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90
90
20. 이적설 (3)
클롭과의 약속은 금요일에 잡았다.
리버풀이 원정을 위해 런던까지 온다고 해서 경기 전 날 저녁을 함께하기로 했다.
나와 에린은 그때까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팀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화요일, 우리는 맨체스터로 이동해 조던 킹과 점심을 함께한 후 오후에는 맨유, 저녁에는 맨시티 관계자들과 만났다.
맨유에서는 수석 스카우터를 보냈다. 계약 조건은 리버풀과 비슷했다. 조세 무리뉴와 통화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당해 크리스를 원한다는 인상은 받지 못했다.
맨시티는 처음 보는 단장이 나왔다. 그는 적당한 기본주급에 엄청난 수당을 제시해 우리의 눈을 사로잡으려 했다. 이는 맨시티 주급체계의 특징이었기에 크리스를 푸대접한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이 팀의 문제는 감독인 과르디올라가 나서지 않은 것이었다. 감독이 나서지 않으니 크리스를 절실히 원한다는 느낌은 못 받았고, 이전부터 안면이 있는 과르디올라와 만나서 뭐라고 말해야 할까 고민했던 건 수포로 돌아갔다.
나는 에린에게 모든 걸 맡기고 옆에서 조용히 있었다.
수요일에는 세바스티앙에게 들렀고, 목요일 저녁부터 런던팀들과 차례로 만났다.
첼시는 구단주의 오른팔인 마리나 단장을 내세웠는데 감독 콩테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토튼햄은 적극적으로 덤벼들었다. 주전과 비주전의 격차가 큰 팀이어서 더 그런 것 같았다. 특히 이들은 에릭센과 알리의 대체자가 없는데, 크리스는 애매하긴 해도 양쪽 다 커버할 수 있는 자원이라 지난 이적시장에 이어 다시 한 번 탐욕을 드러냈다. 문제는 주급이었다. 토튼햄의 주급은 풀햄보다 짰다.
아스날은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가장 시들한 반응을 보였다. 그냥 찔러보기만 한 느낌이었다.
일부 팀은 크리스가 젊은 유망주이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찔러본 느낌이 났다. 괜찮아 보였던 맨시티와 첼시는 감독이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토튼햄은 주급이 별로였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졌다. 리버풀과 협상을 이어나가면 될 것 같았다.
에이전시 업무를 마친 금요일 오후 나는 에린을 태우고 풀햄의 훈련장으로 향했다.
약속시각까지 꽤 남아 크리스에게 일을 어떻게 진행할지 설명하고 함께 약속 장소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Don`t leave.] [Don`t go! Chris!]차를 몰고 훈련장 주차장으로 들어가는데 훈련장 입구에 걸개를 들고 있는 수십의 팬들이 보였다.
축구계에서는 드문 남성팬과 여성팬이 1:1 비율로 섞인 팬들은 출구만 보며 한 선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크리스 인기 많아졌네···.”
내 중얼거림에 에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풀햄에 온 지 6개월도 안 됐는데 벌써 저런 팬들이 붙다니, 크리스는 정말 대단한 선수였다.
훈련이 막 끝난 건지 선수들이 차를 타고 하나하나 훈련장을 떠나고 있었다.
크리스가 보이지 않아 우리는 훈련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라운지 테이블에서 세세뇽과 진지한 얼굴로 얘기 중인 크리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헤이, 여기에요.”
세세뇽이 나와 에린을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세세뇽이 뻣뻣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태. 그리고 에린··· 오늘도 예쁘다.”
크리스의 쌍둥이 여동생 에린은 풀햄 구단 내에서도 무척 유명했다. 그리고 세세뇽이 에린에게 첫눈에 반했다는 건 구단의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나도 크리스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응, 인정해.”
에린은 별 표정 없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에린 또한 이런 세세뇽의 태도가 익숙했다.
“혹시 오늘 시간 있어? 저녁이라도···.”
“약속 있어.”
“다음에는···”
“있을 예정이야. 내가 그동안 몇 번 거절했는지 기억 못 해? 그만 해. 우리 오늘 바쁘단 말이야.”
에린은 무감정한 목소리로 세세뇽의 말을 잘라내 버렸다.
세세뇽은 시무룩해졌고 크리스는 세세뇽의 어깨를 잡으며 키득댔다.
“내가 절대 안 된다고 했지? 너는 이길 수 없는 강적이 있다고.”
에린이 크리스에게 눈을 부라렸고 크리스는 겁먹은 강아지처럼 눈을 내리깔았다. 나는 세세뇽에게 말했다.
“미안한데 크리스는 우리가 데려가야겠는데,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내 말에 세세뇽은 시무룩했던 어깨를 펴며 정신을 차렸다.
“저도 할 얘기가 있어서 기다린 거예요. 태, 얘기 좀 해요.”
“응?”
우리는 크리스와 세세뇽이 앉아있던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선팅 된 창문 밖으로 팬들이 서 있는 게 보였다. 크리스가 팬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세세뇽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나를 가까이 오라고 손짓한 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말하는 건 비밀이에요. 에이전시에서 알면 절 죽이려고 할 거예요.”
“뭔데?”
어리고 장난기 많았던 기색은 어디로 간 건지, 세세뇽은 순식간에 진지한 얼굴로 변했다.
“저 여름에 리버풀 가요.”
“···정말?”
“네, 무조건 가요. 리버풀에는 말하지 마세요. 주급 올려 받으려고 버티고 있으니까. 언론에도 말하면 안 돼요.”
크리스는 이미 들은 얘기인지 덤덤했다.
“내가 소문내면 어쩌려고 이런 걸 말해?”
“더 중요한 게 있으니까 그렇죠.”
내가 갸웃하자 세세뇽이 속삭였다.
“여러 군데에서 이적제안을 받았다는 건 알고 있는데··· 크리스를 리버풀로 보내주시면 안 될까요? 저 크리스랑 계속 뛰고 싶단 말이에요.”
“···.”
나는 어이가 없어져서 세세뇽을 바라봤다.
세세뇽은 순진한 얼굴로 나를 간절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애 같은 이유로 수십, 수백억의 이적료가 오가는 계약 내용을 나에게 말하다니, 세세뇽이 2000년생, 그러니까 한국 나이로 치면 갓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갈 나이라는 게 확 실감 났다.
“그건 크리스가 정할 문제잖아.”
“태가 크리스 아빠나 다름없잖아요. 부탁 좀 할게요.”
나 또한 리버풀이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있고, 크리스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렇다고 말해줄 수는 없었다. 지금 모습을 보니 입을 쉽게 이리저리 열고 다닐 타입처럼 보였다.
“앞일은 모르는 거지만 참고할게.”
“꼭이에요?”
나는 머릿속의 리버풀로 가도 괜찮을 이유에 ‘크리스의 적응을 수월케 할 라이언 세세뇽의 이적’을 적어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세세뇽은 에린에게 손을 흔들며 훈련장을 떠났다.
에린은 세세뇽이 멀어진 후에야 크게 투덜댔다.
“크리스랑 친한 애고, 성격도 순해서 성질 죽이고 있는데 너무 애 같고 끈질겨요.”
“크리스다!”
에린에게 대답해주려는데 주차장 밖에서 크리스를 발견한 팬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 봤던 걸개가 이쪽을 향해 펼쳐졌다.
크리스는 고개를 숙이며 답답한 기색을 보였다.
“빨리 타.”
차에 탄 후에도 크리스의 표정은 편해지지 않았다.
“태가 시킨 대로 아무 말도 안 하고 인사만 하고 들어왔어요. 요즘 맨날 그렇게 해요.”
안전요원들이 팬들을 막아서는 걸 보며 크리스가 중얼거렸다.
나는 운전대를 잡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했어.”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요.”
크리스는 예의가 있는 선수다. 돈이나 명성, 향상심에 욕심이 많지만 그래도 팬을 생각할 줄 아는 선수였다. 나는 팬들을 보며 안절부절 못하는 크리스에게 웃으며 말했다.
“창문 열고 인사 정도는 해 줘도 돼.”
“그래요?”
크리스는 화색 하며 창문을 열었고,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팬들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
우리는 런던의 한 고급 호텔의 VIP 식당에 와 있었다. 에드워즈 단장의 이름으로 예약된 좌석으로 가니 클롭 감독과 에드워즈 단장이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크리스, 두 번째구나. 반갑다. 그리고··· 이야, 멋지네.”
클롭은 정장을 차려입은 크리스를 위아래로 한번 보며 감탄했다. 크리스는 쑥스러운 듯 웃으며 클롭의 인사를 받았다.
클롭은 에린과 포옹해 인사하고, 나를 흥미로운 눈으로 보며 다가왔다.
“에드워즈에게 들으니 사실상 당신이 크리스의 에이전트일 거라고 하더군요.”
클롭을 실제로 만났다는 사실에 들떠 있던 나는 진짜 돌로 직구에 맞은 것처럼 굳어져 아무 말도 못 했다.
“아, 에린 양을 무시하는 건 아닙니다. 내일 훈련 일정 때문에 뱅 돌아갈 시간이 없어서요. 시간을 단축해보자는 거죠.”
클롭의 여유로운 얼굴을 보다 보니 긴장이 풀렸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맞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언론 같은 곳에 소문내지는 않겠습니다.”
“크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니 상관없긴 한데··· 당황스러워서요.”
클롭은 내 말에 씩 웃었다.
나는 위르겐 클롭의 웃음을 보자마자 끓어오르는 팬심을 억누르고 차분하게 인사했다.
“에이전시에서 직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만, 크리스와는 개인적인 친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현석이라고 합니다. 성이 태고 이름이 현석입니다.”
“위르겐 클롭입니다.”
나는 클롭과 악수를 하고 테이블로 향했다.
지이잉.
가는 동안 에린을 슬쩍 봤는데 평소보다 훨씬 편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동안 부담이 됐었나 보다.
나는 자리에 앉기 전에 문자를 확인하는 척하며 헬퍼 내용을 확인했다.
[위르겐 클롭]-현재 능력 : ★★★★★★★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걸 좋아한다.
-팀 내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과르디올라에게선 얻을 수 없었던 현재 능력이 화면에 나타났다.
월드클래스 감독 또한 별 일곱 개가 최고일 것이라는 짐작을 머릿속에서 사실로 바꿨다. 현재 능력을 보니 더 확실해졌다. 크리스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감독이다.
“일단 식사부터 하죠. 여기 음식은 정말 맛있습니다. 영국 기준이 아니라 세계 기준에서 말이죠. 한식도 맛본 적이 있으니 미스터 태 입맛에도 맞을 겁니다.”
조용히 있던 에드워즈 단장은 그렇게 말하며 날 보고 웃었다.
식사 중에는 거의 클롭과 크리스의 대화만 들렸다.
“지난주 경기에서 너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첫 골은 그렇다 치더라도 두 번째 골은 너무한 거 아니야? 그리고 두 골 넣었으면 됐지 세 골이나 넣는 건 무슨 심보야? 나 그날 억울해서 잠도 못 잤다고.”
“···아니 그건 선수로서 어쩔 수 없는···.”
클롭이 툴툴대자 크리스는 얼굴을 붉히며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했다.
클롭은 크리스의 반응을 기다렸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아하하하하하. 경기에서는 야수 같더니 지금은 초식동물 같구만. 그만큼 네가 잘했다 이거지.”
크리스는 놀림당한 걸 알고는 분한 표정을 지었다.
클롭은 이야기하고 크리스가 듣는 패턴은 후식 먹을 때까지 계속됐다.
클롭은 크리스의 경기를 정말 많이 본 것 같았다. 그는 몇 달 전 경기 얘기까지 꺼내놓았고, 크리스는 자신의 경기를 기억해주는 클롭에게 감사하며 그 경기 때 왜 그런 플레이를 했는지 즐겁게 이야기했다.
클롭은 리버풀 선수단의 사적인 뒷이야기도 풀어줬고, 테이블의 모두는 클롭이 이야기할 때마다 웃음을 터뜨렸다.
확실히 좋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크리스 또한 점점 클롭의 매력에 홀리는 기색이었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크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부탁해요.”
“걱정 마. 호텔에 택시 예약해뒀으니까 타고 가면 돼.”
“고마워요.”
내일 훈련을 위해서이기도 했고, 내가 편하게 얘기할 수 있기 위해서 라고도 했다.
크리스가 떠나자 테이블이 잠시 조용해졌다.
이야기의 포문을 다시 연 건, 단장 에드워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