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236)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236화(236/920)
#236
커튼콜 (8)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아이고, 어머니!”
야밤에 이게 웬 난리인지 모르겠다.
“밀지 마, 밀지 마요!”
“우와아아!”
클레르 광장은 삽시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모리스와 행사 도우미들이 무대 구석에 쪼그려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나는 팔뚝에 앉은 새를 보며, 곁사람에겐 들리지 않을 만치 작게 속삭였다.
“너······. 뚝심이 맞지?”
-끼룩
그러자 누가 봐도 불사조처럼 생긴 녀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똥그란 눈은 뚝심이의 본체인 ‘비렴의 방주’와 똑같은 빛깔이었다.
익숙한 몸놀림으로 내 팔에 자리하는 것도 그렇고, 이렇게 커졌으면서 귀여운 척 몸통을 실룩거리는 것도 그냥 정뚝심이었다.
프랑수아 후작이 연분홍색 눈을 불길하게 번쩍거렸다.
당장이라도 날짐승의 요모조모를 뜯어보고 연구할 기세였다.
나는 그를 모른 체하고 다시 소곤댔다.
“굴뚝새 말고 다른 새로도 변할 수 있었어? 왜 그동안 형한테 말 안 했는데?”
-끼루루
심지어 성서에 나오는 새라니. 주신교에서 ‘불사조’는 신수나 신물이 아니었다.
그는 주신을 보좌하며 그녀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일종의 신격(神格)으로, 신의 분신이나 그릇 조각 등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았다.
어째서 이런 모습을 취했는지는 대충 알겠지만, 갑작스럽고 놀라운 마음은 숨길 수 없었다.
녀석은 시침을 뚝 떼며 부리로 날개깃을 정리했다. 어쭈구리.
“너 나중에 궁에서 형이랑 얘기 좀 해.”
-끼룩, 켓!
그러자 새가 말대꾸하려다 기침을 했다.
나는 관중의 눈치를 보며 재빨리 녀석을 살폈다.
추운 날씨에 감기라도 걸렸나 싶어 걱정이 됐다. 불사조가 순순히 입을 벌렸다.
부리 안쪽이 노란 것도 뚝심이와 판박이였다.
-켁, 켓! 삐이!
“어우, 다 들키겠네.”
독수리만 한 녀석이 기어코 굴뚝새 소리를 냈다. 프랑수아가 목을 기울였다.
나는 다급히 꼬마의 부리를 두 손가락으로 닫아 주었다. 그랬더니 이번엔,
-사르르······
불사조의 왼쪽 날개가 연보랏빛을 내며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픈 게 아니라 실시간으로 신력이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이변을 눈치 챈 후작이 잽싸게 한 걸음 다가와 상황을 가려 주었다.
얘 지금 한쪽 날개는 굴뚝이다!
“아직 기운 회복도 안 됐는데 무리하니까 그렇지. 쪼끄만 게 온 제국을 쏘다녔다며.”
내가 조곤조곤 다그쳤다.
그러자 신비롭던 눈동자가 초콜릿처럼 까맣게 변하고, 오른쪽 눈 위엔 특유의 하얀 털이 생겨났다.
-삐잉
뭐가 맘에 안 든다는 투였다.
나는 한숨을 삼키며 녀석의 조그마한 등을 달래듯 쓸어주었다.
그래, 섬기는 주인도 없이 힘을 써댔으니 고됐을 것이다. 혼자 외롭기도 했겠고.
“고마워, 너무 애썼어. 가서 푹 쉬자. 낮잠도 자고 해바라기도 하고.”
-삐이
그제야 녀석이 내 어깨에 머리를 비볐다. 그때쯤 소동은 더욱 커졌다.
“프레데리크 리에스테르 황제 폐하와, 오렐리 부티에 추기경 전하 납시오!”
“뭐?”
나는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장난이라기엔 목소리에 권위가 있었고, 실제로 광장의 군중은 홍해처럼 갈라지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친 후작 또한 크게 놀란 눈치였다.
사르네즈항을 통과한 해적선이 줄곧 하늘을 날아 왔으니, 황궁에 우리 소식이 닿았으리라 예상은 했다.
그래도 그렇지. 광장까지 몸소 행차하실 줄은······.
-뚜벅
이내 날렵한 부츠 앞코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뚝심이를 끌어안고 황급히 몸을 낮췄다. 후작도 예를 다해 허리를 숙였다.
리에스테르에서 가장 귀한 사람이, 가장 낮다고 일컬어지는 곳에 임했다.
제국의 모든 이가 그녀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순간이었다.
-사아아아······
“저게 무슨.”
나는 일단 입부터 틀어막았다.
무대로 나아오는 그녀의 길목에, 보라색 튤립 송이들이 길게 자라나고 있었다.
충격으로 턱이 자꾸 벌어졌다.
천 년 동안 여러 각색이 덧대어졌을 아리안과 필리프의 설화도 이만큼 극적이진 않았다.
저 꽃은, 황궁의 튤립 후원에서만 자라는 주신의 축복이자 대륙 신앙의 상징이었다.
누가 봐도 길조요 기적이었다.
“아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데?
-쿠웅! 쿠웅!
“억!”
깜짝 놀라 어깨가 들썩였다.
-콰앙! 쿵!
눈은 몇 번이나 깜빡였는지 셀 수도 없었다.
상공의 해적선에서 뛰어내린 성기사 셋과 에르베 경이, 일반인 친구들을 안고 무대에 착지한 것이다.
누가 주인공 일행 아니랄까 봐 엄청 요란하네!
“세상에!”
“아유, 아유······.”
바닥에 엎드린 인파가 급격히 술렁거렸다.
‘아아!’ 혼절하는 이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일생에 한 명의 황족을 만나는 것도 가문의 영광이라고 말하는 땅에서, 무려 황제와 황태자를 한날한시에 목격한 것이다.
게다가 돌짬에선 전설 속의 보랏빛 튤립이 피어나고 있었다.
정신을 놓거나 숨을 몰아쉬는 것도 이해가 갔다.
나는 엘렌을 내려주는 크리스텔에게 속닥속닥 물었다.
“애들은요?”
“배에 남았습니다. 품에서 자꾸 빠져나가더라고요. 내려올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녀가 황제를 향해 정중히 예를 차리며 속살거렸다.
나는 조심스레 밤하늘을 올려보았다.
내려올 생각이 없다고? 페리가 사람 많은 곳을 안 좋아하긴 하는데······.
-끼흥
찰나, 데미의 웃음소리 비슷한 것이 들렸다.
뱃머리 끝에서 앙증맞은 두 귀가 팔랑였다. 내 눈이 서서히 커졌다.
벼락같은 깨달음이 정수리를 때렸다!
“말도 안 돼.”
저게 너희가 벌인 짓이야?
보라색 튤립은 못 피운다고, 그렇게 어르고 달래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더니 전부 거짓말이었어?
그동안 내 앞에서 연기한 거냐?
“와, 뒤통수······.”
내가 마른세수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우리를 돕기 위해 어마어마한 연출을 해주는 건 진심으로 고맙지만,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레서판다들이 지금껏 나를 속였다니 충격이 컸다.
혹시 내가 연기를 못 한다고 생각해서 처음부터 모르게 하고 판을 짰다거나······. 아냐, 거기까지 나가진 말자.
시야가 어질어질한 와중에 조각상처럼 예를 차린 세드리크 태자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뚝심이를 보듬으며 녀석을 잠깐 노려보았다.
메인 남주라는 놈이 애들한테 여우 짓을 가르쳤나?
*
같은 시각, 뒤엠 후작령의 영주성.
“괜찮아. 큰오빠와 작은오빠가 지금쯤 폐하를 만나고 계실 거란다! 정말로······.”
앙투아네트는 테레즈를 품에 안고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를 냈다.
막내의 부드러운 머리칼이 손끝을 타고 흘러내렸다.
자신은 아이의 ‘하나뿐인’ 큰언니였다.
큰오빠가 이대로 결혼하지 않고 지내면, 근위대장으로 은퇴하고 싶어 하는 작은오빠 대신 후작가를 이을 사람 또한 자신이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굳건해야 했다. 누명이 억울하고 이별이 가슴 아파도, 쉽게 흔들려서는 안 됐다.
설령 후작가의 충성스런 기사단이, 끝내 황도 수비대와 충돌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다각, 다각, 다각!
-히히힝!
테레즈가 어깨를 움찔했다. 성을 떠난 군마의 울음이 창밖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자매와 함께 거실에 모인 베랑 가족도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안 베랑 남작 부인이 앙투아네트를 불렀다. 침착하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공녀, 이리 오세요. 같이 기도하시지요.”
“······.”
‘그게 소용이 있을까요? 주신께서 이대로 저희를 저버리시는 건 아닐는지요?’
그렇게 묻는 대신 앙투아네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어린 막냇동생을 생각해서라도 비관적인 마음은 먹지 않아야 했다.
이윽고 두 공녀와 세 가족이 한곳에 둘러앉았다.
파브리스 베랑 남작이 먼저 눈을 감고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주신이시여, 부디 신성한 변덕을 거두시어 결백한 당신의 자식들이 고통 받지 않게 하시고······.”
실내가 따뜻한데도 테레즈는 자꾸만 몸을 떨었다.
그를 발견한 소남작 엘로디가 벽로 옆 주전자에서 차를 따라 건넸다.
두 소녀의 눈길이 마주쳤다. 작은 입꼬리가 동시에 살며시 올라갔다.
앙투아네트는 엘로디의 어깨에 자신의 숄을 둘러 주었다.
문득 바보처럼 낙관적인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쳤다.
괜찮을 거라고.
우리가 이렇듯 서로를 믿고 기대며 간절히 소망하니, 내일은 분명 괜찮아질 거라고.
“앙투아네트.”
그때, 누군가 다급히 거실로 들어왔다. 기도가 끊기고 시선이 한데 모였다.
앙투아네트가 화드득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리엘?”
“성에 평민 손님이 찾아왔어. 한데 우리 손님들과 아는 사이라고 해.”
마리엘이 앙투아네트의 손을 잡으며 빠르게 말했다.
그녀는 뒤엠 후작가의 치유 신관, 공녀의 소꿉친구이자 종교적 반려였다.
앙투아네트가 고개를 기울이며 친구의 어깨 너머를 살폈다.
잔뜩 상기된 얼굴의 뱅자맹과 가나엘이 보였다. 그리고······.
“안녕하세요, 공녀님. 저는 프랑수아 후작님의 영지민 되는 로랑스 콩데라고 합니다. 쥘리에트 궁에서 일하는 주방장이기도 합지요.”
쉰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인이 그녀에게 절을 올렸다.
‘주방장 로랑스’의 이야기라면 앙투아네트도 건너 들어 알았다.
그녀는 예서 왕자님이 틈만 나면 칭송하는 인재이자, 다채로운 메뉴와 뛰어난 손맛으로 소문난 요리사였다.
하지만 그런 이가 큰오빠의 영지에 적을 두고 있는 줄은 몰랐다.
“반갑네. 이 시간에 성까진 무슨 일로······.”
“로랑스의 가족과 이웃이, 후작령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합니다.”
뱅자맹이 차분히 설명했다. 앙투아네트는 그를 한 번 보고, 로랑스를 돌아보았다.
중년인의 눈빛에 비장함이 깃들었다.
“공녀님, 영지민들도 지금 상황을 대강 압니다. 아주 자세히는 모르지만 깜깜하지도 않지요. 후작님 안 계시고, 예서 왕자님 오셨다 가셨고, 수비대는 턱밑까지 내려와 있고······. 저희도 알음알음으로 들었습니다. 황실 근위대라는 자가 영지로 넘어와서 칼 휘두르는 걸, 기사님들이 몸 바쳐 잡아주시는 것도 똑똑히 봤지요.”
로랑스가 치맛단을 쥐고 또박또박 말했다. 한쪽 손에는 고운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앙투아네트의 안색은 시시각각 어두워졌다.
두 오빠의 빈자리를 채우겠노라 안간힘을 썼는데, 결국은 이렇게 됐다.
힘없는 영지민들에게 불안이나 안겨주는 대귀족이 되고 말았다. 한없이 부끄러웠다.
“······유감이네. 허나 후작님의 기사단이 있으니 영지민의 안전이 위협받는 일은 없을,”
“그러니 저희도 나서겠습니다.”
“뭐?”
앙투아네트의 눈이 접시만 해졌다. 로랑스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얘기를 들어보니까요. 기사님들이 싸우고 싶어도 제대로 못 싸우는 게, 수비대가 폐하의 군대라 그렇다고 했습니다. 거기 맞서면 나라님께 대드는 꼴이 되어버린다고요.”
“전투는 이미 막을 수 없네. 수비대의 선공이 있었어. 위험하니 자네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집에 있게. 오후까지 통행 금지령을 내릴 것이야.”
“저희가 맨몸으로 같이 나가면 공격을 못 하겠지요.”
“······.”
숨이 턱 막혔다. 공녀는 마리엘의 손을 꼭 쥐었다.
“왜냐하면요, 공녀님. 폐하께서 그런 짓을 아주 싫어하시지 않습니까. 갑옷 입은 자들이 무기 없는 자를 공격하고, 윗사람이 아랫사람 괴롭히고. 그런 것만 보면 치를 떠시잖아요. 저도 황궁 일손이라 잘 압니다. 제아무리 수비대라도 백성에게 칼을 휘두르는 망나니짓은 못 하지요.”
말도 안 되는 논리였다.
수비대의 횡포를 막고자 무력한 민간인을 방패로 내세우는 건, 뒤엠 가문의 사전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앙투아네트가 즉각 고개를 저었다.
“허무맹랑한 소리 말고 돌아가게.”
“저희 콩데 가족만 해도 300명이어요. 딸 결혼식을 한다고 전국에서 모였거든요.”
“그런 경사가 있는데 어찌 목숨 걸 생각을 해.”
“후작님이 저희 같은 것 구한다고 목숨 거신 게 몇 번인데요, 공녀님.”
순간 울컥하고 목이 멨다. 영혼을 감싸는 마리엘의 온기가 느껴졌다.
“매년 마수 대토벌 때마다 싸우지도 못하는 저희를 초대해서 함께해 주시지요. 봄에는 가뭄 걱정, 여름이면 수해 걱정. 영지 귀퉁이까지 나오셔서 농지 둘러보시는 걸 저희가 다 알아요. 성 밖에서 엉뚱한 발명품 실험하시는 것도 오며 가며 늘 봅니다. 저희 주려고 만드시는데 어찌 모르겠습니까.”
“······.”
“공녀님. 왕자께선 어제 우리 딸 결혼한다고 예물을 해주셨어요. 포털 요금도 내주시고, 예식 비용까지 반절 넘게 대주셨습니다. 휴가도 몇 주나······. 이런 은혜를 살면서 어찌 다 갚을까요.”
로랑스의 목소리가 기어코 축축해졌다. 문장 끝에 파르르 한숨이 섞여들었다.
그녀는 쥐고 있던 부케를 앙투아네트의 품에 바쳤다.
“딸하고 사위는 요즘 살맛이 난답니다. 동네 이웃들 잘 챙겨주는 영주님 식구들도 참 좋고, 엄마 잘 챙겨주는 왕자님도 참 좋다고. 늘 이랬으면 좋겠다고요.”
“자네들.”
“하니 이곳을 함께 지키게 해주셔요. 저희가 원합니다.”
여인이 퉁퉁한 손등으로 뺨을 닦아냈다. 가나엘이 그녀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이번에는 테레즈가, 곁으로 다가와 큰언니의 목을 끌어안았다.
앙투아네트는 웃음과 울음을 동시에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