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apon-eating bastard RAW novel - Chapter (363)
무기 먹는 서자님-363화(363/364)
무기 먹는 서자님 363화
존재여.
나는 그러한 의지를 내뱉은 태초의 괴수를 그저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말에 담긴 뜻을 헤아려 본다.
나의 이름을 부른 것도, 자신을 가로막을 운명의 대상으로 보는 것도 아닌.
그저, 존재.
태초의 괴수가 보는 눈높이가 느껴졌다.
인간은 가늠할 수 없는 섭리의 일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화아아아아아악!
시간이 멈췄다.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멈췄고, 나와 태초의 괴수만이 정지된 세상 속에서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점차 주변의 모든 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몬스터들의 괴성도.
귓전을 울리던 싸움의 소음들도.
나를 이곳에 보내기 위해 흘렸던 사람들의 비명과 함성도.
그 모든 것이 사라지고, 이내 남은 것은 까마득한 적막이었다.
꿈틀!
내 안에서 정화의 힘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낀다.
이것을 사용하면, 태초의 괴수의 수작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정확히는 설명할 수 없지만, 어째서인지 알 수 있었다.
지금부터 벌어지는 것은 결코 내게 해악이 되지 않음을.
후우우우욱!
뒤이어 세상에는 빛이 사라졌고.
냄새가, 촉감이, 세상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공허(空虛)였다.
그저 아무것도 없는 세계가 나를 중심으로 한없이 펼쳐졌다.
────우우우우웅!
그 거대한 공허 속에서 무언가의 존재가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 존재를 바라본다.
[기어이, 기어오르려 하는가.]태초의 괴수였다.
아니, 그건 그저 빈약한 인간의 언어로 표현한 것에 불과했다.
이 존재는 실체가 있는 무언가가 아니었다.
그저 세상 섭리의 일부였다.
탄생이 있으면 멸망이 있으니.
즉 이 까마득한 공허야말로 태초의 괴수의 본질이었으며, 멸망의 모습이었다.
[존재여.] [작은 필멸자의 몸에 담을 수 없는 것을 담은, 찬란한 존재여.] [이 모든 것은 그저 흘러가는 운명의 일부일 뿐이다.] [어째서 거부하는가.]멸망이 묻는다.
거기엔 적대감도, 두려움도 없다.
그저 물음이었다.
아득한 존재가.
아득히 작은 존재에게 묻는.
“그것이 삶이니까.”
존재에게, 존재로서.
나는 답을 내민다.
나 또한 이미 태초의 괴수라는 세계의 부조리에 대해 가지고 있던 분노와 증오는 사라지고 없었다.
거기엔 그저 목적만이 있을 뿐이다.
나와 태초의 괴수는, 마치 평행을 이루고 있는 선과 같았다.
서로가 너무나 같은 길을 같은 방식으로 뻗어 나가지만, 바라보는 바와 존재의 방식이 달랐다.
[보아라.]화악!
순간, 공허에 거대한 울림이 일어났다.
울림 끝에 환상이 떠올랐다.
그것은 거대한 초원이었다.
하늘이 있고, 땅이 있다.
인간이 있었고, 토끼와 사자가 있었고, 식물이 있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풀벌레들이 있다.
[서로 다름으로 가득한 이 세계 속에서.] [나는 모든 것을 온전한 하나로 만들지니.] [나의 안에서 세상은 서로 다름에서 서로가 되게 된다.]그 풍경이 검은색으로 칠해진다.
각자 다른 개체들이, 이내 하나의 형체로 변해 버렸다.
[삶도.]그 안에 뛰어다니던 맥동하는 모든 생명도 사라지고 없었다.
탄생이 없다면 소멸도 없음이니.
[죽음도.]그저 온전한 하나였다.
검은색으로 칠해져, 서로가 서로가 된 세계.
[모든 것이, 하나가 된 세상일진저.] [모든 존재는 합일(合一)함으로 태곳적 평온함으로 돌아가리라.]그제야 깨닫는다.
이 존재를 멸망이라 칭한 것은, 그저 인간 중심적인 생각이었음을.
말했듯 이건 그저 하나의 섭리였다.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러한 섭리였다.
[존재여.] [다른 누구도 아닌 그대, 존재여.] [그대라면 이것을 이해할 것이다.] [오직, 그대라면…….]이내, 또다시 공허가 펼쳐졌다.
나는 그 말을 이해했다.
어찌 보자면, 이 경지에 도달한 내가 보아도 그것은 멸망이라기보다는, 구원이나 또 다른 세계일지 몰랐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탄생하고, 죽으며.
번성하고, 쇠락하며.
그 변화는 언제나 고통이었고, 변화 속에서 서로의 존재는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손을 뻗어 공허를 가리킨다.
그 순간.
새까만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들이 명멸하며 우리를 둘러쌌다.
그 빛들을 바라본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발했던 빛이 있다.
유모와 고모가 발했던 빛이 있다.
숙부님이, 형제들이, 친우들이, 수하들이.
적들이, 원수들이, 세상에 살아가는 수많은 존재들이 발하는 빛이었다.
서로 충돌하고, 얽히고, 때로는 떨어졌다, 때로는 붙으며.
그렇게 발하고 수렴하는, 은하수와 같은 빛의 바다가 공허 속에 번져 나갔다.
“네가 바라는 세계는 평온하다. 그냥 평온할 뿐이다. 왜냐면 아무것도 없으니까.”
하지만 나의 세계는.
우리의 세계는 이다지도 찬란했다.
나는 그 찬란함을 눈에 담았다.
이곳에 우리네 삶이 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살아간다. 때로는 싸우고, 사라지고, 탄생하고, 번성하며…… 다양한 삶들을 살아간다.”
각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가 서로의 삶을 살아간다.
서로가 다르기에 그 삶은 수많은 빛을 발한다.
물론 인간이란 생각보다 멍청한 존재여서, 때로는 실패하고 퇴보하며 세계를 병들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어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저 주어진, 짤막한 삶의 한 단락을 위하여.
이 고독하고 공허한, 세상이라는 이름에 태어나서.
그 안에 자신들만의 빛을 피우기 위하여.
“어떠냐. 이다지도…… 아름답지 않은가?”
화아아악!
공허는 이내 빛이 된다.
삶의 빛, 인간들이, 수많은 생명들이 발하는 빛이다.
[그것은, 끝이 정해진 빛에 불과하다.] [제 몸을 태워 마지막에 발하는 부질없는 빛이다.]공허 속 무수히 많은 빛들이 쏟아져 내렸다.
유성우와 같았다.
기나긴 고독의 시간을 지나, 끝내 자신의 몸을 불태운 끝에야 빛을 발할 수 있는 존재들.
하지만…….
그것은 원래부터 그런 것이 아니었던가.
삶이란 그런 것이었다.
부질없고, 찰나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것은…… 해답이 되지 못한다.] [그것에는 끝이 정해져 있고, 그저 영겁의 시간 속에서 무한히 달려갈 뿐인 고통이다.]“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게 세상이다.”
그 한순간의 찬란함을 위하여 우리는 끝없는 삶이라는 고독 속을 항해한다.
이내 마주하게 될 자신의 삶 속에서, 짧은 반짝임이나마 세상에 흔적을 남기면서.
각자가 각자의 가능성을 꽃피우면서.
[존재여. 우리는 다르구나.]나는 태초의 괴수가 이를 이해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렇군.”
화아아아악!
빛이, 공허가.
한 곳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내 다시, 우리는 전장 위에 선다.
태초의 괴수가 날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그 태초의 괴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웅, 웅, 웅…….
점점이 이어지는 소리가 돌아오고, 빛이 돌아오고, 촉감과 냄새가 돌아왔다.
“……워! 막아라!”
“우리는 이길 것이다!”
“물러서지 마라!”
그리고,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더 이상 태초의 괴수에게서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도 더 이상 대화가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
태초의 괴수로부터 터져 나온 울음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몬스터들이 멈췄고, 인간들이 주저앉았다.
키이이이이이이잉!
충격과 공포, 적막과 고요 속에서 흑야의 구슬픈 검명만이 괴수의 울음소리에 화답하듯 울려 퍼진다.
더 이상 대화가 필요 없는 이 순간.
평행선으로 이어지던 두 선이 한데 포개어졌다.
* * *
쩌어어어어어엉!
지면이 터져 나갔다.
그저 땅을 박찼을 뿐인데 그러했다.
터져 나간 흙더미가 작은 동산처럼 큰 조각을 남기며, 지면에 떨어졌다.
두 존재의 부딪힘.
한 자루의 검과, 한 존재의 육체가 부딪혔다.
구우우우우웅!
그 부딪힘은 이내 거대한 균열을 낳았다.
빛과 어둠이 뒤섞인, 거대한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모든 걸 집어삼킬 듯 빨아들이다가, 모든 걸 내뱉듯 발산하고 있었다.
하늘에 가득하던 어둠이 쩍 갈라지고, 일그러지던 공간이 폭발하듯 일그러지며 세상에 광풍을 몰아쳤다.
‘많은 것이 사라졌구나.’
흑야를 휘두르며.
나는 나를 지탱하던 흑기라는 힘의 상실을 느낀다.
더 이상 천라도, 무극도 펼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내 손에 쥐어진 것은 한 자루 장검일 뿐이었다.
나도, 태초의 괴수도.
이미 힘의 우열은 의미가 없었다.
태초의 괴수는 그저 하나의 섭리였고, 오직 나만이 그걸 막아설 수 있는 존재였다.
일격이다.
서로가 가진 모든 것이 일격에 결정 나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앞에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철!
-막내야……!
-철아.
-주군!
-가주!
무수히 많은 울림이 귓전에 파고든다.
나의 삶을 반추한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있었던 구슬픈 비사의 끝에서.
전생의 고단한 삶을 지나.
눈을 떠 아기의 몸으로.
둘째 숙부님에게서 고모에게로 이어진 마력술이 날 성장시켰고.
이서현과 형제들, 생도대의 동기들, 론과 장한과 세레나와 만나 꿈을 꾸었으며.
이군성의 뜻을.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았으며.
아나스타샤를 만나 사랑을 나누었고.
수많은 인연과 인과와 운명들이 나를 이곳까지 밀어 주었다.
나 혼자였다면 불가능했을 것들이다.
그중 단 하나의 요소라도 부족했다면, 나는 이곳에 서지 못했겠지.
그렇게 나는 살아간다.
투쟁한다.
투쟁은 위대하고 거대하며, 그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었다.
농부에게는 밭을 일구는 것이.
학생에게는 펜을 잡고 지식을 쌓는 것이.
노동자에게는 피땀을 흘려 일하는 것이.
부모에게는 자식을 키우는 것이.
서로 같은 듯, 무한히 반복되는 그 삶 속에서 각자가 각자의 삶을 빛낸다.
그 모든 것이 투쟁이었다.
명멸하는 저 하늘의 빛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각자의 삶이, 지금 이 순간에도 빛나고 있다.
그러므로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살아가자.
우리는 이 세상에 홀로 태어나, 서로 부딪치고 얽히며 빛을 발한다.
나의 깨달음이, 내가 얻은 삶이.
나의 모든 힘이, 날 이곳에 서게 만들어 준 모든 인연이.
온전한 그 모든 것들의 빛이.
한 자루 검에 담겼다.
나는 그렇게, 그 검을 휘둘렀다.
* * *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세상을 보며, 그 존재는 생각했다.
[어쩌면.]이 모든 것이, 하나의 섭리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초의 괴수라는 이름하에, 멸망을 반복해 온 그 수많은 지워진 역사들도.
기어코 그 끝에 멸망을 막아선, 저 자그마한 하나의 인간도.
[이 또한 섭리의 일부로구나.]거대한 세계라는 이름의 흐름 속에서 기어코 멸망은 삶 앞에 스러졌다.
이 모든 것이 거대한 흐름의 일부였음을 느낀다.
죽음도 삶도, 반복되는 무한한 가능성은 결국 세계가 자연히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니.
[나의 끝도 자연스러운 섭리의 일부일지니…….]그것은 소멸이라 부를 수 없었다.
흘러가는 바람처럼.
세계에 자취를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그 무수히 많은 빛들 중 하나였다.
공허는, 멸망은, 괴수는…… 그렇게 빛에 휘감겨 눈을 감았다.
* * *
세상이 빛에 잠겼다.
찬란한 빛이 세상 가득 번져 나가, 그늘진 한구석 없이 스며들었다.
“아…….”
“저건…….”
전장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그 빛을 보았다.
빛 너머에 휘둘러진 한 자루 검.
그들은 말을 하지 못했다.
그것은 너무나 슬펐고, 즐거웠으며, 아름답고, 또한 흉측하기도 한.
그런 너무 많은 것들이 명멸하는 그런 감정들을 느끼게 해 주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그 검 한 자루에 깃들어 있었다.
화악!
이내, 모두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한바탕 소나기가 내린 뒤 먹구름이 걷히듯,
눈부신 태양의 빛이 어둠을 가르며 지상에 빛을 드리우기 시작했다.
태초의 괴수가 가렸던 하늘이 이내, 다시 제 색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쿠우웅!
세상이 울부짖는가.
거대한 진동이 지상 가득 번져 나간다.
먼지처럼 흩어져 사라지는 거대한 어둠.
사람들이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한 사내가 있었다.
검을 늘어뜨린 채, 가만히 아무것도 없는 평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수고했다.”
그 순간, 사내가 들고 있는 새까만 검이, 제 할 일을 다했다는 듯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흩날렸다.
한 점 한 점 흩어져 스러지는 가운데, 지상에 가득한 흑색의 기운들도 빛에 감싸여 저 먼 하늘로 흩날려 날아갔다.
사내가 몸을 돌린다.
검은 머리카락에, 노을빛을 연상시키는 노란 눈동자를 가진 사내.
자리한 모든 존재들이 실감했다.
끝이었다.
모든 싸움이 끝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