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313)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313화(313/920)
#313
신관, 다시 살다 (2)
그로부터 십여 분이 흘러서야 사태가 진정됐다.
“세상에, 세상에. 호닝에 이런 기적이······!”
“우와아아.”
사실 완전히 가라앉진 않았다.
젠장, 제국 시골이어도 눈앞이 캄캄할 마당에 신국이라니! 주신아!
“주신의 은총인가 봐요, 아저씨!”
아니에요!
“그러게나 말이다. 어휴······. 살다 살다 하늘에서 천사님이 떨어지는 걸 다 보고······. 기도하자. 어서 기도하자.”
“네에.”
두 사람은 나를 보고 폴짝폴짝하다가, 양손으로 복면 아래 얼굴을 가렸다가, 이제는 납작 엎드려 주신에게 감사했다.
“후우······.”
나는 그동안 침착하게 짱돌을 굴렸다.
아무래도 이곳 음식(나무딸기)을 먹은 덕에 언어 패치가 이루어진 것 같았다.
되짚어보면 조금 전의 소통 장애는 제법 논리적이었다.
나는 퇴계공을 읽었기에 이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둘은 내가 사는 세계를 접한 적이 없었다.
결국 쌍방통행이 되려면 내가 여기 녹아들어야 하고―
그러자면 이곳의 생명을 섭취하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는 거다.
은근히 직관적이란 말이지.
“아차. 저, 저는 휘노라고 합니다, 천사님. 이쪽, 이쪽은 제가 돌보는, 동네 꼬마이고······.”
“쿤이에요.”
휘노가 급히 자신을 소개하자, 소년이 오물오물 덧붙이고는 그의 뒤에 숨었다.
이제 여섯 살쯤 된 듯했다.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랬더니 아이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를 구경했다.
신기하겠지. 옷차림은 유별나고, 지팡이도 특이하고, 같이 다니는 새도 있고―
아까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말했을 테니까.
“저는······.”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서 잠깐 굳었다.
생각해보니 내 이름을 그대로 알릴 수는 없었다.
사흘간 열심히 퇴계공을 공부하며 알게 된 건데, 페네티안 신국에선 모두가 네덜란드어 외래어표기법을 따랐다.
먹는 것도 대체로 네덜란드 음식이었다. 그런데 나는 ‘정예서’라는 석 자를 썼다.
이들이 한국식 이름에 익숙할 리 없는 데다, 문제는······.
“음.”
내 이름이 왕자의 이름과 똑같다는 거다, 제길.
제국도 아닌 신국에서 그런 식으로 주목받을 필요는 없었다.
내 몸으로 온 게 당황스럽지만, 이렇게 되어 유리한 점도 있기는 했다.
첫째는 베르너르 국서의 공격이 없으리라는 것.
그는 아마 왕자가 죽었다고 알고 있을 터였다.
게다가 이곳의 나는 출신이 불분명하고 직업도 없는 하층민이었다. 그자의 눈에 띌 확률은 0에 가까웠다.
둘째는, 왕자처럼 튀는 외모가 아니니 어디 가서 이목 끌 일은 없다는 거다.
그렇다면 이름도 평범해야 할 텐데.
······끙. 이건 좀 더 고민해 보자.
“몇 가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내가 조심스레 말머리를 돌리자, 휘노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편히 계셔도 됩니다.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나는 먼저 여러 차례 두 사람을 어르고 달랬다.
의자에 앉히는 데는 끝내 실패했지만, 둘은 그래도 쭈볏쭈볏 다가와 창가 근처에 서 주었다.
빛을 받은 이마가 볼그레했다.
“오늘이······.”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차근차근하자. 한 걸음 한 걸음 친구들한테 가자.
비록 거리는 멀지만, 지금의 나는 처음 빙의했던 날보다 훨씬 아는 게 많다.
요컨대 경력 있는 신입이다. 잘할 수 있어. 괜찮아.
“성력으로 몇 월 며칠입니까?”
“7월, 7월 23일입니다, 천사님. 금요일이지요.”
“여름이군요. 연도는요?”
제발 1614년이어라. 제발 1614년. 1614, 1614, 1614······.
“그게, 1624년이던가?”
네!?
“1614년이에요! 저번에 카르메가 와서 그렇게 말했어요.”
쿤이 잽싸게 정정해주었다.
“와, 고마워! 만만다행이다!”
나는 양팔을 번쩍 들며 환호했다.
벌떡 일어나 만세를 외치고, ‘주신이시여, 감사합니다!’를 몇 번이나 읊었다.
누가 보면 반응이 과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계산해 보라!
7월 말이라면 내가 ‘죽은’ 시점부터 4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셈이었다.
나흘이면 더 좋았겠으나 아무튼 절망적으로 긴 시간은 아니었다.
집에서 사흘 보냈다고 3년이나 흐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눈시울이 짠해졌다.
첫 단추는 일단 잘 끼웠다.
“하, 진짜 살았다······.”
나는 마른세수를 하며 침대에 털썩 앉았다.
어떻게 하면 이런 시간 계산이 나오는 건진 모르겠지만, 좌우간 한고비 넘겼다.
고맙습니다, 브리지트 작가님. 앞으로도 승승장구하세요.
“천사님, 우세요?”
“아니야. 너무 좋아서 그래. 여기서 쿤도 만나고.”
내가 머리를 쓸어넘기며 파안했다. 그러자 꼬마의 복면 밑이 실룩샐룩했다.
휘노는 여전히 나 때문에 놀란 눈치였다. 나는 잽싸게 표정을 가다듬었다.
중요한 질문이 한참 더 있었다. 정신 줄 야무지게 잡아야 한다.
“큼, 흠. 아까 제가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하셨는데요.”
“예에, 천사님. 그랬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당시 상황을 좀 들을 수 있을까요? 제가 며칠이나 누워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러자 휘노와 쿤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약속이나 한 듯 숨을 크게 들이마시기도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벌렁벌렁하는 모양이었다.
남자는 양손을 꼭 맞잡은 채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그것이······. 사흘, 사흘 전입니다. 하늘 구멍에서 갑자기 우르릉! 하고,”
나는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죄송합니다. 하늘 구멍이 뭔가요?”
“하늘에 난 구멍요. 까맣고 커다랬어요! 이이만큼!”
쿤이 까치발을 들고 두 팔을 크게 벌렸다.
그러고는 부끄러운지 화다닥 휘노의 뒤로 숨었다.
똥강아지 같아서 귀여웠지만 이해가 되진 않았다.
내가 아는 하늘 구멍은, 이곳 기준으로 작년 가을에 열렸던 ‘게이트’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건 블랑케르 공작령의 일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히 사라졌다.
개방 당사자인 내가 기절해 버렸으니, 목적 잃은 출구가 소멸하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그런데 구멍이 하나 더 뚫렸다고?
어쩌다가?
“휘노 님, 그게 언제 생긴 겁니까? 규모는 정확히 어느 정도였나요?”
“아, 아마, 3월 하순이었던 것 같습니다······.”
휘노가 주섬주섬 기억을 끄집어냈다. 나는 한 문장도 놓치지 않으려 귀를 기울였다.
휘노와 쿤의 고향인 호닝(Honing) 마을은, 페네티안 국경 지역에 있는 두멧골이었다.
정확히는 대륙을 가로지르는 위니테 강과 무척 가깝다고 했다.
하지만 취락은 작은 데 반해 뒤편에 있는 산골짝이 높고 험해서, 자연히 영주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는 빈촌.
자랑할 만한 특산품도, 뛰어난 재주도 없는 자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사는 동네.
그곳이 바로 호닝이었다.
“그런데 지난봄에, 난데없이 공중에서 찢어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정말, 정말로 누가 책이나 종이를 찢어발기는 것 같았습니다. 다만 그것이······. 아주 요란했지요. 예. 깜짝 놀라 밖으로 나와 보니, 멀쩡했던 하늘에 시커먼 금이 가 있는데······. 제가 왕도에 가본 적은 없지만, 필시 그곳을 전부 덮고도 남을 만치 커다란 금이었습니다. 꼭, 꼭 주신께서 잡아 찢어놓은 것처럼······.”
“······그게 3월이었다고요?”
“그렇습니다, 천사님.”
휘노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창공을 길게 가로지른 균열은, 순식간에 벌어져 칠흑의 천공이 되었다.
구멍 너머로는 별도 달도 뜨지 않았다. 그 암흑을 들여다본 주민 여럿이 까무러쳤다.
충격으로 사경을 헤맨 이들도 있다고 했다.
이는 저주라고, 무슨 까닭인지 몰라도 주신께서 단단히 노하신 거라고.
그런 믿음으로 주민들은 온종일 울고 기도했다.
호닝에는 흔한 부제(副祭) 한 명도 없어서, 이웃끼리 모여 밤을 지새우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예서 왕자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로······. 믿음은 더욱 공고해졌다.
사람들은 주신이 그의 죽음에 진노한 게 분명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재앙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콰앙, 콰아앙! 하고. 크고 새카만 조각들이 지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부서진 그릇이나, 찻잔처럼 말이지요. 저희, 저희 마을은 천만다행히 큰 피해가 없었지만······. 바로 옆 마을에선 많이 죽고, 많이 다쳤다고······.”
남자가 말끝을 흐렸다. 쿤이 그의 허리춤에 매달려 바들바들 떨었다.
두 사람은 지독한 피부병을 앓고 있는데, 이것 역시 ‘주신의 도검’을 만진 결과라고 했다.
언제 어디서 쏟아질지 모르는 신성(神性) 공습.
그를 피해 살아남고자 내내 긴장하는 삶.
그런 공포가 무려 넉 달이나 이어져 온 것이다. 나는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사태의 이유를 모르기 어려웠다.
나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는 베르너르 페네티안 때문이다.
그가 나를······. 세계가 의지하는 대상을 살해하는 바람에, 이곳은 말 그대로 붕괴하기 시작했다.
죄 없는 사람들이 희생되고 크나큰 고통을 겪었다.
긴 시간 일상과 이별하고, 줄곧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다.
오직 나의 영혼이 세계선을 떠났다는 이유로.
······역시 나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데 사흘 전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늘에서 우르릉! 하고 천둥소리가 나기에, 아이코! 또 그것이 떨어지는구나 하고 땅굴 속에 숨어 있는데······.”
“퍼어엉! 하고, 쌔애애애! 했어요. 그런 소리는 첨이라서 제가 내다봤어요!”
쿤이 머리를 빼꼼 내밀고 거들었다. 그렇게 호닝 마을 주민들은 나를 발견했다.
큼직한 날개 한 쪽을 달고, 전속력으로 추락하는 외계인을.
“그랬군요.”
나는 문제의 ‘하늘 구멍’을 통해 들어왔다.
어쩌면 그래서 시공간의 비틀림이 적었을지 모른다.
지름길을 통한 덕에 4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것일지도.
“콰아앙! 했지요. 저희는 기겁해서 우르르 달려 나왔습니다. 대피소 앞이 크게 패여 있었습니다. 어른 하나 들어가면 보이지도 않을 만큼 깊은 구덩이가······. 분명 사람이었는데, 하늘에서 사람이 떨어졌는데 말이지요······.”
“먼지가 많이 났어요. 제가 천사님한테 맨 먼저 말 걸었어요!”
“그랬어? 아저씨 움직이고 있었어?”
전혀 기억이 없다.
하긴, 그만한 쇼크를 입었는데 의식이 있는 게 이상하지. 힘은 힘대로 다 뺐고.
“네! 이이이만큼 커단 날개가 차르르······. 걷히니까 안에서 천사님이 사르르······. 고개도 이렇게 스르르······.”
쿤이 구연동화 하듯 실감 나게 설명해주었다. 통통한 손가락이 깜찍했다.
나는 심각한 상황에서 결국 뱅시레 웃어 버렸다.
천사는 무슨, 내년이면 한국 나이 서른인 동네 아재다.
“그리고 보라색 눈이 반짝반짝, 반짝반짝······.”
······예?
“잘 못 들었습니다?”
장렬한 삑사리가 났다. 무슨 색 뭐라고?!
*
“······.”
-똑똑
뱅자맹이 침실 문을 두드렸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는 언제나 그렇게 했다.
몇 초가 흐르고, 중년인이 점잖게 입구를 열어주었다.
얌전히 기다리던 에바는 헤릿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섰다.
소공작은 지난달에 열일곱이 되었다. 그토록 고대하던 생일에 왕자님은 없었다.
좋아하는 친구들도 많이 모이지 못했다.
대신 황도 공작저에서 케이크를 먹고, 아버지와 일손들의 축하를 받았다.
오렐리 전하께선 저의 이마에 입을 맞춰 주셨다.
오후엔 조안과 산트가 살롱에 머물러 주었다. 아녜스와 헤릿도 함께였다.
······실은, 생일 파티를 열지 못했다. 리에스테르는 전쟁 중이었으니까.
“제국이 승전하면 성대한 잔치가 열릴 거야. 그때 우리 생일도 같이 챙기자.”
에바가 성큼성큼 걸으며 말했다. 헤릿은 좋다는 양 방실거렸다.
소공작은 이제 열한 살이 된 소년을 돌아보며 생각했다.
이 아이는 저보다 훨씬 어린데, 훨씬 강한 것 같다고.
이런 점은 진정 헤인스 경과 똑같다고.
“자. 나는 왕자님 꽃을 맡을게. 넌 신수님들 꽃을 맡아.”
“응······.”
소년이 작게 소리 냈다. 그러고는 보라색 튤립을 한 아름 안고 총총 움직였다.
두 아이는 주기적으로 이곳을 방문했다.
왕자님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손을 쓰다듬고, 침대 사방을 장식한 꽃을 갈아주기도 했다.
물론 처음에는 어른들의 반대가 심했다.
어린 마음이 상처 입을까 쥘리에트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하셨다.
어지간한 말썽은 눈감아주는 뒤엠 후작님조차 고개를 저었다.
-부스럭, 부스럭······
에바는 참기 싫었다. 그래서 예전처럼 굴었다.
못되고, 철없고, 미움받는 공녀처럼 행동했다.
무려 전장에 나가 계신 황제 폐하께 서신을 보내 조른 것이다.
‘왕자님의 침실에 드나들게 해주십시오.’ 하고.
소공작은 번지지 않은 편지를 띄우고자 비싼 종이를 수십 장이나 버려야 했다.
답장은 의외로 빠르게 날아왔다.
‘튤립 후원의 꽃을 꺾어도 좋다.
오렐리와 자주 식사하도록 해라.
-F. R.’
내용은 간결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에바는 쥘리에트 궁의 실세가 되었다.
뱅자맹이 흐뭇해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첫날엔 요한 경이 여기까지 같이 들어왔었다. 헤릿은 의외로 많이 울지 않았다.
에바는 며칠 뒤에야 깨달았다.
아무래도 제가 너무 펑펑 울어서, 저 애가 참았던 것 같다고.
흥.
“헤릿, 내가 너보다 여섯 살이나 많아.”
소공작이 왕자님의 귀에 꽃꽂이하며 꽁알거렸다.
그사이 헤릿은 깨어나지 않는 신수들을 새 꽃으로 장식하고 있었다.
한동안 둘 사이엔 시선이 오가지 않았다.
“으응······?”
“난 누나란 말이야. 내가 너를 배려해야지, 네가 날 배려하면 누나의 ‘간지’가 안 살잖아. 간지가 뭔지 알아?”
“아······!”
“너도 크리스텔 경한테 배웠구나? 알면 좀 배려하라고. 아니, 배려가 아니라. 눈치껏 행동하라는 거지. 아니,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
-아웅
“넌 너무 어른스럽단 말이야. 헤인스 경을 닮으면 안 돼.”
-꾸릇
“네 아버지를 나쁘게 말하는 건 아냐. 하지만, 알잖아.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끼이
“아까부터 왜 대답이······.”
에바는 고운 눈매를 찌푸리며 머리를 홱 돌렸다.
그리고 황급히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헤릿이 저를 향해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코앞에서, 기적이 일어나는 중이었다.
-끼아!
“······데미 님!”
소녀는 눈물을 터뜨리며 신수에게 달려갔다.
와락, 작은 온기를 품은 몸에선 환희의 에테르가 쏟아져 나왔다.
데미는 기쁜 몸짓으로 에바의 뺨을 핥아주었다.
헤릿은 얇은 팔로 티테, 레아, 페리를 동시에 끌어안고 까르르 웃었다.
달칵! 소동을 감지한 뱅자맹이 서둘러 문을 열고 들어왔다.
“주신 맙소사······!”
잠든 지 넉 달 만에, 신수들이 깨어났다.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행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