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189)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189화(189/920)
#189 베이커 스트리트 말고 그냥 베이커리 (5)
“살살 묶읍시다! 예?”
“술 먹고 주먹질 좀 했다고 잡아가? 폐하께선 이리 깐깐하신 분이 아닙니다! 내가 그분을 아는데······. 아! 내 팔! 아프다고!”
잔 틸리에 남작과 그녀의 친구가 근위대원들의 손에 야무지게 포박됐다.
보통 이런 싸움은 황실 근위대가 아닌 황도 수비대의 소관이지만, 오늘은 현장에 황족이 있었고 중과세 문제가 얽혔기에 근위대가 소환됐다.
술집 ‘블루아’ 바깥에 황실 마차와 호송 마차가 길게 늘어섰다.
타고 온 말들은 맨몸으로 우리와 동행하게 됐다.
열린 문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어느덧 깜깜했고, 얼핏 모데스트 바카리의 머리색을 닮아 있었다.
나는 옆을 돌아보았다. 예언가는 몹시 차분한 얼굴로 로브를 걸치고 서 있었다.
물수건으로 피를 뺀 부분이 구깃구깃 울었다.
‘개눈깔. 그게 저 바카리 자작가 둘째의 별명입니다. 암암리에 다들 그렇게 부릅니다. 본인도 알 겁니다.’
자초지종을 묻는 내 말에, 틸리에 남작은 대뜸 그렇게 답했다.
친구들과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게 무슨······.’
‘생각해 보십시오, 왕자님. 단장은 죽음을 봅니다. 내 미래가 저자에게 읽혔다? 나도 모르는 나의 마지막을 들켰다? 그보다 기분 더럽고 재수 없는 일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심지어 그것을 폐하께 정기적으로 고하는 것이 직업입니다.’
‘원해서 얻은 능력이 아니잖아요. 본인도 괴로움과 어려움이 많을 겁니다. 이해는 못 하더라도 존중해 줄 수는 없겠습니까?’
‘그럼 주변인들은 얼마나 괴롭고 어렵겠습니까. 오죽하면 자작 부부가 모데스트(Modeste)라는 이름을 붙였을까요? 그저 평범하고 모나지 않은 존재가 되길 바란 겁니다.’
가는 곳마다 불행을 읊고 다니니, 원. 그녀가 술내를 풀풀 풍기며 혀를 찼다.
남작의 말을 통해 대강의 상황을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가문의 보살핌과 지지를 받지 못하는 자식.
그것을 알고 쉽사리 그를 괴롭히는 외부인들.
나는 본능적으로 예언가를 가로막고 섰다.
이런 말을 계속 듣게 할 수는 없었다. 절로 단단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폭언은 그만두세요. 그런 식으로 상처 주라고 앞뒤 정황을 물은 게 아닙니다.’
‘상처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지요. 제가 잘나신 개눈깔님의 예언 한마디 듣고 싶다, 도둑맞은 재산을 되찾을 수 있겠느냐 물었더니 그러더군요.’
그러자 뒤편에 묵묵히 서 있던 바카리가 말을 받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그쪽은 곧 나를 때릴 겁니다. 그 짓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을 테니.’
‘······.’
‘그리 말했습니다. 하여 안경도 벗었습니다.’
나는 놀라서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예언자는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품에서 주섬주섬 동그란 안경을 꺼내 썼다.
깡패 남작은 그를 보며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미안합니다, 때려서. 순간적으로 욱해서 그랬습니다.’
‘······.’
‘그러게 왜 그 따위 예지를 해요? 맞고 싶어서 작정한 인간처럼. 아, 죄송하게 됐습니다.’
내가 노려보자 그녀는 다시금 바카리에게 사과했다.
진심이 아니라는 건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너무 밉고 화나서 이가 갈리는데,
-퍼억!
‘커흑!’
하늘다람쥐처럼 날아든 크리스텔이 그녀의 등짝에 왕주먹을 날렸다.
뭐라고 말릴 틈도 없었다. 주인공은 비척대는 남작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는,
-콰앙!
‘아으!’
번개처럼 그녀의 상체를 깔고 눕더니,
‘나이를 허투루 먹었지, 아주!?’
‘아! 아아아! 아파! 악!’
팔 한쪽을 야무지게 붙잡아 꺾었다! 남작의 비명이 술집을 쩌렁쩌렁 울렸다.
경악한 귀족들이 썰물처럼 뒤로 물러섰다.
암록(armlock)에 걸린 남작이 발버둥 쳤고, 크리스텔은 이를 악다문 채 푸른 눈을 형형하게 떴다.
황태자의 곁을 지키던 요한 경이 ‘역시 학습력이 좋아요. 사르네즈 경은 뛰어난 학생이네요.’ 하고 칭찬했다.
대체 언제 가르친 건데?!
‘팔 부러져! 부러진다고요! 아억!’
‘사과해!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어디서 못돼 처먹은 것만 배워가지고!’
크리스텔이 버럭버럭 외쳤다. 상석의 세드리크 태자가 코웃음 쳤다.
이번 건 확실히 알겠다. 너 지금 사이다를 병째 들이켜고 있는 거지?
‘아악! 할머니! 할머니 손녀 죽어!’
‘팔 부러진다고 안 죽어! 당장 사과 안 해?!’
‘놔! 아아! 놓으라고!’
‘어! 그래! 어디 네 팔 먼저 부러지나, 내가 먼저 지치나 보자! 참고로 나 성기사다!’
그녀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고함쳤다.
취기로 붉게 물들어 있던 중년인의 낯이, 이번에는 고통으로 시뻘게졌다.
남작은 결국 침을 튀기며 소리 질렀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반성할게!’
‘존댓말로 해!’
‘미안합니다! 다시는 당신 험담 안 하고, 주먹도 함부로 휘두르지 않겠습니다! 단장님!’
탁! 크리스텔이 양팔을 풀고 발딱 일어났다.
남작의 친구라는 놈이 서둘러 그녀를 수습했다.
숨죽여 지켜보던 귀족들은 앞다투어 손뼉 치고 탄사를 쏟아냈다.
엘리자베트 경이 크리스텔과 진한 포옹을 나누며 ‘시드르 백 잔 마셨습니다’ 하고 속삭였다.
나는 슬쩍 뒤돌아 바카리의 표정을 살폈다.
‘······.’
청은색 눈동자가 휘둥그레 커져 있었다. 다행히 부정적인 빛은 보이지 않았다.
사죄를 받는 게 처음이었을까?
어쩌면 누군가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일 자체가 처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왕자님, 이만 돌아가시죠. 소란이 컸으니 다음 일정은 취소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듬직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울렸다. 나는 퍼뜩 상념에서 깨어났다.
부근위대장과 마부가 나를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거리 곳곳에 모여 웅성이는 이들도 보였다.
높으신 분들이 술 마시러 들어갔다가, 더 높으신 분한테 잘못 걸려 끌려나오고 있으니 이목이 쏠릴 법도 했다.
나는 두 사람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 부탁하고 바카리를 찾았다.
꼬마는 홀로 자작가의 마차에 오르고 있었다. 내가 움직이자 요한 경이 뒤를 따랐다.
“바카리 군.”
“······예서 왕자님.”
밤공기가 찼다. 나는 조심스레 입을 뗐다.
“그, 다른 귀족들도 바카리 군을 위해서 싸운 거랍니다. 일방적으로 맞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말리다가 그렇게 판이 커졌대요. 이미 아시겠지만.”
예언자는 침묵했다. 나도 더는 보탤 말이 없었다.
세상에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훨씬 많다는 진실을 확인받는 건 기쁜 일이다.
하지만 다친 녀석을 돌봐준 이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앞날을 보는 존재에게 가까이 가고 싶지는 않았던 걸까.
“더 할 말 없으시면 먼저 가보겠습니다.”
“빵 먹으러 오지 않겠습니까?”
내가 불쑥 말했다. 뚝심이가 부끄럽다는 양 품을 파고들었다.
예언자는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특유의 건방진 태도를 그새 회복한 것 같았다.
배후에서 요한 경이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실패한 대화가 벌써 창피했지만, 꿋꿋이 얼굴에 금과 티타늄 합금을 깔았다.
나는 아이언맨이다······.
“쥘리에트 궁이 다시 손님을 받고 있는데, 우리 주방장 로랑스가 못 굽는 빵이 없거든요. 구미가 당기면 놀러 와도 됩니다.”
“······.”
“빅투아르 당드레지에 관한 제보도 환영이고요.”
내가 잽싸게 덧붙이고 씩 웃었다.
바카리는 별 희한한 놈 다 본다는 눈길로 나를 응시하더니, 깍듯이 절한 후 마차에 올라탔다.
나는 스스로의 말주변에 탄식하며 자리로 돌아왔다.
뚝심이가 이제 와서 위로하듯 삐삐 울었다.
좀 멋들어진 멘트를 떠올릴 순 없었냐, 정예서. 네가 8살이나 형이잖아.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지 와도 되는데.
“······응?”
어느 틈에 마차엔 선객이 있었다.
“꾸물거리는군.”
“왕자님, 합승해도 괜찮을까요?”
태자와 크리스텔이 한 좌석에 나란히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동승 못 할 것도 없고, 웬일로 둘이 예쁘게 같이 있나 싶어 싱글벙글 탑승했다.
그러자 크리스텔이 ‘으쌰’ 하며 일어나 내 곁에 척 앉았다.
앞과 옆이 순식간에 두 남녀로 막혔다. 요한 경은 대각선 방향에 자리했다.
음, 이 구도가 아닌데.
그러거나 말거나 마차는 달리기 시작했다.
-다그닥, 다그닥
“······.”
우리는 한동안 조용히 흔들림에 몸을 맡겼다.
하지만 각자의 머릿속은 분주히 돌아가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일단 나부터가 그랬다.
나는 창밖을 보며 오늘 알게 된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했다.
당장은 펜이 없으니 손가락을 접어가며.
1. 빅투아르는 정말로 앙드레지 백작가의 사생아일지 모른다. 도둑질은 집안에 대한 복수심에서 시작했을 수 있다.
2. 그녀는 진짜 의적이었다. 단순히 평민층의 호응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백성을 괴롭힌 귀족의 재산을 훔쳐 나누어주었다.
3. 위와 같은 부분을 프레데리크 황제가 몰랐을 리 없다.
4. 이상한 일이다. 복수심에서 비롯한 도적질로 여태 승승장구했다면, 왜 갑자기 나를 훔치려 드는가? 이런 전략은 오히려 자신을 위험하게 만들 뿐이다. 단지 유명세를 원해서? 내가 아니어도 언젠가는 전국적인 명성을 떨쳤을 텐데.
“어?”
나는 눈을 부릅뜨고 후다닥 창문에 이마를 댔다.
마차는 이제 거대한 클레르 광장을 돌아 나가고 있었다.
죄인을 싣고 뒤따르는 호송 마차와 병사들이 보였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우리 행렬이 아니었다.
크리스텔과 태자도 시선을 한데 모았다.
주인공이 입을 쩍 벌렸다.
“미친, 저거 그 작자죠?”
“네, 아무래도요!”
내가 급히 마차 지붕을 두드렸다.
똑똑똑! 선명한 소리에 마부가 ‘워어, 워!’ 하고 응답했다. 속도가 서서히 느려졌다.
가로수와 노점상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전쟁 군주 로메로 리에스테르의 동상 옆에, 누군가 긴 머리칼과 망토를 휘날리며 우리를 보고 서 있었다.
이지러지기 시작한 달빛을 독점한 채.
“마담 빅투아르.”
-달칵
마차 문이 열렸다. 마부는 의아한 낯이었다.
“전하, 왕자님. 어쩐 일로,”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우리가 바깥으로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영리한 뚝심이도 가슴팍에서 퐁! 하고 솟아올랐다.
나는 녀석과 이마를 맞대고 짧게 기도했다.
주신이시여, 오늘은 저 도둑을 잡는 걸 허락해주세요.
-사아아아, 펄럭!
휘이잉! 나는 뚝심이의 날개를 달고 삽시에 천공으로 솟구쳤다.
로브 자락이 요란히 휘날렸다. 빠르게 가까워지는 시야엔,
“······없어, 젠장!”
나는 이를 악물었다. 로메로 동상 주변이 어느새 텅 비어 있었다.
광장에서 길거리 음식과 와인을 즐기던 평민들이, 나를 보고 기절할 듯 놀라 바닥에 엎드렸다.
보아하니 그곳에 빅투아르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눈치였다.
“괜찮습니다! 일어나셔도 됩니다. 지나가던 길이에요.”
내가 손을 내저으며 동상 곁에 조심조심 내려섰다.
팔랑, 뚝심이가 착하게 날개를 접었다.
함께 날아와 준 요한 경은 사뿐히 착지해 나를 호위했다.
멀리, 태자의 명으로 근위대원을 파견하는 엘리자베트 경이 보였다.
크리스텔은 광장에 모인 이들의 면면을 확인하며 탐문 수색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동상 주변을 꼼꼼히 뒤졌다. 혹시 빅투아르의 흔적이 남았을지 몰랐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있네?”
내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로메로의 발치에, 타로 카드 한 장이 거꾸로 떨어져 있었다.
나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신중히 그것을 감싸 쥐었다.
‘태양’.
그리고 구석에, 자세히 관찰해야 보이는 핏자국 조금.
*
이튿날, 우리는 쥘리에트 궁에 모였다.
요한 경은 바카리와 나의 대화가 재밌었는지 응접실에 ‘빵집’이라는 암호를 붙이자고 제안했다.
태자와 내가 반대했으나, 크리스텔과 엘리자베트 경이 신난다고 찬성하는 바람에 결국 그렇게 정해졌다.
내 편이 메인 남주밖에 없다니 정은서가 알면 폰 잡고 뒤집어질 일이었다.
물론 저 녀석은 황족의 품위 어쩌고를 1순위로 고려했겠지만.
“예서 왕자님께서 확보하신 증거물 외, 간밤에 다른 소득은 없었습니다. 폐하께서 대대적인 수색을 원치 않으시니 골목을 순찰한 게 전부였는데, 수상한 자를 보았다는 신고도 접수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잔 틸리에 남작과 그녀의 친구는 황도 감옥으로 이송됐습니다. 세금 문제는 폐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부분인 만큼, 쉽게 빠져나가기 어려울 겁니다. 폭행 사건도 얽혀 있고요.”
소백작이 또박또박 상황을 정리했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그동안 뱅자맹과 다비드가 갓 구운 빵을 테이블에 잔뜩 올려주었다.
본격적인 추리를 늘어놓기 전에 간식 배부터 채워야겠다고 마음먹는데,
-똑똑
가나엘이 빵집 문을, 아니지. 탐정 사무소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왕자님, 손님이 왔습니다.”
“손님? 에바?”
“아뇨, 그.”
금색 눈이 난감한 빛을 띠었다.
“플뢰르 드 리스의 단장이, 빵 먹으러 왔다는데요······.”
소년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크리스텔과 소백작이 나란히 엎드려 흐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