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157)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157화(157/920)
#157 모략 (2)
프레데리크 황제가 눈을 가늘게 떴다.
“쯧.”
이어 딱하다는 건지, 불만스럽다는 건지 모를 반응을 보였다.
나는 얌전히 그녀에게 바투 서서 답을 기다렸다.
크리스타너 국왕에게 답장을 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진짜 예서 왕자가 아니었다.
엘리서와 만나게 되었을 때도 엄청 고민하고 걱정했는데, 무려 친모에게 편지를 쓰는 행위는 곤란했다.
필체의 차이가 뚜렷할 것이고 말투며 형식도 크게 다를 터였다.
[······그대의 생명으로써 주신을 방비할 것을 언약하는가?] [언약합니다.] [오직 주신의 의지에 따라 세계의 안팎을 드나들 것을 언약하는가?] [언약합니다.]앞쪽에서 부티에 추기경의 나긋한 음성이 들렸다.
크리스텔과 세드리크 태자가 한목소리로 성기사의 맹세를 읊고 있었다.
두 남녀의 심장께에서 황홀한 은백색 에테르가 넘쳐흘렀다.
나는 그 광경을 흐뭇하게 보다가 황제를 살폈다.
“······.”
두 번째로, 그녀의 의심을 사는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나는 후작위를 받은 그녀의 사람이었고 아들의 친구이자 파트너이기도 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외국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모든 이를 경계해야 하는 황제에게 추가로 신경 쓸 거리를 제공할 마음은 없었다.
적국의 왕에게 보내는 서신 내용을, 그녀가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테니까.
“좋다. 네 뜻대로 해.”
“황송합니다.”
내가 재깍 답했다. 그녀는 팔걸이를 두드리더니 불쑥 다른 말을 꺼냈다.
“네가 영지에서 벌인 일.”
“예.”
세레니테에서 벌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황제가 대놓고 말할 건수라면 역시 아스 남매 사건일 터였다.
나는 긴장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유쾌하더군. 잘했어.”
일순 말문이 막혔다. 칭찬을 들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탓에 적이 놀랐다.
황제는 빙글거리며 나를 들여다보았다.
“상단주가 어설픈 광대라는 말은 일찍이 들었다. 허나 이 몸은 황제이니.”
뒷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의미는 명백했다.
제국의 온갖 대사(大事)를 숙고해야 하는 그녀에게, 일개 자유 도시의 어린 상단주를 직접 조사하고 심판하는 일은 가당치 않았다.
더 중요한 공무가 산적해 있으니 그럴 여유도 없었을 터였다.
그러니까 우리가 에밀의 잘못을 밝히고 제국군에 넘긴 게······.
그녀에게 손톱 밑 가시를 대신 빼준 정도는 되는 모양이었다. 아마도.
“감사합니다.”
내가 겨우 말했다.
“늦었지만, 고해소를 고쳐주신 것도 고맙습니다. 새것 같아져서 들어갈 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마침 단상 옆에 고해소가 보여서 인사도 올렸다. 그러자 황제가 고개를 기울였다.
“잘됐군. 내 지시는 아니지만.”
“예?”
“나는 임금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신전의 보수까지 챙길 시간은 없어.”
그렇긴 한데. 지난달에 스승님께 감사를 표했을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기에 혼란스러웠다.
그럼 황궁 목수들이 자발적으로 짬을 내서 손봐 준 건가.
나는 상념에 잠긴 채 추기경과 두 성기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느새 성기사 서임식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추기경이 황태자의 머리에 안수하고 축복을 내렸다. 그는 단정히 눈을 감은 채였다.
[······지금 이 순간부터, 주신께서 대주교인 그대의 권능을 영원토록 추인(追認)하실 것이다.]“아아!”
대주교! 인파가 환희에 가까운 신음을 토했다.
그럴 거라 예상하긴 했지만, 생각만 하는 것과 교황청에서 그를 실제로 인정하는 건 차원이 달랐다.
제국 최초의 성기사가 무려 대주교로 첫발을 내딛는다니 경사 중의 경사였다.
일부 신자는 울면서 손뼉을 치기도 했다.
사제석에서 에바가 발을 동당대는 것이 보였다.
시선을 돌리는데 태자와 눈빛이 마주쳤다.
‘괜찮을 겁니다.’
내가 입모양을 움직였다.
나와 크리스텔이 도와줄 테니, 그가 염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주황색 눈동자는 며칠 전보다 훨씬 차분해 보였다.
다행이네.
[대주교인 그대의 권능을······.]“와아!”
“리에스테르 만세!”
같은 은총이 크리스텔의 머리에도 부어질 즈음, 장내는 축제 분위기였다.
주인공이 밝게 웃으며 천장에 손짓하자 ‘파앙!’ 하고 물보라가 폭죽처럼 터졌다.
신자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근엄하게 앉은 주교들마저 신기하고 재밌어했다.
곳곳을 밝힌 촛불이 하나도 꺼지지 않는 게 대단해 보였다.
“이제 일어나셔서······.”
웅성임 사이로 어느 주교의 속삭임이 들렸다.
두 주인공이 방석에서 몸을 일으켜 추기경의 양옆에 나란히 섰다.
동시에 몹시 성스러운 음악이 신전 꼭대기까지 울려 퍼졌다.
이에 맞춰 찬양대가 다시 성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
추기경의 인도에 따라, 젊고 아름다운 대주교 두 사람이 천천히 입구 쪽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그들이 지나는 길목마다 신자들이 고개 숙여 절하고 기도를 올렸다.
커다란 주신교 상징과 튤립을 든 사제들이 뒤를 따랐다.
나는 함박웃음과 박수를 보냈다.
원작대로 소드마스터와 공녀 커플이 되지는 않았지만, 물불 안 가리는 성기사 커플도 충분히 보기 좋았다.
*
“에이츠 마을에서 다량의 성석이 채굴되고 있습니다, 폐하. 제국군 기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어지간한 광산 수준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놀랍군.”
에르베 뒤엠 근위대장의 보고였다. 프레데리크가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녀와 오렐리는 성기사 서임식이 끝나자마자 황제궁 집무실에 다시 모인 참이었다.
최근 제국의 정세는 좋은 의미로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비록 예서 왕자를 노린 두 차례의 암살 시도가 있긴 했으나, 이외에는 기적이라 부를 만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졌다.
먼저 태자가 ‘화성의 혜검’을 얻었고, 덕분에 몸이 어려지는 위험이 줄어 무사히 책봉을 받았으며, 크리스텔 드 사르네즈 또한 성기사로 각성했다.
게다가 둘 모두 추기경보다 한 단계 아래인 대주교급으로 공인 받았다.
신국 출신의 추기경급 성기사도 제국으로 영입했다.
주신의 사자(使者)라는 신수도 다섯 마리나 황궁에 머물렀다.
그중 하나는 신물이었지만, 어쨌든 백성의 신앙과 충심을 고취시키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여기에, 신국만의 무기라고 여겼던 성석이 이제는 제국에서도 생산되기 시작했다.
프레데리크는 자신의 계약자와 의미심장한 눈길을 교환했다.
끽해야 수레 열댓 개 분량을 예상했고, 성석을 캐는 과정에서 마을에 활기가 돌 것이라 짐작했다.
그런데 조그마한 황실 영지의 채광량이 남부에나 있을 법한 광산 규모라고 했다.
완전히 뜻밖의 소식이었다.
“네 말이 맞아, 오렐리. 그 녀석은 주신의 총애를 받는 것 같군.”
“내 말은 늘 맞았는걸.”
황제의 말에 추기경이 부드럽게 응수하며 커피를 음미했다.
그녀는 주교관만 벗은 정복 차림이었다.
프레데리크가 피식하고는 자신의 옆을 지키고 선 요한을 돌아보았다.
“네 추리도 옳았고.”
“폐하의 지혜로우신 판단이 유효했을 뿐입니다.”
성기사가 선선히 대답했다.
햇무리초와 성석이 함께 발견된 것을 두고, 요한 헤인스는 두 식물과 광물의 분포가 일치할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내놓았다.
워낙 보기 드문 것들이 한꺼번에 출몰했으니 그럴듯한 의견이었다.
황제는 마을의 산을 샅샅이 뒤져 햇무리초 군락을 찾아내라 명했고, 과연 약초가 자라는 땅 밑에선 성석이 발견됐다.
“이런 식이라면 국경의 햇무리초 서식지에서도 성석이 나올 공산이 크겠어.”
“응. 블랑케르 공작가에 연통을 넣어야겠네. 공작령이 최대 접경 지역이니까.”
“······그러고 보니, 블랑케르와 다시 사적인 교류를 트게 된 것도 녀석 덕이군. 신국에 돌려보낼 이유가 없겠는데.”
황제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오렐리는 계약자가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것을 느끼고 미소했다.
그러자 줄곧 묵묵히 있던 남자가 입을 뗐다.
“폐하, 전하. 부디 예서 페네티안 왕자님을 멀리하실 것을 간언 드립니다.”
“······.”
실내가 한순간에 싸늘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앳된 얼굴에 집중됐다.
에르베는 공기가 불편해지는 것을 느끼며 안면 근육을 꿈틀거렸다.
이윽고 황제가 건조하게 말을 받았다.
“참고하지.”
“감히 청하옵건대, 참고에만 그쳐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그분은 위험한 존재라고 확언드릴 수 있습니다.”
“모데스트 바카리 단장님.”
결국 에르베 뒤엠이 나섰다.
그는 신임 받는 황실 근위대장으로서 황제를 제법 오래 지켜보았고, 지금의 분위기를 누그러뜨리지 않으면 반드시 후환이 있으리라 예감했다.
근위대장은 예언가를 향해 근사하게 웃어 보였다. 형님에게 배운 것이었다.
“폐하께서는 왕자님이 그간 리에스테르와 태자 전하를 위해 하신 일들을 높게 평가하십니다. 고매한 조언은 감사하지만,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고 사료되는군요.”
“하루라도 빨리 전해드려야 했습니다.”
모데스트가 안경 아래 청은색 눈을 날카롭게 빛냈다. 두 주먹도 꽉 쥐고 있었다.
황제의 음색이 끝내 침잠했다.
“왕자가 위험하다는 근거는? 계시를 받았나?”
“아니요, 그보다 강력한 증거가 있습니다.”
“말해.”
“그분에게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집무실에 무서운 정적이 흘렀다. 침묵을 깬 것은 황제가 아니라, 그녀의 그림자였다.
“무슨 뜻인지 궁금하네요. 설명을 듣고 싶은데요.”
민트색 눈동자가 그믐달처럼 휘어졌다. 요한의 주위로 세풍이 불기 시작했다.
예언자는 성기사의 은은한 압박에도 고개를 떨어뜨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입니다. 저는 세 살 때부터 불시의 묵시(默示)를 받았습니다. 지나가는 마차의 마부가 어떻게 죽을지, 말은 또 어떻게 될지 눈앞에 보이는 식이었습니다. 환영이 없을 때는 환청을 들었고 꿈으로도 예언을 받았지요. 제 머릿속은 조용했던 적이 없습니다.”
“네 특기에 관해선 대강 알고 있다. 그런데?”
“······한데 왕자님의 주변은 쥐죽은 듯 고요합니다. 무엇도 보이거나 들리지 않고, 적막만이 맴돌 뿐입니다. 저는 그분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얼핏 겁에 질린 듯한 표정이었다. 이제 예언자는 제 나이보다도 어려 보였다.
휘이잉, 창밖에서 가을바람이 스산하게 울었다.
에르베는 그것이 계절의 힘인지 성기사의 위협인지 알 수 없었다.
“그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제국에서 앞으로 무엇을 할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더구나 왕자님의 곁에 있는 사람도 비슷한 양상을 보입니다. 조금 전 서임식에서는······.”
모데스트가 이를 악물었다. 스스로의 무능이 치욕스러운지 뺨도 발개졌다.
“그분과 함께 계시던 폐하의 주변까지 잠잠했습니다. 제 평생에 그런 자는, 그런 일은 처음입니다.”
“놀랍네.”
추기경이 황제가 내뱉었던 감탄사를 흉내 냈다.
이후로 방안에는 어떠한 말도 오가지 않았다.
요한의 하얀 머리칼 사이로 마지막 실바람이 숨어들 무렵, 프레데리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안경을 썼나 보군. 마력을 돋우는 마도구인가?”
“······그렇습니다.”
“별 소용은 없었던 모양이지.”
그녀가 비웃듯 말했다. 오렐리가 적당히 하라는 의미로 그녀의 부츠를 밟았다.
프레데리크는 인상을 찌푸렸다.
“네 우려는 알겠다. 군주로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판단이 서는군. 플뢰르 드 리스의 충고를 무시해서 좋을 건 없겠지. 다만.”
그녀의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프레데리크 리에스테르에게는, 꽤 마음에 드는 경고야.”
체리색 눈동자에 호기심이 어렸다.
모데스트가 멍하니 입을 벌렸고, 오렐리는 한숨을 삼켰다.
그녀가 아는 ‘이브’는 황녀 시절부터 돌발 행동에 사족을 못 쓰는 사고뭉치였다.
황위에 오른 후 점잖아졌다고는 하지만 타고난 성정을 바꾸기란 불가능했다.
누구도 다음 행적을 내다볼 수 없는 이가 가까이 있다는 점이, 그리고 그와 함께하면 자신 역시 그런 존재가 된다는 사실이 기꺼운 게 분명했다.
이를 어쩌나.
“······고견 고마워, 바카리 군. 이만 가보렴.”
결국 황제의 반려는, 쓴웃음을 지으며 선지자를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
“귀가 간지럽네······.”
“에구. 누가 왕자님 험담했나 봐요.”
내가 귓불을 긁적이자 크리스텔이 옆에서 농담을 했다.
그러고는 형형한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시종들이 화들짝 놀라 어깨를 수그렸다.
귀 간지럼에 관한 미신이 생소한지 왼편에서 걷던 태자가 미간을 좁혔다.
“아직도 그대를 모욕하는 자가 있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내가 서둘러 대답했다.
국보나 다름없는 성기사들 틈에 끼어 황제궁 복도를 걷고 있는데 누가 내 욕을 할 수 있겠는가.
정은서나 형이 와도 못 할 것이다.
“아무튼 동행해주실 필요는 없었는데······. 고맙습니다.”
나는 애써 웃으며 덧붙였다.
서임식을 무사히 끝낸 우리는 왕의 친서를 전달받고자 시종장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혼자 접선할 계획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주신 맙소사!”
그때, 옆길에서 누군가 큰소리를 내며 튀어나왔다.
나는 식겁한 나머지 음 소거 상태로 굳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