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131)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131화(131/920)
#131 낮달이 뜨는 식탁 (1)
이틀 후, 나는 빙의한 이래 가장 큰 시련에 봉착했다.
토요일이라 주인공들의 수업이 없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뚜벅, 뚜벅
이번만큼은 자의식 과잉이 아니었다.
황제궁에서 마주친 모든 시종, 병사, 하인, 손님들이 내게 묘한 눈길을 보냈다.
오늘따라 황궁에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나는 귀 끝이 뜨끈뜨끈 익어가는 걸 느끼며 아무 생각이나 했다.
점심 맛있는 거 나왔으면 좋겠다.
밥 먹고 쥘리에트 궁으로 돌아가면 주말 내내 방에 처박혀 있어야지.
고개만 숙인 채 전력 질주 하고 싶은데 황제궁이라 그럴 수도 없었다.
주먹을 쥔 채 최대한 빨리 걸었다.
함께 초대받은 뚝심이가 어깨에 앉아 몸통을 갸웃거렸다.
-삐르르
“왕자님, 저는 엄청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천사도 아니고 ‘타천사’잖아요.”
움찔.
“가나엘.”
“오페라나 희곡에 나올 법한 느낌이에요. 로메로 궁 시종들도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전야제 날 왕자님께서 쥘리에트 궁에 강림하시는 모습을 봤대요. 다비드 님은 왕자님이 태자 전하를 도와주실 줄 알았다면서······.”
뱅자맹의 만류에도 가나엘이 재잘거렸다.
우리를 안내하던 황제궁 시종이 조용히 동의했다.
나만 중간에서 극심한 대미지를 입고 있었다. 언론의 힘이 이렇게 무서웠다.
벌써 온 동네 소문 다 났구나.
“사라 벨리아르 경의 감각은 여전해요. 왕자님을 제대로 표현한 문구인 것 같습니다. 왕자님께서는 모두에게 친절하시고 주신께서 내려 보낸 천사처럼 고우시니까, 군중 속의······.”
“군중.”
내가 결국 걸음을 멈추고 소년의 말을 잘랐다. 세 남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복도를 살핀 뒤 소리를 낮추었다.
“그냥······. 군중으로 하자.”
짧고 좋네. 임팩트 있고.
“왕자님, 기사를 보셨겠지만 벨리아르 경은 왕자님에 대한 경외와 찬탄을 담아 그러한 칭호를 붙였다고 합니다. 다소 극적인 어감이 있으나 기억에 오래 남기는 하지요.”
뱅자맹이 위로인지 희롱인지 모를 소리를 했다.
나는 기사를 읽어보지 않았기에 할 말이 없었다.
표지에 대문짝만 하게 ‘군중 속의 타천사, 황실을 축성하다’라고 쓰여 있는데 무슨 배짱으로 페이지를 넘기겠는가.
내가 거기서 얻는 정보만 아니었더라면, 대체재가 있었다면 당장 구독을 해지했을 것이다.
태자를 전야제에 데려다줄 때만 해도 나의 행동이 이렇게 확대해석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정확히는 ‘비렴의 방주’를 대중에 공개한 부분과, 그걸 내가 사용했다는 사실이 주로 회자되리라 여겼다.
태자도 그 점을 고려했었고.
-삐삐삐
뚝심이가 내 목깃을 쪼며 명랑하게 울었다. 가나엘이 덧붙였다.
“<격주간 리에스테르>에서 칭호를 붙이는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사랑과 관심을 얻는 귀한 분께만 드리는 거니까요. ‘빙점하의 귀공자’와 ‘전율의 대마법사’도 벨리아르 경이 직접 작명했거나 내부 회의를 거쳐서 결정한 거랍니다.”
“······.”
까놓고 말해 전율의 대마법사 정도는 이제 평범해 보였다.
빙점하의 귀공자도 얼추 멋있게 느껴졌다. 뭔들 ‘그것’에 비하면 무난했다.
뺨이 또 화끈거렸다. 나는 세 사람을 독려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폐하와 추기경 전하께서도 칭호를 갖고 계세요. 특히 폐하는 잡지가 아니라 리에스테르 백성들이······.”
“어서 오십시오, 예서 왕자님.”
모퉁이를 돌자, 오찬장 앞에서 대기하던 시종장 로라가 나를 보고 예를 차렸다.
이놈의 ‘칭호’ 이야기를 그만 들어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나는 로라에게 묵례한 뒤 마지막으로 복장을 점검하고 식당에 들어섰다.
그래도 오전의 소동으로 좋았던 점 하나는, 황제가 먼저 식사 자리를 만든 이유에 관해 골을 썩일 틈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
“왜 얼굴이 빨갛지? 평범한 천사가 아닌 타천사라 병약한 건가?”
그런데 왜 앉자마자 시비를 트세요?
“태의를 불러주랴?”
“······아닙니다, 폐하. 감사합니다.”
나는 겨우 대답을 내놓았다.
상석에 자리한 프레데리크 황제가, 체리향이 물씬 풍기는 리큐어를 부티에 추기경의 잔에 먼저 따랐다.
같은 색 눈엔 즐거운 기색이 역력했다.
나와 마주보고 앉은 추기경이 미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기사는 잘 읽었단다. 근사하게 실렸던걸. 책봉식 관련 내용도 좋았어.”
읽지 말고 전부 회수해서 불태워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못된 말이 나오려는 것을 애써 참고 미소했다. 황제가 스푼을 들었다.
“일단 먹고 얘기해.”
제국의 지배자다운, 현명하고 사려 깊은 발언이었다.
나는 잽싸게 손을 닦고 식기를 잡았다.
뚝심이가 음식과 떨어진 곳에 앉아 우리를 지켜보았다.
한 시간여가 흘렀다. 황제궁의 요리는 언제나처럼 끝내줬다.
며칠 전 숲에서 노숙하며 먹은 바비큐도 맛있었고 에이츠 마을 어르신들이 챙겨준 집밥도 훌륭했지만, 역시 전문가의 손길은 남달랐다.
나는 적양파와 포도를 곁들여 부드럽게 쪄낸 송아지 고기를 다섯 접시 해치웠다.
소스에선 꿀과 상큼한 비니거의 맛이 났다.
바삭바삭한 아귀튀김은 케이퍼 드레싱을 얹어 먹으니 조금도 느끼하지 않았다.
입안에서 하얀 살이 포근하고 매콤새콤하게 부서지는 게 일품이었다.
역시 세 접시를 깨끗하게 비운 뒤, 허브와 함께 구운 통닭을 반쯤 뱃속에 넣을 무렵이었다.
“저 새가 너를 구했다지. 이번에 클레르 광장까지 태자를 데려다준 것도 저 꼬마고.”
황제가 리큐어로 입가심을 하고는 물었다. 역시 그것 때문에 불렀군.
나는 냅킨으로 입가를 정리한 뒤 운을 뗐다.
“예. 이블린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저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렴의 방주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신수의 새끼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한 헤인스 경이 저에게 성흔을 쓰니 본신의 힘을 드러내더군요.”
“본신의 힘이라면.”
“방주 안으로 저를 숨겨 주었습니다.”
추기경이 황제와 시선을 교환했다. 체리색 눈동자가 진중하게 가라앉았다.
“신물이 너를 주인으로 택했다는 뜻이냐?”
“그건 아닙니다.”
내가 즉답했다. 황제는 목을 기울였다. 계속 설명해보라는 의미였다.
나는 테이블 위를 쫑쫑거리며 다가온 뚝심이를 검지로 가볍게 쓸어주었다.
이블린은 알렉상드르 국서의 땅이었고, 현재는 황태자의 영지였다.
줄곧 그곳에 머무르던 신물이 난데없이 외국인 왕자를 따르기 시작했으니 황제로서는 호기심과 우려를 동시에 느꼈을 터였다.
헤인스 경이 나를 공격하던 날 엘리자베트 경의 보고가 있었을 텐데도, 그녀는 한 달이 넘도록 뚝심이에 관해 나를 추궁하지 않았다.
특유의 다혈질적 성향을 고려하면 놀라운 인내였다.
“말씀을 올리기 전에, 지금까지 해명을 기다려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많이 참으셨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안다니 다행이군. 내 계약자나 아들 녀석이 아니었다면 너는 진작 지하로 끌려갔을 거다.”
“프레데리크.”
황제가 툴툴거리자 추기경이 타이르듯 그녀를 불렀다. 나는 작게 입꼬리를 올렸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나는 그녀의 배려 덕분에 빠르게 충격에서 벗어났고, 요한 경과 헤릿을 빼낼 작전도 짤 수 있었다.
실행은 두말할 것도 없고.
“방주 내부에는 일종의 안내자가 있습니다. 신물이 인간의 모습을 취해 말을 걸더군요.”
“세상에.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는구나.”
선생님이 포크를 내려놓으며 단안경 아래의 눈을 빛냈다.
방주가 국서로 변했다는 걸 알려야 할까 고민했지만, 아픔을 줄 수 있는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내가 말을 이었다.
“그가 설명하기를, 저는 신물의 주인이 아니며 방주를 개방한 것도 제가 아닌 방주의 의지라고 했습니다. 당장의 제 신력으로는 그를 감당할 수 없다고,”
-삐르르르, 삐삐!
뚝심이가 강조하듯 노란 부리를 벌려 울었다. 헛숨이 터졌다.
“그렇다네요.”
“그런데도 녀석이 너를 따르는 이유는 뭐지?”
황제가 날카롭게 물었다. 나는 그날 ‘니키’와 주고받았던 대화를 더듬었다.
낮고 상냥한 음성과 긴 흑발, 아름답게 휘어지던 남청색의 눈동자.
‘곁에 있겠습니다. 나는 그대와 벗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니까요.’
“저도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와 친구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여기 있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솔직히 이야기한 뒤, 난처하게 웃으며 뚝심이의 이마를 문질러주었다.
녀석은 촉감이 마음에 드는지 가만가만 숨을 쉴 따름이었다.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바라보자, 내 말이 진실임을 직감한 황제의 미간이 구겨졌다.
“주신의 변덕이 죽 끓듯 하는군.”
“어쩌면 당연해. 본디 공기 속성은 홀로 자유롭다고 하니까.”
절대자의 불평에 반려가 다정하게 답했다. 이어 흡족한 얼굴로 리큐어를 머금었다.
황제는 혀를 차며 도로 나이프를 잡았다. 내가 조심스레 질문했다.
“······데려가지 않으십니까?”
“무엇을?”
“뚝심, 방주 말입니다. 이블린에 남은 건 눈속임으로 만든 분신이거든요.”
“내가 명한다고 해서 저것이 듣겠느냐? 신물은 인간의 소관이 아니야. 네가 거짓을 고하지 않았으니 그걸로 족해.”
그녀가 투덜거렸다. 그러자 황제어 전문 번역기인 추기경이 부연했다.
“다른 이가 아닌 왕자님이 제국의 신물을 맡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뜻이야.”
“내가 언제,”
“프레데리크는 세드리크와 비슷한 구석이 있거든.”
황제가 입을 딱 다물었다.
그녀가 적안을 가늘게 뜨며 계약자를 응시했지만, 스승님은 늘 그렇듯 우아한 낯으로 응수할 뿐이었다.
어른들이 이런 분위기를 조성할 때는 대화에 끼는 게 아니었으므로 나는 라임 에이드에 입술을 묻었다.
추기경의 말마따나, 방주와 내가 함께하는 것에 대한 여론이 나쁘지 않다면 잘된 일이었다.
신물을 사적으로 쓰는 건 신벌 받을 죄라지만 뚝심이는 자아가 몹시 또렷하기도 했다.
싫은 건 절대 안 하는 녀석이니······.
“골랐다는 영지가 알짜배기던데.”
내가 잔을 내려놓자마자 황제가 화제를 돌렸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타임라인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헤릿을 데리러 가던 날 우리가 황제궁 정원에 모여 그런 논의를 했었다.
황실에서 내게 후작위와 영지를 주겠다고 했고, 나는 이왕이면 호수가 보이는 곳이 좋겠다고 했고, 그래서 에바가 짚어준 땅이 아마 제국 서남부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제 뱅자맹이 확인차 묻기에 대충 좋다고 대답했는데 결국 확정이 난 듯했다.
나는 뜨끈한 부야베스 국물을 한 번 떠먹고 황제의 눈치를 살폈다.
“성심이 어지러우시면 다른 곳으로 바꿀까요?”
“뭐?”
“저는 사실 어느 지역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단지 뱅자맹과 가나엘이 호수 딸린 저택을 좋아해서,”
“웃기지도 않는군.”
그녀가 시크하게 말을 끊었다. 조금 자존심이 상한 것 같기도 했다.
“무를 생각은 없다. 어디든 내게는 아주 작은 땅이니.”
내가 얌전히 머리를 주억거렸다. 아무래도 의도치 않게 속을 긁은 모양이었다.
우리는 다시 한동안 식음에 집중했다.
내가 먹다 만 통닭을 끝장내고, 부야베스를 한 그릇 비우고, 파삭한 바게트 네 조각을 알알한 마늘 소스에 찍어 흡입했을 즈음.
“그곳의 어느 상단주가 희한한 놈이라지.”
황제가 불쑥 말을 꺼냈다. 나는 움직이던 입을 멈추고 그녀를 보았다.
“자유 도시가 있는 영지엔 익살스러운 일이 많은 법.”
샹들리에의 빛을 받은 은발이 유쾌하게 반짝거렸다. 꿀꺽. 어쩐지 불길했다.
“네 첫 시찰도 볼만하겠어.”
“프레데리크, 괜히 심술부리지 마.”
“영지 시찰요? 제가 직접 가는 겁니까?”
내 목소리가 살짝 커졌다. 리큐어를 마시는 황제 대신 추기경이 자상하게 답했다.
“황실에서 다스리던 곳이니 기본적인 것만 해주면 돼. 프레데리크의 이름으로 허하던 일들을 왕자님 이름으로 하게 되는 것뿐이란다. 하지만 한 번은······.”
‘시찰을 가야 해, 새로운 영주님이니까.’ 하고 그녀가 쓴웃음을 지었다.
안 그래도 뱅자맹에게서 받은 하반기 주요 일정표를 훑으며 앞으로의 전개를 추측하던 참이었다.
크리스텔과 세드리크 태자가 참석할 만한 행사를 전부 외우는 건 포기했다.
그놈의 무도회는 어찌나 많은지, 가나엘의 말로는 제국에서 ‘1일 1무’도 가능하다고 했다.
하루에 무도회를 한 탕씩 뛴다는 의미였다.
은서에게서 들은 정보와 일치하는 스케줄을 기억하는 것만으로 골치가 아픈데, 여기에 개인 일정이 추가됐다.
······아니지.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혼자 움직이는 게 낫나?
“죽상 하지 마라. 후작령을 ‘앙젤리크(Angélique)’라고 부르는 수가 있으니.”
나의 복잡한 표정을 본 황제가 톡 쏘았다. 나는 잠깐 프랑스어를 입속말했다.
한순간에 뒷목이 써늘해졌다. 천사 타령을 4절까지 하시려고요?
“걱정 말렴. 영지명은 프레데리크가 내리지 않기로 했어. 그리고 시찰을 떠날 때도 혼자는 아닐 거야.”
추기경이 달래듯 말했다. 돌아본 그녀의 베이지색 눈동자가 휘어졌다.
“왕자님 영지의 자유 도시 ‘아스’가, 6월에 사르네즈와 자매결연을 했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