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326)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326화(326/920)
#326
와장창! 각자의 대모험 (4)
-차르르르······!
제독의 웅장한 전함이, 성게 대마왕의 가시에 받힌 채 위풍당당 허공에 떠 있었다.
월광 아래 하얀 돛이 속없이 낭만적인 빛을 뿜어냈다.
크리스텔은 어이가 없어 헛숨을 터뜨렸다. 대양 한복판에서 별별 일을 다 겪어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주 쫄딱 젖었다!
“와, 무슨 바이킹 타는 거 같네! 천연 바이킹이네, 천연!”
‘쏴아아아······!’ 고운 메밀꽃이 사방에서 폭포처럼 떨어졌다.
‘끄아아아!’ 밧줄로 온몸을 동여맨 병사들은 난간과 돛대에 대롱대롱 매달려 버텼다.
천만다행히 용골(龍骨)을 마석으로 만든 덕에, 선체는 밑바닥이 뚫려 꼬르륵 가라앉는 비극을 피할 수 있었다.
이는 해적선의 충각(衝角)에 맞서고자 엠마 코를레오네가 주문 제작한 물건이었다.
설계자는 무려 프랑수아 뒤엠이었으므로, 내구성은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가인은 제일 사장에 팔다리를 감은 채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휘이이이―! 짭짤한 바람이 앞머리를 마구 쓸어넘겼다.
흑요(黑曜)성게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허어······. 간다, 간다! 다시 빠지나 봐요!”
-싸아아아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수가 몸통을 뒤로 물렸다.
‘철써덕!’ 선박이 부채 같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무사히 착수(着水)했다.
이걸로 다음 충돌까지 대충 20분은 벌었다.
흑요석처럼 새카맣고 뾰족한 가시 사이로, 반짝이는 물거품과 휘황한 왕관이 보였다.
청은색 금속과 물빛 투명한 보석이 쉬지 않고 번쩍거렸다.
가인은 그를 내려다보며 바다가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저게 무엇인지는 저도 책을 읽어서 알았다.
내용이 썩 친절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지만.
‘여기, 신물에 관한 동화책도 있습니다. 역시 이블린 대공이 집필한 겁니다.’
‘아드님을 굉장히 사랑하셨나 봐요. 직접 동화까지 쓰시고.’
······이블린 대공 알렉상드르 리에스테르의 저서, <와장창! 이브의 대모험>.
작년에 황실 서고에서 왕자님이 추천해준 동화였다.
이는 제국의 신물은 물론, 경계의 신전과 신국 신물까지 소개하는 귀중한 어린이 모험담이었다.
어린 아들을 위해 국서가 직접 삽화까지 그린 작품으로, 각 신물에 얽힌 전설이나 특징 따위를 재밌게 묘사했다.
다만 100% 정확하지는 않았고, 그가 실물을 본 적이 없어 설명이 부족한 부분도 더러 있었다.
가인은 아까부터 그 책의 내용을 열심히 곱씹는 중이었다.
-촤아아아······
저것의 이름은 ‘빙잠(氷蠶)의 보관(寶冠)’이라고 한다.
눈과 서리를 다스리는 능력으로 유명하다.
주신의 옷을 짓는 태초의 누에가 만든 왕관으로―
“또 안 떨어지네. 저렇게 파도가 센데 절대 안 빠져!”
“우우우우!”
물에 젖어도 녹슬지 않고, 불에 닿아도 타지 않으며, 끈끈한 속성이 있어 한번 자리 잡은 곳에선 움직이는 법이 없었다!
멀쩡한 보관을 목격한 병사들이 엄지를 아래로 떨어뜨리며 야유했다.
문득 동화책의 한 장면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멋집니다, 이브. 보관이 당신에게 잘 어울려요.’
‘당연한 소리. 나는 대륙의 지배자가 될 사람이니까.’
‘웬일로 개소리라고 하지 않네요.’
젠장! 가인은 빠드득 주먹을 쥐며 뒤를 돌아보았다.
갈고리 팔로 전방부 마스트에 매달린 제독이, 덤덤하게 저를 보고 있었다.
침대야 뭐야? 왜 혼자 흔들리지 않고 편안해?
“이대로 버티시려고요?!”
크리스텔이 크게 소리쳤다.
당하고만 있는 건 질색이었고, 평소라면 어림도 없을 멀미까지 나는 기분이었다.
지휘관과 병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곳곳에서 기절하거나 구토하는 이들이 속출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들의 횟감이 제독의 배만을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의 지휘를 받는 후방 범선들은 이제껏 한 번도 성게의 박치기에 당하지 않았다.
사람 가리냐?!
“가리겠지, 시발······.”
가인은 꿍얼꿍얼 욕설을 뇌까렸다.
놈은 진작 ‘창해의 축복’을 감지했을 테니, 저를 찌르고 싶어서 아주 안달이 났을 거다.
물론 남들이 위험한 것보단 제가 위험한 게 백번 나았다. 낫기야 한데!
“용골이 튼튼하니, 침몰시킬 수 없다는 걸 알면 물러날 거다.”
제독이 시가를 뻑뻑 피우며 큰 소리로 말했다.
요컨대 ‘살아남는 놈이 승자’ 전략이었다. 저놈의 담배는 방수가 틀림없었다.
주인 닮아서 꺼지는 법을 모른다.
물론, 엠마가 조금 전까지 마나를 바닥내며 맞서긴 했다.
특기인 ‘부력’으로 성게를 해저까지 가라앉혔고, 그게 안 먹히자 크리스텔이 놈을 깡깡 얼려 무게까지 더해봤다.
결과는 똑같았다. 마수는 어마어마한 체열과 마나를 뿜어내며 전부 이겨냈다!
“이놈을 맞닥뜨리신 적이 있습니까?”
“없어. 그래서 덤벼 본 거고. 소문대로 단단하군.”
그녀가 씩 벌어진 입술 새로 매캐한 연기를 내뱉었다.
이런 와중에도 쓸데없이 잘생겨서 열 받았다.
제독의 공격은 물론이고, 전투 마법사들의 온갖 공습과 해군 포격에도 흑요성게는 끄떡없었다.
여태 흠집 하나 생기지 않았다!
“환장한다, 진짜. 마수는 물에 약하잖아요!”
벌써 다섯 번은 반복한 짜증이었다. 엠마가 꾸준하게 지적했다.
“저놈 껍데기는 경도 11의 마석이야.”
물에 약하다고 해서, 그런 환경에 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흑요성게와 비슷한 마수는 얼마든지 있다고 했다.
실제로 코를레오네 제후국에선 마수를 잡아 만든 해산물 요리가 유명하단다.
깊은 산골에 바위로 위장하고 있다가, 인간의 화톳불에 몰래 접근해 먹잇감을 사냥하는 마수도 있다고 했다.
불을 무서워하면서도 그 주변엔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는 거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따로 없죠?
“머리에 신물은 왜 끼고 있는 거랍니까? 마수는 원래 신물 혐오하잖아요. 저거 신국 심해에 가라앉은 전설의 어쩌고 아니었습니까?”
이브 언니 대모험엔 성게 얘기 없었거든요!
“산책하다 가시에 걸렸나 보지.”
제독이 심드렁하게 대답했고, 갑판에 따개비처럼 붙어 있던 지휘관들이 껄껄 웃었다.
다들 성게와의 전쟁에 익숙해진 표정들이었다.
‘랑부예 경, 그냥 포기하십시오. 풍문으로는 저러고 다닌 지 13년쯤 됐답니다!’ 망루의 병사가 팔을 흔들며 외쳤다.
“그런데 제독님, 왕관 박힌 곳이 엉덩이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와하하하!”
누군가 그런 농담을 던져 큰 호응을 얻었다.
크리스텔은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씩씩거렸다.
제후국 사람들은 가끔 너무 낙천적이라 문제다!
“그래도 몇 시간이나 갈지 모르잖아요. 자칫 배가 잘못될 가능성도 있고요. 다른 대책을 마련해야죠.”
그녀는 절대 기죽지 않았다.
그리고 성게알, 성게미역국 따위를 떠올리며 상대를 만만하게 보고자 기를 썼다.
왕자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무슨 생각을 하며 상황을 정리했을까.
저놈을 조속히 해결해야 두 발 뻗고 잘 텐데. 대체 어디서 저런 게 나타났······.
어?
“병사님! 아까 13년쯤 됐다고 하셨죠? 저 녀석이 보관을 쓰고 출현한 거요.”
가인이 화다닥 질문을 던졌다. 묘한 예감이 들었다. 어쩌면.
“예? 예에!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정확하진 않은데요!”
“그럼 그전에는 흑요성게가 나타나지 않았대요?”
“어어······. 아마 그럴 겁니다! 저희는 날 때부터 섬사람이고, 그래서 해황에 민감하거든요. 그 이름을 처음 들은 게 그즈음입니다!”
“사람이 타고 있다 싶으면 무조건 들이받는다지요.”
“나타날 이유가 없어. 놈은 심해에 사는 종이니.”
제독이 다리를 꼬며 여유롭게 덧붙였다. 크리스텔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그녀는 제일 사장을 꼭 끌어안은 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멀찍이 물러간 성게의 왕이 부글부글하며 다음 타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철썩, 철썩······!’ 거친 파도가 놈을 중심으로 둥글게 올라붙었다.
마석 가시 하나하나가 절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세상에.
“엠마!”
“나의 인어.”
“쟤 지금 우리한테 도와달라고 하는 거예요!”
크리스텔이 급격히 밝아진 안색으로 외쳤다. 제독은 궐련을 툭 떨어뜨렸다.
오른뺨의 흉터가 설핏 일그러졌다.
“······뭐?”
“본래 깊은 바다에 사는 마수라면서요. 왜 ‘전설급’이겠어요. 보기 힘드니까 전설급이죠!”
“······.”
“당신 말이 맞아요. 어쩌다 그렇게 된 건지는 몰라도, 심해에 살던 저 녀석 가시에 신물이 걸렸어요. 우연히 발견하고 먼저 들이받았을 수도 있겠죠. 마수는 신물을 싫어하니까요. 어쨌든 중요한 건, 그러고 나니 보관을 뺄 수가 없었다는 거예요!”
“맘마 미아!”
지휘관들이 대경해 그녀를 바라보았다.
병사들 사이에선 수군거림이 파도치기 시작했다.
크리스텔의 입가에 맑은 웃음이 물감처럼 번져나갔다.
“졸지에 신물을 달고 다니게 됐으니 고통스러웠겠죠. 당연히 파괴할 수도 없었을 거고. 저것 때문에 가족이나 친구들과도 멀어졌을지 몰라요.”
“그 말은,”
“네. 그래서 얕은 곳까지 나와 인간에게 도움을 청한 겁니다. 제발 이것 좀 빼달라고요. 인간으로선 충격과 공포죠! 난데없이 전설급 마수가 나타나 배를 파괴하고 가시를 들이대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겠어요? 쟤의 처지는 고려할 여유조차 없었어요. 무려 13년 동안요!”
어린 기사의 낯에 함박꽃이 피었다. 놀란 해군의 입이 동그랗게 벌어졌다.
엠마는 드물게 눈을 번쩍 떴다. 늘 반쯤 감겨 있던 눈동자에 생기가 휘돌았다.
“그러니까 우리만 자꾸 들이받는 겁니다. 순수하게 인간을 죽일 목적이었다면, 뒤에 있는 다른 범선도 고루 공격했어야 맞잖아요. 여기에 제가 있으니까 절실하게 매달리는 거예요.”
“네가 성기사라서?”
-투웅!
제독이 마스트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
뚜벅뚜벅 갑판을 걷는 걸음은 어째 즐거워 보였다.
가인은 차분히 엠마를 바라보았다. 깊은 회녹색 눈동자와 시선이 얽혔다.
‘절써덕! 쏴아아아······!’ 등 뒤에선 마수의 몸부림 같은 해조음이 울려 퍼졌다.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대죄를 더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사르네즈는 이미 제국의 신물을 하나 잃었습니다! 창해의 축복을!’
사형 선고를 받던 날의 아버지라는 사람.
‘신물 ‘창해의 축복’에 관한 이야기는 추후에 하겠다. 오늘의 본론은 그게 아니야.’
그리고 프레데리크 황제의 말.
분명 그분이 생각하시는 적절한 때가 있을 터였다.
지금은 전쟁 중이니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가인은 확신했다.
폐하껜 죄송하지만, 그건 바로 오늘이라고.
동료들의 진실한 신뢰를 얻고, 저 불쌍한 생물을 돕기 위해서는 제힘의 원천을 밝혀야 한다고.
축복받은 리에스테르의 창해(滄海)에서.
“아뇨, 저도 신물을 가지고 있어서요.”
“······.”
그녀의 왕자님이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제국의 물 속성 신물, 창해의 축복을 제가 흡수했습니다.”
모두의 멍한 시선이 크리스텔에게 꽂혀 들었다.
성기사는 몸을 세우며 망설임 없이 말을 이었다.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하나가 되어 싸우고 싶었다.
더는 겉돌고 싶지 않았다. 설령 내일 당장 돌아가게 될지라도.
“신물의 모든 능력이 고스란히 제 거예요. 그러니 마수가 저를 찾는 겁니다. 제가 유의미한 도움을 줄 거라 기대하는 거죠.”
이제 이곳이 그녀의 세상이었다.
가인은 젓가락처럼 길쭉하고 동그란 제일 사장 위에 두 발로 꼿꼿이 섰다.
그리고 품에서 채찍을 꺼내 들었다.
젖은 머리카락에선 보석 같은 방울꽃이 뚝뚝 떨어졌다.
“세 줄 요약. 저는 신물과 한몸입니다. 그리고 상대는 마수지만, 보탬이 되고 싶어요. 훗날의 인명피해도 막을 수 있을 테니까요.”
-철썩철썩, 차아아아······!
너울이 높아지고, 청회색 눈동자가 밤하늘의 리겔처럼 반짝거렸다.
엠마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인어와 배후의 성게를 보며 활짝 웃었다.
단지 응시하는 것만으로 아찔한 쾌락이 전신을 지배했다.
손발이 저릿저릿하고 목덜미가 오싹했다. 제국에 하나뿐인 물의 성기사.
심지어 저의 바다를 구하는 신물의 화신이라.
“마음대로 해.”
그녀가 바란다면 무엇이든 하게 해줄 것이다.
빛이 조금씩 힘을 되찾는, 초승달의 밤이었다.
*
저벅, 저벅, 저벅.
철컹, 철컹, 철컹.
밖에서 군홧발과 갑옷 움직이는 소리가 분주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앉은 프레데리크 리에스테르는, 고요히 허공을 노리며 앞으로의 전황을 그리고 있었다.
이내 막사 앞에 멈춘 그림자가 천을 걷고 들어왔다. 엘리자베트였다.
부근위대장은 깍듯이 예를 차린 뒤 보고를 올렸다.
“폐하. 아리 스홋 추기경 전하가 도착했습니다.”
황제가 고개를 까닥였다. 청년은 즉시 노인을 막사 안으로 안내했다.
추기경의 평복을 입은 아리 스홋이 그녀에게 감사의 미소를 보냈다.
이들은 구면이었다.
지난여름, 제국 최초의 성기사 서임 심사를 위해 그가 황궁에 머무른 적이 있었으니까.
“지상에 강림하신 태양을 뵙습니다.”
“어서 오시오, 추기경.”
노인장은 공손히 절했다. 그때와 달리 황제는 그를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나이를 배려해 의자 하나 내어주는 일도 없었다.
허나 모든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리는 상황을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지금은 전시였고, 이곳은 얼마 전까지 ‘중립 지대’라고 불리던 사막이었다.
제국의 군주는 여기에 거대한 진을 치고 최후방 전선을 지켰다.
그녀는 교황청 인사들의 자유를 존중했지만, 일단 한번 신국으로 떠난 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사막에 다시 들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신전에는 로날트 뤼퍼르트 총대리와, ‘진정한 의미의’ 중립파 성직자들만이 남았다.
이후에도 황제는 이들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 않았다.
대부분이 신국 출신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무슨 일로 알현을 청했소? 나는 그대나 다른 추기경들에게 볼일이 없는데.”
딸그락, 딸그락. 프레데리크가 손에 쥔 물건을 굴리며 나른하게 물었다.
그것은 아리따운 에테르로 가득 찬 성석 구슬이었다.
오렐리 부티에 추기경의 힘이 분명했다.
종교적 반려와 떨어져 있게 된 황족에겐 더할 나위 없는 위안이리라.
노인장은 그녀의 손끝을 보며 온화하게 웃었다.
그리고 느릿느릿 허리를 숙였다.
“폐하, 이 늙은이는······. 신국의 정보를 넘겨드리고자 왔습니다. 존귀하신 분께서 원하신다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