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152)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152화(152/920)
#152 짝꿍의 짝꿍 (1)
주인공들과 엮이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나는 언젠가부터 두 사람과 꾸준히 어울리고 있었다.
초반에야 나도 모르게 휘말리는 경우가 있었으나 최근엔 나 역시 적극적이었다.
그걸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더는 ‘은서가 좋아하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라고 회피할 마음도 없고.
“춤 연습이 끝나면 무엇을 하시나요?”
건너편의 요한 경이 부드럽게 물었다.
어느새 크리스텔과 에바는 다음 동작으로 넘어간 상태였다.
네 개의 발소리에 맞춰 음악가들이 느린 춤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나는 따뜻한 아카시아 꽃차를 감싸며 대답했다.
-♪♩♬······
“티테의 연못이 완성됐다고 해서 가보려고 합니다.”
“즐겁겠네요.”
민트색 눈동자가 기대감으로 살랑였다. 같이 움직이겠다는 의미였다.
나는 미소로 말을 맺고 수첩을 내려다보았다.
떠올리지 못하는 부분도 상당하겠지만, 내가 빙의 첫날부터 틈틈이 써둔 ‘퇴계공’ 관련 정보는 적지 않았다.
그중엔 ‘태자 별명 세레기’ 같은 단편적인 지식도 있었고 ‘무도회 첫 키스’처럼 추상적인 말도 있었다.
1일 1무도회가 가능한 제국에서, 두 남녀가 언제 입을 맞출지 내가 어떻게 예측한단 말인가.
다만 은서가 들려준 이야기의 앞뒤를 짜 맞추면 짐작이 가는 부분도 제법 있었다.
예컨대······.
∙ 연꽃 축제
∙ 마상 창 시합
∙ 매사냥 대회
긴 줄로 죽죽 그인 항목들이 눈에 들어왔다.
뱅자맹이 구해다 준 하반기 리에스테르 주요 일정과 내 기억을 대조해가며 건진 것들이었다.
세 이벤트 모두, 원작에 등장했으나 크리스텔과 세드리크 태자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은 행사였다.
연꽃 축제가 한창이던 시기에 우리는 엘리서를 만났고 에이츠 마을 주변을 헤맸다.
마상 창 시합은 알고 보니 6월 초에 열렸는데, 당시 나는 태자와 블랑케르 소공작의 결투를 관람했다.
매사냥 대회는 내주 주말에 개최되지만 주인공 중 누구도 흥미를 갖지 않았다.
‘사르네즈 경, 다음주에 매사냥 어떠십니까? 태자님도 함께요.’
‘다 같이 가면 즐겁겠지만······. 어렵지 않을까요? 왕자님과 저는 막바지 춤 연습을 해야 하잖아요.’
혹시나 싶어 크리스텔을 떠봤으나, 그녀는 구구절절 맞는 말로 응수했다.
태자도 시큰둥하긴 마찬가지였다.
‘태자님, 매사냥은 안 가십니까?’
‘이제 매까지 키우고 싶다는 건가?’
‘뭐? 그게 아니고요.’
-삐삐삐!
태자의 말도 안 되는 대꾸를 듣고 뚝심이가 화를 내는 바람에, 대화는 흐지부지 끝났다.
굴뚝새는 내가 다른 조류에게 관심 갖는 꼴을 절대 보지 못했다.
나 주인 아니라며······.
-끼이!
“그래, 알았어.”
나는 의자 다리를 기어오르는 데미를 허벅지에 앉혀 주었다.
나머지 레서판다들은 뱅자맹의 바짓단을 물고 늘어졌다.
마지막으로 본 뚝심이와 티테는 침실 소파에서 자고 있었다.
데미의 꼬리를 문지르고 있으니 생각이 차츰 가라앉았다.
“음.”
그러니까 결론은, 퇴계공이 원작대로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유감이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엘리서가 제국에 온 건 성기사 서임 심사를 위해서였는데, 원작의 주인공들은 애초에 성기사가 아니었다.
태자 녀석이 로베르 블랑케르에게 장갑을 던진 까닭도 내가 모욕을 당해서였다.
본래라면 그가 연적인 예서 왕자를 생각해 나서는 일은 없었을 터였다.
다들 매사냥에 무심한 이유 또한, 이튿날 블랑케르 공작령으로 떠나는 스케줄이 있기 때문이고.
“그래도······.”
내가 혼잣말하며 ‘로판’이라는 글자 주변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래도 로판의 큰 틀은 굳건한 듯했다.
크리스텔과 태자가 시나브로 친해지고 있는 데다, 둘은 이번 가장무도회에도 파트너로 참석할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요한 경.”
“네, 전하.”
“태자님과 사르네즈 경 말입니다. 전보다 많이 가까워지신 것 같죠? 선생님 입장에서 보시기에요.”
“······처음과 비교하면요.”
내 물음에 그가 느릿느릿 답을 내놓았다. 것 봐,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지?
나는 싱긋하며 수첩의 앞 페이지를 살폈다. 또박또박 써내려간 문장이 보였다.
∙ 나의 목표
주인공들과 엮이지 말고, 종전까지 살아남아 건강하게 귀가하자!
······이대로 흐름이 계속 바뀌어서, 작중에서 벌어졌던 전쟁까지 없던 일이 되면 좋겠다.
하지만 그렇게 중대한 이벤트를 작가가 쉬이 포기할 것 같진 않았다.
그간 주인공들 근처에 내가 모르는 복선이나 떡밥이 착실히 뿌려졌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교전이 반드시 일어나리라 가정하면,
-끼응
“어, 계속할게.”
내 손이 멈추자 데미가 불만스레 울었다. 나는 서둘러 녀석의 등을 쓰다듬었다.
에바와 빙글빙글 돌던 크리스텔이 나를 보고 활짝 웃었다. 한낮에 별이 뜬 것 같았다.
“······.”
솔직히, 전쟁이 발발하면 그녀와 태자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둘은 제국의 유이한 성기사이니 높은 확률로 참전하게 될 텐데, 나는 그들의 정식 파트너이자 친구였다.
내가 없으면 두 사람은 다른 신관에게 에테르를 받아야 했다.
무엇보다 친구들만 전장에 보내놓고 나 혼자 안전한 곳에 있을 수는 없었다.
몸이야 편할지 몰라도 마음은 지옥처럼 힘들 게 분명했다.
“사르네즈 경, 제 허리를 잡아보십시오. 이렇게 말고요!”
크리스텔에게 잡혀 반짝 들어 올려진 에바가 웃으며 외쳤다.
주인공은 장난기 어린 눈동자로 소공녀를 간질이기 시작했다.
곧 높은 목소리가 볼룸을 울렸다.
“다음주면 두 분 모두 진짜 성기사가 되시겠군요.”
요한 경이 홍차에 입술을 묻으며 말했다. 고개를 돌리자 그와 눈길이 마주쳤다.
엘리서가 황궁을 떠난 지 무려 두 달이 지나서야, 교황청은 제국에 특사를 파견했다.
크리스텔과 태자의 성기사 서임을 승인하는 교령(敎令)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오는 화요일엔 부티에 추기경이 성의(聖意)를 받들어, 황제와 대귀족이 보는 앞에서 직접 두 남녀를 축복하고 서임할 예정이었다.
“네,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습니다.”
“2개월이면 보통이죠. 저는 대주교 승급 심사를 통과하는 데 7개월이 걸렸어요.”
비공식 추기경이 바람 빠지는 소리로 답했다.
아마 그의 출신 성분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 표정을 본 요한 경은 난감하다는 듯 눈썹을 늘어뜨렸다.
“웃자고 드린 말씀이었어요.”
“죄송합니다.”
“아뇨, 꼭 화가 나신 듯해서요. 저를 가벼이 동정하지 않으시는 건 알아요.”
그가 ‘무서운 교황님처럼 보였거든요’ 하고 덧붙였다.
실없는 농담에 나는 결국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심사 이야기를 하니 자연스레 엘리서가 떠올랐다.
그녀와 코르넬리서가 왕자와 무사히 재회했으면 좋겠는데, 그건 또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깃펜을 들고 손이 가는 대로 글씨를 끼적였다.
∙ 나의 (새로운) 목표
– 친구들이 다치지 않게 노력하기
– 신국 삼남매가 다시 만날 수 있도록 건강히 지내기
– 주인공들 옆에서 정보를 얻어 집에 돌아가기
······이게 말이 되냐? 엄청난 모순에 인상이 절로 찡그려졌다.
전쟁이 터지면 주인공들과 함께할 생각이지만, 삼남매가 상봉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양국 간에 그 정도 마찰이 생기면 그냥 평생 못 보는 거 아닌가?
게다가 전쟁터에서 까딱 잘못해 죽기라도 하면, 귀가 계획은 어떻게 되는 건데?
-끼으
그때, 수첩을 들여다보던 데미가 벌떡 일어났다.
레서판다의 까만 눈알이 비장하게 빛났다. 왜 그래?
-끼이, 끼이, 끼이이!
“······.”
-꾸르르르, 꾸릇!
“······.”
-끼응! 꾸!
뭐라고 열심히 의견을 피력하는 거 같은데, 내가 신수의 언어엔 무지해서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녀석이 답답한지 앞발을 뻔쩍 들었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입도 동그랗게 벌렸다가 닫았다가 했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싸우자고?”
-낑······
그러자 데미가 힘없이 널브러졌다. 이어서 내 배를 살살 누르며 달래는 시늉을 했다.
혀도 쏙 내민 것이 몹시 사랑스러웠다.
나는 녀석이 떨어지지 않도록 몸통을 잡아주며 물었다.
“싸우지 말고 화해해?”
-끼잉!
데미가 ‘바로 그거야!’ 하는 표정으로 앞구르기를 했다.
나는 파안하며 녀석을 끌어안았다. 싸우지 말고 화해라······.
눈이 번쩍 뜨였다.
“전쟁하지 말라고? 설마 전쟁을 막으라는 거야?”
-끼
내가 빠르게 속삭이자, 신수는 당연하다는 듯 짧게 울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게 그렇게 쉬웠다면 나도 처음부터 그쪽을 공략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결정권을 지닌 실력자가 아니라 적국의 볼모였고, 내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을······.
“아닌가?”
입속말이 툭 흘러나왔다. 분명 빙의 초기라면 그런 해석이 맞았다.
그렇지만 나는 지난 반년간 황제의 호감을 샀고, 추기경의 유일한 제자가 됐다.
황태자의 벗이자 짝이기도 했다.
사르네즈 공작가를 비롯한 제국의 4대 귀족 가문과 두루 친분도 쌓았다. 어라?
“이게······. 이게 되나.”
내가 데미를 토닥거리며 중얼댔다.
일단 프레데리크 황제는 반전주의 성향으로 유명했다.
요한 경과 헤릿을 구한 일도 모두의 도움을 받아 해냈으니, 어쩌면 다시 한번 많은 이의 협조로 끔찍한 동란을 막을 수 있을지 몰랐다.
물론 두 명을 살리는 것과 수백만 명을 살리는 건 무척 다르고, 그만한 이벤트를 저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듯싶지만······.
으음.
“될 거예요.”
요한 경이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놀라서 맞은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꼬리가 확신을 담아 휘고 있었다.
“무엇을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전하의 뜻대로 될 테니 걱정 마세요.”
그런 말도 이어졌다.
마침 볼룸 입구에서 새로운 간식을 받아온 가나엘이, 우리 앞에 무스 오 시트롱을 놓아주며 밝게 웃었다.
“맞아요. 왕자님이 바라시는 대로 잘 풀릴 겁니다. 저도 뭔지는 모르지만요.”
“고마워.”
“많이 드시고 힘내세요!”
소년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멀리서 나와 눈길이 닿은 에바가 입술을 비죽였다.
내 휴식이 길어진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나는 쓰게 웃으며 디저트 컵을 들어 보였다. 이거 세 개만 먹고 후딱 가겠습니다.
*
“저희는 여기서 대기하겠습니다.”
뱅자맹, 가나엘, 요한 경이 황실 서고 앞에 나란히 섰다.
크리스텔과 에바는 쥘리에트 궁 볼룸에 남아 추가 연습을 하기로 했다.
나도 마냥 여유 부릴 처지는 아니지만, 서고에서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 시간을 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물러나니 황제궁 시종이 익숙한 몸짓으로 문을 열어주었다.
이내 거대한 도서관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올 때마다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세작, 세작, 세작······.”
망설임 없이 책 냄새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벽면을 가득 채운 유리창으로 완연한 가을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평범한 대학 도서관이었다면 나도 광합성을 하며 짧은 낮잠을 즐겼겠지만, 지금은 한껏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흑단 책장에 줄지어 꽂힌 책등을 꼼꼼히 훑었다.
바로 지난주에도 이 근처에서 로메로 선황에 관한 기록을 찾은 바가 있었다.
여기 어디쯤에······.
“왜 저기로 가 있냐.”
내가 목을 쭉 빼며 중얼거렸다.
<로메로: 처형의 기록>. 셀린 선황 치세에 발간된 역사서였다.
접때는 눈높이에 꽂혀 있었는데 오늘은 위치가 까마득했다.
섬뜩한 제목을 보니 조안의 경고가 다시금 귓가를 맴돌았다.
‘우리한테 죄를 덮어씌운 집안은 지금도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을 테니까. 여태 신국의 첩자 노릇을 하고 있을지 누가 알아?’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조안의 증조부인 아스 남작이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고도 선황의 손에 살해당했다는 게 이상했다.
제국엔 수많은 신관이 있었고, 로메로는 언제든 고해 성사로써 남작의 말이 진실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로메로: 처형의 기록>은 그가 재판에 신관을 동원하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가장 사랑하던 신관에게 배신을 당한 뒤로, 선황은 어떠한 주신의 종도 믿지 못하게 되었다. 그는 평생 종교적 반려를 두지 않았으며 승하하는 순간까지 자기 자신만을 신앙했다.’
아주 지독한 실연이었다. 로메로의 열병 때문에 전쟁 시대가 시작됐으니 말 다 했다.
하지만 그가 남긴 문헌들은 어쩌면 실마리가 될지 몰랐다.
나는 까치발을 들고 손을 뻗었다. 저걸 다시 제대로 읽어봐야 하는데.
“젠장. 너무 높,”
-탁!
커다란 손이 여유롭게 책을 빼냈다.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옆을 돌아보았다.
“의외의 선택이군.”
“억!”
선명한 주황색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식겁해서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너는 인기척 좀 내고 다녀라!
“증조부의 손에 죽은 자들이 궁금한가?”
태자가 살벌한 소리를 지껄였다. 나는 책장을 붙들고 심호흡했다.
저번에 여기서 크리스텔 만났을 때도 그렇고, 역시 도서관을 낭만적인 장소로 포장하는 인간들은 반성할 필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