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163)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163화(163/920)
#163 사랑과 스텝은 꼬이지 않게 (3)
뱅자맹과 요한 경이 내게 뭐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재빨리 문가의 에바에게 다가갔다.
하관만 보이는 천사의 눈길이 꽁무니에 달라붙는 기분이었다.
어깨도 떡 벌어졌네. 저런 인간은 황태자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안녕하세요, 에바. 가장이 아주 멋지네요.”
내가 미소하며 속삭였다.
소공녀는 머리색과 똑같은 붉은색 장미를 정수리에 한가득 얹고 있었는데, 사이사이 흘러내린 곱슬머리가 덩굴줄기처럼 보여 더욱 앙증맞았다.
가면은 나처럼 검은색이었지만 옥과 에메랄드, 블러드스톤으로 꾸며 차별성을 뒀다.
드레스는 에바의 눈동자와 같은 흑갈색 공단에 다이아몬드를 붙여 제작했다.
비싼 천을 어떻게 꼬고 접은 건지, 농구공만 한 장미가 잔뜩 피어 있는 디자인이었다.
움직일 때마다 사락사락하는 소리와 함께 은은한 꽃내음이 났다.
그러니까, 아이는 마치 흑장미 한 다발을 사람으로 빚어놓은 것 같았다.
가면 아래 씩 웃는 눈매가 무척 귀여웠다.
“감사합니다. 왕자님도 엄청 근사해요.”
“에바 덕분이죠. 지난번에 무역소에서 사준 셔츠도 밑에 받쳐 입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하자 아이가 입가를 씰룩거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팽 돌리며 화제를 바꾸었다.
“그런데 저 백의의 천사님은 설마······.”
“모르는 분입니다.”
“네?”
소공녀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뱅자맹이 손수건에 대고 기침을 했다.
에바는 그를 딱하다는 눈빛으로 보더니, ‘왕자님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그런 거겠죠’ 하고 중얼거렸다.
나는 마지막으로 티테에게 손을 흔들어준 뒤 잽싸게 아이를 에스코트해 성탑을 벗어났다.
······저 사람이 내 정체를 동네방네 소문내진 않겠지?
*
대부분의 손님이 이미 볼룸에 입장한 시각이라, 우리는 크게 주목받지 않고 본성에 진입할 수 있었다.
복도를 걷는 동안 에바가 세실 블랑케르 공작과 공작 부군의 성향을 조곤조곤 설명해주었다.
뱅자맹은 무도회에서 벌어질 수 있는 돌발 상황에 관한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그가 말미에 덧붙였다.
“물론 왕자님께서는 관련 경험이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곳은 제국이니, 토박이의 도움말도 무익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요. 큰 보탬이 되고 있습니다.”
내가 서둘러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예서 왕자에게 ‘신국의 난봉꾼’이라는 별명이 있었지······.
온갖 파티와 무도회에 얼굴을 비추고, 수많은 여인과 염문을 일으켰다고.
나는 난감하게 웃으며 아치형의 높은 창과 복도에 늘어선 조각상 따위를 구경했다.
지척에서 아름다운 선율과 인파의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우리를 발견한 볼룸 입구의 시종들이 정중하게 절을 올렸다. 그때였다.
“전하, 뒤엠 후작의 마차가 들어와 있어요. 저쪽엔 사르네즈 공작도 보이네요.”
요한 경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나는 그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본성 밖엔 무도회 시간에 맞춰 들어온 마차가 제법 있었는데, 정말로 사르네즈와 뒤엠 가문의 문장도 보였다.
먼저 내린 뒤엠 후작이 마차 안의 누군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나는 멀리서도 그가 몹시 다정한 얼굴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댄스 파트너인가?
“두 분의 입장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시종이 공손하게 말을 건넸다. 나는 반짝 고개를 들었다.
옆에 선 에바가 심호흡하며 떨고 있었다.
그제야 생애 첫 무도회가 코밑에 닥쳤다는 실감이 났다.
밀려오는 긴장감 때문에 속이 울렁거리고, 심장이 귓가에서 쿵쿵 뛰었다.
그래도 최대한 어른스럽게 대처해야 했다.
이건 에바의 사교계 데뷔식이고, 아이는 오늘 소공작으로 공표될 예정이었다.
파트너인 내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면 에바의 체면도 깎일 수 있었다.
결코 그런 결과를 바라진 않았다.
“들어갈까요?”
내 팔을 꾹 붙들고 있는 소공녀를 향해, 나는 빙그레하며 물었다.
베일을 들추고 눈을 맞추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자 에바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좋아요.”
하고 비장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덜컥, 끼이익······
동시에 거대한 문이 열렸다. 황홀한 음악과 호사스러운 조명이 우리를 반겼다.
*
뱅자맹과 요한 경이 각각 시종과 호위를 위한 자리에 남았고, 에바와 나는 볼룸 중앙을 향해 걸었다.
“와······.”
“저처럼 눈알만 굴려서 구경하십시오. 목까지 움직이면 촌뜨기 같단 말이에요.”
에바가 날카롭게 지적했다. 나는 황급히 턱을 정면으로 고정했다.
무도회장은 물론 봄 무도회 때의 스트로다 궁만큼 화려하지 않았지만, 대신 초대받은 이들이 엄청나게 다채로웠다.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분장한 귀족들이 익살스러운 말투로 자신을 숨긴 채 부채를 팔랑이고 있었다.
저 사람 가면은 불꽃 모양이네. 이쪽은 공작새와 나비 커플이고. 저건······. 백조인가?
“으음.”
객이 너무 많아서 가나엘과 엘리자베트 경은 찾을 수 없었다.
크리스텔과 세드리크 태자가 무슨 가장을 하는지는 끝까지 듣지 못했는데, 가나엘의 말로는 ‘다비드 님이 혼신의 노력으로 구상한 걸작’이라고 했다.
하지만 다비드는 태자가 거적때기를 입어도 칭송할 사람이니까······.
-딸랑딸랑, 딸랑딸랑!
일순 흠칫했다.
다행히 품에서 크리스털 종이 울린 게 아니라, 무도회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이어 일부 손님이 볼룸 외곽으로 빠져나가고 첫 음악에 춤을 추려는 귀족들만 복판에 남았다.
나는 에바와 맞보고 서서 가볍게 숨을 뱉었다. 뭐라고 격려라도 해야 하나 싶을 무렵,
-♩♪♬······
느린 춤곡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내가 잠깐 얼어붙은 사이 에바가 절을 했다.
나는 그제서 화다닥 인사하고, 외운 대로 에바의 손등에 입을 맞춘 후 첫발을 뗐다.
천만다행히 암기한 동작을 까먹지는 않았다.
-탁, 타닥!
모두의 옷자락과 구두가 박자에 맞춰 스치고 부딪혔다. 그게 은근히 재미있었다.
나는 소공녀와 함께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고,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가 했다.
같은 스텝인데 거울처럼 방향만 반대였다. 동시에 콩콩 뛰니 아이가 까르르했다.
“정말 다 외우셨네요.”
“폐를 끼칠 순 없죠.”
내가 에바의 팔 밑으로 머리를 내밀며 답했다.
걱정했던 것처럼 제풀에 넘어지거나 에바의 드레스를 밟는 일은 없었다.
한참을 속살거리니 어느덧 첫 춤이 끝나 있었다.
음악이 잦아들자 우리는 마주 보고 절했다.
볼룸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다음은 뭐더라?
“이제 다 같이 추는 거예요.”
“네.”
맞다, 그거였지.
이번엔 모두가 커다란 원을 그린 채 한 쌍으로 춤을 추되, 안쪽에 있는 사람이 옆으로 이동하면서 파트너를 바꿔야 했다.
이내 새로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
악단의 합주는 부드럽고 듣기 좋았다.
나는 에바의 허리를 단단히 받쳐 아이가 실컷 뛰어놀 수 있도록 보조했다.
그 뒤로 두어 번 댄스 파트너가 바뀌었는데, 다들 내게 딱히 불만이 있는 것 같진 않아 마음이 놓였다.
누군가와 호흡을 맞춰 춤추는 건 초등학교 운동회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목을 빼고 살핀 에바는 무척 즐거워 보였다. 연습한 보람이 있네.
“튤립 뿌리는 잘 심었습니까?”
그때, 새로이 내 앞에 선 파트너가 불쑥 물었다. 나는 놀라서 눈을 깜빡였다.
상대는 나보다 훨씬 본격적인 갑옷을 갖춰 입은 데다 머리에 투구까지 쓰고 있었다.
뭐지, 요즘 사교계에서 유행하는 인사말인가?
“글쎄요. 정원사분들이 알아서 잘 하시지 않았을까요?”
내가 절뚝거리는 그를 부축하며 대답했다.
갑옷이 끼어 그런 건지, 원래 다리가 불편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자 그가 멈칫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진짜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남자는 내 대꾸가 영 마음에 차지 않은 듯, 말없이 기계적으로 동작을 소화했다.
바라는 답이 따로 있었나.
-······♩♪♬!
멋들어진 마무리로 음악이 끝나자, 갑옷은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내 앞을 떠났다.
나는 갸웃거리며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화장실이 급한가?
“수고하셨습니다, 왕자님. 간식 드시지요.”
“감사합니다. 이것도 운동이라 배가 빨리 꺼지네요.”
뱅자맹과 요한 경이 다정하게 나를 맞아주었다.
두 사람이 찜한 테이블엔 훈제 연어 무스와 올리브, 온갖 과일과 채소를 올린 카나페가 즐비했다.
손바닥보다 작게 담아낸 피셀 피카르드 역시 열댓 그릇은 나와 있었다.
핑거 푸드로 배를 채우겠단 각오가 느껴지는 상차림이었다.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시원한 블루베리 에이드부터 들이켰다.
그사이 음악이 바뀌고, 다시 한번 요란한 춤판이 벌어졌다.
에바도 좀 먹고 놀아야 할 텐데.
“헉.”
그 순간, 나는 소름 돋을 만치 고혹적인 여인을 발견했다.
그녀는 성탑 로비에서 마주친 문제의 ‘천사’와 춤을 추고 있었는데, 심각하게 안 어울리는 그림이었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닌지 두 남녀는 뭇사람의 묘한 시선을 받고 있었다.
물론 숙녀 분이 춤을 좀······. 못 추기는 했다.
과장 살짝 보태 크리스텔만큼 소질이 없는 듯싶었다.
하지만 짝꿍과 대비되는 파격적인 의상과 특유의 매혹은, 그야말로 치명적이었다.
“인기 되게 많으시겠다.”
내가 컵에 입을 묻은 채 웅얼댔다.
그녀의 등엔 박쥐를 닮은 시커먼 날개가 달려 있었다.
배트맨······. 일 리는 없으니까 악마 콘셉트일 터였다.
뱀 모양 팔찌가 그녀의 팔목을 야무지게 감쌌고, 불길한 느낌의 푸른 머리는 양 갈래로 말아 올린 것이 꼭 염소의 뿔 같았다.
해골 가면 아래의 핏빛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어?
“으와.”
나는 해괴한 소리를 내며 재깍 뒤를 돌았다.
얼굴이 따끈따끈하게 달아올라서, 식은 음식을 볼에 넣으면 금방 데워질 듯했다.
어마어마한 미인이 날 보고 웃었어? 진짜야?
“전하, 목이 빨갛네요.”
“조용히 해주십시오, 요한 경.”
“저기 악마로 분장한 공녀에게 관심이 있으시다면 제가 소개해드릴 수 있어요. 마침 아는 분이거든요.”
그는 은근히 즐기는 눈빛이었다. 이게 바로 기혼자의 여유인가? 아니, 이게 아니라!
“정말요?”
“예서 왕자님.”
귀에 익은 목소리에 나는 움찔하며 몸을 틀었다.
남의 몸에 들어와 있는 놈이 어디 감히 허튼 생각을 하느냐고 혼쭐이라도 난 기분이었다.
코앞에 나타난 상대가 순식간에 가면을 벗었다. 나는 아연해져서 베일을 걷었다.
“······바카리 군?”
“저도 이렇게 금방 다시 뵐 생각은 없었습니다.”
예언자가 호두까기 인형처럼 딱딱거리며 예를 갖추었다.
이어 믿을 수 없는 말을 소곤거렸다.
“본래라면 폐하의 아드님이신 태자 전하께 말씀을 전해야겠지만, 전하께서 무엇으로 가장하셨는지 알 수 없어 왕자님을 찾았습니다.”
“저는 티가 난다는 뜻입니까?”
“당연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경계하십시오. 이곳에 죽음의 그림자가 보입니다.”
“잠깐만요, 왜 코피가 나.”
나는 식겁하며 뱅자맹에게서 냅킨을 받아들었다.
꼬마가 코에서 피를 줄줄 쏟아내기 시작한 탓이었다.
냅킨으로 코를 막아주고 다시 보니, 예언가는 낯이 창백하고 피부도 차디찼다.
요한 경이 빠른 손놀림으로 칸막이의 시폰 커튼을 쳤다. 내가 급히 물었다.
“원래 이럽니까? 계시를 받을 때 출혈이 있어요?”
“아뇨, 처음입니다······. 지금껏 이런 오작동은 없었습니다.”
“그런 단어 쓰지 마십시오.”
내 말에 바카리가 입을 꾹 다물고 비틀거렸다.
나와 뱅자맹, 요한 경이 차례로 눈길을 교환했다.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
‘평범한 예지와 달랐습니다. 눈앞이 어두워지고 모략의 악취가 풍겼습니다. 피가 역류하는 느낌이······.’
나는 단장의 말을 곱씹으며 커튼 밖으로 걸어 나왔다.
청소년은 내 치유 서클의 도움으로 안정을 찾았고, 지금은 소파에 잠든 채 하인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처음에는 테러를 뜻하는 건가 싶어 철렁했다.
그런데 바카리는 그런 종류의 계시가 아니었다고 단언했다.
‘단 한 사람의 고통에 관한 일입니다. 불과 폭발, 검과 피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이 안에 수상한 자가 있다는 거네요. 그자가 떠나기 전에 잡는 게 좋고요.’
‘······그럴 겁니다.’
그렇다고 쳐도, 바카리의 컨디션이 마음에 걸렸다. 평소와 다른 예지라는 건······.
설마 원작에 없는 내용을 본 건가? 그래서 몸에 반작용이 오는 거야?
“단서가 너무 없어. 다 추측이네.”
나는 중얼중얼하며 아무데나 섰다.
뱅자맹은 블랑케르 공작 부부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요한 경이 1층부터 꼭대기 층까지 개방된 테라스와 발코니를 확인하는 동안, 나는 장내의 손님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중간에 에바나 엘리자베트 경 커플을 찾으면 당연히 그들에게도 알릴 생각이었다.
크리스텔하고 태자 놈도 나한테 먼저 말이나 걸어주면 좋겠는데······.
“흡.”
“······.”
나는 어느새 목전에 서 있는 이를 보고 숨을 들이켰다.
조금 전의 그, 매력적인 악마 영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