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273)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273화(273/920)
#273
랑부예 카라반과 침입자들 (3)
뭐, 그렇다고 우리한테 곧장 별일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레아에겐 천만다행이었다!
-끼이이잉
“쉬이, 괜찮아. 형 있으니까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
‘아이, 우리 레아 용감하다.’ 나는 레서판다를 어허둥둥 어르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데미와 페리도 녀석을 꼭 안아주었다. 사령들의 울부짖음이 희미하게 들렸다.
-우우우······
-아아아아······!
언뜻 붉은 도깨비불 같았다.
사람의 형상을 띤 다리 없는 그림자가, 방황하듯 유적 근처를 맴돌고 있었다.
사막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춥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가 멀어 얼굴이나 차림새 같은 건 알 수 없었지만, 진짜로 오싹했다.
조안은 이제 아주 우거지상이었다.
재밌어 죽겠다는 건지 무서워 죽겠다는 건지 헷갈렸다.
크리스텔은 명백히 전자였고, 산트는 후자였다.
우리는 순식간에 홍합처럼 다닥다닥 붙어 앉았다.
황태자는 먹잇감을 노리는 야수처럼 홀로 날카로운 표정이었다.
“근데 이쪽으로는 안 오네요. 지박령 같은 건가요?”
“정확해요.”
주인공의 물음에 요한 경이 답했다. 이어지는 설명도 귀에 쏙쏙 박혔다.
“우니오의 사령들은 오직 유적에서만 발견돼요. 그곳에 발이 묶여 떠나지 못하는 거죠. 자의로 머무른다는 해석도 있지만요.”
“그럼 사악한 영혼이라고 불리는 건······.”
“도굴꾼들이 붙인 악명이에요. 저들은 유적에 침입하는 인간을 괴롭히니까요. 평범한 주민에겐 아무런 해가 되지 않아요.”
“후우.”
나는 불길하게 흔들리는 유령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소름 끼치고 겁이 나는 건 여전했지만, 저런 데서만 나타난다니 한편으론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면 사람 사는 마을로는 안 오겠구나. 카라반을 덮칠 일도 없을 테고.
우리는 나쁜 짓 안 하니까.
······거기까지 생각하니 문득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요한 경.”
“네, 전하.”
“신관의 힘으로는 사령을 쫓을 수 없나요? 아니, 꼭 쫓는다기보다······. 안식에 들도록 도움을 주긴 어렵습니까?”
“그게 묘해요.”
요한 경이 고개를 기울였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모였다.
와중에도 용기를 낸 레아가 떨리는 산트의 손등을 폭 감싸주었다.
“죽은 이의 영혼일 뿐 마수가 아니니, 물과 불로는 퇴치하지 못해요. 거기까지는 이해해도 에테르조차 영향이 없는 건 기이하죠. 교황청에서 오랫동안 조사했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어요.”
“허어. 세상엔 별별 게 다 있구나, 진짜.”
조안이 질색팔색을 했다.
그러면서도 목탄과 도화지를 꺼내는 걸 보면, 이런 상황에서 영감을 얻기는 한 모양이었다.
한마디로 저들은 세상의 어떤 힘을 써도 지울 수 없는 존재였다.
신관의 에테르, 마법사의 마나, 전사의 무기가 전부 통하지 않는 원혼이었다.
어쩌다 저렇게 한이 맺힌 걸까.
어쩌다 저기서 천 년이란 시간을 보내게 됐을까.
“아이고. 우리 티테 찰떡 아이스 됐네.”
-아우
그때, 크리스텔이 후다닥 일어나 블라인드 줄을 찾았다.
인제 보니 그녀가 돌보던 하프물범도 겁을 먹고 차게 식어 있었다.
나는 꼬마를 크레이프처럼 둘둘 말아 황급히 세드리크 태자에게 내밀었다.
고상히 앉아 있던 그가 ‘어쩌라고’ 하는 반응을 보였지만, 개의치 않고 품에 넣어 주었다.
설마 가슴에 눌려서 애가 질식하진 않겠지······. 이런 생각 하지 말자.
“감히 누구에게,”
-애우으
“태자님이 따뜻하시니까요. 아기 좀 부탁드립니다.”
내가 씩 웃고는 녀석의 어깨를 버튼처럼 두드렸다.
태자가 따끈따끈한 보온을 시작합니다.
“왕자님, 와서 저기 좀 보십시오. 노을이 끝내줍니다!”
창문을 가리던 크리스텔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불렀다.
사령이 싫은 조안도 꽃노을은 놓치고 싶지 않은지, 손으로 옆얼굴을 가린 채 바깥을 보고 있었다.
산트가 꿈틀꿈틀 움직여 자리를 내주었다.
나는 후딱 침상을 내려와 애물단지들과 창틀에 매달렸다.
잠깐 비틀거렸더니 뒤에서 태자가 혀를 찼다. 내가 형인데.
“우와······.”
이어 대륙에서 가장 멋지고 낭만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나는 넋을 잃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평선의 진한 금빛으로 시작해 주황색, 빨간색, 자주색으로 번진 천궁 끝에 진보랏빛 밤 자락이 걸렸다.
다문다문한 청회색 구름은 요람의 흔들개비를 닮아 있었다.
이것 보라고, 내게는 이렇게나 많은 빛깔이 있다고 하늘이 우리에게 자랑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일하다 몰래 접속한 여행사 홈페이지에서나 보던 장면이었다.
자연 풍광에 막 감동하는 성격은 아닌데 이상하게 자꾸 입꼬리가 올라갔다.
멀리서 들려오는 유령들의 곡소리가 조금 아쉬웠고, 은서와 형이 곁에 없다는 점도 섭섭했다.
하지만 이렇게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도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수레 뒤편을 보기 위해 이마를 꾹 눌렀다.
데미도 뱃살이 납작해질 만큼 몸통을 기댔다.
-다그닥, 다그닥······
-끄르르르
석양을 짊어진 기나긴 행렬이, 부지런히 발굽을 놀리고 있었다.
무한한 모래가 바람 앞에 파도처럼 움직였다.
하늘거리는 천으로 온몸을 보호한 일손들은 꼭 명화의 일부처럼 보였다.
나는 입을 헤 벌렸다. 빙의하고 나서 이런 소리 맨날 했는데, 오늘 또 해야지.
“진짜 신기하다. 멋있어.”
-끼이이······
페리가 헤벌레 동의했다. 그때 조안이 불쑥 목청을 높였다.
“어! 저기 우리 숙소 같은데? 카라반 귀싸대기인지 뭔지 그거 아냐?!”
“맞는 것 같습니다, 남작님!”
산트가 신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는 우르르 다시 창문 앞쪽으로 몰려갔다.
요한 경이 낮게 웃었다.
카라반사라이가 어디 가는 것도 아닌데, 애물단지들과 나는 멋진 경치를 놓칠세라 몸을 꼭 붙였다.
“여기서 봐도 아름답네요. 창이 신비롭게 생겼습니다.”
작게 감탄하자 크리스텔의 뺨이 뽀득뽀득 위아래로 움직였다.
아직 한참을 더 가야 하지만, 분명 땅끝에 아주 크고 이국적인 건물이 서 있었다.
나는 슬쩍 태자를 돌아보았다.
침상에 앉은 녀석은, 티테에게 불구슬을 보여주느라 바빠 우리 쪽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웃음이 터질 듯해 입술을 깨물었다.
*
해가 넘어간 사막은 제법 쌀쌀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와 모텔을 섞어서 사막에다 만들면, 대충 이런 모습일까.
모텔은 한 번도 안 가봤지만.
“어서 오십시오, 랑부예 자작님. 저희 카라반사라이를 다시 찾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랜만일세, 모니카. 신수가 훤하구먼. 신세 지다 가겠네.”
“영광입니다. 자작 부인,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자네들이 고생이지. 우리 아이들 이번에도 잘 부탁함세.”
랑부예 자작 부부가 숙박소 지배인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 요한 경은 엉뚱한 곳으로 뛰어가려는 조안을 세 번이나 잡아서 데려왔다.
애물단지들은 만일에 대비해 수레에서 내리지 않고 있었다.
교황청 소속이었던 산트는 상대적으로 침착했지만, 크리스텔과 나는 건축물과 사람을 구경한답시고 목이 아플 때까지 고개를 움직였다.
태자 혼자 태도가 달랐다. 이런 곳은 처음일 텐데도 그는 현지인처럼 차분했다.
정확히는 중립 지대의 황족 같았다. 일관된 놈.
-♬♪♩······!
“와하하하!”
어디선가 음악과 웃음이 새어 나왔다. 딸랑딸랑, 방울 소리도 섞여 들리는 듯했다.
향기, 소음, 빛깔. 피부에 닿는 모든 게 색달라서 나는 피로도 잊을 만큼 들떴다.
머리에 쓴 자줏빛 베일 너머로 열심히 곳곳을 눈에 담았다.
“실은 대축일 기간에 오실 줄 알았습니다.”
“오, 여정이 조금 늦었네. 우리 일이 늘 그렇지 않은가.”
“그렇지요, 부인. 무사히 닿으신 것만으로 주신의 은총······.”
우리의 첫 번째 카라반사라이 ‘차움’은, 가운데가 뻥 뚫린 도넛 모양의 삼 층짜리 대규모 숙박소였다.
다른 카라반사라이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여기 구조는 그랬다.
간간이 쨍한 하늘색을 칠한 황톳빛 건물은 언뜻 봐도 수백 년 묵은 것 같았다.
문이 꼭 필요한 장소가 아니면 통로 대부분이 시원하게 개방되어 있었고, 입구는 전부 꼭대기가 뾰족한 아치형이었다.
오래된 타일이 박힌 안뜰엔 터키석으로 장식한 분수와 화분도 자리했다.
1층 회랑에는 로비와 식당, 마구간, 전당포, 유실물 보관소 등이 즐비했다.
터번을 쓴 사람들이 바쁘게 이곳저곳을 걸어 다녔다.
유독 차림새가 다른 병사도 몇 명 보였다. 교황청 병력이겠지?
나름 진지한 사명을 띠고 온 건데, 유원지처럼 즐거워서 큰일이다.
“그래도 이맘때 오신 덕에 빈방이 많으니, 여유 있게 묵으실 수 있겠습니다.”
“허허허. 그렇지, 다 장단이 있어.”
“한데 동행하신 분들은······.”
지배인 모니카가 우리를 조심스레 살폈다.
다들 중립 지대풍 옷으로 갈아입었는데, 자작 가족과 함께 다니고 있으니 관계가 궁금할 법했다.
“무용수인지요?”
“······.”
잠깐, 내 얘기야? 설마 나보고 무용수냐고 물어보신 거야? 보석 달린 베일 썼다고?
“크흐흐흑.”
“이쪽은 내 딸 크리스텔이네. 옆은 아이 친구들이고.”
크리스텔이 미간을 잡고 버티는 동안, 이자벨이 부드러운 미소로 정정해주었다.
조안 혼자 상황 파악을 못 해서 ‘왕자님, 춤으로도 벌어먹어?’ 하고 속닥거렸다.
모니카는 난감한 표정으로 내게 사과했다.
“미처 알아뵙지 못하고 실례를 범했습니다, 공자님. 친우분들과 사막 여행을 오셨군요.”
“예에, 괜찮습니다.”
“모쪼록 주신의 눈길 아래 좋은 시간 보내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귀한 경험이 될 겁니다.”
그녀는 서글서글하게 덕담을 건네더니, 능숙한 움직임으로 우리의 숙박부 작성을 도왔다.
그동안 카라반사라이 직원이 잔짐을 내려 방으로 옮겨 주었다.
반드시 본명을 쓸 필요는 없다고 해서, 태자가 머리글자만 적는 것을 보고 나도 ‘J. V.’라고 적었다.
요한 경은 ‘요한 G.’, 산트는 ‘산트 R.’이었다.
우리 중 누구보다 당당한 조안은 ‘조안 T. 아스’ 옆에 멋들어진 서명까지 남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크리스텔’.
그게 다였다.
숙박부를 받아든 이자벨의 낯빛에 깊은 슬픔이 스쳤다.
나는 무슨 말이든 해보려 벙긋대다가, 결국 아무 소리도 꺼내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깃펜과 장부는 그렇게 마당을 한 바퀴 돌았다.
우리가 배정받은 방으로 향할 때까지도, 크리스텔의 태도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
왜 성을 적지 않았을까. 그냥 짧게 가려고? 아니면 사르네즈를 쓰기 싫어서?
그러면 어머니의 성을 써도 괜찮았을 텐데.
아직 스스로 랑부예 자작가의 식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
하지만······.
-툭!
“음.”
나는 조그맣게 신음하며 잠에서 깼다.
새벽까지 잠을 설쳤더니 눈꺼풀이 빨리 올라가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달뜬 데다 잠자리가 낯설었고, 결정적으로 크리스텔의 행동이 내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상처받은 듯한 이자벨의 표정도 쉬이 잊히지 않았다.
내가 뒤척거리자 발치에서 몸을 말고 있던 레서판다들이 느릿느릿 위로 올라왔다.
참고로 티테는 건넛방에서 태자 녀석과 동침했다.
하프물범은 최근까지 그를 일방적으로 조금 무서워했는데, 어제를 기점으로 꽤 가까워진 듯싶었다.
-끼이
“어, 몇 시야?”
-끼싯
“여덟 시? 흐흐흐.”
내가 내뱉고도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샜다.
그대로 눈을 감고 있으니 꼬마들이 꼬물꼬물 품을 파고들었다.
나는 애물단지 셋을 쓰다듬으며 한밤의 고민을 이어갔다.
일단, 직접 가서 이유를 묻긴 어려웠다.
나는 이제 크리스텔과 내가 친하다는 사실을 선선히 인정했다.
원죄와 같은 비밀을 제외하면 어지간한 이야기는 전부 터놓는 사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민감한 주제였다.
아니, 어쩌면 별일도 아닌 문제를 내가 민감하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날의 재판이 겨우 두 달 지났고, 시몽 드 사르네즈의 이야기가 나오면 모두가 조심하는 판에······.
-툭!
“어이, 꼬마야! 손님방에 무슨 짓을 하는 게냐!”
-우당퉁탕!
으음, 숙면은 글렀다. 반쯤 눈을 뜬 채 부스럭부스럭 자리에서 일어났다.
답도 없는 고민을 계속하기보다는, 저 소음의 정체부터 파악하는 게 생산적이었다.
나는 협탁의 비단 둥지에서 쉬고 있는 뚝심이를 한 번 쓸어주고, 시계가 정말로 8시 3분을 가리키고 있는 것에 경악한 뒤(“데미, 너 인간 말 배웠어?” “끼응.” “아니지. 내가 신수 언어를 깨친 건가?”), 뒷머리를 손으로 대충 빗고 거실로 나왔다.
숙소는 스위트룸 형태였다.
남자 멤버 넷이 한방을 썼고 이자벨과 여자 멤버 둘이 한데 묵었다.
자작 부부는 당연히 따로 방을 잡았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어디서 툭툭······.
-끼우!
우리의 행동대장께서 오늘도 한 건 하셨다!
데미는 발딱 일어나서 몸집을 부풀리더니, 객실 문틈에 끼어 있는 종이를 앞발로 척 짚었다.
목표 과일의 숨통을 단번에 끊는 것은 레서판다의 잔혹한 습성 중 하나였다.
나도 많이 당했다.
“잘했어, 데미. 누가 그걸 두고 가느라 요란했나 보다.”
-꾸릇
“고마워.”
나는 모래 묻은 종이를 살살 집어 들었다. 이내 절박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글씨는 무척 크고 비뚤배뚤했다.
‘열 살 동생 인디아를 찾습니다.
대축일 기간에 차움 유적지로 들어갔다가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제 동생은 도굴꾼이 아닙니다. 도둑도 아닙니다.
보물을 직접 보고 싶어서 어른들을 따라간 훌륭한 고고학자입니다.
인디아를 보신 분은 차움 카라반사라이 전당포에서 신학자 매리언을 찾아주세요.
생김새: 키는 작은데 머리가 길다. 오른쪽 눈 밑에 빨간 점이······.’
세상에. 이렇게 위험천만한 허허벌판에서 동생을 잃어버렸나 보다.
아무래도 매리언이라는 아이가 객실마다 이걸 직접 넣고 다닌 듯싶었다.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또 일을 꾸미는군.”
“억!”
나는 식겁하며 가슴께를 움켜쥐었다.
이어 질끈 감았던 눈을 부릅뜨고 천천히 뒤를 돌았다.
이놈의 자식, 날 심장 마비로 죽이려고 자꾸 기척 없이 등장하는 게 틀림없다.
메인 남주가 사령보다 무섭습니다. 로판 독자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