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199)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199화(199/920)
#199
보라색 튤립 (6)
-척, 척, 척!
황실 근위대가 발맞춰 행진했다.
그렇다. 우리의 엄폐 작전은 성공했다. 놀랍게도 말이다!
“초면인 분이 많네요.”
나는 에르베 뒤엠 근위대장의 드넓은 등짝을 가림막 삼아, 인파에 섞여 이동했다.
티테와 레아는 내가 안고, 데미와 페리는 가나엘이 맡아주었다.
뚝심이는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어깨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역시 대륙에서 제일 똑똑한 굴뚝새다웠다.
“예, 왕자님. 사르네즈에서 양성한 신입 기사와 병사들입니다. 시몽 드 사르네즈 공작의 지원으로 대거 입대했습니다.”
뒤엠 경이 근사하게 웃으며 설명했다.
그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나와 가나엘을 보고 놀란 듯했으나, 오랜만에 운동을 나왔다는 말에 반색했다.
‘근육을 잃지 않게 조심하셔야 한다’고 두 번이나 강조하기도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근위대장은 우리의 합류에 별 의문을 표하지 않았고, 흔쾌히 티테의 연못까지 동행해주기로 했다.
과연 ‘리에스테르에서 가장 매력적인 독신남 TOP 10’.
외모와 인성이 비례하는 흔치 않은 경우였다.
“근위대 규모가 훅 커진 셈이군요.”
내가 널찍한 보폭으로 걸으며 말했다.
쥘리에트와 로메로 구역을 최대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새로 들어온 근위대원들이 나를 훔쳐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이런 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하하하, 그렇습니다. 보초 충원이야 지난봄부터 꾸준했습니다만, 기사와 정예병까지 우르르 들어오는 일은 드물었지요. 허나 ‘천공(穿孔)의 하늘’ 사태 이래 황궁 병력을 증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고······. 궁에 지켜야 할 분도 늘었으니 예견된 수순이긴 합니다.”
연분홍색 눈매가 멋들어지게 휘었다.
그를 보며 질문을 이어가려는데, 굵직한 어깨 너머로 누군가와 눈길이 마주쳤다.
우연이었다.
“헉.”
나는 잽싸게 목을 수그렸다. 멀리서 꺼먼 놈이 혼자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야, 누가 보면 정원에 불난 줄 알겠다!
“진짜 열 받았나?”
아니겠지. 황태자는 아침 먹을 때도 눈이 저렇잖아.
나는 상황을 이성적으로 보고자 애를 썼다.
와중에 레아는 앞발로 내 뺨을 꾹꾹 누르며 즐거워했다.
‘왕자님?’ 뒤편에서 가나엘이 근심스레 나를 불렀다.
나는 소년에게 싱긋한 후 재빨리 아무 말이나 주워섬겼다.
“그, 흠. 엊그제 경의 형님을 봤습니다. 밤늦게 폐하를 알현하시던데······.”
“아.”
그러자 뒤엠 경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
뒤늦게 내가 말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튤립 후원에서도 스승님의 낯에 슬픔이 묻어나 캐묻지 않았는데, 당사자의 동생에게 너무 가볍게 언급해 버렸다.
나는 급히 덧붙였다.
“답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땅한 용건이 있으셨겠죠.”
“예, 형님은······. 당분간 후작령에서 지낼 겁니다. 그래도 폐하의 탄신일 이전에는 올라오리라 예상합니다.”
그가 부드럽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후작이 자신의 영지에 머무르는 건 당연한데, 어쩐지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나는 거기까지만 짐작하고는 머리를 주억였다.
얼마간 후작을 못 본다는 게 조금 섭섭하긴 했다.
우리는 이후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천만다행히, 세드리크 태자가 나를 때리려고 달려오거나 근처의 수풀을 불태우는 일은 없었다.
“저기, 연못이 보이는군요. 살얼음이 끼어서 신수님 놀기에 좋을 겁니다.”
근위대장이 티테의 해수 풀장을 가리켰다.
품속의 하프물범이 ‘아우우!’ 하고 기쁘게 울었다.
나는 파안하며 녀석의 찹쌀떡 같은 턱살을 문질러주었다.
*
그렇게 나는 일요일 내내 신수들과 몸 바쳐 놀고,
‘형은 얼음물 입수 못 해. 간절하게 봐도 안 돼. 미안.’
-참방! 참방참방!
‘으앗! 티테 님, 물 끼얹지 말아주세요!’
‘도망쳐, 가나엘!’
겨울바람을 맞으며 열심히 뛰어다니고,
‘레아, 페리! 허억, 너희 리드줄 맬 생각 없냐?’
-끼흥!
데미가 바닥에 뱉은 꽃잎도 깨끗하게 치웠다.
-퉤
‘세상은 요지경······.’
대지 속성 신수들이 극도로 흥분하면, 거품 대신 꽃이파리를 문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가나엘은 경악했지만 나는 그게 황당하고 귀여워서 한참 웃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월요일이었다.
부티에 추기경은 오전 수업 내내 ‘종교적 반려’의 지읒 자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오후엔 요한 경이 이끄는 성기사 클래스가 있었고, 나는 주인공들의 신관 파트너로서 도리를 다해야 했다.
-다그닥, 다그닥
실내 연무장으로 향하는 마차가 황궁을 가로질렀다.
프레데리크 황제의 탄신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데다, 12월 31일과 1월 1일은 퇴계공 세계관에서도 크게 기념하는 연말연시의 축제였다.
봄 무도회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인원이 곳곳에서 가구와 장식을 나르고 있었다.
모두가 도톰한 옷차림으로 종종걸음을 놓았다.
추운 날씨에 화려한 생화가 보이는 게 신기했는데, 값비싼 마도구 화분을 이용해 온기와 생명력을 유지한다고 했다.
엄청난 사치였다.
나는 생동감 넘치는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정말 못 피해.”
-삐이······!
뚝심이가 비장하게 말을 받았다. 나는 꼬마와 무거운 시선을 교환했다.
“성숙한 스물아홉의 처세를 보여준다. 이번엔 진짜로.”
-삐르르르
그러자 맞은편에서 비품 목록을 확인하던 뱅자맹이 빙그레했다.
가나엘도 못 말리겠다는 표정이었다.
두 사람 모두, 내가 태자를 피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눈치였다.
그러면서도 이유를 묻지 않는 게 더 창피했다. 나는 묵묵히 입술을 말아 물었다.
황궁이 어린이집도 아니고, 너무 유치하게 행동하는 것 같았다.
다음 달이면 떡국 먹고 한국 나이로 서른 될 텐데.
아무리 내가 혼란스럽다고 해도, 상대를 일방적으로 안 보는 건 올바른 대처가 아니었다.
-똑똑, 달칵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마차가 멈췄다. 마부가 정중하게 우리를 에스코트했다.
나는 떨어지지 않는 발을 겨우 옮겼다.
이게 뭐라고, 정예서. 그냥 아무 일 없었던 양 대하면 돼.
실제로 그놈하고 그런 대화를 한 것도 아니잖아.
“문을 열겠습니다, 왕자님.”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연무장이 코밑이었다. 나는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덜컹! 출입문 열리는 소리가 널따란 장내를 길게 울렸다.
이윽고 세 남자의 인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서 오세요, 전하.”
“예서 왕자님, 안녕하십니까!”
요한 경과 산트가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나는 피그시 인사했다.
이어 문제적 사내와 시선을 마주했다. 절로 마른침이 꼴딱 넘어갔다.
······망했다. 저 녀석 폭발하기 일보직전이잖아.
“태자,”
“왕자님? 어디 불편하세요?”
그때, 맑은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나는 이글거리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람처럼 황급히 뒤를 돌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곱게 찰랑이는 파스텔핑크의 머리카락과, 별처럼 빛나는 청회색 눈동자가 보였다.
두툼한 로브 차림의 크리스텔이 목을 갸웃거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에테르가 불안정하지?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사르네즈 경.”
내 에테르 흐름이 나쁜가?
나조차도 알 수 없는 것을 주인공은 쉬이 포착해냈다.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대충 미소하자, 크리스텔의 눈길이 삽시에 날카로워졌다.
그녀는 나를 보호하듯 막아서더니 연무장에 있는 이들과 나를 번갈아 살폈다.
험악한 분위기를 느낀 산트가 발을 동동 굴렀고, 요한 경은 무풍지대처럼 고요했다.
태자가 용광로 같은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고 있었다.
덥석, 크리스텔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오늘도 전혀 아프지 않았다.
“가요.”
“예?”
내가 바보처럼 되물었다. 그녀를 따라온 공작저 시종이 입을 헤 벌렸다.
“지금 힘드시잖아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제가 지켜드릴 테니까. 같이 도망가요.”
타닷! 내가 뭐라고 대답할 틈도 없었다.
순식간에 나를 납치한 크리스텔이 길을 내달렸다.
나는 저항도 하지 못하고, 어쩌면 그럴 마음조차 없이 함께 달렸다.
뚝심이가 배후에서 바람을 일으켜 속도를 높여주었다.
그래도 불안을 떨칠 수는 없어 다급히 뱅자맹과 가나엘을 돌아보는데,
“허허허.”
중년인이 뒷짐을 진 채 인자하게 웃고 있었다.
나란히 선 소년은 볼이 발개져서 헤실거렸다. 본능적인 위기감이 들었다.
저기, 두 분 다 오해하지 마세요! 무슨 도피 그런 거 절대 아닙니다!
-콰아앙!
동시에 연무장 안에서 엄청난 폭음이 일었다. 나는 식겁해서 앞으로 눈길을 돌렸다.
쪽빛 로브 자락이 휘날렸다. 크리스텔이 나를 돌아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시원한 겨울 공기가 속을 탁 열고 들어왔다.
헛웃음이 터졌다.
*
요한 헤인스는 요즘 하루하루가 기꺼웠다.
비록 제자가 멀쩡한 연무장에 대문짝만 한 구멍을 만들긴 했지만, 뭐.
그의 감상엔 변함이 없었다.
“비켜.”
“곤란하네요.”
태자가 을러댔으나 요한은 흔들리지 않았다.
상대는 무려 신물의 선택을 받은 지재로, 7급 마법사이자 8급 검사였다.
그러나 자신은 스물일곱에 성흔을 깨우친 추기경이었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무력 차이가 분명하니 굽힐 이유가 없었다.
요한은 도리어 죄 없는 사제의 안위를 우려했다.
그의 주군은 산트가 다치는 것을 바라지 않을 터였다.
남자가 한 팔을 들어 손짓하자, 순박한 청년의 몸이 허공에 둥둥 떠올랐다.
“으아, 헤인스 경!”
“괜찮아요. 저쪽에 앉아서 안전하게 쉬고 있어요.”
“네에에에!”
사제가 허우적거리며 연무장 구석 소파로 날아갔다.
요한은 쿠션을 끌어안는 산트를 꼼꼼히 확인했다.
저 도련님은 확실히 예전에 비해 대범해졌다.
더는 이런 상황을 보고 달아나거나 눈물을 보이지 않았,
-카가강!
화성의 혜검이 정면에서 그를 노렸다.
-끼긱, 끼기기긱······
추기경은 느릿느릿 고개를 돌려 주홍빛 눈동자를 응시했다.
교차한 두 개의 검 사이로, 태자의 홍채가 달그림자에 가린 해처럼 가늘어졌다.
자신의 공격을 보지도 않고 받아낸 것이 분한 모양이었다.
요한의 무기는 언제나처럼 희고 불투명한 공기의 칼날이었다.
두 남자의 팔이 힘을 겨루며 진동했다. 까드득, 까득······.
“어째서 방해하지?”
“사르네즈 경의 말이 옳으니까요.”
그가 나직이 답했다.
“제 주인께서 혼란에 빠져 계신지라. 지금은 전하를 보내드릴 수가 없어요.”
요한은, 혼란의 이유를 아는 낯빛이었다. 세드리크가 입술을 악다물었다.
-쿠웅!
검은 부츠 밑이 움푹 꺼지고, 두 개의 신형이 깜빡이며 사라졌다.
-콰아앙!
-챙, 채챙, 카가강!
그리고 연무장 저편에 출현했다.
검날은 일반인의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을 만치 빠르게 충돌했다.
왕자가 참관할 때는 이렇듯 격렬히 대련한 적이 없었다.
태양의 흑점을 닮은 머리칼이 거칠게 흩날렸다. 사내가 잇새로 말을 뱉었다.
“왕자는 내게 해명하지 않았어.”
“그러니 기다려 주셔야죠.”
“왜.”
“전하께서도 늘 태자 전하를 기다려 주시니까요.”
타이르는 목소리, 여유로운 눈빛 따위가 전부 거슬렸다. 빠드득 이가 갈렸다.
요한은 그런 세드리크를 다루는 법을 확실히 알았다.
‘운이 닿는다면.’ 그가 입을 열었다.
“언젠가 엘리서 왕세녀 전하와 다시 손을 섞으시겠죠.”
“······.”
“저를 이기지 못하신다면 그분은 어림도 없을 거예요.”
-화르르륵!
혜검에서 불길이 솟구쳤다. 민트색 눈동자가 유쾌한 호선을 그렸다.
휘이이잉! 뻥 뚫린 벽에서 북풍이 들이닥쳤다.
*
“후욱······. 더는 못 뛰겠, 콜록!”
“여긴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저 궁으로 가요!”
크리스텔이 마지막으로 나를 이끌었다.
와중에도 내 팔에 멍이 들까 봐 살살, 자세를 바꿔가며 붙잡았다.
그런 배려가 고마워서 입가가 자꾸 풀어졌다.
정신없이 달려서 얼마나 멀리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히 황궁의 이쪽은 인구가 적었다.
나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여긴 또 처음이네. 빈 궁인가? 아니면 스트로다 궁처럼 손님용? 쓰임새를 모르겠다.
“뒷문, 뒷문. 열려 있다. 운발 오졌고.”
크리스텔이 한 큐에 국적 파악 되는 대사를 거침없이 중얼댔다.
꼭 정은서 같은 말투였다. 나는 간신히 웃음을 참으며 숨을 골랐다.
주인공은 나를 보며 양 눈을 번갈아 윙크하더니, 잽싸게 문을 열고 어느 궁에 나를 밀어 넣었다.
이러니까 마치 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쿨럭! 하아······.”
“안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누추하지만, 아니. 황궁인데 누추하다고 하면 불경죄겠죠?”
복도에 행커치프를 깔아주던 크리스텔이 후딱 말을 수습했다.
나는 킥킥거리며 호의를 받아들이고, 내 손수건을 꺼내 옆자리에 펼쳤다. 크리스텔이 싱글벙글 착석했다.
한동안 우리 사이에는 별 말이 오가지 않았다.
한두 번 창밖에서 시종과 하인들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대체로는 아주 한갓진 분위기였다.
주인이 없는 궁인지 뒷문을 살피거나 드나드는 이도 없었다.
가쁜 호흡이 가라앉을 무렵, 다정한 음성이 귓가에 와 닿았다.
“이제 얘기하셔도 돼요. 제가 다 들어드릴게요.”
나는 고개를 돌렸다. 어여쁜 얼굴이 무척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