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92
92
21. 선택의 중요성 (1)
“대박이네, 6개월 동안 이적을 두 번이나 하다니··· 아! 야, 설마. 이번에도 수수료 안 받아?”
계약서를 넘기는 걸 멈춘 한여름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한여름이 계약서를 내려놓으며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날 바라봤다.
“이해가 안 가네. 편법으로 받는 방법도 있는데 알려줘?”
“변호사가 그런 거 알려줘도 돼?”
한여름이 하얀 이마에 주름을 만들었다. 그녀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투덜댔다.
“네가 크리스를 얼마나 돌봐주고 있는지 알아서 그래. 아깝잖아. 그러면 너 이것도 월급으로 처리했겠네, 괜히 미안하네···.”
그리고 내가 이번 의뢰의 선물로 가져온 백만 원이 넘는 위스키 박스를 흔들었다.
속이 좀 쓰렸지만, 에이전시에 소속된 동안은 아무런 문제도 만들고 싶지 않아 정해놓은 지침이었다. 그리고 돈이 궁한 입장도 아니었고.
“내가 너보다 많이 벌걸? 걱정할 필요 없어.”
나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조던 킹 건이나 레온 캐머런 건에서 꽤 많은 수수료를 받았다. 통장은 아직 든든했다.
“거의 20억인데? 진짜 안 아까워?”
“···구체적인 숫자는 얘기하지 말자.”
에이전트는 일반적으로 이적 시 발생하는 이적료의 10%가량을 받는다. 판매하는 구단이나 사는 구단 양쪽에서 받는 방식도 있고, 라이올라처럼 엄청나게 뜯어내는 방식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랬다.
나도 사람인지라 금액을 생각하면 당연히 아까웠다. 그 돈이면 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더 큰 집을 마련해줄 수도 있었고, 영국에서도 집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저걸 받으려면 에이전시를 관둬야 했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세바스티앙의 계약이 남아 있었고, 레온 캐머런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에이전시에 남음으로써 여러 인맥을 차곡차곡 쌓고 있고, 다양한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의료진을 만나며 많은 걸 배우고 있었다.
한탕 크게 하고 빠질 생각도 아니고, 이 업계에서 죽을 때까지 빌어먹고 크리스에게 완벽한 서포팅을 해 주고 싶었기 때문에 경험을 쌓는 걸 도와주는 에이전시에서의 하루하루는 무엇보다 소중했다.
“나중에 크리스가 100억 넘게 벌어줄 거야. 난 믿어.”
“벌 수 있을 때 벌어놓는 게 좋을 텐데···. 에휴. 알았어.”
한여름은 한숨을 쉬고 다시 계약서를 읽기 시작했다.
나는 한여름의 집중을 방해하지 않도록 얌전히 있었고, 한참 후에 한여름이 계약서에서 눈을 떼는 순간 귀를 쫑긋 세웠다.
한여름이 어깨를 으쓱했다.
“역시 빅클럽들 계약서는 보기가 편하다니까, 조항으로 장난을 안 쳐.”
“그럼···.”
“아무 이상도 없어. 그대로 계약해도 돼.”
한여름이 계약서를 흔들며 내게 내밀었고, 나는 계약서를 품에 안으며 환하게 웃었다.
“고마워.”
크리스는 물이 오른 걸 증명하듯 이번 주 경기에서도 1골 1어시스트를 올리며 같은 경기 2어시스트를 올린 라이언 세세뇽을 제치고 MOM에 올랐다.
계약서에 아무 이상 없다는 확인을 받은 후, 나는 에드워즈 단장에게 계약하겠다고 연락했고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에드워즈 단장과 리버풀의 변호사가 찾아와 계약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리버풀과 계약 맺은 건 지침이 정해질 때까지 비밀로 하자고 했는데, ‘익명의 관계자’라는 이름으로 1시간도 안 돼서 크리스의 리버풀 계약 소식이 언론들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 업계는 비밀이라는 게 별로 없었다. 풀햄의 직원이든 리버풀의 직원이든, 아니면 계약을 통보받는 FA의 직원이든 이들 중 아무의 입만 열어도 크리스가 리버풀과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쉽게 얻어낼 수 있었다.
모처럼 휴가를 받아 쉬려 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기자회견장에 들러야 했다. 풀햄의 훈련장에 있는 작은 기자회견장이었다.
크리스는 훈련복을 입은 채 평온한 얼굴로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옆에는 풀햄의 단장이 기자들을 향해 열심히 말하고 있었다.
“크리스 선수는 풀햄을 위해 리버풀의 홈그로운 선수가 될 기회를 차 버리고 남았습니다. 그리고 풀햄에게 추가 수익을 안겨 주기 위해 여름이 아닌 지금 계약을 맺었습니다. 팬분들이 크리스 선수를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풀햄의 단장은 크리스가 공짜로 가져온 600만 파운드의 값을 하듯 크리스를 열렬히 변호했다.
크리스 또한 왜 남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차분하게 답하고 있었다.
“자유계약이었던 저를 대우해준 팀에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팬분들과도 급작스럽게 헤어지고 싶지 않았고요. 남은 시즌 최선을 다해 승격까지 함께하겠습니다. 그리고 제 사정을 이해해 준 리버풀 측에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깔끔한 인터뷰였다.
이어진 질문인 왜 리버풀을 택했는지에 대해서는 ‘좋은 대우,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 챔피언스리그 출전.’을 말했고, 기본 주급이 언론에 다양하게 보도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자잘한 질문들도 차분하게 대답한 크리스는 이적과는 상관없는 질문에도 흔들림 없이 답했다.
“사우스게이트 감독과 긱스 감독 모두 앨런 선수를 탐내고 있는데 잉글랜드로 가실지, 웨일즈로 가실지 정하셨나요?”
한 기자의 질문에 크리스는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 전 우리끼리 끝내놓은 얘기였다.
“마음은 정했습니다. 합의가 끝나면 그때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앨런 선수!”
크리스는 훈련을 핑계로 훈련장으로 사라졌다. 나도 훈련장으로 향했다.
“잘 했어요?”
“이제는 안 지켜봐도 될 것 같던데?”
“고마워요. 어? 감독님.”
방금까지도 훈련을 지도하고 있던 요카노비치가 내 뒤에 와 있었다.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린 채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남아줘서 고마워, 크리스.”
“아니에요. 긴 상의도 없이 이렇게 일을 진행해서···.”
“아니. 선수가 기회를 잡는 건 당연한 거야.”
요카노비치는 쿨 하게 말했다.
부담을 던 듯 크리스의 뻣뻣했던 얼굴 근육이 풀어졌다. 크리스는 당장 훈련에 참가하고 싶은지 몸을 들썩이며 말했다.
“이제 훈련에···.”
“그래, 다른 선수들한테 설명도 하고.”
“옙!”
크리스는 전력질주로 세세뇽에게로 달려갔다. 훈련은 잠깐 멈춰있었다. 선수들이 크리스에게 모여들었다.
크리스의 이적 소식 때문인지 궁금해하는 표정의 선수도 있었고, 아쉬워 보이는 선수들도 있었다.
요카노비치는 내 어깨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로 있었다.
나는 요카노비치를 조심스럽게 올려다봤다.
“저한테 뭐 할 말이라도···.”
“고맙다고 말하려고요.”
“네?”
“솔직히 그날 미스터 태가 나한테 전화했을 때, 크리스가 남을 거라는 기대는 하나도 안 하고 있었어요. 당연히 리버풀로 가버릴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아···.”
요카노비치는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덕분에 승격을 향해 확실히 갈 수 있게 됐어요. 다음 시즌에 크리스가 없는 건 아쉽지만··· 또 새 선수를 구하면 되는 거죠.”
감독으로서 이상적인 마음가짐이었다.
“좋은 마음가짐이네요.”
“이런 마음가짐을 안 가지면 감독 일 못하죠. 아, 크리스가 떠나면 미스터 태의 도움도 못 받는 건가요?”
지난주까지도 주기적으로 풀햄 선수들의 데이터를 정리해 요카노비치에게 건네줬었다. 크리스의 경기력을 위해서였지만, 요카노비치는 진심으로 아쉬워하고 있었다.
나는 잠깐 생각한 뒤, 씩 웃으며 말했다.
“좋은 감독님과는 좋은 관계로 남고 싶네요. 원하신다면 지금만큼 자주는 아니겠지만, 가끔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입니까? 원하는 건···.”
“지금은 없어요. 나중에 생각날 때 부탁해도 되죠?”
나중에 에이전시를 차리게 됐을 때, 고객이 되어달라는 말은 뒤로 삼켰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빚을 지워 놓는다면, 나중에 고객으로든 이적 때 도움을 받든 어떤 쪽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다. 요카노비치는 별 여섯 개의 젊고 훌륭한 감독이니까.
나는 요카노비치와 악수를 나눴다.
“좋아요. 앞으로도 잘 부탁하겠습니다.”
요카노비치가 말했다.
공개 훈련이라 그런지 훈련장 주변에 팬들이 많이 보였다.
훈련 전에 크리스가 인터뷰를 한 덕에 떠나지 말아 달라는 내용의 걸개들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팬들 앞에서 세세뇽과 함께 발재간을 부리고 있는 크리스를 향해 갔다. 둘은 내가 가까이 가자 볼을 멈추고 내게 다가왔다.
“나 이제 가 볼게. 오늘 저녁 약속 안 잊었지?”
“네. 그럼 있다 봬요.”
“태, 멈춰요!”
“응?”
세세뇽이 나를 불렀다.
“태는 알고 있죠. 얘 잉글랜드로 가요 웨일즈로 가요?”
“아···.”
“잉글랜드 맞죠? 잉글랜드죠?”
나는 크리스를 바라봤다. 크리스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지금 보니 훈련 내내 시달렸던 모양이었다.
친한 선수라면 말해주는 것도 상관없었지만, 이 녀석은 자신의 이적을 털어놓을 정도로 입이 가벼웠기에 불가다.
나는 아마 크리스가 했을 말을 했다.
“비밀이야.”
나는 울상이 된 세세뇽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미안하지만 크리스는 너랑 같이 뛸 수 없을 거야.’
*
“웨일즈로 오겠다고요?”
와인을 마시던 웨일즈의 감독 라이언 긱스가 잔을 급히 내려놓고 물었다. 나와 크리스는 런던의 한 호텔에서 긱스와 식사 중이었다.
“네.”
나는 긱스의 물음에 그렇게 대답했다. 옆의 크리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클럽은 정리됐으니, 국가대표를 정리할 차례였다.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협회 측에서 움직였고, 웨일즈 축구협회에서는 감독이 직접 움직였다.
사실 나는 잉글랜드 축구협회의 제안이 더 마음에 들었다.
잉글랜드 축구협회에서는 크리스가 잉글랜드를 선택한다면, 무조건 3월 엔트리에 뽑고 제 실력만 보여주면 올해 6월에 열리는 월드컵에도 데려가주겠다고 했다.
잉글랜드에는 해리 케인을 제외하면 확실한 월드클래스 급 선수가 없었기에, 나는 무난하게 크리스가 월드컵에 승선할 수 있을 거라 판단하고 잉글랜드를 추천했다.
하지만 크리스는 단호했다. 크리스는 웨일즈의 에이스 가레스 베일의 광 팬이자 웨일즈 국가대표팀을 어릴 때부터 꿈꿨던 선수였다.
“이 녀석이 ‘무조건 웨일즈요! 절대로 웨일즈요!’라고 해서요.”
나는 크리스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 크리스가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긱스는 손뼉까지 치며 기뻐했다.
“정말 고마워요. 베일이 정말 기뻐하겠네요.”
“하하··· 그런데 부탁드릴 게 하나 있는데요.”
“부탁이요?”
대표팀 선택은 본인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양보할 수 없는 게 아직 있었다.
“이번에 웨일즈가 중국 원정을 가잖아요?”
이번 3월 A매치데이 때, 중국에서는 자국 국가대표팀과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한 웨일즈, 우루과이를 불러 작은 컵 대회를 연다고 했다.
“그렇죠.”
“원래는 3월 말고 9월부터 차출해주셨으면 한다고 부탁하려 했거든요··· 근데 이 자식이···.”
크리스는 국가대표팀에 뽑힌다는 생각에 무조건 3월에 가고 싶다고 고집을 피웠다. 선수가 이렇게까지 나오니 나는 감독과 직접 타협을 보기로 했고.
“···워낙 고집을 부려서요. 일단 3월에 국가대표에 들어가는 건 제가 포기했어요.”
“체력 때문인가요?”
긱스는 바로 핵심을 짚었다.
유럽 내 친선전이라면 모를까 중국까지 장거리 원정을 타면 체력에 급격한 손실이 온다.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들이 매번 이 문제로 체력적인 문제를 겪는 걸 어릴 때부터 봤는데, 크리스까지 이걸 당하게 할 순 없었다.
“저는 괜찮은데···.”
“자기는 괜찮다고 할 테지만, 이번에는 크리스를 90분 이상 출전시키지 말아 주세요.”
나는 크리스의 중얼거림을 막으며 말했다.
“긱스 감독님도 가깝게는 유로, 길게는 월드컵을 보고 계시잖아요? 크리스를 오래 쓰시고 싶으시다면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내 말을 다 들은 긱스는 양쪽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고, 남은 와인을 마신 후에 말했다.
“저는 미스터 태가 참 마음에 들어요.”
“예?”
“미스터 태는 정말 선수를 위하는 에이전트 같아 보이거든요. 좋습니다. 미스터 태 말대로 하겠습니다.”
긱스는 민망해하는 나를 보며 말을 더했다.
“그리고 한국 출신이라고 했으니··· 중국전에 대해서 많이 걱정되실 테죠. 중국전보다는 우루과이전에 출전시키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배려해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 시즌 크리스에 대한 큰 업무들이 끝났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남은 음식을 음미했다.
*
같은 시각, 런던의 또 다른 호텔에서는 EW에이전시의 대표, 윌리엄 보일과 소속 에이전트인 브루노 카르도주가 스토크시티의 단장과 영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태현석이 마크 휴즈에게 받아왔던 의뢰, 스토크시티와의 우측 풀백 거래를 마무리 짓기 위해서였다.
대표는 자신 있게 말하며 준비해 온 자료를 내밀었다.
“여러 후보가 있지만 저는 호세 알메이다 선수를 추천합니다. 이 자료를 보면 알다시피 그쪽에서 원하는 바에 가장 부합하고, 가장 뛰어난 선수니까요. 이 정도 이적료도 딱 커트라인이고요.”
대표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대표는 오늘부로 협상이 끝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토크시티 단장의 반응은 긍정이 아닌 우물쭈물이었다.
“죄송합니다만 결정을 좀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추천을 믿지 못하겠다는 겁니까?”
대표가 섭섭해 하는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단장은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절대 아닙니다. 아니죠. EW에이전시 하면 중견급 선수들을 꽉 쥐고 있는 알아주는 에이전시 아닙니까. 보일 대표님은 그 정점이고요. 다만, 감독님이 구단주님에게···.”
“마크 감독님이요?”
“네, 지금 강등권 탈출 막바지라 선수를 제대로 살펴볼 시간이 없다고, 에이전시의 믿을 만한 직원에게 선수 추천을 부탁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구단주님도 그렇게 하자고 동의했고요. 사이에 낀 저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믿을 만한 직원이라니, 설마···.”
단장은 어깨를 으쓱한 후에 말했다.
“미스터 태 말입니다. 우리 레온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 준 고마운 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