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144)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144화(144/920)
#144 지상 최대의 쇼! (3)
뱅자맹과 다비드의 헛기침 소리가 났다.
“바깥에서 무슨,”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습니다, 후작님.”
크리스텔이 단호하게 속삭였다.
나는 어둠 속에서도 초롱한 청회색 눈동자를 내려보았다.
“에밀 드 아스 말입니다, 아스 상단주. 아주 못된 놈이에요.”
“······사르네즈 경이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응? 두 분은 어떻게 아셨는데요?”
주인공이 반문했다. 바로 옆에서 세드리크 태자가 긴 숨을 내뱉었다.
하지 마라, 습도 올라가.
“누나인 조안 드 아스를 신문하다가 알게 됐습니다.”
내가 소곤소곤했다.
크리스텔은 조안을 심문할 때마다 자리에 없었으니 정황을 알기 어려웠다.
경매장에서의 작품 사기와, 에밀이 누나에게 그림 값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이어지자 그녀가 와락 인상을 구겼다.
“덜 자란 새끼인가 싶었는데 아예 인간이 덜 됐네. 뭐 그런 똘······.”
크리스텔이 살벌하게 혼잣말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못 들은 척하고 다음 말을 꺼냈다.
“그리고 사실 확인이 어려워 사르네즈 경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상단주가 경의 남편 자리를 노린다는 진술도 있었습니다. ‘신분 상승에 눈이 멀었다’고 하더군요.”
“그거 맞습니다.”
그녀가 우리를 똑바로 보며 속닥였다. 나는 놀라서 눈을 깜빡였다.
알고 있었어? 아니, 따로 만나고 나서 알게 된 건가?
“그놈은 자기가 되게 잘난 줄 압니다. 자아도취도 심해요. 문제는 본인이 만족하는 선에서 멈추지 않고 다른 사람의 모략까지 한다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자신을 높이는 거예요.”
크리스텔이 반하지 않았다니 천만다행이지만, 에밀은 양파도 아닌데 까도 까도 뭐가 계속 나왔다.
그녀의 말투에 날이 섰다.
“저희 앞에서 후작님을 모함했어요. 등신 같은 게.”
“저요?”
“알 만하군.”
태자가 서느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끙끙대며 자세를 바꿨다.
둘의 체온차가 극심해서 어쩔 수 없었다. 좀 낫네. 아니다, 똑같구나.
“저를 모함해서 얻는 게 뭐가 있다고,”
“다들 후작님과 정다우니까 질투가 났나 봅니다. 우리가 후작님을 안 좋아하게 되면 자길 좋아할 줄 알았나?”
“······.”
이건 좀 낯 뜨거웠다.
신수들이나 간식이 있으면 좋겠는데 손이 비어서 민망함을 떨치기 힘들었다.
냉큼 안주머니에서 새끼손톱만 한 성석 구슬을 끄집어냈다.
황궁 대장장이 프랑크가 실험용으로 가공해준 것들이라 크기가 일정했다.
태자와 크리스텔의 손바닥에 하나씩 놓아주니, 두 남녀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그럴듯한 제안을 했다.
“어두운 데서 실험한 적은 없으니까요. 기왕 들어온 거, 해보고 나가죠.”
“좋습니다.”
크리스텔이 씩 웃으며 구슬을 만지작거렸다. 그러고는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아무튼 우리가 후작님을 좋아하는 건 일방적인 게 아니잖아요? 후작님도 우리를 좋아하시니까 서로 친한 건데, 상단주 놈은 그걸 모릅니다.”
“······.”
“인간관계는 한쪽의 횡포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거요.”
그녀와 태자의 눈길이 얽혔다.
본능적으로 피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목을 뒤로 쭉 뺐다.
크리스텔이 입꼬리를 올렸다. 때늦은 인사가 흘러나왔다.
“이렇게 얼굴 뵙고 대화하는 건 오랜만인 듯합니다, 태자 전하.”
어스름에 익숙해진 시야가 태자의 눈썹 움직임을 포착해냈다.
별말은 없었지만 호의적인 제스처가 분명했다.
둘은 그간 요한 경의 수업을 함께하지 못했으니 간만이라는 느낌이 들 법도 했다.
나는 중간에서 괜히 근지러워 숨을 참았다.
은서도 퇴계공을 읽을 때마다 이런 기분이었으려나.
“그래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사이다가 필요한 시점 같은데.”
“사이다?”
크리스텔의 말에 태자가 되물었다. 그녀는 ‘시드르 같은 겁니다’ 하고 대답했다.
“거품이 있어서 마시면 속이 뻥 뚫립니다. 아스 같은 자에겐 시드르처럼 시원한 복수를 해줘야죠.”
“실은······. 이대로 수사를 진행할까 했습니다. 폐하께 보고를 드리고, 황실과 근위대가 나서는 게 가장 깔끔한 그림 같아서요.”
내가 속삭거렸다.
사이다 전개를 싫어하진 않지만, 살면서 그런 행동을 할 일은 없었기에 실행으로 옮길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은 다른 모양이었다. 그녀의 벽안이 귀화처럼 번쩍였다.
“그게 정석이긴 합니다. 하지만 상단주라면 벌금으로 무마할 게 뻔해요. 누나라는 자도, 동생에게 빠져나갈 구멍이 있을 거라고 했다면서요?”
그거야 그랬다. 누나의 죄 또한 돈으로 해결하고자 했던 에밀이었다.
법적인 조치를 취해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고 금세 이미지를 회복할 가능성이 높았다.
미술품 사기 경매 역시 조안만 악인으로 남을 공산이 컸다. 그럼······.
“그놈은 명예를 원하고, 지위만 있으면 자신이 완벽해질 수 있다고 믿어요. 그러니 그걸로 괴롭혀야 타격이 갈 겁니다.”
크리스텔이 간사하게 말했다. 목소리만 들으면 악역이 따로 없었다.
“수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쪽을 팔게 해줘야죠.”
“흥미롭군.”
태자가 즉각 호응했다. 새삼스럽지만 둘 다 호전적이라 조금 걱정이었다.
*
작전 회의는 순식간에 끝났다. 계획 자체도 단순했기에 보탤 게 없었다.
엘리자베트 경은 우리가 벽장에서 나온 뒤로 줄곧 양볼이 빨갰지만, 다행히 감기는 아니었다.
가나엘이 전혀 우려하실 것 없다고 확인해주었다.
크리스텔이 불쑥 소백작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둘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다음날이 됐다.
9월 1일. 가을의 초입이자 아스 경매장의 성물(聖物) 주간 이틀 차.
작전 개시일이었다.
“으음.”
나는 달가닥대는 마차 안에서 신음했다. 어제 벽장에서 벌인 실험도 실패였다.
∙ 성석 테스트 결과
– 달리면서 특수 에테르 공급(격한 운동): 실패
– 잠결에 공급(심신 안정): 실패
– 장시간 소량 공급(1분에 한 방울): 실패
– 일시에 다량 공급: 실패
.
.
.
– 어두운 곳에서 공급: 실패!
수첩의 한 페이지가 ‘실패’라는 단어로 가득했다.
태자가 정무로 바쁜 동안, 크리스텔과 요한 경과 나는 틈틈이 성석을 가지고 여러 시험을 했다.
그나마 성석이 형태를 오래 유지한 경우는, 내가 동시에 서클을 열고 성기사에게 에테르를 공급했을 때였다.
역시 신관의 힘이 광물의 안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듯한데······.
“이봐, 후작님.”
반짝 고개를 들었다. 맞은편에 앉은 조안이 어째 위축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진짜 괜찮은 거야? 난 이런 자리 안 어울려. 경매장 귀족 나리들이 보고 비웃지나 않겠어?”
그녀가 와르르 말을 쏟아냈다.
화가이자 강도 미수범인 조안은 우리 작전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협조하게 됐다.
씻고, 영주성 하인들이 빌려준 새 옷을 입고, 머리에 두른 천도 탁탁 털어 쓰니 멀끔했다.
뱅자맹과 가나엘은 그녀가 내게 말을 낮추는 게 여전히 불만스런 기색이었다.
조안을 감시하기 위해 동승한 엘리자베트 경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다른 의미로 고개를 기울였다.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까?”
“나야 내가 자랑스럽지. 근데 높으신 분들 잣대는 다르잖아. 머리도 이런 꼴이고.”
‘잘 배운 예술가 이미지는 아니지 않아?’ 그녀가 툴툴댔다.
나는 삐죽빼죽하게 잘린 조안의 머리칼을 응시했다. 그러고 보니 그게 궁금했다.
“왜 그리 된 건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패거리 중 한 놈이 어머니 간병하느라 빚을 졌어. 그걸 내가 머리카락 팔아서 대신 갚았고.”
“······.”
“시시해? 불만이면 도로 감옥에 넣든가. 비싼 가발이라도 장만해 주든가.”
조안이 툭툭 쏘았다. 사연이 있을 거란 생각은 했는데 이런 쪽일 줄은 몰랐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근사한데요. 황도에서 유행할 것 같습니다.”
“뭐······.”
“맞다, 이게 아침에 설명했던 마도구입니다.”
내가 품에서 이어커프 한 쌍을 꺼냈다. 조안이 입을 딱 다물었다.
귓바퀴에 걸쳐 사용하는 물건으로, 이번에도 크리스텔이 르고 종합 무역소에서 몸소 구입한 파티용품이었다.
그녀는 현재 뒤따라오는 사르네즈 공작가의 마차에 탑승 중이었다.
태자는 앞서 가는 황실 마차에 타고 있었다.
“한 쪽에 15분, 총 30분간 사용자의 존재감을 지워준다고 합니다. 일회용이고 여기 달린 자석영을 세 번 건드리면 활성화됩니다. 이따 상단 건물 앞에서 마차 문이 열릴 때 한 번 쓰고, 이후에······.”
그때였다.
-똑, 똑똑, 똑똑똑!
누군가 창문을 요란하게 두드렸다. 우리는 식겁해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달리는 마차에 무슨,
“뚝심아!”
내가 탄식하듯 외쳤다.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굴뚝새가 열렬히 창을 쪼아대고 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데미는, 야! 너 발목 나간다!”
“후작님, 진정하십시오.”
그렇게 말하는 소백작의 목소리도 엄청나게 떨렸다.
그도 그럴 것이, 뚝심이가 자기 몸의 스무 배쯤 되는 레서판다를 발로 움켜쥔 채 파닥파닥 날고 있었다.
뱅자맹과 가나엘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나는 경악해서 입을 벙긋거렸다.
사고 날까 봐 일부러 두고 왔는데 이런 식으로 따라왔어?!
“왜······.”
뒤이어 마차가 속도를 늦추었다. 마부가 녀석들을 발견해서는 아니었다.
아스 상단 건물이 목전에 있는 걸 보니, 앞선 마차에서 경매에 참석하는 손님들이 내리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나는 잽싸게 문을 열고 애물단지들을 보듬었다. 데미가 내 갈비를 꾹꾹 눌렀다.
-끼잉, 끼응
“그래, 미안해. 낯선 사람이 많으니까 너희가 불편할 것 같아서 그랬어.”
-삐르르, 삐삐삐!
“미워서 떼놓고 온 건 아니야.”
-꾸르르르!
녀석들이 이상하게 자꾸 나를 타박했다.
특히 뚝심이는 마차에 들어오고 나서도 연신 부리로 창을 두드렸다.
가나엘이 그제야 밖을 보고 흠칫했다.
“후작님, 저기 보세요. 상단 마차에서 물이 샙니다!”
“어?”
나는 뚝심이를 조심조심 잡아 내리며 유리 너머를 확인했다.
소년이 가리킨 것은 아스 상단의 문장이 커다랗게 박힌 화물 마차였다.
마차는 건물의 후문을 향하고 있었는데, 뒤편의 여닫이문이 덜컹거리자 틈새로 다량의 물이 쏟아졌다.
안에 무슨 이동식 욕조라도 든 것 같았다.
나는 당황해서 굴뚝새와 레서판다를 바라보았다.
“저것 때문에 그런 거야?”
-낑
“안에 뭐가 있는데?”
-삐이
둘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모두가 난감한 낯빛을 했다.
이런 광경을 처음 보는 조안은 숫제 넋이 빠져 있었다. 나는 거듭 창밖을 살폈다.
그 순간,
“헉.”
마차 문틈으로 하얀 꼬리가 지나가고, 한 쌍의 검은 눈동자가 스쳤다.
전신에 소름이 내달렸다. 나는 재빨리 일행을 돌아보았다.
안쪽에 앉은 뱅자맹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방금 그거······.”
“인간은 아닙니다. 하지만 생명체가 확실합니다.”
소백작이 침착히 말했다. 상단 마차는 이미 골목을 돌아 보이지 않았다.
우리의 마차도 느릿느릿 나아가고 있었다. 곧 내릴 시간이었다.
나와 조안의 시선이 마주쳤다.
“동생이 살아 있는 경매품도 거래합니까?”
“희귀한 마수가 몇 번 나온 적은 있을걸.”
“그렇다면 그것도 마수였을까요?”
가나엘이 물었다. 나는 머리를 저었다.
품속의 크리스털 종이 너무 잠잠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수였다면 데미와 뚝심이가 여기까지 힘들게 날아와서 나를 찾지도 않았을······.
설마.
“신수야?”
-끼이!
-삐뽀!
녀석들이 정답이라는 듯 힘차게 울었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입이 떡 벌어지고 뒤통수가 찌르르 울렸다.
분명 오늘의 작전은 몹시 간단명료했다. 그랬는데 어쩌다 이렇게······.
“데미, 레아, 페리 님 말고 신수님들이 또 있는 거예요?”
“그런 것 같아. 들어가자마자 상단주를 만나서, 저 경매품을 내려달라고 부탁을 하든 명령을 하든······.”
가나엘의 조심스런 질문에 대답하는데, 데미와 뚝심이가 내 옷깃과 크라바트를 물고 마구 당겼다.
빨리 나가서 수수께끼의 신수를 구해달라는 간절한 몸짓이었다.
모두가 숨죽여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내 데미의 눈이 그렁그렁해졌다.
-끼으으······
“젠장.”
결국 두 쪽의 이어커프 중 하나만 조안에게 넘기고, 하나는 직접 착용했다.
데미는 꼭 안아준 뒤 뱅자맹의 무릎에 올렸다.
엘리자베트 경은 대경했지만 나를 말리지는 않았다.
나는 한발 먼저 이해해주는 친구들에게 묵례했다.
“감사합니다. 데미 잘 부탁드립니다.”
“후작님,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이쪽은 심려 마세요.”
“전하와 크리스텔 경에게는 제가 이야기해 두겠습니다.”
-꾸릇!
뱅자맹, 가나엘, 엘리자베트 경, 데미가 차례로 답했다.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동시에 마차가 완전히 정지했다.
“네, 믿겠습니다. 이따 뵐게요.”
톡톡, 톡. 나와 조안이 이어커프의 보석을 세 번 두드렸다.
나는 마부가 문을 열자마자 소리 없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어 골목 쪽으로 빠르게 걸으며 하늘에 지령을 내렸다.
“정뚝심, 안내해.”
-삐삐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