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299)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299화(299/920)
#299
미로아(迷路兒) (2)
그래서, 미로 앞은 난리가 났다.
“왕자님, 가가방 잘 챙겨오셨죠?”
“그럼요. 아마 사용은 안 되겠지만 성석 구슬도 있습니다. 여기 물, 약, 간식, 손수건······.”
친구들이 황태자와 나를 에워싼 채 짐을 점검하고 있었다.
클레망 자작은 급한 대로 내 가방에 금화를 넣어주셨다.
안에서 돈 쓸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생각해주시는 마음이 감사해 웃음이 났다.
로날트 뤼퍼르트 총대리는 정물처럼 서서 우리를 기다렸다.
듣자니 그는 마지막으로 미궁에 들 것이라고 했다.
나는 스승님의 성장을 쥐고, 품에는 잠든 뚝심이를 챙겼다.
굴뚝새는 여전히 따뜻하게 숨 쉬고 있었다.
“뚝심인 그냥 두고 갈까요?”
물론 결심은 쉽지 않았다.
아무리 녀석이 신물이래도, 의견조차 구하지 않고 데려가는 건 마음에 걸렸다.
내가 망설이자 마리즈 자작 부인이 양손을 꼭 잡아주셨다.
“데리고 가십시오. 하난 폐하의 말씀대로라면 신물께서 큰 뜻이 있으신 듯합니다. 설령 도움은 못 되더라도, 외로운 길에 의지는 되겠지요.”
“······예.”
나는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무슨 일이 있으면 내가 꼭 지켜줄 거다.
안에선 에테르를 쓸 수 없다니 뾰족한 방법은 모르겠지만, 반드시 그렇게 할 거다.
“남은 분들을 잘 부탁드립니다, 요한 경. 이따 뵙겠습니다.”
“네. 함께 들어가지 못하는 게 아쉽네요.”
요한 경이 상냥하게 답했다.
어째 다 큰 어른이 투정 부리는 것처럼 들려서 재미있었다.
하난은 ‘무슨 작별이 이렇게 유난스럽고 기냐.’며 투덜거렸다.
나는 헝겊 인형과 악수하고, 데미와 페리와 레아를 깊게 안아주고, 티테의 턱받이를 고쳐 매주었다.
조안과 산트와도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크리스텔.”
“네, 왕자님.”
-어휴······.
주머니 속 국왕이 지긋지긋하다는 양 한숨지었다.
우리는 결국 별말을 나누지 않고 파안했다.
이자벨은 세드리크 태자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곧 사내가 먼저 돌아섰다.
총대리는 인공지능처럼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세계수의 뿌리에 살갗을 대시면, 미궁이 팔을 벌릴 것입니다.”
“······.”
설명을 들은 태자가 한쪽 장갑을 벗었다.
나는 뒤늦게 떠오르는 것이 있어 후다닥 그에게 달려갔다. 야, 잠시만!
“태자님!”
-하이고, 나는 안 보련다······.
뒤에서 하난의 탄식이 들렸다. 태자 녀석은 묵묵히 나를 내려다보았다.
재빨리 녀석의 팔꿈치에 손을 가져다 대고, 에테르를 쑥쑥 밀어 넣어주었다.
그가 기품 있게 고개를 기울였다. 잘 받아먹으면서 반응은 또 왜 그러냐.
“안에서 못 쓴다고 해도, 그릇 안정에는 도움이 되잖습니까.”
“······.”
“천만의 말씀입니다. 발밑 조심하시고요.”
씩 웃었더니 놈이 살포시 미간을 찡그렸다.
요즘은 상태가 좋아서 나를 적극적으로 찾는 일이 줄긴 했다.
기운이 넘치는지 운동 시간도 부쩍 늘었다. 오늘도 먼저 팔을 뗀 건 태자였다.
그는 눈인사 한번 없이 몸을 돌려 미궁으로 나아갔다.
커다란 손이 새카만 나무뿌리를 툭 건드렸다. 그러자······.
-우드드득! 빠지직!
-와지끈!
“와······.”
줄기는 거대한 문어처럼 꿈틀거리더니, 순식간에 잔가지를 거두고 아가리를 쩌억 벌렸다.
이렇게 보니 하얀 벽에 끔찍한 종양이 자란 모양새였다.
얼핏 드러난 미궁 내부는 온통 암흑이었다. 어떠한 소리나 빛도 없는 공간 같았다.
‘아웅!’ 겁먹은 신수들이 산트와 자작 부부의 품에 답삭 안겼다.
-뚜벅, 뚜벅, 뚜벅······
사내는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러더니 휙! 몸을 날려 미로 속으로 사라졌다.
세계수는 즉시 반응했다.
-쩌저저적!
-오지끈!
숯 같은 뿌리가 삽시에 입구를 봉인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판단하고 행동하는 게 어쩐지 오스스했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미리 말을 맞춘 대로, 데미가 꼬리에서 밧줄 굵기의 덩굴을 쭉쭉 키워주었다.
미로 안에선 에테르 사용이 불가하지만, 밖에서 쓰는 건 당연히 상관없다고 했다.
끊어지지만 않는다면 이게 나의 길잡이가 되어 줄 터였다.
교황청 병사들이 우리의 잔머리에 혀를 내둘렀다.
나는 플라스틱처럼 차가운 세계수를 톡 건드렸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잘 해결되길 빌어주십시오.”
“모두 잘될 거랍니다. 너무 심려 마세요.”
-드디어 떠나는군. 올 때는 이것보다 빠르겠지?
“힘내십시오, 왕자님!”
“할 말 전부 다 하고 와! 약속도 꼭 받아내고!”
이자벨과 친구들이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하얀 지느러미발과 까만 앞발도 팔랑댔다. 입꼬리가 절로 꼼질거렸다.
사진으로 찍어 간직하고 싶은 장면이었다.
우두두둑! 어느덧 내 앞엔 시커먼 구멍이 나타나 있었다.
“기다릴게요, 왕자님.”
끝으로 눈이 마주친 사람은 크리스텔이었다. 나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했다.
가가방을 한 번 두드리고,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잡고, 왼손엔 넝쿨을 쥐고, 품안의 뚝심이를 생각하고······.
이번 여정으로 얻을 수 있는 평화와 단서를 떠올렸다.
그리고 미지의 공간으로 뛰어들었다.
*
덥다.
“어후. 끝도 없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회중시계를 하나 빌려올 걸 그랬나.
“헉, 허억······. 후우······.”
나는 잠깐 자리에 서서 호흡을 골랐다.
수통을 꺼내 물을 마시고, 얇은 가운은 벗어서 가가방에 개 넣었다.
태자와 쉽게 합류할 수 있으리란 기대는 안 했지만, 놈은 정말 흔적조차 없었다.
입장객도 가려서 받는 미로이니 아마 모두에게 다른 길을 안내하고 있는 거겠지.
녀석은 별일 없을 거다. 나는 혼자서 머리를 주억이며 다시 발을 놀렸다.
몇 차례 막다른 골목을 만나긴 했는데 아직까진 괜찮았다.
데미의 넝쿨 덕분에 매번 갈림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훅. 후욱.”
미궁 ‘라비린투스’는 동굴처럼 서늘했고, 실제로 미로보단 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부를 뒤덮은 세계수의 잔뿌리가 전체적으로 둥근 형태를 만들어 낸 결과였다.
다만 석회동처럼 기하학적인 종유석이나 석순이 존재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크지도 않아서, 높이는 아파트 1층 수준에 너비는 친구 원룸만 했다.
문제는 이놈의 껌정 나뭇가지였다.
-툭!
“살살. 정예서, 살살.”
세계수는 미궁 곳곳에 굵다란 줄기를 내렸고, 때로는 아주 그럴듯한 나무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우람한 기둥을 피하느라 몸을 구긴 적도 여러 번이었다.
바닥은 먹물처럼 꺼먼 사득다리로 덮여 울퉁불퉁하고 험했다.
아까 된통 크게 넘어진 후로는 각별히 조심하는 중이었다.
경사진 구간도 많아서 트레킹 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것 땜에 힘드네, 이것 땜에.”
-나 때문에 힘든 게 아니고?
내가 중얼거리자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 캐물었다. 나는 피식하며 옆을 돌아보았다.
물론, 미궁의 시험도 시험대로 치르고 있었다. 한두 시간은 됐다.
“그쪽은 진짜도 아닌데 왜 힘들겠어요.”
그러자 ‘수호령’이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말이 좋아 영(靈)이지 상대는 그냥 산 사람 같았다.
차움 유적의 유령들처럼 반투명하지 않았고, 둥둥 떠다니지도 않았다.
발소리나 숨소리 역시 진짜였다. 시선을 무시하자 중년인은 대놓고 끙끙거렸다.
대충 예상은 했다.
능력이 아닌 그릇을 들여다보는 시험이라면, 정신 고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으니까.
소설뿐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에도 자주 등장하는 클리셰 아니던가.
-네가 네 형이랑 짜고 엄마 요양 병원에 밀어 넣었잖아! 그럼 힘들어야지!
“······.”
나는 버릇처럼 미소를 만들어 냈다. 그러고는 말없이 앞만 보고 걸었다.
엄마로 변신한 수호령은 포기하지 않고 나쁜 말을 쏟아냈다.
말투, 몸짓, 표정, 음색.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엄마와 똑같아서 신기했다.
영혼을 살핀다는 말이 진짜였구나.
귀퉁이에 밀어 두고, 암막으로 덮은 부분까지 전부 들추는 걸 보면.
-미안하지도 않아? 내가 너희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런 짓을 하니? 배은망덕하다, 진짜. 배은망덕해!
“······.”
악쓰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너희가 엄마 가둔 거야! 엄마는 은서 대학 입학식, 졸업식 다 보고 싶었는데! 너희가 날 집에서 쫓아낸 거라고. 엄마 말 들어?
“······.”
-짐승도 안 이래, 정예서! 짐승도 부모한테 이런 짓은 안 해! 이게 이제 울지도 않네!? 야!
“저기.”
내가 멈춰 섰다. 수호령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드디어 자신의 괴롭힘이 통했다고 여기는 눈치였다.
나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우리 엄마가 그런 식으로 말한 건······. 입원하시기 직전이에요. 많이 아프실 때요.”
-너······.
“그래서 솔직히 큰 타격이 없어요. 그즈음엔 어느 정도 단련된 상태였거든요. 저희 셋 다요.”
-······.
“차라리 건강하실 때 엄마 모습이었으면 더 효과적이었을 것 같네요. 아니면 은서도 괜찮겠습니다.”
그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수호령은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수건을 챙기고, 지팡이를 짚으며 다시 전진했다.
사아아아······. 뒤편에서 무언가 사라지는 듯한 효과음이 들렸으나 돌아보진 않았다.
코끝에 독한 잉크 냄새가 맴돌았다.
잠깐, 잉크?
-화아아아······!
「역시 주신의 의지를 이어받으신 분은 다르네요.」
“헉!”
나는 깜짝 놀라 한 발짝 물러났다.
수호령이 처음 눈앞에 나타났을 때만큼이나 식겁했다. 허공에 웬 글씨가······.
-휘우우우!
순백의 윤곽을 입은 칠흑의 글자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찰나 전신에 소름이 끼치고 뒷골이 아찔해졌다.
저건 손글씨가 아니라, 웹 페이지나 인쇄용 폰트였다.
충격받은 입술이 금붕어처럼 뻐끔뻐끔했다. 여기는, 여기는 정말로―
「하기야, 우리가 당신을 시험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겠죠.」
“······.”
「경애하는 존재여.」
나는 바들거리는 양손을 꾹 쥐었다.
이어 낡은 지팡이를 보며 스승님을 생각했고, 단단한 녹색 넝쿨을 보며 데미를 떠올렸다.
심장께에선 뚝심이의 작은 온기가 느껴졌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뜰 무렵엔, 방주의 안내자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세계는 이미 그대를 의지하고 있습니다.
“나를······.”
침착하게 짚어 보자. 제발.
지금 코앞에 나타난 저건, 아마 수호령의 또 다른 형태일 터였다.
나의 자격을 판단하고자 하는 일이니 무섭게 생각할 건 없었다.
문제는 나를 부르는 상대의 호칭이었다. ‘주신의 의지를 이어받으신 분’이라고?
나는 주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그녀가 무엇을 바라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걸 계승할 수 있지?
‘세계가 나를 의지한다’는 까닭도 그쪽이겠지만(설마 저것보다 더한 이유가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이번 단서는 진심으로 혼란스러웠다.
나는 퇴계공을 읽어본 적도 없는 빙의자라······.
“아!”
날벼락 같은 깨달음이 정수리를 때리고 온몸으로 짜릿짜릿 퍼져나갔다.
턱이 저절로 쩍 벌어졌다.
알고 있잖아, 정예서. 네가 빙의한 이유는 여기 온 첫날 이미 짐작했었잖아.
그럼 설마,
-그렇군요. 만연한 죄악감은 숨겨두지도 않았네요. 그러긴 힘들었던 걸까······.
흠칫. 배후에서 모르는 남자의 미성이 울렸다.
코밑의 글씨들은 아지랑이처럼 하늘하늘 춤추더니, 이내 하나둘 눈물 젖은 양 번져나갔다.
나는 느릿느릿 뒤를 돌았다.
몹시 불길하고 무서운 예감이 들었지만 피할 수가 없었다.
다시 한번 인간의 형태를 취한 수호령이, 시야를 잠식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예서 씨.
“······.”
보랏빛 눈동자가 근사하게 휘어졌다. 숨이 콱 막혔다.
-저는 예서 페네티안이라고 합니다. 제 몸은 마음에 드시나요?
나는 경악해서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섰다.
그가 서뿐서뿐 걸을 때마다 윤기 나는 금발이 찰랑거렸다.
자세, 목소리, 가운을 가누는 방법. 하다못해 눈을 깜빡이는 속도마저 나와는 달랐다.
그래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진짜가 아닌 걸 아는데도 상대에게서 눈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저는······.”
‘그’를 보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어떤 식으로든.
-많이 놀라신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그저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네?”
반응할 필요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입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미궁은 어느새 감옥처럼 무서운 공간이 되어 있었다.
-저의 몸에 들어와서 좋은 일을 많이 해주고 계시니까요.
“······.”
-어린아이를 구하시고, 신수들을 돌봐 주시고, 못된 짓을 하는 사람도 잡아주셨죠.
“······.”
-친구도 많이 사귀셨더군요.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러자 그가, 예서 왕자가 유쾌하게 웃었다.
원래는 저렇게 웃는구나. 저런 인상으로 변하고 저런 방식으로 팔을 쓰는구나.
“죄송합니다.”
사과는 불시에 튀어나왔다. 나조차도 인지하지 못한 찰나였다.
그냥, 혀끝에 고여 있던 말처럼 그렇게 툭.
“당신에게 빙의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당신의 인생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어요. 사실 저도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변명을 하시는 겁니까?
“······.”
미청년의 낯에서 순간적으로 웃음기가 사라졌다. 나는 급하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런 것이 아니었다. 변명하려는 게 아니라, 나는―
-나쁜 일에 활용하지 않으신 건 감사하지만, 이건 도둑질입니다. 스스로도 잘 아시잖아요.
“그게······.”
아니라고 해야 하는데.
-눈을 떴으니 움직여야 했고, 움직였으니 먹어야 했겠죠. 이해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행적은 명백히 선을 넘은 것 아닌가요?
차마 아니라고 할 수가 없었다.
-저의 몸, 저의 추억, 저의 대인 관계, 저의 대외적인 평판. 저의······.
그가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의 모든 것. 저의 삶을······.
선명한 피맛이 났다. 이조차도 내 것이 아니었다.
-당신이 통째로 빼앗고 있습니다.
그가 슬프게 선언했다. 그러자 지독한 절망감이 들었다.
죄책감과 섞여 구분되지 않는 감정이었다. 나는 가뭄 난 혓바닥을 비틀어 움직였다.
벌벌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십니까?”
-간단합니다.
남자가 내게 손을 뻗었다. 하얀 손끝은 나와 같으면서도 달랐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에게 최종적인 심판을 맡길 생각이었다.
그래야만 했고, 그게 옳았다. 그러면 더는······.
-콰앙!
번쩍! 눈을 휘둥그레 뜨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순간 착각을 했나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콰앙! 쿠웅!
강렬한 충격과 함께, 미로가 우르르 진동하고 들끓었다.
예서 왕자와 나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곤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제야 뜨거운 불꽃이 뇌를 일깨우는 느낌이 들었다.
시야가 맑게 트이고, 머릿속이 설백의 재로 깨끗해졌다.
나는 황급히 진원지에 가까운 방향으로 몸을 던졌다.
그러고는 숨구멍을 찾듯 벽에 이마를 댔다.
이 너머에, 녀석이 있다.
“세드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