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190)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190화(190/920)
#190 시계 종이 여러 번 울릴 때 (1)
그러나 엘리자베트 경은 프로였다.
가나엘의 안내를 받은 모데스트 바카리가 우리 앞에 나타날 때쯤, 그녀는 근엄한 부근위대장의 낯을 하고 있었다.
크리스텔은 갑자기 요한 경과 중요한 얘기를 나누는 척했다.
“그렇죠. 헤릿은 역시 태자 전하보다 저를 더 좋아하는 거죠.”
“아무래도요. 하지만 전하께서 용돈으로 주신 금화 주머니를 머리맡에 두고 자더군요.”
“아. 또 돈으로 승부 보려고 하네.”
크리스텔이 진심 어린 어조로 툴툴거렸다. 실제로도 중요한 대화야?
“······세드리크 황태자 전하와 예서 페네티안 왕자님을 뵙습니다.”
탐정 사무소에 입성한 예언자가 딱딱하게 예를 차렸다.
어제의 침울한 얼굴은 간데없고, 다시금 찰짜 같은 모습이었다.
커다랗고 동그란 안경테 아래 청은색 눈동자가 영민한 빛을 냈다.
마주 인사하는데 청소년의 로브에 우연히 눈길이 닿았다.
내가 물수건으로 문질러 피를 뺀 고급 원단이 우그렁쭈그렁했다.
당연히 여벌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저거 한 벌밖에 없나?
아니, 이게 아니지.
“정말 빵 먹으러 왔네요, 바카리 군. 푸가스 좋아합니까? 방금 나온 거라 따끈따끈합니다.”
내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언제든 속을 털어놓을 곳이 필요하면 와주길 바랐는데,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러자 그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양 인상을 구겼다.
“빵은 일종의 암호 아니었습니까? 저는 빅투아르 당드레지에 관한 첩보를 드리러 온 겁니다. 관련 제보를 받는다고 하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여러분께서 황명으로 그 도둑을 쫓고 계시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어······. 나는 입을 벙긋거렸다.
대뜸 빵 먹으러 오라고 하기만 뭐 해서 그렇게 덧붙인 건데, 예언가가 곧이곧대로 받아들였을 줄은 몰랐다.
훌륭히 표정을 수습했던 소백작이 결국 입술을 말고 창밖으로 눈길을 던졌다.
세드리크 태자는 조용히 에스프레소를 음미할 따름이었다.
말문을 연 건 우리의 주인공이었다.
“물론, 우리 빵집 탐정 사무소는 언제나 의뢰인과 제보자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신사분께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지 기대가 되는군요. 거기, 빈 자리에 앉으시죠.”
짧게 턱짓한 크리스텔이 품에서 파이프를 꺼내 물었다.
이내 딸기 맛 사탕에서 분홍색 김이 몽실몽실 솟아올랐다.
바카리는 순순히 몸을 움직였다. 의문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빵집이면 빵집이고 사무소면 사무소지, 빵집 탐정 사무소는 또 뭔데?
*
이후 나는 조금 바빴다.
문이 열린 틈으로 후다닥 뛰어든 레서판다 삼총사가 내게 엉겨 붙은 탓이었다.
데미의 입에 석류알을 넣어주고, 테이블을 뒤집어 놓으시려는 페리를 막고, 낮잠을 자겠다는 레아를 살살 어르고 있자 바카리가 묘한 표정을 했다.
이건 약과인데. 정뚝심하고 정티테까지 있으면 세 배 이상 정신없는데.
“우리 사무소는 직장 내 돌봄 문화가 정착된 곳입니다. 육아 품앗이라고 들어는 보셨나?”
그렇게 둘러댄 크리스텔이 레아를 데려가 보듬었다.
레서판다는 반쯤 감긴 눈으로 짧은 다리를 바동거리다가, 그녀에게 폭 안겨 잠들었다.
나는 페리를 태자 놈의 무릎에 넘기고 겨우 한숨 돌렸다.
놈은 눈썹을 까딱이면서도 자신의 식스 팩을 등반하는 신수를 못 본 척해주었다.
바카리는 우리를 혼란스런 시선으로 응시하더니,
“······본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빅투아르는 황도를 떠나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하고 내뱉었다.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떠났다고요? 그걸 어떻게 압니까?”
“간밤에 마차를 타고 클레르 광장을 통과하다가, 로메로 선황 폐하의 동상 옆에 선 인영을 목격했습니다. 왕자께서 직접 쫓으셨으니 그자가 빅투아르였겠지요.”
“네,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바카리의 말투가 예리해졌다.
“찰나였지만 그녀의 미래가 보였습니다. 동 틀 녘에 낡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온몸을 가린 채 어느 화물 마차에 올라 황도를 뜨더군요. 얼굴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계시 자체는 분명합니다.”
크리스텔이 파이프를 뻐끔거렸다.
“사실이라면 엄청난 정보네요.”
“당연히 사실입니다. 저는 8급 마법사이며 폐하의 지엄한 물음에 답하는 플뢰르 드 리스의 단장입니다.”
그렇게 말한 청소년이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예언을 확신하는 눈빛이 또랑또랑했다. 이건 예상치 못한 태도였다.
전무후무한 수준의 예지력 때문에 가문의 인정과 보호를 받지 못하고, 모르는 이들에게도 질 나쁜 배척을 당하고 있는데······.
본인은 자신의 특기를 상당히 자랑스러워하는 듯했다.
스스로를 ‘마도구’로 칭하는 건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구나.
“다른 정보는?”
태자가 낮게 물었다. 주황색 눈동자가 특유의 권위적인 빛을 띠었다.
바카리의 기세가 살포시 꺾였다.
“송구합니다, 전하. 그치가 사라지기 전에 본 것은 그게 전부였습니다. 어떤 화물 마차를 탔는지, 정확한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아닙니다, 충분히 도움이 됐습니다. 제보 고맙습니다, 바카리 군.”
내가 웃으며 답했다. 그는 나를 잠시간 바라보더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
“엥?”
“잠깐, 어딜 갑니까.”
물론 크리스텔과 내가 식겁해서 다시 앉혔다!
갓 구운 빵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빈속으로 보내는 건 안 될 말이었다.
두껍게 썬 팽 콩플레 조각에 꿀과 치즈를 잔뜩 얹어 먹이고, 따뜻한 카페오레도 마시게 하니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단장은 큰 혼돈에 빠진 기색이었지만 어쨌든 주는 건 다 비우고 물러갔다.
피살라디에르도 포장해주려고 했으나, 태자가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 실행하지 못했다.
진짜 웃기는 놈이다. 저는 나한테 온갖 까까를 어린애 모습으로 받아갔으면서.
······혹시 외부인은 테이크 아웃 안 되는 건가?
“황도를 떠나 남쪽으로 향했다면, 역시 앙드레지로 간 걸까요?”
크리스텔이 벽난로 앞에 서서 심각하게 물었다.
그녀는 탐정 사무소 콘셉트에 충실하고자, 커다란 목판에 빨간 실로 빅투아르의 행적을 표시해 놓았다.
상단엔 ‘괴도 숙녀 빅투아르 체포 작전’이라고 꼬불거리는 글씨도 써 넣었다.
파란 실로는 광대패의 이동 경로를 그렸다.
어느덧 수영을 마치고 돌아온 티테가 레서판다들과 벽로 주변을 뒹굴고 있었다.
“일단 그곳이 유력해 보입니다. 앙드레지 가문에 원한을 품고 있을 공산이 크니까요. 오전에 부하들과 대화를 해봤는데, 중부 출신 녀석은 대부분 백작가의 서계 이야기를 알고 있더군요. 술집에서 만났던 주폭과 같은 진술을 했습니다. 다만 풍문 정도로 떠도는 말인 듯했습니다.”
엘리자베트 경이 대답했다.
태자가 다비드를 불러 앙드레지로 가는 마차를 채비하도록 일렀다.
“그럼 왜 갑자기 노선을 틀었을까요? 왕자님을 훔치겠다더니.”
“황도로 시선을 돌려놓고, 자신은 가문에 궁극적인 복수를 하려는 것 아닐까요? 백작을 살해할 목적일 수도 있습니다.”
크리스텔과 소백작이 신나는 추리 쇼를 이어갔다.
나는 테이블에 펼쳐둔 타로 카드 해설서들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곁에는 빅투아르가 두고 간 ‘태양’ 카드가 놓여 있었다. 정확히는 뒤집힌 태양이었다.
“태양이 프레데리크 폐하를 암시하는 건······. 아니겠죠. 저를 노리다가 폐하 이야기를 하는 건 좀 뜬금없기도 하고, 그분은 소드마스터고. 다 떠나서 군주를 겨냥하는 건 반역이잖습니까.”
“그래.”
조각처럼 앉아 있던 태자가 대답했다. 나는 이어서 해설서를 가리켰다.
“그런데 뒤집힌 태양 카드가 의미하는 게 너무 많습니다. ‘내면의 어린아이’, ‘부정적 성향’, ‘지나치게 낙관적인’, ‘우울’······.”
“해석의 폭이 과하게 넓군.”
“응. 어떻게 감을 잡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여기 피가 묻은 게 신경 쓰입니다.”
내가 카드 끄트머리를 짚었다.
누렇게 바랜 종이에, 보일락 말락 하는 핏자국이 있었다.
“무척 희미하네요.”
소리 없이 다가온 요한 경이 카드를 들어 냄새를 맡았다.
“네. 피를 통해서 뜻하고자 하는 바가 있었다면 더 잘 보이는 곳에 확실하게 뿌렸을 텐데, 꼭 어디 잘못 스쳐서 묻은 것처럼 보입니다. 실수인 듯싶어요.”
“용의자에게 살인이나 폭행 전과가 있나?”
태자가 날카롭게 물었다. 나는 곧장 고개를 저었다.
“아뇨. 광대는 성이 없는 고아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중죄를 저질렀다 잡히면 재판 없이 중형을 받을 수 있는 거 아시잖아요.”
“질병력은?”
“그렇지 않아도 재간둥이 세르주에게 물었습니다. 한데,”
부스럭부스럭. 내가 심문할 때 받아 적었던 종이를 찾아 맨 위에 올렸다.
문장을 훑던 태자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죽은 노파였나.”
“네, 폐병으로 고생하던 건 폼 할머니였답니다. 세르주뿐 아니라 다른 광대들도 진술한 내용입니다. 할머니는 종종 피를 토했지만, 동료 곡예사들이 은퇴를 권해도 듣지 않았습니다. 마지막까지 무대에 남고 싶다는 뜻을 여러 번 밝혔대요. 결국은 마차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손녀인 앙리에트는 평소 잠이 많다는 증언이 있었는데, 하루에 18시간씩 자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교대 공연을 주로 했습니다. 그 밖에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고 하고요.”
“······.”
그러자 태자가 무섭도록 묵묵해졌다.
조심스레 그의 표정을 살폈지만 무엇도 읽어낼 수 없었다.
이럴 때 캐물으면 오히려 소라게처럼 숨어버리는 성격이니, 나도 나름의 추리나 해보기로 했다.
“음.”
개인적으로 가장 걸리는 건, 황제의 태도였다.
그녀는 어째서 우리에게 아는 정보를 전부 제공하지 않았을까?
우리를 시험하기 위해? 왜 굳이?
정말로 우리가 황궁에서 허송세월하는 게 아깝다고 여겨서?
아니면 반드시 우리여야 했나? 내가 납치 미수 당사자니까?
당장 황제궁에 가서 물어본다 해도 그녀는 답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냥 별것 아닌 제왕의 변덕일 수도 있는데, 어쩐지 그게 자꾸만 신경을 거슬렀다.
대체······.
문득, 가나엘이 두고 간 잡지가 눈에 들어왔다.
<격주간 리에스테르> 12월 1일 호.
정신이 없어 아직 읽어보지 못한 신간이었다. 나는 무심코 페이지를 넘겼다.
수확제 마지막 날 퍼레이드에서 있었던 ‘범행 예고 소동’은 실려 있지 않았다.
황실의 압력이 들어갔을 수 있겠지만, 발행일이 이틀 남은 상황에서 기사를 추가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팔랑, 팔랑······
“앗, 여기 왕자님 영지 얘기도 있어요.”
그새 다가온 크리스텔이 한곳을 짚었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사라 벨리아르 경의 기사를 읽었다.
「······세레니테 후작 예서 왕자님의 영지는, 1년 전과 완전히 다른 풍경으로 필자를 맞았다. 땅 위의 모든 것이 새로이 태어났다고 하면 믿겠는가? 눈에 띄는 곳은 물론 인적이 드문 장소에도 화려한 색감의 크고 작은 회화가 가득하다. 영지민들은 배부른 낯으로 들꽃을 엮어 울타리를 장식하고, 수확철 농기구를 두드리는 대장장이들은 영감 얻은 조각가와 같이 기꺼워 보인다. 단풍이 작별을 고하는데도 관광객의 마차 행렬은 끊이지 않는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왕자님이 직접 죄를 사하고, 영지 소속의 종신 화가로 고용한 조안 드 아스(우리 독자들에게는 하더 O. 얀선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할 것이다)의 신작 ‘달의 초상’이 12월 초 공개를 앞두고 있다. 후작령 신전 입구에 걸릴 천재 작가의 이번 작품은 캔버스에 유화······.」
찌르르! 어떤 가능성이 강렬히 뇌리를 스쳤다.
“헉.”
나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크리스텔의 청회색 눈동자가 땡그랗게 커져 있었다.
“왕자님, 아스 씨가 왕자님을 그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가나엘이 밑그림을 가지고 있어요. 샹탈이 보낸 편지에 같이······.”
영지 초입에 있는 아담한 신전에, 조안이 내 얼굴을 그려서 건다고 했다.
‘신국의 달을 훔치러 가겠어요.
-마담 빅투아르’
<달의 초상>.
나는 숨을 들이켰다. 태자가 즉시 기립했다.
“앙드레지가 아닙니다. 엘리자베트 경, 세레니테 후작령으로 가는 호위를 준비해주세요. 뱅자맹과 다비드도 불러주십시오!”
“네, 왕자님!”
그녀가 순식간에 사무소를 박차고 나갔다.
때마침 요한 경이 내게 타로 카드를 내밀었다.
살며시 혀를 감추는 게, 그새 핏자국을 맛본 모양이었다. 세상에.
“피가 오래되지 않았어요, 전하. 아무래도 카드를 남기던 당일에 묻은 것 같네요.”
그러고는 상냥하게 눈꼬리를 휘었다. 나는 아연실색하며 카드를 받아들었다.
뒤늦게 콩콩거리며 걸어 들어온 뚝심이가, 포도동 날아 타로 카드 해설서에 앉았다.
녀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부리로 한 단어를 콕콕 찍어댔다.
네 쌍의 시선이 자연히 그곳을 향했다.
역방향 태양의 또 다른 의미.
‘슬픔.’
숨쉬는 모카빵의 힌트는 강력했다.
아이들을 버리는 백작가, 돌아가신 할머니, 사라진 손녀, 달의 초상, 핏자국, 슬픔.
머릿속에서 빠르게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