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make you the best soccer player RAW novel - Chapter 97
97
22. 기회 뒤에 숨겨진 것 (2)
헬퍼가 제공한 브루노의 정보는 ‘최근 호세 알메이다와 사이가 나빠졌다.’ 였다.
브루노의 담당선수인 호세 알메이다는 이적을 원했지만, 겨울 이적시장이 끝날 때까지 이적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싸우거나 한 모양이었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콧소리를 내며 대표의 새 정보를 열었다.
[윌리엄 보일]-세바스티앙을 18-19 여름 이적 시장에 반드시 이적시켜 수수료를 챙길 생각이다.
“응?”
브루노에 대한 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고, 대표의 정보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18-19 여름이적시장이면 석 달 뒤에 열리고··· 반드시라고?
지난 여름이적시장, 나폴리에서 레온의 이적이 파투났던 게 떠올랐다. 대표는 그때 나폴리와의 협상을 위해 레온을 희생시켰었다. 그러면서 내게 ‘비즈니스’를 강조했었다.
이 한 줄의 정보가 말하고 있었다.
에이전시의 이익을 위해 선수를 희생시킬 수 있는 대표가, 이번에는 그 화살을 세바스티앙에게로 돌렸다고.
나는 벽에 기대며 생각에 잠겼다.
에이전시에 남은 가장 큰 이유는 세바스티앙을 대표의 비즈니스 사고에서 보호하기 위해서였기에 이것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어떻게 막아야 하는가에 대해 먼저 생각했다. 하지만 대표가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기에 답이 나올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나는 금방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 건, 세바스티앙의 의사였다.
만약 세바스티앙이 이적하고 싶어 하고 대표가 추진하고 있는 팀이 세바스티앙의 이해와 일치한다면, 대표의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언제 왔어? 나 아침 안 먹었는데, 브런치나 같이 먹을래?”
한여름이 내 앞에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나는 깜짝 놀라 벽에 더 바짝 붙었다. 한여름은 내 반응이 재밌었던 건지 꼬마악마 같은 미소를 지으며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능력자님. 저 때문에 놀라셨나요?”
요즘 에이전시 내에서 주가가 무지막지하게 올라간다고 한여름은 톡에서 나를 이런 식으로 불렀다.
“그렇게 부르지 마. 창피해.”
“큭큭.”
한여름이 소리 내며 웃었다. 나는 바로 복수에 들어갔다.
“너 어제도 밤 샜지? 눈 밑 화장 덜 됐다.”
“뭐?”
한여름은 깜짝 놀라 복도를 뛰어가더니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살폈다. 그리고 인상을 찌푸리며 내게 고개를 돌렸다.
“이게···.”
“큭큭.”
똑같은 웃음소리를 내 줬다. 사실 한여름의 화장은 완벽했다. 한여름은 속았다는 사실에 분통을 터뜨린 후 입술을 삐죽 내민 채 다가왔다.
“한 방 먹었네. 이제 그만 할게. 야, 그런데 오늘 술이나 한잔할래? 너도 요즘 한가하지 않아?”
겨울이적시장이 끝난 후 일주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에이전시는 앞으로 한 달 정도 느슨하게 흘러갈 거라고 도미닉에게 들었다.
하지만 나는 한가하지 않느냐는 말에 당장 해야 할 일이 생각나버렸다.
“아, 미안, 나 진짜 급해서 한동안은 무리야.”
내가 바닥에 내려놨던 서류가방을 들며 말하자 한여름은 아쉬워하며 답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다음에는 꼭 먹자.”
“오케이. 연락할게.”
나는 곧장 에이전시를 내려가 내 차로 향했다.
*
브라이튼 훈련장의 주차장에 차를 대고, 바로 훈련장으로 들어갔다.
막 점심시간이 된 건지, 필드는 텅 비어 있었고 세바스티앙 뿐만 아니라 브라이튼의 모든 선수가 보이지 않았다.
감독 로이 브래들리가 수석코치와 이야기하며 식당으로 돌아가다 나를 발견하고 손을 들며 인사해왔다.
“오, 미스터 태. 무슨 일이에요?”
“안녕하세요, 로이. 세바는 식당 갔어요?”
안면이 있는 수석코치는 내게 인사하고 먼저 식당으로 들어갔다. 로이는 환한 웃음을 머금은 채 내게 말했다. 목소리에 호감이 잔뜩 담긴 게 느껴졌다.
“점심 먹으러 갔죠. 뭐 급한 일 있어요?”
“음···.”
잠깐 생각했다. 아직 이적 제안이 온 것도 아닌데, 감독에게 얘기해야 할까?
“에이전시 일 때문에요.”
아니라는 판단은 금방 내려졌다.
“휴··· 혹시 이적이라도 하는 줄 알았잖아요.”
“하하.”
나는 어색하게 보이지 않게 얼굴 근육을 신경 써야 했다.
“1월에 신문 볼 때마다 숱이 한 뭉텅이씩 빠져나갔었다니까요?”
“제가 제안 같은 거 안 왔다고 했었잖아요.”
“그래도 무섭더라고요. 하하.”
최근 무패행진을 달리며 프리미어리그의 압도적인 1위를 지키고 있는 팀이 바로 맨시티였고, 그 무적의 팀에게 홀로 두 골을 꽂아 넣은 선수가 세바스티앙이었다.
그리고 그게 우연이 아닌 걸 증명하듯, 세바스티앙은 팀의 중심으로서 꾸준한 활약을 보여 강등권 탈출만 해도 성공이라는 팀을 현재 8위로 이끌고 있었다.
원래도 빅클럽 출신에다가 성인 국가대표만 제외하면 스페인의 엘리트코스는 다 밟았고, 이제 영어도 가능하고 무대에도 적응됐으니 빅클럽으로 가는 게 당연하다고 언론들은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각종 링크들로 찌라시가 쏟아졌는데, 이적시장이 끝날 때까지 실제 제안은 하나도 없었다.
세바스티앙이 빠진다는 건 밴드에서 보컬이 빠지게 되는 것과 다름없었기에 브라이튼을 지휘하는 로이는 마음고생이 참 심해보였었다. 그래서 몇 번이고 제안 같은 거 온 적 없다고 말해줬는데도 로이의 안색은 나빠지기만 했었다.
이적시장이 끝난 지금은 다시 원래 안색으로 돌아왔고,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그득해 보였다.
대화의 템포가 끊겼고, 나는 기분 좋아 보이는 로이에게 습관이 된 질문을 던졌다. 매번은 아니고 자주 묻는 말이었다.
“세바는 요즘 어때요? 트러블 같은 거 없죠?”
“당연하죠. 우리 팀의 분위기메이커라고요. 다음 시즌엔 부주장을 주려고 생각 중이에요. 팬들이랑 교류도 활발하고, 책임감도 있고. 정말 괜찮은 선수라니까요?”
“그래요?”
로이는 세바스티앙을 무척 높게 평가했다. 실력도 좋고 인성도 괜찮고, 식단이나 사생활에 문제도 없단다. 로이의 칭찬이 계속 쏟아졌다. 늘 듣는 칭찬이었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내 아들이 교사한테 칭찬받으면 이런 기분일까.
“아무튼 저도 점심을 먹어야 하니 같이 가죠. 그리고 간만에 얘기나 좀 해요.”
“네.”
식사는 로이와 함께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식사 후에는 세바스티앙과 차나 한잔하면서 의향을 물어야 겠다.
“안 갈래요.”
세바스티앙은 단호했다.
“괜찮겠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인데?”
“맨유가 뭐 어때서요. 빅클럽에 갈 거였으면 AT마드리드에 그냥 남았죠.”
2010년 초반까지만 해도 공격수, 골키퍼 ATM기라고 불렸던 AT마드리드였지만, 시메오네 감독이 온 이후로 대부분의 축구팬들은 AT마드리드를 빅클럽이라고 인정하고 있었다.
객관적인 수치 중 하나인 UEFA랭킹이나 언론지에도 작년까지 TOP5안에 늘 들었다. 분위기가 나빠져 유로파리그로 떨어진 요즘도 TOP10 안에 들어 있고, 무패행진 중인 바르셀로나보다 실점이 더 적어 효율적인 팀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보여주는 팀이 AT마드리드였다.
“저는 트로피나 개인상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정말?”
축구선수가 상에 관심이 없다고? 나는 놀라서 되물었다. 세바스티앙은 태연하게 답했다.
“네, 저는 즐겁게 축구하는 게 좋아요. 뭐 따면 안 좋은 건 아닌데··· 그래도 그것보다는 꾸준히 뛰고, 팀원들이랑 놀고, 팬들이랑 노는 거. 이런 게 훨씬 더 좋아요.”
신기한 녀석이다. 나는 헤실헤실 웃고 있는 세바스티앙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게 네 의견인 거지···.”
세바스티앙은 한 번 고개를 끄덕인 후 자신의 의사를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밝혔다.
“브라이튼 팬들도 마음에 들고, 성적도 괜찮고··· 당장 다음 시즌에 떠날 생각은 없어요. 대표님한테는 그렇게 전해 주세요.”
의사는 확실히 들었다. 하지만 대표의 계획과는 완전히 어긋난다. 나는 대표의 꿍꿍이를 어떻게 말해야 할까 생각하며 입을 닫은 채로 있었다.
-세바스티앙을 18-19 여름이적시장에 반드시 이적시켜 수수료를 챙길 생각이다.
반드시라고 했으니 그렇게 할 거다. 그러니까 다른 조치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건 나 혼자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이적하지 않길 원한다면 세바스티앙 본인이 움직여줘야 했다.
나는 세바스티앙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 끝에 정할 수 있었다. 세바스티앙은 내가 말이 없자 고개를 까딱대다가 시계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때? 저 슬슬 오후 훈련에···.”
“세바.”
“네?”
내가 입을 열자마자 세바스티앙이 자리에 앉았다.
“너, 나 믿지?”
“당연하죠.”
조금의 뜸도 없는 대답에 내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나도 너 믿는다. 그럼 훈련 다녀와서 얘기 좀 더 하자.”
세바스티앙은 갸웃하더니 네, 하고 대답한 후 훈련장으로 떠났다.
*
세바스티앙과 각자 차를 타고 세바스티앙의 집에 도착했다. 나는 세바스티앙을 소파에 앉히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내 입에서는 나폴리에서 있었던 일 이야기가 술술 풀려나왔다. 세바스티앙의 미간이 점점 좁아졌다.
“정말 그랬다고요? 대표님이요?”
구단과 에이전시의 거래를 위해 선수의 이적을 희생했다는 이야기니 에이전시 입장이라면 모르겠지만, 선수 입장에서는 나쁜 사람일 뿐인 이야기였다.
“어디 함부로 얘기하지 마. 알겠지?”
“···.”
얼마 전 브라이튼이 스토크시티에 원정을 갔을 때 세바스티앙과 레온은 내 소개로 같이 밥도 먹은 사이였다.
세바스티앙이 나를 보며 물었다.
“레온도 덕분에 때를 만났으니까 잘 된 걸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당장 생각해야 하는 건 그런 게 아니야.”
“그럼요?”
“네 이적 말이야. 이번 이적도 쉽게 못 넘어갈 것 같아. 네가 거절한다고 해도 대표는 밀어붙일 거야.”
“제가 거절하면 끝이잖아요.”
“맞아. 그래서 더 모르겠어. 대표가 어떻게 술수를 부릴지, 영··· 감이 안와.”
나폴리 건 얘기를 한 게 효과적이었는지 세바스티앙은 진지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불과 10초 만에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다 막힌 고등학생 같은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어떡하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는데.”
“너 10초 생각했는데···.”
“10초든 뭐든 계속해도 똑같아요. 이런 일은 생각할 기회도 없었는걸요. 이런 일은 머리아파요···.”
“그래서 내가 있는 건가 보다.”
나는 한숨을 쉬며 답했고, 나를 간절하게 쳐다보던 세바스티앙의 표정이 밝아졌다.
“역시! 이번에도 믿고 기다리면 되는 건가요?”
세바스티앙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번에는 네가 움직여줘야 해. 이적 제안조차 못 하게 먼저 움직여 보려고.”
“먼저요?”
“응, 두 가지만 해주면 돼.”
“어려운 건 아니죠?”
“네가 잘하는 거야.”
내 말을 잠깐 고민하던 세바스티앙은 결국 내 쪽으로 찬찬히 고개를 끄덕여줬다.
다음 날, 나는 대표에게 전화해 세바스티앙이 맨유로 이적할 생각이 없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대표는 아무렇지도 않게 알겠다, 라고 답했다.
헬퍼로 속셈을 못 봤다면 포기했다고 생각할 만큼 깔끔한 대답이었다. 뒤로는 아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텐데,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대표는 태연하게 아스날의 프로젝트는 어떻게 하겠냐고 물었고, 나는 시간을 벌기 위해 준비해 둔 변명을 꺼냈다. ‘조던 킹’의 부상복귀전까지는 영국에 있고 싶다, 라고. 옆에서 케어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니 대표는 내 의견을 받아줬고, 이 주 정도의 유예를 받았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대표와의 통화가 끝나자 마자는 에이전시의 미디어 팀에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에 통화하는 마리나에게는 미뤄뒀던 세바스티앙의 인터뷰를 하겠다고 말했다.
마리나는 기본적인 주의사항 몇 개를 알려주고, 실수만 안 하게 옆에서 지켜보라고 말해줬다. 그리고 전화를 끊기 전에 내게 물었다.
-또 엘리자베스 기자랑 인터뷰하는 거예요?
“네, 아무래도 친한 기자랑 인터뷰하는 게 세바스티앙도 편하잖아요. 스카이스포츠이기도 하고.”
-너무 같은 기자랑만 인터뷰하면 다른 언론사에서 싫어하고, 세바스티앙의 다양한 면을 보여주기 어려워요. 다음에는 다른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것도 생각해보세요.
“네?”
느닷없는 조언에 나는 얼빠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휴대폰 너머의 마리나는 픽하고 웃는 소리를 내더니 이어 말했다. 목소리에는 호감이 가득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초짜인 줄 알았는데, 요즘 열심히 하고 성과도 많이 내는 것 같아서 알려주는 팁이에요.
묘한 감동이 일었다. 나는 감정을 수습하며 차분하게 말했다.
“아아. 감사합니다.”
-그럼 열심히 해 봐요.
“네.”
나는 휴대폰을 끊자마자 바로 엘리자베스 러셀에게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