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184)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184화(184/920)
#184 왕자를 훔칠 여자 (4)
이후 우리는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갔다.
한밤의 난리법석은 다행히 다친 사람 없이 끝났다.
산트의 설거지를 못 해준 게 걸렸지만, 안타깝게도 강제 귀가 조치를 당해버렸다.
나중에 고기라도 후하게 대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이튿날이 밝았다. 우리는 아침 식사 직후 황제궁으로 소집됐다.
“어제의 골목길 소동은 조용히 마무리됐습니다. 평민들 사이에 황태자 전하나 왕자님의 목격담은 돌고 있지 않습니다.”
반듯이 선 엘리자베트 경이 보고했다.
본래 색을 되찾은 잿빛 눈동자가 총명하게 반짝거렸다.
“본디 퍼레이드에서 교황 성하를 연기하기로 했던 배우는, 알고 보니 곡예단의 숙소 침대에 묶여 잠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쯧.”
프레데리크 황제가 혀를 찼다. 덜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도 불만스런 표정이었다.
“명함에는 ‘빅투아르 당드레지’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서명도 그동안 남긴 것과 일치한다는 보고입니다. 허나 이름은 아무 의미 없이 지어냈을 공산이 큽니다. 앙드레지 백작가에서는 자신들과 관계없는 자라며 일찍이 부정했고, 실제로 가문의 족보에도 실려 있지 않다고 합니다.”
에르베 뒤엠 경이 설명했다.
당드레지라고 쓰는데 백작가의 이름은 ‘앙드레지’니까, 성 앞에 전치사가 붙은 건가?
그럼 사르네즈처럼 영지명과 가문명이 일치하는 거네.
프랑스어 이름은 아직도 어려웠다.
나는 황실 근위대의 정보를 주의 깊게 들으며 주위를 살폈다.
황제궁 살롱은 처음 와보는데, 당연하다는 듯 모든 것이 거대하고 화려했다.
황금과 보석으로 치장한 벽엔 역대 리에스테르 황제의 초상이 걸려 있었다.
저쪽이 셀린 선황이라면 왼쪽은······.
클레르 광장의 전쟁 군주, 로메로 리에스테르인가.
사내는 샛노란 금발과 피처럼 붉은 눈동자가 두드러지는 미남자였다.
어째 집안사람들이 전부 선남선녀였다. 로판 남주의 가족이니 어련하겠느냐만.
“최초로 그녀의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귀족은, 앙드레지 옆에 영지가 있는 사바니에 남작입니다. 영주성 곳간이 일부 털렸으며 그 재산은 가난한 평민들에게 뿌려졌다고 하더군요. 크게 분노한 남작이 영지를 봉쇄하고 샅샅이 수색했지만, 범인은 잡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게 올해 5월입니다.”
“한심하군.”
엘리자베트 경이 말했고, 황제가 건조하게 답했다.
타닥, 탁. 벽난로에서 평화로이 불씨 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시종이 접시에 올려준 부셰 아 라 렌을 나이프로 조심스레 잘랐다.
후식으로 먹기 딱 좋은 크기의 크러스트가 이불처럼 부드럽게 무너졌다.
화이트소스에 푹 젖은 트뤼프와 양송이, 닭고기와 문어 조각이 느릿느릿 흘러내렸다.
냄새 기막히네. 진짜 맛있겠다.
“그 뒤에도 여러 곳이 털렸습니다. 다만 사건 사이에 시간 간격이 제법 있으며, 갈수록 절도 규모가 커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최근에는 시세 후작가의 성유물인 ‘선황의 말안장’이 도난당했습니다.”
‘이웃 영지에서 괴상한 도둑이 기승을 부리고 있으나, 이곳만큼은 이름을 닮아 안온하고 평화롭습니다.’
세레니테 후작령에서 샹탈이 보내온 편지가 뇌리를 스쳤다.
어젯밤에 자료를 조사하면서도 생각한 거지만, 지금까지 황도만 잔잔했던 것뿐이었다.
“그 소식은 나도 들었어. 암시장에도 물건이 나오지 않는다던데.”
커피를 홀짝이던 부티에 추기경이 말을 얹었다.
황제는 그녀를 일별한 후 퉁명스레 내뱉었다.
“그래서, 이번엔 왕자를 노린다는 건가?”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근위대장과 부근위대장이 동시에 대답했다.
그러자 테이블에 둘러앉은 모두가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스푼을 움직이다 말고 딱딱하게 굳었다. 크리스텔이 실실 웃고 있었다.
먹으면 안 되나······?
“많이 들렴. 우리 주방장이 왕자님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거든.”
스승님이 다정하게 말했다. 나는 겨우 안도하며 간식을 흡입했다.
해물은 문어뿐인 줄 알았는데, 오동통한 새우 조각도 씹혔다.
물고기와 땅 고기가 어우러진 맛이 엄청나게 근사했다.
부드럽지만 결코 느끼하지 않은 소스 너머로 폭신한 페이스트리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부셰 뚜껑을 따로 찍어 먹는 것도 별미였다. 이건 최소 5개 각이다.
“······수색은 어떻게 됐지?”
나를 몹시 한심하다는 듯 바라본 세드리크 태자가,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넘기고 물었다.
나는 입을 오물거리며 속으로만 녀석을 비난했다.
저놈은 분명히 저것만 마셔서 성격을 버린 부분도 있을 거다.
“먼저 핏자국은 근방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헤인스 경은 단순히 위협사격을 했을 뿐이더군요. 추락한 지점 역시 높지 않아, 낙하하며 큰 상처를 입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뒤엠 경이 답변했다. 나는 요한 경을 보며 씩 웃었다.
그가 처진 눈꼬리를 휘고는 ‘별말씀을요’ 하고 능청을 떨었다.
지난밤엔 눈빛이 살벌해서 진짜 죽이는 줄 알고 식겁했는데, 과연 헤릿 아버지는 마음이 순했다.
“대단하네요. 단검조차 없었던 걸 보면 검사인 것 같지는 않고, 마법사도 아니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지붕을 뛰어다니고 연기처럼 사라진 게 맨몸의 능력이었다는 건데······.”
크리스텔이 쌀쌀한 날씨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감탄했다.
간밤의 그녀는 나를 걱정해 무척 화가 나 있었지만, 하루가 지나자 조금은 심기가 풀린 듯했다.
나는 벚꽃차로 입안을 정리하고 운을 뗐다.
“상대는 아마 평민일 겁니다. 태자님이 쥘리에트 궁에 불러주셨던 광대패의 일원이거나 관계자일 가능성이 크고요. 지인일 수도 있겠습니다.”
다시 한번 모든 시선이 내게 모여들었다. 민망해서 눈 둘 곳이 마땅치 않았다.
황제가 입을 열었다.
“그래, 네 의견대로 황궁에 광대들을 불러들였다. 한 명씩 접견해서 확인하겠다고?”
“예.”
“효율적인 방식이긴 하지. 설명해라.”
체리색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그녀의 궁에 내 뜻대로 외부인을 들였으니, 앞뒤 해설은 필수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저를 납치하려고 했던 여인이 빅투아르 본인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수하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명백한 건, 그자가 곡예사와 같은 움직임을 보였다는 겁니다.”
나는 환궁하기 전에 엘리자베트 경에게도 같은 진술을 했다.
그녀는 즉시 퍼레이드의 광대패 전원을 체포하고, 내가 마주친 좌판 할머니들과 골목에서 밀애를 나누던 연인까지 잡아들였다.
와중에 나에게 야옹거렸던 길고양이도 취조했다는 후문은······. 무척 놀라웠다.
근위대는 정말 엄청나게 철저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귀족 영애가 그런 움직임을 익힐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자는 사르네즈 경의 목소리를 자신의 성대로 직접 모사하더군요. 마도구를 썼다면 감쪽같이 경의 음성을 베낄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로브로 가려져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옷가지나 부츠도 고급품이라고 하기 어려웠고요.”
나는 말을 계속하며 머릿속도 착착 정리했다.
크리스텔은 범인이 자신의 목소리를 따라했다는 말에 몹시 흥미로워 했다.
“마도구와 비싼 옷을 사서 위장하기엔 돈이나 신분이 충분치 않은 겁니다. 그저 자신의 능력 안에서 최대한 사르네즈 경을 흉내 낸 거죠. 고귀한 성유물을 훔쳤는데도 암시장에 내놓지 못할 만큼, 고급 정보엔 취약하기도 하고요.”
맞은편에 앉은 프랑수아 뒤엠 후작도 입꼬리를 올렸다.
아무래도 사건이 본인 취향인 모양이었다.
“또한 제국의 귀족은 이동할 때마다 흔적을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마차를 탄다면 영지 경계를 통과한 기록이 남을 테고, 포털을 이용해도 마찬가지겠죠. 만약 빅투아르가 귀족이었다면 그녀의 이동 경로와 절도 기록이 유사해 금방 붙잡혔을 겁니다. 그런데 실상은, 도둑이 전국을 돌아다녔는데도 종적이 모호합니다. 아마 화물 마차나 우편 마차에 삯을 내고 얻어 탔든지, 단체로 움직인 거겠죠. 그러면 ‘개인’은 숨을 수 있습니다. 귀족이라면 택하지 않을 방식입니다. 보통은 평민과 함께 마차에 오르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하니까요.”
“하.”
황제가 소리 내어 웃었다. 나를 보는 시선을 해석하면 ‘어쭈’ 정도가 될 듯싶었다.
그녀는 한 손으로 뺨을 받치고, 다른 손으로는 탁자를 두드리며 말했다.
“내 어린 후작의 머리에 문제가 없는 것 같아 기쁘군.”
“······감사합니다.”
그러자 태자가 묘한 눈길로 모친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왜?
“허나 네 논리엔 허점이 있다.”
그녀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증발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허리를 세웠다.
“암시장에 장물을 내놓지 않음은 그저 여론이 잠잠해지길 기다리는 것일 수 있어. 제국의 귀족이 체면과 권위를 중시한다는 말 또한 정확하나, 그만큼 모난 돌도 흔하다. 너처럼.”
황제의 검지가 나를 가리켰다. 나는 빠르게 그녀의 말뜻을 파악했다.
“빅투아르가, 귀족의 사생아나 버려진 자식일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인구가 많고 너른 땅이니. 다만 확률적으로는 네 말이 옳겠지.”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나 더 있습니다. 제가 수확제 마지막 날 퍼레이드를 구경할 거라는 사실은, 황궁 사람 일부와 친구들밖에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말끝을 흐리며 뒤편에 선 뱅자맹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는, 이런 말까진 하고 싶지 않았다는 얼굴로 힘겹게 입을 뗐다.
“쥘리에트에 광대패가 들어왔을 때, 시종들이 한창 내기 판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왕자께서 수확제 퍼레이드를 구경하실 수 있을지를 두고 돈을 걸었지요.”
“······.”
“······.”
장내가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요컨대 ‘황궁 토토’에 비상금 탕진하는 맛을 들인 시종들이, 태자가 내 연금을 언제 풀어줄지를 두고 유흥을 즐겼다는 뜻이었다.
황제와 추기경은 한동안 묵묵히 뱅자맹을 응시했다.
이어 자신들의 아들이자 대자인 놈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러나 태자는 ‘어쩌라고요’ 하는 느낌으로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릴 뿐이었다.
저 불 속성 효자 놈 같으니.
“궁이 다소 부산스러웠으니, 귀가 밝은 자라면 들을 수도 있었으리라 사료됩니다. 외부인이 왕자님의 외출 계획을 알 만한 계기는 그것뿐이었습니다······. 죽여주십시오, 폐하.”
가엾은 중년인이 머리를 숙였다. 황제는 긴 콧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쥘리에트 궁 사용인은 전원 6개월 감봉이다.”
하고 선언했다. 가슴이 철렁했지만 이번만큼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스승님도 자못 엄하게 나를 꾸짖었다.
“왕자님도 아랫사람을 너무 풀어두면 안 돼. 왕족이자 후작으로서 위엄 있는 태도를 보여야지. 외부인이 궁에 있는데도 시종들이 그토록 방심하게 둔 거니?”
“죄송합니다. 노력하겠습니다.”
내가 사과했다.
구구절절 옳으신 말씀이지만, 나는 평생 아랫사람을 둔 적이 없었다.
시종들 대부분은 아주 어리기도 했다.
제대로 된 ‘왕자’ 노릇을 하는 건 여전히 쉽지 않았다. 더 나아져야 하는데.
“여하간 그런 이유라면 납득이 되는군. 운이 닿으면 네가 퍼레이드에 오리란 사실은 알았지만, 너를 비롯한 일행이 변장을 할 거라는 말은 듣지 못했겠지. 그래서 당당하게 사르네즈 꼬마로 위장한 거다.”
“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 겁니다.”
내가 황제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자 크리스텔이 고개를 기울였다.
“왕자님, 이건 정말 순수하게 궁금해서 여쭈는 건데요. 어쩜 그렇게 순순히 따라가셨습니까? 저는 엘리자베트 경의 머리색을 하고 있었잖아요. 눈 색도 달랐고요.”
나는 볼 안쪽 살을 슬며시 깨물었다. 목덜미가 순식간에 뜨거워졌다.
회사 생활은 나름 잘하고 살았는데, 여기서는 왜 이렇게 실수가 잦은 건지 모르겠다.
창피했다.
“그······. 아무래도 평소에 자주 보는 게 분홍색이다 보니, 순간적으로 판단을 잘못했습니다. 워낙 정신없는 상황이기도 했고요. 그래도 가는 길에 정체를 알아차리긴 했습니다.”
“그럼 제가 변장하지 않고 갔음 끝까지 모르셨겠네요. 색이 똑같으니까?”
······내 가격이 2천원 올랐다. 리에스테르 물가 상승률 이대로 좋은가?
팩트로 너무 두들겨 맞았더니 정신이 혼미했다.
태자와 요한 경마저 답을 요구하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나는 얼굴 일부라도 가리고자 벚꽃차에 입술을 묻었다.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맹탕으로 보일 테니, 차라리 묵비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결론은 하나다. 나는 그치가 원하는 관심을 줄 생각이 없어.”
황제가 우리를 둘러보며 선언했다.
“왕자를 궁에 가두는 것도, 공개적으로 근위대나 제국군을 동원하는 것도 결국 죄인의 유명세를 돋우고 욕망을 채우는 데 일조할 뿐이야.”
중요한 이야기가 나올 모양이었다. 나는 찻잔을 내려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황제의 두 눈이, 즐거운 놀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가늘어졌다.
“그러니 너희가 직접 탐정 노릇을 해라.”
······왜 갑자기 결론이?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