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327)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327화(327/920)
#327
와장창! 각자의 대모험 (5)
프레데리크는 노인을 빤히 바라보았다. 와인처럼 붉은 눈동자가 잠잠했다.
긴 망토가 보좌 아래로 흘러내렸고, 아직 누구도 베지 않은 뒤랑달이 곁을 지키고 있었다.
한동안 둘 사이에는 막사 바깥의 소음만이 그득했다.
그마저도 진영의 심장부이다 보니 소란스럽지는 않았다.
조각상처럼 자리한 엘리자베트가 추기경의 배후에서 경계를 서고 있었다.
“······.”
손바닥 안의 성석 구슬이 달래듯 다정한 기운을 뿜어냈다.
두통이 다시 가라앉는 것 같았다. 황제는 느른하게 입을 열었다.
“짐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저는 오늘 이곳에 오지 않은 셈입니다. 무엇도 말하지 못한 비겁자인 양 물러나야겠지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말입니다.”
추기경 아리 스홋이 천천히 허리를 세우며 답했다. 군주는 설핏 미간을 찡그렸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돌려 말하는 데 취미가 없었고, 사교계의 은유나 부채 언어 따위도 좋아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제가 아버지를 닮아 그렇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하지만 이는 명백히, 그녀의 조부인 로메로 리에스테르에게서 물려받은 성정이었다.
이내 허스키한 경고가 흘러나왔다.
“짐과 대화하려거든 직설적인 문장을 만드는 게 좋겠군. 이 몸은 단순한 사람이라.”
“허허허.”
가시 박힌 농담이었다. 아리는 흘흘 웃으며 제왕을 바라보았다.
개암나무 열매를 닮은 눈동자에 현묘한 빛이 깃들었다.
프레데리크는, 이어질 그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으리라 직감했다.
연륜이 벼린 맹수의 본능이었다.
“늙은이가 경솔하였군요. 폐하의 뜻을 받잡겠습니다.”
“······.”
“부티에 추기경의 반려이시니······. 교황청에서 ‘중립파’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모르지 않으실 겝니다. 보통은 제국과 신국, 어느 쪽에도 줄을 대지 않은 성직자 무리를 일컫지요.”
그가 지팡이를 짚은 채 말문을 열었다. 황제는 반응 없이 뒷이야기를 기다렸다.
켜켜이 주름진 눈매가 과거를 그리듯 흐릿해졌다.
“그러나 실제로 중립파인 이들은, 끊임없는 핍박과 탄압에 시달립니다. 사소한 사안에도 목소리를 제대로 내라는 지탄을 받곤 합니다. 특히 페네티안 측에서······. 그러한 압박이 심한 편입니다.”
노공이 희미하게 눈을 휘었다. 프레데리크의 이마에 주름이 팼다.
그녀는 교황청에 큰 관심이 없는 지배자였고, 직계 황족은 대대로 그것이 옳다고 교육받았다.
교황청은 완전히 독립된 기관이었다.
게다가 리에스테르는 종교세를 걷거나 그곳에 돈을 뿌리는 일이 없었다.
필요한 로비엔 적극적이었지만, 구태여 교황청을 지배하고자 하지는 않았다.
성기사가 태어나지 않으니 근본적으로 그런 작업이 불가능하기도 했다.
노성(老聲)은 오랜 개울처럼 흘렀다.
“이는 한두 해의 일이 아닙니다. 신국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러한 나라였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에게 신앙을 강요하고, 이를 무기 삼으며, 나아가 지배의 수단으로 활용했지요.”
“······.”
“그런 세월이 천년에 이르렀습니다. 대다수 백성은 지금까지도 종교에 관해 잘 알지 못합니다. 국왕 폐하와 자녀분들이 신과 같은 존재라고 믿고 있지요. 저희 중립파는······. 그런 역사에 신물이 난 노친네들의 모임입니다. 자의로 국적을 버린 방랑자들입니다.”
“반역자들?”
황제가 노골적인 질문을 던졌다.
노인은 손끝으로 지팡이를 두드리며 유쾌하다는 표정을 했다.
“그럴 힘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무렴요.”
지친 눈망울에 짧은 빛이 스쳤다. 팔순을 넘긴 그는 여전히 거침없는 구석이 있었다.
위태로운 질문에도 꿈쩍하지 않았고, 외려 더욱 위험한 답변으로 응수했다.
프레데리크가 목을 기울이자 노인이 고개를 숙였다.
“주신의 힘은 강하고 위대합니다, 폐하. 유력한 귀족 몇으로는 전체의 공고한 믿음을 허물기 어렵지요. 저희는 모두 한 차례씩 바위에 부딪혀 깨진 달걀들입니다.”
“······.”
“대표적으로 릴리아너 선왕께서 왕족의 신격화에 지대한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 신전의 평민 교육 기능을 대폭 축소하셨고, 이에 반발하는 세력은 대역죄로 다스리셨지요. 신관 징집과 국론 통합을 위해 그리하셨다고는 하나······. 옳은 방향이 아니었던 겝니다.”
“그대의 왕을 비판하고 싶은 거라면, 굳이 말 상대가 나일 필요는 없을 텐데.”
황제가 낮게 지적했다. 그만 본론을 꺼내라는 독촉이었다.
한편으로는 추기경의 ‘정보’를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아리는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진정으로 모든 것을 걸고 이곳에 나아왔다.
전쟁 군주의 손녀이자 평화주의자이며, 지독한 다혈질이자 냉철한 판단력의 소유자에게.
이는 어쩌면, 꺼져가는 신앙을 살릴 마지막 기회였다.
“······저희 중립파 늙은이들은 분기에 한 번 공의회를 엽니다. 교황 성하께서 부재한 시대에, 총대리조차 참여하지 않는 시시한 다과회입니다.”
“맞혀보지. 그게 어제였소?”
“실로 총명하십니다.”
황제가 코웃음 쳤고, 추기경이 잔잔한 숨을 흘렸다.
엘리자베트는 고목 같은 노인이 쓰러지진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가 느릿느릿 입을 뗐다.
“그리고 저희는······. 폐하께 도움을 청하고, 필요한 정보를 드리자고 합의하였지요. 긴 회의였습니다.”
“도움을 청한다?”
“예. 죽어가는 페네티안을 구해주십사 간청하려 합니다.”
프레데리크는, 간만에 진심으로 혼란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짜증스러운지 눈썹을 와락 찌푸리기도 했다.
부근위대장은 흠칫하며 노인을 바라보았다.
유감스럽게도 그는 전혀 미친 것 같지 않았다. 이게 다 무슨 소리야?
“······그대들이 꿈꾸는 반역을 짐에게 위탁하겠다는 뜻인가?”
“그리 표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폐하. 감히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허나 저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중립’입니다. 최소한의 균형과 질서입니다.”
“······.”
“왕실의 귀한 분들께서 신앙을 정치적 도구로 여기시는 것은, 안타깝지만 오래된 일입니다. 폐하를 통해 이러한 기반까지 뒤집고자 한다면 염치없는 일이겠지요. 이는 오롯이 페네티안의 과제이니 말입니다.”
“······.”
“그러나 오늘날 신국을 지배하는 것은 왕실이 아닙니다.”
-딱!
황제의 손에 든 성석 구슬들이 날카롭게 맞부딪혔다.
추기경은 마른 입술로 열변을 토했다.
“광증에 시달리시는 폐하와 그분의 따님들을 허수아비로 세우고, 스네이더르 공작이 저 땅을 삼킨 지 수십 년이 지났습니다. 페네티안은 스스로를 살필 수 없고, 반성할 수 없고, 그리하여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불모지가 되었지요······!”
“세상에.”
엘리자베트가 탄식하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황제는 무표정으로 숱한 경우의 수를 떠올렸다.
제국의 세작인 빌헬미나 스네이더르는, 그녀에게 비정기적으로 왕실과 왕도 사정을 전하는 인물이었다.
간자 노릇은 공작의 아버지 대에 시작되었다고 했다.
요컨대 그녀는 모황이 저에게 물려준 수많은 유산 중 하나였다.
한데 그것이 썩은 사과였다.
프레데리크는 단 한 번도 신국의 내정 간섭이나 전복 따위를 명한 적이 없었다.
날카로운 눈매가 바늘처럼 가늘어졌다.
어느 쪽에 배탈이 날지는 아직 누구도 몰랐다.
“들려오는 말에 따르면, 그녀는 어디에나 있는 존재입니다. 또한 아무 데도 없지요. 고작 한 세대 만에 신국 곳곳에 스며들어 누구도 어색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신국을 밖에서 들여다보는 자만이 어렴풋한 부조화를 감지합니다.”
“주신과 같군.”
황제가 덤덤하게 사실을 말했다. 추기경은 늙고 익숙한 절망으로 동의했다.
“예. 저희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희망을 품었으나······. 가엾은 왕자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알았습니다. 저 땅엔 고삐를 잡을 이가 부재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장성한 왕세녀가 있을 텐데.”
“아아. 주신께서는 그분을 돌보지 않으시지요.”
‘키리에, 엘레이손Kyrie, eleison.’ 그가 낡은 신어로 앓듯이 기도했다.
프레데리크는 노공의 종교적인 문장을 지극히 현실적인 말로 해석했다.
‘엘리서 페네티안에게는 마땅한 세력이 없다.’
더구나 그런 아비와 고모 밑에서 컸다면.
죽음을 견뎌내던 동생과 미쳐버린 어머니, 아무것도 모르는 핏덩이를 보며 살았다면······.
‘너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구나.’
“포기하지 않은 게 용하군.”
황제가 지난여름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차라리 손을 놓고 물드는 게 편했을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그쪽이 모두에게 ‘깔끔했을’ 터였다.
한데 그리하지 못하고 버틴 것은, 청년이 모왕이나 조부의 성정을 닮은 까닭일까.
그녀로서는 영영 알 수 없었다.
프레데리크는 자신이 몹시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음을 인지했다.
“그러니 아무쪼록······. 공작의 수에 말려들지 마시기를 조언합니다. 그중에서도 트로사르트 산맥을 각별히 주의하시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필시 내륙으로 진출하시기 전에, 그곳에서 힘을 빼시게 될 겝니다.”
“트로사르트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가만히 듣던 엘리자베트가 불쑥 물었다. 청년의 낯에 당혹과 근심이 떠올랐다.
그녀는 세드리크를 깊이 걱정했지만, 황제를 보좌하는 의무를 다하기 위해 그를 따라나서지 않았다.
바카리 단장이 동행했으나 둘은 썩 친밀한 관계가 아니었다.
왕자님을 잃은 뒤로 세드리크는 완전히 마음의 문을 닫았다.
지금 녀석은 사실상 혼자였다.
“마수가 많습니다.”
“아······. 그런 거라면 괜찮습니다. 태자 전하께서는 마수 대토벌에서 우승하신 분입니다. 정예군이 함께하니,”
“그리고 아주 신묘한 동굴이 있지요.”
아리가 엘리자베트를 돌아보며 말했다. 검사는 흠칫했다.
“동굴이라고요? 던전 말씀이십니까?”
“비슷하지만, 그보다 훨씬 삿된 동굴입니다. 산맥 곳곳의 마수들이 그곳으로 들어가 몸을 피하면······. 누구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이후에 그것들이 더욱 강한 괴물로 진화해 나옵니다.”
“네?”
“뭐라고 했소?”
프레데리크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금시초문이었다.
제국에 망명한 이들을 제외하고, 신국에 남은 세작 중 누구도 그녀에게 이런 첩보를 전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이는 거짓이 아니라면 페네티안의 극비였다.
추기경이 후들거리는 지팡이를 짚으며 말했다.
“하급 마수가 들어가면, 같은 종의 중급 마수로 변하여 출몰합니다. 중급이 들어가면 상급이 출현하며, 드물게 상급이 숨어들면 전설급이 나타난다고 하지요. 스네이더르 공작이 이를 모를 리 없습니다. 분명 수를 써두었을 겝니다.”
“세상에. 그게 사실입니까?”
“폐하께서 명하신다면 언약을 하겠습니다.”
“······.”
주신 맙소사. 프레데리크는 깊은 한숨을 삼키며 이마를 감쌌다.
구슬 속 에테르가 빙그르 휘돌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따스한 금빛 꼬리는 언뜻 베이지색을 띠었다.
‘걱정 마. 괜찮을 거야.’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했다.
하나도 안 괜찮아. 게다가 네가 또 사고 칠 거잖아.
“엘리자베트, 가장 빠른 말 다섯 필을 골라 즉시 전방으로 보낸다. 마수와의 교전은 반드시 사살로 끝내야 한다고 전해. 참모들 전원 소집하고 후방의 세실 블랑케르 공작에게 상황을 알려. 프랑수아에게도.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야겠다.”
“명 받들겠습니다!”
암녹색 단발이 칼같이 움직였다. 황제의 눈동자에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어쩐지, 이제껏 너무 쉬웠다.
*
말할 거다, 오늘.
바로 지금. 당장.
이렇게는 못 살겠다.
-자박, 자박, 자박······
“아이고, 하이네켄 님! 또 일하러 가셔요?”
“아니에요, 티타니아 님. 잠시 윗분들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내가 빵빵한 짚풀 가방을 멘 채 꾸벅 인사했다.
그러자 한창 삽질을 하고 있던 호닝 마을 주민들이 양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아유! 거의 다 했어요, 저희끼리 충분해요. 말씀 잘하시고 오셔요!”
“오시면 같이 야식 드시지요. 감자를 구우려고 합니다.”
“네, 휘노 님. 먼저 드시면서 쉬고 계세요.”
이들은 요 며칠, 군영 주변에 박힌 ‘주신의 도검’ 발굴 작업에 힘쓰고 있었다.
본래는 제국군 병사들의 잡역이었고, 주민들은 저것을 만졌다가 피부병을 앓았었기에 접근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도검을 맨손으로 만지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또한 마법사들에 따르면, 가죽보다는 ‘종이’로 손을 감싸고 접촉하는 게 안전하다고 했다.
이후로 다들 면 위에 종이를 씌운 엄지장갑을 끼고 일했다.
아이들이 겉에 이런저런 그림을 그려줘서 귀엽기까지 했다.
“아저씨 다녀올게. 뛰어다니지 말고 있어.”
“네에!”
피부가 깨끗하고, 복면도 쓰지 않는 쿤이 야무지게 외쳤다.
운 좋게 치유 신관까지 만난 아이는 이제 아픈 곳 없이 말짱했다.
나는 녀석을 보며 씩 웃은 뒤, 곧장 걸음을 돌려 군영 중심부로 향했다.
좋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니 기운이 났다.
그래, 초심으로 돌아가자. 졸아붙어 살지는 말자.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빨리 밝힐수록 내겐 좋은 거잖아.
시간을 끌면 공포감만 커질 뿐이다.
최악이라고 해봤자 평생 감옥에 갇혀서 에테르 뽑히는 신세밖에 더 되겠어?
······겁내지 마.
“안녕하세요, 봉사자님!”
“안녕하세요.”
“여! 늦은 시간인데 오셨네!”
“안녕하세요, 기사님.”
나는 누가 채갈세라 배낭을 꼭 쥐고, 낯익은 얼굴들과 한담하며 걸었다.
오늘 밤 쫓겨날 각오로 짐을 전부 챙겨 나온 참이었다.
품에는 뚝심이와 크리스털 종이 들었다(그날 막사로 돌아갔더니 혼자 엄청나게 울고 있더라).
깨끗하게 빤 카디건과 셔츠, 슬랙스까지 갖춰 입었다.
어색한 복식에 놀라는 이들도 왕왕 보였다.
하지만 장담컨대 누구라도 나처럼 행동했을 거다.
‘네 에테르인가?’
······그로부터 무려 사흘간 아무 일도 없었다면 말이지.
아니, 진짜로. 무서워 죽겠다고!
-저벅, 저벅, 저벅
“하아······.”
이번에야말로 무조건 잡혀가리라 생각했다.
차라리 트로사르트 자작과 같이 끌려갔다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날의 나는 어떻게 생각해도 수상했으니까.
부서진 감옥을 탈출한 신국의 포로와, 그의 곁에서 한심하게 떨고 있는 평민.
정체불명의 에테르 두 톨. 거기다 이쪽은 예서 왕자와 사운드까지 일치했다.
그건 또 어떻게 된 거야?
접때 엘리서가 나한테 별말 안 한 건, 왕자와 내 목소리가 똑같다는 뜻이잖아!
“아, 골 아파.”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오디오북도 들어보고 올 걸 그랬나.
나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문지르며 땅만 보고 걸었다.
일단 한 번에 하나씩 해결해야 했다.
당장 급한 건, 3일 전의 폭군 전룡 소동 이후 내게 어떠한 변화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건 누가 봐도 이상했다.
물론 세드리크 태자가 그간 샤를마뉴를 찾지 않았고, 그 덕에 내가 녀석과 마주치지 않은 거지만······.
“자작을 심문했다면 진실이 밝혀졌을 텐데. 왜 나를 가만두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만약에, 어? 막 나쁜 짓이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답 없어. 돌진뿐이다.”
나는 비장하게 중얼대며 가방을 고쳐 멨다.
사후 처리 때문에 바쁜 거 알고, 단순히 나 같은 놈한테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대로는 진짜 못 버틴다. 숨을 못 쉬겠어. 제 발 저려서 잠도 안 와.
“일단 다비드를 찾아서, 읍!”
퍽! 막사 골목에서 하얀 손이 뻗어 나왔다.
나는 순식간에 입을 가로막힌 채 어둠 속으로 질질 끌려갔다.
와, 뭐야! 손은 작은데 힘이 장사······. 어?
“쉿. 쉿!”
바카리 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