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167)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167화(167/920)
#167 출구 (3)
“영주성에 상주하는 사제 둘이 함께 떠났······.”
나는 가나엘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그 길로 욕실에 뛰어들어 박박 씻고, 편한 셔츠와 바지를 걸치고 부츠를 신었다.
아침은 따뜻한 우유와 쇼송 오 폼 세 조각으로 때웠다.
내가 먹는 양을 본 가나엘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순식간에 준비를 마치고 소년과 뱅자맹 앞에 섰다.
“다 챙겼습니다. 마실 물, 간식, 진통제, 깨끗한 천, 여벌옷, 비상용 단검. 크리스털 종은 여기 들었고요. 혹시 몰라서 머리장식도 넣었습니다.”
내가 가슴팍을 가로지르는 짐 가방을 짚으며 말했다.
가나엘은 낯이 하얗게 질려 있었고 뱅자맹 또한 무척 염려스러운 기색이었다.
둘은 ‘황태자 전하와 사르네즈 경이 왕자님을 생각해서 그랬다’고 말하면서도, 나를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못했다.
나는 화가 나서 자꾸 딱딱해지는 얼굴을 풀어보려 애썼다.
아무리 나한테 물리력이 없다지만, 어떻게 나를 쏙 빼고 갈 수가 있냐. 난 너희 신관 파트너인데!
“왕자님, 호위는요? 혼자 가실 순 없잖아요.”
“요한 경이 있으니까 괜찮아.”
내 대답에 가나엘이 입을 벙긋거렸다.
나는 마지막으로 무릎을 굽혀 데미, 레아, 페리와 티테를 안아주었다.
내 생각을 읽었는지 데미가 배를 꾹꾹 누르며 칭얼댔다.
그래, 내가 우리 대장님을 어떻게 속여.
“너희는 성에 있어. 토벌 때보다 위험할지 모르니까.”
-끼이이
“미안해. 대신 여기서 친구들을 지켜줘. 티테도 돌보고. 할 수 있지?”
-끼응······
데미의 까만 콩알 눈이 촉촉해졌다.
마음이 몹시 약해졌지만 나는 끝내 같이 가자고 말하지 못했다.
크리스텔과 태자 놈이 내게 한 짓을 신수들에게 똑같이 한다고 지적해도 어쩔 수 없었다.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한들 이 녀석들은 인간의 말을 하지 못하는 작은 동물이었다.
마수 대토벌이 끝날 무렵, 레아와 페리가 갈대밭 구석에 숨어 떨고 있었던 것을 나는 똑똑히 기억했다.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멋대로 신수들을 병기 삼아 데려가는 건 말도 안 됐다.
나는 임시 ‘보호자’라고.
“너만 믿는다, 데미.”
나는 녀석과 악수하고 손등에 앉은 뚝심이를 바라보았다.
굴뚝새가 몸통을 갸웃거리며 나와 눈을 마주했다.
“뚝심, 너는 신물이라 따라오면 안 돼. 알지?”
-삐삐
“응,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새니까 두 번 말 안 할게.”
나는 꼬마의 가슴을 간지럽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뚝심이와 모종의 거래를 하긴 했지만 내가 녀석의 주인인 건 아니었다.
게다가 신물이 한데 모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경고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비렴의 방주’였다.
뚝심이가 다른 신물들이 모여 있는 밀림으로 향했다간 대형 사고가 터질지 몰랐다.
“다녀올게.”
-애우
티테가 짧게 울었다.
신수들을 두고 나온 나는 복도 끝, 이자벨 공작 부인의 침실을 흘끗했다.
에바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애도 어린 데다, 나와 달리 이런 쪽 경험이 전무하니 동행할 수 없었다.
“에바를 잘 부탁드립니다.”
“예, 왕자님.”
“요한 경은 어디 있습니까?”
“······아마 로비에 있을 겁니다.”
뱅자맹이 나직이 답했다. 나는 성탑 로비로 바삐 걸음을 옮겼다.
요한 경이 두 주인공의 행태를 말리지 않은 게 조금 섭섭했지만,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만약 그마저 밀림으로 떠났다면 나는 강력한 호위를 둘 수 없었을 테니까.
-탓, 타닥, 탁!
“좋은 아침입니다, 요한 경.”
“안녕하세요, 전하.”
마지막 계단은 두 걸음씩 뛰어 내려왔다.
평소처럼 단정히 백발을 묶어 내린 요한 경이, 가슴께에 한 손을 올리며 예를 차렸다.
티테의 수조에 새로운 해수를 채우던 사용인들도 절을 올렸다.
나는 마주 묵례하고 후다닥 성기사에게 다가가 말을 쏟아냈다.
“제 호위로 와주셨으니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를 사르네즈 경과 세드리크 태자님이 계신 곳으로 데려다주십시오. 필요한 건 전부 챙겼고 말 두 필만 있으면 됩니다. 블랑케르 공작 부군에게 말하면,”
“전하, 죄송하지만 그렇게 해드릴 수 없어요.”
요한 경이 선선한 어투로 말허리를 잘랐다. 나는 순간 말을 잃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런 반응을 예상했는지 가나엘과 뱅자맹이 작게 신음했다.
“성기사에 관해 모르시는 게 많다고 말씀드린 걸 기억하시나요?”
“네. 갑자기 그 얘기는 왜 하십니까?”
“이게 바로 그중 하나예요.”
민트색 눈동자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부티에 전하의 교육을 받으셨으니 이해해요. 파트너의 곁에 있어주는 것이 최고의 도리라 배우셨을 테고, 실제로 그건 맞는 말이죠. 폐하와 전하의 사이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성약으로 맺어진 관계와는 질적으로 다르지만, 결은 비슷해요.”
“······.”
“하지만 성기사의 심리는 지독하게 복잡하고 모순적이에요. 신관과 사고방식부터 달라요.”
나는 가방끈을 세게 쥐었다. 이건 예상치 못한 전개였고, 이럴 시간이 없었다.
그가 협조하지 않는다면 성에 남은 기사를 구해서라도 빨리 떠나야 했다.
‘실례하겠습니다’ 하고 그의 어깨를 피해 문밖으로 나서려는데,
-탁
요한 경이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나를 막아섰다. 나는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요한 경.”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모든 성기사는 자신의 신관에게 집착해요. 에테르를 얻고자 강압적으로 굴면서도 상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죠. 논리적이지 않은 판단도 쉽게 하고요.”
“비켜주십시오. 호위로 가달라는 말은 취소하겠습니다.”
“그래서 전투 능력이 없는 짝을 막사에 남겨두고 출전하는 일도 잦았다고 해요.”
“······.”
그의 눈빛이 폭풍의 색깔처럼 어두워졌다. 나는 차마 말꼬리를 잇지 못했다.
그가 말한 ‘출전’이 전쟁 시대의 일임을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 일순 뒷골이 서늘해지고 소름이 돋았다.
마치 이대로 시간이 흘러 원작의 전쟁이 발발한다면, 두 남녀가 나를 두고 전장에 나갈 것이라는 의미로 들렸다.
그건 반년 전의 내가 간절히 바란 전개이기도 했다. 하지만······.
“저는 보탬이 됩니다. 대주교예요. 에테르 품질은 대륙 최고일 거라고 자부합니다. 전투 능력은 없어도 방어 능력은 있고, 마수 대토벌 때도 큰 부상 없이 살아남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 녀석들이 나 없는 데서 다치거나 위험에 처하는 건 바라지 않았다.
젠장. 나는 주인공도 아닌데, 반년 만에 입장이 바뀌어도 상관없잖아.
사람이 살다보면 생각도 달라지고 하는 거지!
“보내주세요.”
“마르티어 제일스트라 경이 엘리서 왕세녀 전하를 황궁까지 수행해 왔었다죠?”
뜬금없는 말이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긍정했다.
그러자 요한 경이 서느런 목소리를 냈다.
“전하, 저보다 잘 아시겠지만 제일스트라 경은 성직자예요. 그런데도 도끼를 휘두르며 어지간한 검사나 마법사만큼 힘을 쓰죠. 전투 신관이니까요.”
······몰랐다. 마르티어가 ‘전투 신관’ 같은 존재였다니 금시초문이었다.
나는 슬슬 요한 경이 하려는 이야기를 알 것 같아 이를 악물었다.
그가 난감하게 미소했다.
“전하께선 그분만큼 강하지 않으시니 보내드릴 수 없어요. 저는 이곳에서 전하와 성을 지키라는 태자 전하의 명을 받았거든요.”
*
빌어먹을.
-우르르릉!
산맥 쪽에서 다시금 땅울림이 났다.
이번엔 지진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하늘 저편에서 하얀 섬광이 번쩍거렸다.
나는 창턱에 걸터앉아 신수들을 끌어안고 툴툴거렸다. 간만에 무력감이 느껴졌다.
뒤로 빠져 있는 게 생존에 유리하다는 거야 당연히 알았다.
나도 주제 모르고 나대다가 일찍 죽을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왕자님, 왜 스테크 에 프리츠를 두 접시밖에 안 드셨습니까? 저희 주방장 게 제국에서 제일 맛있단 말이에요.”
티 테이블에 앉아 카페오레를 마시던 에바가 입을 비죽였다.
정말로 몰라서 묻는 건 아니고, 내가 점심을 깨작거린 것이 속상한 모양이었다.
나는 쓰게 웃으며 사과했다. 그러자 우리의 소공작이 즉각 목표물을 변경했다.
“예랑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백작님은 무려 8급 검사이신데, 그렇게 죽상을 할 필요가 있나요? 긁힌 상처 하나 없이 돌아오실 거예요. 저희 성의 신관들은 모두 치유 신관이니까요.”
맞은편에 앉은 동갑내기 가나엘이 화들짝하며 턱을 주억였다.
그래도 에바가 저런 식의 위로를 몇 번이고 해주니, 소년은 오전보다 안색이 나았다.
나는 피식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
그러니까, 예서 왕자가 퇴계공의 조연인 거야 내가 가장 잘 알았다.
두 남녀가 어디서 경험치를 쌓아 레벨 업 해오면 나는 ‘그랬구나, 대단하네’ 하고 손뼉 치면 됐다.
주인공들이니 절대 죽을 일 없고, 중상을 입고 실려 올 가능성도 희박했다.
모든 게 기우라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속이 갑갑해서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우물가에 애들 보낸 기분이네.
“글쎄, 돌아가겠다니까.”
물론 내가 방향치인 게 조금 걸렸다.
국경을 접한 영지이기에, 이곳 병사들이 적국의 왕자인 내게 호의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알았다.
집착이니 집밥이니 하는 것도 아주 대강은 이해했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은하. 갑자기 이러시면,”
“갑자기는 무슨. 나는 간밤에도 공작에게 떠나겠단 이야기를 했네.”
나는 그제야 반짝 눈길을 돌렸다. 바깥에서 소란이 일고 있었다.
우리 성탑의 후방을 지키던 기사와 병사들이 누군가를 만류하는 모양새였다.
대주교 평복을 입은 노인이 시종과 하인, 짐꾼까지 잔뜩 거느린 채 길을 나서고 있었다.
슬쩍 열린 창틈에 귀를 대자 말소리가 더욱 잘 들렸다.
“그때 떠나셨다면 저희도 잡지 않았을 겁니다. 허나 지금은 영주성이 폐쇄됐고, 공작님께서 안전하다고 천명하시기 전까지는 누구도 성 밖으로 나가실 수 없습니다. 길이 위험합니다, 마담.”
“그래봐야 손님방보단 안전하겠지. 내가 조명에 맞아 죽을 뻔했으니!”
그녀가 성장을 휘두르며 언성을 높였다. 어느새 창가로 다가온 가나엘이 속닥거렸다.
“외제니 케시에 대주교입니다. 어제 광장에서······.”
소년의 말에 불현듯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이건 미친 짓이야. 나는 여기서 나가겠소.’
재킷을 걸치며 공작에게 쏘아붙이던 노령의 여인. 나는 눈을 깜빡였다.
“그분이 아직 안 가신 거야?”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저 사람이 그 사람입니다, 왕자님. 세레니테에서 왕자님 만나 뵙기를 거부했던 대주교요.”
입이 스르륵 벌어졌다.
첫 영지 시찰에서, 나는 분명 세레니테를 포함하는 서남부 지역 대교구의 대주교를 만나고자 했었다.
그런데 상대방이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했고, 뱅자맹은 그녀가 나를 견제해서 그런 것이라 설명했다.
그게 저 할머님이었다니.
“비키게. 내 신자들이 기다리고 있어.”
“은하!”
곤란해 하던 기사가 결국 그녀를 쫓아 나섰다.
인영이 창틀 너머로 사라지고 나서도 ‘제발 안에 계시라’고 애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남 일처럼 듣고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대박. 그럼 지금 뒤쪽엔 기사가 없는 거잖아.
“얘들아, 드디어 너희가 활약할 시간이다.”
내가 레서판다 한 묶음에 얼굴을 묻고 음침하게 속삭였다.
가나엘과 에바가 동시에 흠칫했다.
*
“딱 좋다. 역시 우리 신수분들이 최고네. 주신의 사자님들, 앞으로도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끼이!
-끼우!
-낏헴
레아, 페리, 데미가 순서대로 자신의 우월함을 어필했다.
나는 차량용 방향제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으로 다리를 내놓고 앉았다.
혹시나 해서 그대로 챙겨둔 가방을 다시 걸치고, 몸에 두른 덩굴을 꼼꼼히 확인하고 심호흡도 여러 번 했다.
소식을 듣고 온 뱅자맹이 가나엘과 나란히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에바는 먼저 로비로 내려간 상태였다. 요한 경의 주의를 분산하기 위해서였다.
“걱정 마십시오. 병사 한 분에게 신탁을 걸어서 안전하게 진입할 겁니다. 전투 지점까지 가지 않고 멀리서 확인만 하겠습니다. 두 분 상태가 괜찮은 것 같으면 바로 올게요.”
깝죽거리다가 민폐 캐릭터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낌새가 이상하면 곧바로 튀어 올 계획이었다.
“조심하십시오, 왕자님.”
뱅자맹이 침대 기둥에 묶은 넝쿨을 단단히 잡으며 간청했다.
나는 그를 향해 엄지를 올리고 씩 웃어준 후, 망설임 없이 성탑의 벽을 타고 하강했다.
정예서는 <퇴사했더니 이계 공녀2>로 돌아온다.
-탁!
하강 속도가 제법 빨랐지만 군에서 유격을 두 번 했던 경험이 도움이 됐다.
음, 코끝이 찡해지는군.
-탓!
“좋아, 다 왔······!”
“전하.”
엄마! 나는 온몸이 경직되는 것을 느끼며 5m 높이에서 우뚝 멈췄다.
산들바람 같은 음성에 전율이 일었다. 목이 돌아가며 삐걱삐걱 소리를 내는 듯했다.
“왕자님, 죄송해요. 속일 수가 없었습니다. 요한 경은 백여우예요!”
성기사에게 빤짝 들린 에바가 발버둥 치며 외쳤다. 제길, 다시 원점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