립.’
예전이었다면 여기까지 했을 거다. 하지만 더 잘 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만족해선 안 된다. 뛰고 또 뛰어 기회를 찾아가야 했다. 크리스는 어느새 페널티 박스 반대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패스 이후 물 흐르듯 움직였기 때문에 크리스가 어디로 움직일지 고민한 반 다이크는 뒤늦게 쫓아오고 있었다.
‘7,500만 파운드짜리 수비수에게도 내 플레이가 먹힌다.’
크리스가 수비들의 틈으로 달려오고 있는데도 세세뇽은 슈팅을 준비하고 있었다. 크리스는 그가 그럴 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는 세세뇽은 누구보다 탐욕적이었으니까.
세세뇽은 카리우스가 자신을 완전히 덮치기 전에 로빙슛을 시도했다. 카리우스는 예상한 듯 제자리에서 점프해 세세뇽의 슛을 건드렸다.
공의 속도가 느려지며 방향이 틀어졌고, 리버풀의 수비수들이 루즈볼을 잡기 위해 달렸다.
“이이익!”
크리스는 공을 보는 순간 낙하지점을 알 수 있었고, 소리까지 지르며 전력질주 했다.
크리스 자신은 몰랐지만 이런 순간 판단력과 그에 이은 행동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실제로 반다이크나 리버풀의 풀백 로버트슨은 어디로 갈지 생각하고 움직이는 시간 때문에 크리스보다 늦었다.
로버트슨이 공을 걷어내기 위해 달려오는 게 크리스의 눈에 보였다. 뒤에는 반다이크의 숨소리가 들렸다.
‘헤딩으로 하면 로버트슨이 막을 수도 있어.’
판단은 짧고 확실했다.
‘그러면 발로 차지 뭐.’
크리스는 몸을 날렸다. 공은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크리스의 발에 맞았다.
슛을 막기 위해 슬라이딩하는 로버트슨, 공은 애석하게도 그의 위를 스쳐 지나가 골망을 갈랐다.
크리스는 잔디를 털고 일어나며 골대 뒤의 리버풀 팬들을 바라봤다.
허탈하게 웃고 있는 팬들, 고개를 가로젓고 있는 팬들이 보였다. 몇몇 여성 팬은 한 손으로 입을 막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외의 모든 좌석의 풀햄의 팬들은
크리스를 향해 환호 중이었다.
자신이 만든 광경이었다.
풀햄의 선수들이 골을 축하하기 위해 크리스를 덮쳤다.
선수들이 별 말을 다 했지만 크리스는 한 가지 생각에만 빠져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기만 하는 크리스의 뒤통수나 등을 한 대씩 후려친 풀햄의 선수들이 다 떠나고서야 크리스는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있었다.
“재밌다. 진짜 재밌다.”
모든 게 자신의 생각대로 됐다.
“태한테 선물 하나 해 줘야지.”
크리스는 리버풀의 선수들이 중앙에 가져다 놓은 공을 보며 중얼거렸다.
예전부터 생각해놨던, 자신을 이곳으로 이끌어 준 은인에게 줄 첫 선물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정도 폼이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