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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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2)
통역을 해야 하는데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감독이 화난 건 분명하게 전달됐기에, 세바스티앙은 불안한 눈동자로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화가 났다. 그래서 세바스티앙을 내 등 뒤로 옮기며 감독 앞에 섰다.
나는 스페인어 대신 영어를 택했다.
“왜 세바스티앙 로드리게스 선수가 융화되지 못하는지, 구단 내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감독님은 모르신다는 말입니까, 지금?”
감독의 표정에 당황한 기색이 비쳤다.
그래, 훈련장에 매일같이 나와 있는데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헬퍼의 도움이 없었더라도 훈련 한 번 참관하는 것만으로 세바스티앙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누구나 알 수 있다. 그 정도로 핵폐기물 3인조는 노골적이었다.
그동안 왜 방치했었는지 한 번 물어보려 했었는데 마침 잘 됐다.
“인종···.”
“왜 융화되지 못하는지는 궁금하지 않네.”
“뭐요?”
“궁금하지 않다고 했네.”
감독은 입을 일자로 다문 채 나를 올려다봤다. 여전히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선수간의 문제는 선수들끼리 알아서 해야 하는 거야. 프로 선수로서 기본 덕목이지.”
“아니, 기본 덕목도 덕목 나름이지. 선수 인격을 하나 박살내고 있는데, FA나 UEFA에 제소해도 할 말 없는 사안 아닙니까!”
“나는 모르는 일이네.”
이 새끼가 진짜.
속에서 무언가가 막 끓어올랐다.
뒤에서 세바스티앙이 내 옷깃을 잡았다.
“왜 그래요? 때? 감독님이 무슨 말 했어요?”
“아니야. 잠깐만.”
나와 세바스티앙이 얘기하는 걸 빤히 보던 감독은 들고 있던 서류를 책상에 툭 하고 내리쳐 내 시선을 끌었다.
“아무튼 내 얘기는 끝났네, 적응하지 못하겠다면 당장 오늘 훈련부터라도 빠지는 게 좋을 거야. 내 말 똑바로 전하고, 앞으로는 주제넘게 행동하지 말게. 통역”
감독은 그렇게 말하며 서류를 보는 척을 했다. 눈동자가 안 움직이고 있다.
이건 무시다. 네가 이곳에 있든 말든 나는 일을 하겠다, 라는 무시.
아까 멱살이라도 잡을 걸 그랬나?
“왜 그래요 때. 통역 안 해줘요?”
세바스티앙은 불안한 지 계속 중얼거렸다.
이어서 들려오는 감독의 목소리.
“아직도 안 나갔나?”
하··· 나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헬퍼라는 치트키를 쓰기 위해 감독에게로 다가갔다. 이런 녀석한테 치트키 쓰는 건 양심의 가책은커녕 즐겁기만 할 거다. 그 전에 세바스티앙을 보고 ‘금방 끝나’ 라고 말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악수를 할 수도 없고, 목에 걸고 있던 캠코더를 들이밀었다.
“보시죠.”
뜬금없었지만 감독의 관심을 끄는 덴 성공했다. 고개를 내밀려고 하는 게 보여 아예 캠코더를 건네줬다. 그러면서 감독의 손가락을 살짝 터치했다.
지이잉.
됐다.
그리고 영상도 재생됐다.
세바스티앙이 볼까 소리는 꺼 뒀지만, 영상으로도 충분했다.
세바스티앙의 일일 보고서를 만들면서 틈틈이 편집한 세바스티앙을 과격하게 건드리는 3인조의 영상이다.
연습경기 이후, 일주일을 주겠다고 말했던 게 사실인지 3인조는 세바스티앙을 건들지 않았기에 내가 훈련에 참관한 첫 날의 기초훈련-연습경기 뿐인 영상이었다.
“이게 뭐?”
뻔뻔하네.
“덩치가 작은 선수를 거친 플레이로 누르는 게 뭐가 문제란 말이야?”
“아니···”
못 참겠다.
누가 봐도 고의 아니냐고 따져 물으려 했는데, 세바스티앙이 내 옷깃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감독도 뭔가 찔리는 듯 내 눈을 피한다.
설마 이 자식도 협박 같은 거 당하나?
그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기다려라 이 자식아.
세바스티앙이 먼저 감독실을 나서고 나는 문을 나서기 직전 휴대폰을 켜 정보를 확인했다.
[샘 그레이]-리암 그랜트를 두려워하고 있음.
-왼발잡이
-전술적 역량이 떨어진다.
첫줄은 럭키, 밑의 두 줄은 당장 쓸데는 없어 보인다.
협박을 당하고 있는지 지레 겁먹은 건지는 차차 밝혀나가면 될 것 같았다. 최소한 연관점은 있다는 걸 확인했다.
나는 감독을 한 번 흘겨보고 방을 나섰다.
문 밖에 나와 보니 가끔 인사하던 수석코치가 유창한 스페인어로 세바스티앙과 대화중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여서 옆에 선 채 멀뚱하게 서 있었다. 수석코치가 먼저 말을 걸어줬다.
“안녕하세요. 세바의 통역이시죠?”
감독과는 달리 인상도 좋아 보이고, 단어나 악센트도 예의발라 보인다. 밤을 샜는지 피로가 얼굴 곳곳에 찌들어 있었지만. 나는 손을 내밀었다.
수석코치는 내 손을 맞잡으며 세바스티앙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영어로 말했다.
“요 몇 달 경기력이 떨어져서 힘들 거예요. 잘 돌봐 주세요. 타향살이가 얼마나 외로운데요.”
“아··· 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야죠.”
이 구단에서 세바스티앙을 편하게 대하는 첫 사람이라 좀 당황했다.
“제가 선수들에게 신경을 쓸 틈이 없다 보니 이적 초처럼 자주 돌봐주질 못했네요. 세바에게 미안하다 전해주세요. 아, 일단 감독실에 들어가 봐야겠네요. 또 난리시네.”
수석코치는 부드럽게 웃으며 감독실을 바라봤다.
감독실 안에서는 ‘로이! 빨리 들어와! 곧 훈련 시작한다고!’라고 꽥꽥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수석코치가 감독실 안으로 완전히 사라진 뒤, 헬퍼를 다시 켜 빠르게 수석코치의 정보를 확인했다.
[로이 브래들리]-어제 수면시간 : 2시간
-이틀 전 수면시간 : 1시간 31분
-기분이 좋음
변태인가, 잠을 저렇게 자고 기분이 왜 좋아?
일주일 동안 전술 미팅 때 외에는 워낙 존재감 없는 사람이라 몰랐는데, 이상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래도 나쁜 사람 같지는 않으니 나중에 레드불이라도 한 박스 사서 이야기나 나눠봐야겠다.
생각을 마무리 지으며 세바스티앙을 돌아봤다.
세바스티앙이 먼저 선수를 쳤다.
“감독이 무슨 얘기 했어요?”
나는 한숨을 쉬고, 사실대로 말했다.
세바스티앙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그러다 결국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풀이 죽어버렸다. 나는 세바스티앙을 다독이며 말했다.
“에이전시에 연락할게.”
“오늘 훈련은요?”
“가야지, 일단은.”
감독 말 듣고 빠져나왔다가 무단 불참이라고 구단에서 징계라도 준다면 봉급도 못 받고 세바스티앙만 엿 먹는 거다.
이야기가 확실히 되거나 서류 같은 게 있어야 행동으로 옮겨도 탈이 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감독 뜻대로 할 생각도 없고.
세바스티앙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나는 세바스티앙의 등을 짝 소리 나게 한 대 쳤다. 누나의 등짝 스매쉬를 흉내 내서.
“정신 차려. 프로잖아. 나도 할 수 있는 건 해볼 테니까, 너도 최선을 다 해야지.”
“정말요?”
언제 불안에 휩싸여 있었냐는 듯, 세바스티앙의 두 눈에는 차차 신뢰가 자리 잡았다.
“알았어요. 열심히 해 볼게요. 훈련장에서 봬요.”
세바스티앙은 씩씩하게 걸어 드레싱룸으로 향했다.
나는 훈련장으로 걸어가며 생각을 정리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오전훈련이 끝나면 에이전시에 전화해야 겠고, 헬퍼로 얻는 정보들을 더 다양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물증이 필요하다. 헬퍼 정보들은 참고만 할 수 있을 뿐이지 법정 효과까지는 없으니까.
핵폐기물 3인조는 생각보다 교활해서, 나에게 일주일 유예를 준다고 한 날 이래로 세바스티앙을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그래서 영상자료도, 음성자료도 없다. 첫 날 거친 플레이를 했던 게 다다. 인종차별에 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내일부터 다시 시작될 거다.
그러니까 훈련 영상을 찍을 때 녹음기도 켜 둬야 한다. 오늘은 스마트폰으로 녹음할 거지만, 녹음기 자체를 하나 더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
하루 유예가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훈련장으로 나오니 핵폐기물 3인조 외에 다른 선수들도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훈련기구 세팅중인 구단관계자들과 코칭스태프까지.
이들의 정보도 너무 등한시 했던 것 같았다.
오늘부터 적극적으로 움직여 이들도 헬퍼에 등록해야겠다.
생각을 정리하고 리암 그랜트 쪽으로 다가가니 진동이 울렸다.
[리암 그랜트]-호텔 Sea Garden의 단골
하, 좀 약점 잡을 만한 정보를 줘.
한숨을 쉬며 막 옷을 갈아입고 나온 세바스티앙에게로 다가갔다.
얼마 후 감독이 훈련장으로 나왔고, 훈련이 시작됐다. 감독은 좋지 않은 눈빛으로 나와 세바스티앙을 바라봤지만 딱히 제지하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수석코치 로이 브래들리가 보이지 않는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일주일 동안 그를 봤던 기억이 없었다. 존재감이 없었던 게 아니라 그냥 훈련장에 나온 적이 없었다. 막 피지컬 훈련을 마친 세바스티앙에게 물었다.
“수석코치님은 훈련 때는 안 나와?”
“네, 거의 상대팀 분석이랑 전술만 담당하셔서 미팅 때 말고는 볼 수가 없어요.”
그런 거라면 세바스티앙이 인종차별을 당하고 있는 걸 모를 수도 있다 싶었다. 그럼 수석코치는 제외하고 슬슬 움직여야 겠다.
“쉬는 시간마다 다른 선수들이랑 이야기 좀 하고 올게.”
세바스티앙은 고개를 갸웃했다.
“나도 할 수 있는 건 해본다고 했잖아. 믿어 봐. 저번 주처럼 성과를 가져다 줄 테니까.”
“동양의 신비로요?”
“···어. 그렇지.”
오랜만에 들은 말이라 머리가 잘 돌질 않아 더듬대며 대답했다.
“기대할게요!”
세바스티앙은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고 훈련장으로 뛰어나갔다. 공격과 수비 팀으로 나눠 압박을 벗어나 빌드업을 행하는 훈련이었다.
수비 팀에 있을 때나, 공격 팀에 있을 때나 세바스티앙은 빛났다. 세바스티앙이 훈련하고 있을 때는 코칭스태프들과 말을 터 놓으려고 했는데 그걸 깜빡 잊을 정도였다.
수비 때는 다른 선수들보다 빠른 주력과 적절한 판단력으로 압박에 혁혁한 공을 세웠고, 공격 때에는 측면 미드필더임에도 준수한 패스와 오프 더 볼 움직임으로 빌드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잘 했어!”
골까지 넣은 세바스티앙을 보며 박수를 치며 소리쳤다. 감독을 흘깃 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세바스티앙이 너무 뛰어나서인지 아까까지만 해도 훈련에 참가하지 말라고 엄포를 뒀던 감독은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렇게 잘 하는 선수를 쫓아내겠다고?
그렇게 눈이 삔 거라면 감독 그만 둬야지.
아무튼, 세바스티앙이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나도 최선을 다해봐야겠다.
“마셔요.”
“감사···.”
이번이 몇 번 째인지, 선수들은 내가 건네는 수건과 음료들을 받으며 고맙다고 말하다가도 내 얼굴만 보면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그 시선은 리암 그랜트를 비롯한 핵폐기물 3인조의 눈치를 보는 걸로 끝났다.
대화 좀 해보려고 했는데 이런 반응이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소기의 목표는 달성했으니까 괜찮다.
나는 상태바에 적힌 숫자를 보며 미소 지었다.
[헬퍼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