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194)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194화(194/920)
#194
보라색 튤립 (1)
대귀족들이 즉시 웅성거렸다.
“주신 맙소사.”
“백작이 드디어 역린을 건드렸군.”
“왜? 앙드레지는 아주 독실한 집안 아니오?”
“바로 그게 문제였소.”
시몽 드 사르네즈 공작이나 프랑수아 뒤엠 후작 같은, 황제의 최측근만이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대부분은 경악한 낯이었다.
세실 블랑케르 공작을 대신해 참석한 에바도 깜짝 놀란 듯했다.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황태자의 조각 같은 옆모습 너머, 프레데리크 황제의 우측에 자리한 부티에 추기경이 보였다.
‘여기서부터는 우리에게 맡기렴.’
그녀가 나를 향해 입모양을 움직였다. 문장이 좀 길긴 했는데, 대충 그런 의미였다.
“황제 폐하의 죄인, 제랄드 앙드레지 백작과 백작 부인입니다!”
-쿠웅!
속전속결이었다. 시종의 안내와 동시에 커다란 알현실 문이 열렸다.
에르베 뒤엠 근위대장이 두꺼운 팔로 백작을 끌어왔다.
백작 부인은 두 걸음 정도 뒤에서 걷고 있었고, 근위대원들의 감시를 받았다.
나는 부부를 보고 내심 놀랐다. 둘은 점잖고 우아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아이를 버리고도 철면피처럼 살아가는 치들 같지 않았다.
죄인들은 삽시간에 황제의 계단 밑까지 당도했다.
-털썩!
뒤엠 경이 백작을 거의 내동댕이쳤다.
남자를 보는 근위대장의 연분홍색 눈동자가 경멸에 차 있었다.
당연하지만, 간밤에 ‘마담 빅투아르’의 사정을 모두 알게 된 모양이었다.
“오랜만이군, 앙드레지 백작.”
“지상에 강림하신 태양을 뵙습니다.”
무릎 꿇은 중년 남성이 침착히 예를 갖추었다.
그는 대뜸 허리 숙여 빌지도, 목소리를 벌벌 떨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귀족적인 몸가짐이었다.
황제의 체리색 눈동자가 갓 벼린 검처럼 날카로운 빛을 냈다.
“경의 죄과는 잘 알고 있겠지.”
“······폐하께서 죄라 하시면 죄가 될 것입니다.”
“세상에, 백작! 정신 차리시오!”
실내가 일순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아버지의 뒤에 서 있던 크리스텔이 오만상을 썼고, 나는 백작의 답에 충격 받아 혀를 깨물었다.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나? 본인은 그게 잘못이란 생각을 안 한다는 거야?
“뒤랑달의 날을 직접 보고 싶은 게요?”
“어서 자백하고 황은을 구하세요!”
귀족 중 일부가 큰소리로 꾸짖었다.
그러나 백작은 담담히 정면을 응시할 따름이었다.
소름 끼칠 정도로 차분한 반응이었다. 황제가 운을 뗐다.
“경은 25년 전, 두 살 난 딸을 영주성 인근 숲에 유기했다. 그 아이가 자라서 도둑이 되었지.”
“······.”
“‘빅투아르’. 그것이 하인이 숨겨 넣은 종잇장에 적힌 전부였고.”
‘빅투아르 당드레지. 예서 왕자님을 훔치려던 도둑이네요.’ 에바가 지적했다.
그것을 들은 귀족들이 턱을 쩍 벌렸다.
이미 아는 사람도 있었지만, 백작의 상세한 죄목을 몰랐던 이가 더 많았다.
이제야 머릿속 퍼즐을 맞춘 몇몇이 크게 화내고 삿대질을 했다.
“어찌 핏덩이를 산에 버린단 말입니까. 그냥 죽으라는 것 아닙니까!”
“차라리 입양을 보냈어야지. 아니, 처음부터 품지를 말았어야지! 그게 주신의 자식으로서 할 짓이오?”
“주신의 자식이기에 그리 한 것입니다.”
백작이 불쑥 대답했다. 좌중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황제는 침잠한 눈빛으로 그를 내려보았다.
“계속 지껄여 보도록.”
“······강건한 그릇과 온전한 육체. 그토록 기초적인 것을 갖추지 못했는데, 주신의 자식 된 자로서 어찌 신의(神意)를 받들고 실천하며 살겠습니까?”
무슨······. 저게 무슨 개소리야?
“뛰어난 지능이나 체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태어났으면 기본은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주신을 받들지 못한다면, 애초에 결핍된 생명을 이어갈 가치가 없지 않겠습니까.”
저 쓰레기 같은 새끼!
“말조심하십시오!”
내가 버럭 외쳤다. 순간 울컥했다. 장내가 쩡하고 얼어붙었다.
나 혼자 화가 나서 펄펄 끓었다.
“당신이 뭔데 사람의 값어치를 멋대로 판단하고 목숨을 좌지우지합니까. 앞길을 선택하는 건 온전히 본인의 뜻이어야죠. 그리고 본인의 의지가 자리 잡히기 전까지는, 다 클 때까지는 누구든 보호받아야죠. 육신이 불편하든 그릇이 깨져 있든.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인데요.”
그러자 지금껏 잠잠하던 백작 부인이 머리를 들었다.
그녀는 몹시 억울한 표정이었다.
“왕자께서는 존귀한 왕족 신관으로 태어나셨지요. 저희 같은 필부필부의 심정을 알지 못,”
“입 다무세요. 나도 똑같은 사람입니다. 찌르면 피 나고 아프면 서럽습니다.”
내가 쏘아붙였다. 열이 뻗쳐서 말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당신들은 순수한 신앙심에 그딴 짓을 한 게 아닙니다. 신앙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자신은 선택 받았다는 우월감에 취해서 약한 이를 마음대로 심판한 겁니다. 절대자 놀음을 한 거라고요. 핏줄을 상대로!”
“······.”
“내가 왕족 신관이라서 뭐라도 된다고 생각하나 본데, 그럼 한마디 하겠습니다. 나는 당신들이 죽을 때까지 죄책감에 시달리길 바랍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용서받지 못하기를 원해요. 왜냐하면, 당신네를 사할 자격이 있는 분들은 이미 떠나고 없으니까!”
헉, 허억. 숨이 턱 끝까지 찼다. 나는 가쁘게 호흡하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제야 모든 이의 눈길이 내게 꽂혀 있음을 깨달았다.
크리스텔이 멍하니 나를 보았다. 아차 싶어서 입술이 절로 말렸다.
삽시에 뺨이 달아오르고 목덜미가 붉어졌다.
낯 뜨거워 눈꺼풀마저 떨리는 것 같았다.
세드리크 태자는 나를 묵묵히 바라보더니, 황제궁 시종들에게 짧게 눈짓했다.
“왕자님, 실례하겠습니다.”
“예, 네.”
순식간에 나를 앉힐 의자가 들어오고, 뜨끈한 손엔 민트 잎과 얼음을 띄운 사과에이드가 쥐어졌다.
나는 멍청하게 답하며 옆 층계에 선 태자를 올려다보았다.
지금 착석한 분이 너희 어머니랑 대모님뿐인데, 내가 앉아도 되는 거냐?
······사과에이드는 시드르 대신이고?
“왕자가 짐의 수고를 더는군.”
황제가 덤덤하게 말했다.
나는 달고 시원한 에이드를 꿀꺽꿀꺽 들이켜며 눈알을 굴렸다.
백작 부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내가 저들 속을 까발리니까, 차마 반박은 못 하고 수치심에 씩씩거리는 거다.
저급하고 못된 치들 같으니. 지옥에나 가라.
“너희가 아이를 버릴 때 입힌 비단옷과, 그 아이가 훔친 백작가의 다이아 목걸이가 증거물로 있어. 그게 120년 된 진품이라는 사실은 새벽에 황실 감정사가 확인했고.”
“······.”
스승님이 조곤조곤 말했다.
금빛 단안경 아래 베이지색 눈동자가 무감정하게 깜빡였다.
일순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죄는 아이 유기뿐이 아니야. 백작 부인을 태운 마차가 그 아이를 치어 사망에 이르게 했는데도, 너희는 신고나 재판 과정 없이 돈으로 유가족의 입을 막았어. 이 증언은 예서 왕자가 진실임을 확인했고, 증인은 태자를 비롯한 네 명이란다.”
“빌어먹을 것들이구먼.”
오랜만에 황도에 내려왔다는 카롤린 무테 변경백이, 황제의 면전에서 욕을 했다.
하지만 소드마스터인 그녀에게 감히 눈치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다들 백작가의 잔인함에 질린 표정이었다.
에바가 양손으로 입을 가리고 나를 올려보았다. 나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사실이었으니까.
“이게 명백한 치사와 은폐라는 걸 모르진 않을 거야. 너희 부부는 축복 받은 두뇌를 지닌 듯싶으니.”
“······.”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도 알겠구나.”
추기경의 말에 백작이 시선을 번쩍 들었다. 그의 눈이 번뜩였다.
“전하, 아닙니다. 부디 저희 가문을 모욕하지 말아주십시오. 아버지와 조모님께서는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으로······!”
“아이들을 버렸어. 삼대에 걸쳐서. 어쩌면 그전부터 계속.”
나는 작게 탄식했다. 역시 황제와 그녀의 동반자는 알고 있었다.
뒤편에 선 귀족들이 소리 높여 백작가의 죄악을 성토했다.
그럼에도 백작은 기를 꺾지 않았다. 남자의 눈빛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대륙의 긍지 높은 신을 위함입니다. 저희는 완벽한 심신으로 그분을 섬겼습니다!”
“주신은 인간의 횡포를 원하지 않아. 성서에도 그런 구절은 없어.”
그러자 백작이 자리에서 몸을 튕겼다.
근위대장이 빠르게 그의 어깨를 눌러 제압했다. 남자가 침을 튀기며 부르짖었다.
“인간은 무결해야 합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추기경 전하!”
“그만.”
그녀가 말을 끊었다. 빙하처럼 차가운 목소리였다.
“나는 너희 가문의 신앙을 보증하지 않을 거야.”
“아아! 어째서······. 이럴 수가······.”
백작 부인이 구슬피 흐느끼기 시작했다.
온 세상으로부터 박해받는 자의 낯빛이었다.
나는 말을 잃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끔찍했다.
부부는 이미 반성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죽은 앙리에트는 둘의 친딸이었다.
그런데 저들의 슬픔은 오직, ‘신앙의 왕녀’로부터 집안의 신심을 인정받지 못하는 데 기인했다.
이건 정상인의 범주가 아니지 않은가.
“그 아이를 돌본 노파는 전전 백작이 버린 딸이었다. 아마 네놈과 같은 사유였겠지.”
“하, 하······.”
황제가 말했다. 앙드레지 백작의 얼굴은 이제 파래졌다가 노래지기를 반복했다.
버석하게 마른 입술 사이로 헛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신 대에서 ‘신앙생활’이 끊긴다는 게 무척이나 치욕스러운 듯했다.
그러나 자비는 없었다. 지엄한 잇새로 황명이 떨어졌다.
“오늘부로 짐은 제랄드 앙드레지 백작의 작위를 박탈하고, 영지를 환수한다. 선대 백작들과 이자의 업적을 황실 기록으로 치하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백작과 그 배우자는 영아 유기와 학대, 치사 및 은폐의 죄를 물어 종신토록 투옥하며, 죄질이 극악하고 뉘우치는 자세를 보이지 않으니 보석의 기회 또한 내리지 않겠다. 이들의 명으로 죄지은 사용인도 짐의 뜻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폐하! 억울합니다!”
“닥치시오!”
누군가 고함쳤고, 누군가는 손가락질했다. 에바가 작은 주먹을 꾹 쥐는 것이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곁에 서 있어 주고 싶었다. 뒤엠 후작도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사르네즈 공작은 고요한 눈길로 백작 부부를 바라보았다.
“네놈들의 자식은 아직 미성년이니, 같은 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으리라 판단한다. 하여 녀석의 자립에 쓰일 소액의 현금을 제외한 나머지 재산을 국고로 몰수한다. 이는 황실 영지에 고아원을 짓고, 의원을 양성하는 데 쓰일 것이다.”
“안 돼요, 아니 됩니다! 내 아들!”
백작 부인이 카랑카랑 소리쳤다. 황제의 강철 같은 태도엔 미동도 없었다.
그녀가 가볍게 턱짓하자,
“일어나시오.”
“폐하, 폐하! 제발 들어주십시오!”
“전하!”
뒤엠 경과 근위대가 둘을 거칠게 붙잡아 곁문으로 끌고 나갔다.
나는 유리잔을 꼭 붙든 채, 부부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들을 노려보았다.
감옥에서 평생 핍박 받고 고생해라.
너희가 아무리 비참해도, 폼 할머니와 앙리에트만큼 사무치진 않을 테니까.
“똑똑히 봤겠지.”
황제가 말했다. 그녀의 고개는 한결같이 정방을 향하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보좌에 모였다.
“짐은 경들의 자치권을 존중한다. 알아서 잘하는 자를 압박하는 취미는 없어.”
“······.”
“허나 황족의 눈을 피해 죄를 짓고도 무사할 거라 여기진 마라.”
허스키하고 음산한 경고였다.
“내 어머니와 조부께서 놓치신 죄업을, 나 역시 간과하리라 기대하지도 말고.”
무서웠다. 나는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소름이 끼쳤다.
‘자수하여 광명 찾자’라는 오래된 문구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다들 비슷한 감상인지 황제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는 기색이었다.
오직 뒤엠 후작만이 근사하게 웃으며 우리 쪽으로 손가락 화살을 날렸다.
당당한 황실 방계라서 좋으시겠어요······.
“다음.”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나는 흠칫하며 눈길을 돌렸다.
황제의 말에, 꼿꼿이 서 있던 엘리자베트 경이 재깍 움직였다.
그녀는 입구로 걸어가 지체 없이 문을 열었다.
-쿠웅!
이내 구면과 초면이 뒤섞여 모습을 드러냈다.
포박된 귀족 여럿이 바깥에서 대기 중이었다.
저자는 분명, 술집에서 스무 살 청소년을 때렸던······.
“지금부터는, 황명을 어기고 세금을 과하게 걷어 평민의 삶을 위협한 자들을 조진다.”
황제가 짓씹듯 말했다.
나는 에이드에 든 사과 조각을 깨물며 넋 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반할 것 같다.
*
그로부터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황제궁 밖엔 노을이 지기 시작했고, 죄인들은 우르르 끌려갔고, 오늘의 심판 분량은 다 끝난 줄 알았다.
그랬는데······.
“예서 왕자님. 폐하께서 왕자님을 튤립 후원으로 초대하셨습니다.”
시종장 로라가 내게 절하고는 말했다.
나는 간식으로 먹던 여섯 번째 뷔뉴 조각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황제와 스승님은 진작 알현실을 떠났고, 다른 귀족들도 바삐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다.
멀찍이서 뱅자맹과 가나엘이 로브와 장갑을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일단 냅킨으로 입가를 정리하며 주억거렸다.
······근데 12월에 튤립이 핍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