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253)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253화(253/920)
#253
내 눈에 사막이 들어가도 안 돼! (2)
스승님은 내 속을 꿰뚫어 보았다는 양 미소 지었다.
“걱정하지 마.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란다.”
‘신물처럼 까다로운 물건이 아니니까.’ 그녀가 조곤조곤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신물들은 대체로 고유의 의지가 있었고, 주군을 택할 때도 자의적인 판단을 거쳤다.
실례로 화성의 혜검은 황태자가 나타날 때까지 오랜 세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비렴의 방주인 뚝심이는 여전히 주인이 없었고, 크리스텔에게 흡수된 창해의 축복은 그녀와 물아일체로 거듭났다.
반면 추기경의 성장(聖杖)은 주신이 아니라 인간이 제작한 아이템이었다.
아무래도 그만한 주체성을 지니기는 어렵겠지.
“어떻게 하면 주인이 될 수 있습니까?”
“간단해. 나보다 강해지면.”
“아······.”
나는 절망의 한숨을 내쉬었다.
과제가 쉬울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현존하는 추기경급 신관 중에서도 신력으로 손에 꼽는다는 스승님이었다.
그녀보다 강력해진다니 너무 까마득한 이야기였다.
나는 에테르만 넘쳐나지, 신력은 아직 애송이 수준이었다.
인제 보니 30년이 아니라 50년은 걸릴 것 같았다.
한마디로 중립 지대엔 절대 안 보내주신다는 소리 아닌가.
“왕자님에겐 위대한 재능이 있어. 지레 겁먹지 말렴.”
그녀가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지팡이를 꼭 쥐고 추기경을 바라보았다.
“정말 고맙습니다, 전하. 하지만······. 저는 진심으로 제가 중립 지대에 가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왕세녀 전하가 그곳으로 향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를 만나고 싶다고 먼저 이야기했으니까요.”
“왕자님.”
“아시지 않습니까. 왕세녀는 이토록 큰 위험을 부담할 성정이 아닙니다. 일촉즉발의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낼 까닭이 없습니다. 신중하고······.”
뒷말은 자연히 흐려졌다. 나는 지금껏 엘리서를 딱 한 번 보았을 뿐이었다.
그녀가 좋은 누나이자 언니이며 성군의 자질을 품고 있다는 건 알지만, 거기까지였다.
극한의 상황에는 어떻게 대처하는지,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고 누구의 조언을 받는지 등은 전혀 몰랐다.
친서를 전했다는 국왕의 측근 로세하르더 궁정백 또한, 세간에 알려진 정보가 많지 않았다.
내가 아는 건 페네티안이 아니라 리에스테르 황실이었다.
게까지 생각이 닿자 명분이 더욱 약해지는 느낌이었다.
프레데리크 황제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니 더는 떼쓰기도 힘들었다.
제풀로 낯빛이 흐려졌다.
“······.”
“저런, 괜찮아.”
추기경이 곧장 나의 머리칼을 쓸어주었다. 그녀가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산트의 경우는 정해진 바가 없단다. 신원 보증인이 제국에서도 인정하는 가문인 건 맞지만, 상황이 이러니 쉬이 보내주긴 어려워. 조만간 바카리 군을 불러서 의견을 물을 거야.”
“바카리 군을요?”
“응. 그 애는 프레데리크의 자문 중 한 명이니까. 혹시 계시를 받았을까 해서.”
입이 헤 벌어졌다. 그러고 보니 모데스트 바카리가 있었다.
이틀에 한 번, 못해도 사흘에 한 번은 쥘리에트 궁에 빵을 먹으러 오는 청소년.
황제 직속 마법사 자문단 ‘플뢰르 드 리스’의 최연소 단장.
우리에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있는 스무 살.
<퇴사했더니 이계 공녀>를 내다보는 선지자.
나는 빠르게 질문을 꺼냈다.
“그럼 만약 단장이 괜찮다고 하면요? 산트에 관한 별다른 흉조가 없다고 하면,”
“보내줘야지. 혼자는 안 되겠지만 랑부예 자작가의 카라반이라면 믿을 수 있어.”
“대박.”
내 얼굴이 곧장 환하게 밝아졌다.
스승님은 곤란하다는 양 눈썹을 늘어뜨리더니, ‘황실 사람이 이렇게 표정이 적나라해선 안 된다’고 타이르셨다.
그러면서도 양손을 따뜻이 감싸주시는 걸 보면 그게 아주 싫진 않으신 모양이었다.
실낱같은 희망이 보이는 듯해 금세 기분이 나아졌다.
바카리 군이라면 무조건 믿을 수 있었다. 왜냐고?
*
“특별한 건 보이지 않습니다. 산트 로스 사제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사람입니다.”
무려 원작을 예견하시는 지고한 분께, 산트의 등장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단 말씀이다.
사제님은 무해하다!
“아자!”
나는 데미의 앞발을 흔들며 환성을 내질렀다.
물론 수업 참관 중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 안 되니 기쁘게 속삭이기만 했다.
성기사들이 올 때마다 크고 작은 보수를 거친 실내 연무장은, 이제 짱짱하다 못해 무슨 방공호 수준으로 튼튼해졌다.
레서판다는 상황을 모르면서도 무릎에서 ‘끼이, 끼이’ 하며 즐거워했다.
신이 난 우리를 보며 바카리 군이 묘한 낯을 했다. 나는 후다닥 표정을 갈무리했다.
“죄송합니다. 바카리 군을 이용하려던 건 아닙니다. 그저 산트가 중립 지대로 갈 일이 있다는데, 괜찮을지 걱정이 되어서 물었습니다.”
거짓말은 하나도 안 했다.
원작의 세드리크 태자와 크리스텔은 성기사가 아니기에, 산트 역시 본래는 제국에 파견될 운명이 아니었다.
말인즉 그가 갑자기 ‘주요 인물’이 되어 큰일에 휘말릴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
이러한 나의 이론을 바카리 선생님께 확인받아 무척 기뻤다.
위언은 못 하는 성격이니 황제에게도 같은 말을 고할 테고, 그러면 산트는 중립 지대로 갈 수 있겠지.
나를 빤히 보던 청소년이 고개를 휙 돌렸다.
마법 조명 아래 은빛 안경이 반짝거렸다.
“상관없습니다. 빵값을 한 것뿐입니다.”
“······.”
봤지! 이젠 ‘이용당하는 것이 저의 일입니다.’ 같은 말도 안 한다.
나는 수플레처럼 부푼 기분으로 뷔슈 드 노엘을 크게 잘라 예언가의 접시에 올렸다.
본래는 가나엘이 도와주는 일이지만, 소년은 지금 저쪽에서 애물단지들의 꽃수레를 밀어주느라 바빴다.
참관에 꼬마들이 오는 날은 항상 이렇게 정신이 없었다.
쥘리에트에 남은 뱅자맹은, 일손들과 함께 곳곳을 금색과 보라색으로 장식하는 중이었다.
블루베리와 금박을 얹은 통나무 모양 롤케이크에선, 커피 버터크림 대신 진한 초콜릿 향이 훅 끼쳤다.
대륙에서 주신 강림 대축일 기간에 먹는 특식이라고 했다.
청소년이 조심스레 포크를 들고 나를 기다렸다.
내가 입꼬리를 올리며 신호를 보냈다.
“많이 드십시오.”
“······잘 먹겠습니다.”
꼬맹이는 어른스러운 태도로 카페 크리스(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먼저 마시고는, 보드라운 케이크를 쿡 찔러 야무지게 입에 넣었다.
달콤한 머랭으로 만든 버섯 모양 장식도 꼭꼭 챙겼다.
언제나 깨끗하고 단정한 남빛 로브엔 부스러기 한 톨 흘리지 않았다.
처음 왔을 땐 몹시 불편해하는 것 같았는데 요즘은 충분히 먹고, 볕이 좋으면 30분 정도 쉬다 갔다.
보기만 해도 간식 배가 찰 만큼 흐뭇한 광경이었다.
그래도 계속 구경하는 건 예의가 아니니 가만히 시선을 돌렸다.
연무장 중앙에선 대련이 한창이었다.
-휘익!
-쿠당탕!
어이쿠! 충격에 나가떨어진 크리스텔이 구석에 처박혔다.
올려 묶은 분홍 머리칼이 마구 흘러내려 눈앞을 덮었다.
다 찢어진 크라바트가 걸레짝처럼 바닥을 나뒹굴었다.
나는 테이블 밖으로 다리를 빼고 언제든 뛰쳐나갈 준비를 했다.
태자가 어깨를 돌리며 자세를 바로잡고 있었다. 이내 주인공이 삐걱삐걱 몸을 일으켰다.
“아으, 저걸 그냥······.”
신음하는 그녀의 눈동자가 도깨비불처럼 번쩍거렸다.
‘저것’이 뭔지 물어봤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았다.
요한 경은 코치님처럼 신중하게 팔짱을 낀 채 둘의 기술을 지켜봤다.
지난주부터 2주 연속으로, 연무장에선 용병 신술(身術)을 이용한 싸움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엔 익숙지 않은지 단장이 어깨를 움츠렸다. 내가 씩 웃고는 소곤거렸다.
“오늘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잘 어울리죠, 두 분.”
그러자 청은색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했다.
바카리 군은 슬쩍 두 남녀의 눈치를 보더니, 티 나지 않게 고개를 까닥였다.
역시 뭘 좀 아는 사람. 제국의 인재.
“미래를 함께하실 분들이니, 보기에 조화롭고 아름다운 것이 당연합니다. 지금은 비록 서로에게 호전적이라 할지라도 운명적인 결속은 피할 수 없습니다.”
속이 뻥 뚫리네, 이거거든! 과장 좀 보태 눈물이 찔끔 날 것 같았다.
나는 몹시 기꺼운 심정으로 청소년의 접시에 과일 프리앙 세 개를 추가했다.
맘 같아선 시드르를 백 잔도 주고 싶지만, 꼬마가 근무 중이라 권하지 못했다.
데미가 불편한 듯 끙끙거렸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제가 둘 곁에서 멀어져야 가능한 미래라는 거죠. 접때 제대로 들었습니다.”
“······예.”
바카리 군이 시원찮게 긍정했다. 내가 싱글벙글 말을 이으려는데,
-콰아앙!
요란한 굉음이 귓전을 때렸다. 나는 화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휴, 대낮부터 또 뒹굴고 있네!
“으아, 크리스텔 경! 참으세요!”
산트가 발을 동동 구르며 ‘죽이시면 안 된다’고 외쳤다. 반대로 요한 경은 미동도 없었다.
텁석! 바닥에 깔린 태자가 얼음처럼 차가운 얼굴로 주인공의 멱살을 잡아 쥐었다.
나는 하마터면 소리 지를 뻔한 입을 잽싸게 틀어막았다.
둘은 서로의 낯이 초점도 맞지 않을 만큼 가까웠다.
크리스텔의 눈에서 시퍼런 악바리 불꽃이 튀었다. 그녀가 즉시 이마를 들이받았다.
-턱!
태자가 주먹으로 박치기를 막아냈다!
“아오.”
-콱!
그러자 화를 이기지 못한 크리스텔이 코밑의 숯검정 머리칼을 손에 쥐었다.
사내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팼다. 미친, 머리끄덩이는 안 된다!
“크리스텔!”
로판 남주의 모근은 소중하다고! 나는 재깍 데미를 내려놓고 전력으로 질주했다.
‘끼아!’ 신수가 기쁘게 울며 뒤꽁무니를 쫓았다.
요한 경이 그제야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움직였고, 그새를 못 참은 우리의 여주님은 날쌔게 한쪽 무릎을 세웠다.
산트가 기겁해서 숨을 들이켰다. 일순 아득한 공포로 머릿속이 써늘해졌다.
어디, 어딜 걷어차시려고요!
“살려 주십쇼!”
-우당탕!
나는 절박하게 외치며 온몸을 던져 그녀의 다리를 붙들었다.
헉, 허억. 한동안 누구의 것인지 모를 거친 숨소리만이 우리 사이를 가득 메웠다.
실눈 사이로 태자의 장갑 낀 손이 보였다.
그는 분위기가 풀린 틈을 놓치지 않고 크리스텔의 몸통을 거칠게 움켰다.
얇은 허리가 커다란 손바닥에 거의 가려졌다. 뺨이 절로 화끈 달아올랐다!
녀석은 그대로 크리스텔을 들어 올리다 나와 눈이 마주쳤고,
“······.”
-콰당!
“으악!”
대충 그녀를 옆으로 밀치는 선에서 동작을 끝냈다.
크리스텔의 정강이를 끌어안고 있던 나는 그녀와 함께 데구루루 굴렀다.
아이고, 허리야······.
“아우, 등짝 아파.”
짐짝처럼 나동그라진 크리스텔이 온몸을 뒤틀었다.
내가 걱정스레 바라보자, 그녀는 가슴이 철렁할 만치 울상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에테르가 필요한가 싶어 재빨리 팔꿈치를 잡아주었다. 어째 뒤통수가 뜨끈뜨끈했다.
으음, 한마디 하라는 뜻인가.
“크리스텔······. 조금 전엔 과하셨습니다.”
이건 진짜다. 저쪽 테이블에서 바카리 군도 경악하고 있었다.
“그치만 왕자님, 태자 전하께서 먼저 제 옷을 찢어발기셨는데요. 요기 채여서 아픕니다. 조기도.”
크리스텔이 몹시 가녀린 목소리로 호소했다.
솔직히 옷이 그 정도로 상하진 않았지만, 새끼 비글처럼 순한 눈빛을 보니 절로 마음이 약해졌다.
나는 도리 없이 그녀 옆에 주저앉아 치유 서클을 열었다.
뒤편에서 요한 경이 ‘전하께선 괜찮으신가요?’ 하고 물었다.
친절한 성기사에게 고맙다고, 나는 멀쩡하다고 답해주었다. 태자 녀석은 여태 묵묵했다.
-사아아아······
“멍든 곳이 있기는 한데, ‘축복’의 치유력이 탁월하니 제가 손볼 필요는 없겠습니다. 크리스텔의 힘은 쓸수록 강해지니까요. 단련하면 좋겠죠.”
“네, 그리하겠습니다. 저건 뭔가요? 아까 들어올 때 가져오신 상자 말입니다.”
금세 멀쩡해진 주인공이 초롱초롱 물었다.
하늘빛 에테르 알갱이와 눈망울을 구별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피식하며 대답했다.
“오렐리 전하께서 하사하신 물건입니다. 대주교 시절에 쓰시던 성장을 저에게 선물해 주셨어요.”
“우와!”
“경이롭네요. 자식에게나 물려주는 것이라고 들었는데요.”
헤릿 아버지가 드물게 놀란 투로 말했다.
그런 관습이 있는 줄은 몰랐기에 나도 속으로만 식겁하고 웃어넘겼다.
그의 옆에 고요히 선 태자는 아직 시선이 뜨거웠다.
다비드가 차가운 물수건을 가져다주었는데도 전투의 열기가 가라앉지 않은 듯했다.
나는 크리스텔을 마저 타이르기로 했다.
“아무튼······. 서로 급소는 피해서 연습해 주십시오. 태자 전하께선 후사를 보셔야 하고 크리스텔도, 어. 사람 앞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그러자 주인공이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말실수를 했나 싶어 철렁했다.
다음 문장은 자못 성급하게 튀어나왔다.
“물론 아이를 원치 않으셔도 존중합니다. 하지만 혹시나 미래에 마음이 바뀌면······. 음. 어느 쪽이든 두 분 다 건강하시면 좋겠죠. 태자님도 곧 혼인 상대를 찾으신다고 하니,”
“네에?!”
크리스텔의 목소리가 커졌다. 나는 뒤늦게 입을 합 다물었다.
시선이 마주친 다비드는 어째 예상했다는 반응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저분이 새어나가지 않게 해달라고 했는데.
친구들이랑 속닥속닥하겠다고 결심하긴 했지만 절대 이런 식은 아니었다!
“크리스텔, 들어보세요. 제 말은······.”
“으하하하! 결혼한대! 악!”
‘그럼 이제 일정 못 빼애해해핵.’ 주인공이 구겨진 팥빵 같은 표정으로 배를 잡고 쓰러졌다.
데미가 콩콩 뛰어 그녀의 품에 안겼고, 요한 경이 웃음 섞인 한숨을 내쉬었고, 코앞의 산트와 저멀리 가나엘은 나란히 기겁한 얼굴이었다.
흐름이 좀 이상한데······. 나는 당황해서 주섬주섬 태자 쪽으로 서클을 확장했다.
이놈은 와중에 치유 에테르도 잘 먹네.
-달칵!
“무슨 일입니까? 크리스텔 경이 울고 있네요.”
설상가상으로, 때마침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엘리자베트 경이었다.
입가엔 벌써 실소가 잔뜩 맺혀 있었다. 아냐, 내가 상상한 전개는 이게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