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331)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331화(331/920)
#331
와장창! 각자의 대모험 (9)
-콰아아아앙―!
“으아학!”
파아아아······! 나는 온몸에 힘을 주고 눈을 질끈 감았다.
감긴 눈꺼풀 너머가 온통 금빛으로 밝아질 만큼 에테르를 쏟으며 버텼다.
입 밖으로 해괴한 비명이 튀어나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뒤늦게 아차 싶어 주머니를 더듬었다.
성장이 있으면 힘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잖아!
“어······?”
눈을 감은 채로 성장을 찾는데,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성지에 충격이 없지? ‘쾅’ 했으니까 지금쯤 천지가 뒤흔들려야 정상 아냐?
“흥.”
등 뒤의 황태자가 코웃음 쳤고, 그를 신호로 눈이 번쩍 뜨였다.
겨우 이삼 초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후딱 눈을 들어 밤하늘을 살폈다.
거센 바람이 태자와 나의 머리칼을 휩쓸었다.
‘끼에에에엑!’ 소행성처럼 내리꽂히던 신화급 마수는, 무엇에 치여 저편으로 쌩 날아가는 중이었다.
따라잡기 힘든 흐름에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대신 우리 눈앞을 차지한 건―
-쿠우우웅······!
“미친!”
어지간한 동네 뒷산만큼 웅대한 돌무더기의 화신이었다.
납득하기 힘든 전개에 턱이 쩍 벌어졌다.
놈은 블랑케르 공작령에서 본 것보다 몇 배는 커다란 골렘이었다.
대충 그놈의 모친쯤 되지 않을까 싶은 덩치였다.
마물(魔物)은 어퍼컷 날리는 권투 선수처럼 팔을 휘둘렀고, 슬로모션처럼 느릿느릿 움직였다.
나는 책갈피 크기의 성장을 허공에 휘저었다. 그러니까 지금 저게, 저걸 때린 거였다.
그야말로 경악의 연속이었다!
“뭐,”
뭐야? 대체 뭔데!?
-쿠구구궁―!
거대한 마수가 흙바닥에 메어 꽂혔다.
쿠웅! 쿠우웅! 골렘이 두 다리를 움직여 그쪽으로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진탕에 젖은 날짐승이 날개를 퍼덕이며 일어났다.
나는 당황해서 성장을 집어넣었다가 도로 꺼내기를 반복했다.
무슨 고질라와 킹콩의 대결도 아니고! 일이 잘 풀리는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다!
“······결국 왔군.”
“네? 예?”
세드리크 태자가 속삭였고, 나는 화급히 그가 바라보는 방향을 쫓았다.
마수와 마물의 반대편 길목에―
“어······.”
너무나 익숙한 마차가 서 있었다.
거리가 멀고 어두웠지만 못 알아보기 힘든 모양새였다.
화려한 지붕과 휘황찬란한 문양. 고급스러운 암적색 깃발.
내가 얼마 전까지 지하철보다 자주 탔던 이동 수단. 언제나 친구들이 북적거렸던 곳.
-휘이이이······
그리운 황실 마차 앞에, 길고 하얀 머리칼의 남자가 서 있었다.
순간 눈알이 빠질 것만 같았다.
조금도 젖지 않은 그는 마치 환영이나 귀신처럼 보였다.
나를 똑바로 응시하는 눈빛은 언뜻 서늘하기까지 했다.
요한 경이 어떻게 여기까지―
“이제 됐지, 자기야? 한 대 때렸으면 끝이잖아!”
흠칫! 어디선가 들어본 여인의 목소리였다. 내 고개가 휙 돌아갔다.
이제는 정신이 없다 못해 미약한 멀미가 나는 수준이었다.
태자가 앞을 막아버리는 바람에, 나는 까치발을 들고서야 그녀의 낯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잠깐, 아는 얼굴인데? 어디서 봤더라?
“아뇨. 마수를 치우기 전까지는 풀어줄 수 없어요.”
“어머? 청소부! 끼가 보인다 싶더니 사기꾼이었네?”
요한 경이 그녀에게 나긋나긋 대꾸했고, 여인은 울컥 화를 냈다.
그동안 반대편에서는 고질라, 아니 마물과 마수의 씨름이 한창이었다.
쿠구구구······! 쾅! 쾅! 쾅! 양팔로 마수의 날개를 잡은 골렘이 날카로운 부리에 깡깡 찍히는 중이었다.
찌르르르, 치지지직―! 전(電) 속성 짐승이 마구 저항했으나 바윗덩이는 꿈쩍도 안 했다.
나는 어디를 봐야 할지 한참이나 헤매다가, 일단 낯익은 사람부터 관찰하기로 했다.
관능적인 얼굴. 구불구불한 머리카락, 점이 있는 뺨.
눈 둘 곳 없는 파격적인 의상. 색종이처럼 빨간 입술.
······아!
“태자님, 저 사람 모레노 카라반사라이에서 봤던!”
“인신매매범.”
그가 단칼에 말허리를 잘랐다.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진실이었다.
당시 친구들은, 성기사가 바글바글한 모레노에서 내가 자유롭게 돌아다니기를 바라지 않았다.
간식 하나도 못 사 먹고 방에만 갇혀 있으려니 답답했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요한 경과 산트의 설명에 따르면, 모레노는 정말로 위험한 곳이라고 했다.
신관을 두고 성기사들 사이에 결투가 벌어지며, 납치와 야반도주가 분기별로 한 건씩은 보고된다고 그랬다.
겁주려고 과장하는 게 아니라 진짜였다. 하마터면 나도 당할 뻔했으니까!
‘자기도 신관이니? 나처럼 갇혔어?’
‘그렇구나. 처지가 비슷해 보여서 말 걸어봤어······.’
그날, 나를 꼬여내려고 했던 작자가 저쪽이었다.
숙박소의 어느 객실 창가에서, 그녀는 가련하고 슬픈 신관을 연기하며 내 도움을 받아내고자 했다.
신관은 성기사의 에테르를 감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악용한 사건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실은 나를 훔치려 했던 거다.
지체 높은 성기사 집안에 팔아넘기려고!
‘그럼 저녁에 식당에서 뵐 수 있을까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
-콰아앙!
-쨍그랑! 쨍그랑!
‘빌어먹을!’
거기에 깽판을 놓은 게 태자 녀석이었다.
여인은 엄청나게 빠른 말을 타고 달아나 끝까지 잡히지 않았고, 카라반사라이 2층은 무시무시하게 파괴됐다.
우리는 결국 경고 누적 3회로 숙박소에서 쫓겨났더랬다.
나는 미간을 찡그리며 요한 경과 그녀를 갈마보았다.
어쩌다 헤릿 아버지가 저 사람하고 같이 온 거지?
인제 보니 여인의 손엔 두부만 한 돌멩이가 들려 있었다. 기분 나쁜 빨간빛을 뿜는데······.
“마나입니까? 설마 저걸로 골렘을 조종하는 걸까요?”
“······그래. 골렘의 마나핵이군.”
내 물음에 태자가 낮게 답했다. 반짝하고 머릿속 전구가 켜졌다!
당장 폰을 켜서 메모장을 보고 싶었지만, 녀석 앞에서 그러긴 뭐해 쳇바퀴만 팽팽 굴렸다.
집에서 열심히 공부한 설정들이 책장처럼 차르륵 펼쳐졌다. 어디 보자······.
-끼에에엑······! 크러어어어!
-쿠우우웅! 투우우웅!
-치지직, 치지지직―!
‘마나핵(核).’
마수의 중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사람으로 치면 심장이나 뇌만큼 중요하고 필수적인 부분이다.
내 에테르가 심장에서 솟는 것처럼, 마수는 마나핵에서 나오는 마나를 원기로 삼는다.
보통은 마수의 숨이 끊어질 때 체내에서 소멸하며, 마석과 달리 자연 상태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개체마다 마나핵의 위치가 다르기에, 사냥꾼들은 핵을 찾기보단 평범한 급소를 노려 죽인다고 읽었다.
······그런데 어떻게 저게 골렘 몸 밖에 있지?
골렘은 마수가 아닌 마물이라서 가능한 건가? 그럼 마나를 조종하는 저쪽은 마법사?
“이놈만 해치우면 풀어주는 거지? 약속이다, 자기!”
여인이 요한 경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추기경은 부드럽게 미소만 지을 따름이었다.
도대체 아까부터 ‘풀어준다’는 게 무슨 뜻인가 했는데, 실눈으로 보니 그녀의 목에 시커먼 에테르 구속구가 채워져 있었다.
드디어 검거하셨구나!
“그럼 정리할게요.”
요한 경이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그게 우리에게 하는 말이었다는 걸 깨닫기도 전에,
-스팟!
그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고,
-우웅! 고오오오······!
마수와 마물의 씨름판 상공에 웅장한 회오리가 일기 시작했다.
물러간 듯했던 밤하늘의 먹구름이 자석처럼 끌려들고 있었다.
8월의 밤바람이 오싹할 만치 냉랭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한 걸음 뒤로 빠졌다.
저것을 본 적이 있었고, 저게 무엇이며 얼마나 무서운 힘을 낼 수 있는지 잘 알았다.
그날의 두려움을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싸아아, 싸아아아, 싸아아아―! 겁에 질린 나무들이 사방으로 가지를 뻗고 달아나려 애썼다.
인신매매꾼은 정색하며 이쪽으로 부랴사랴 피했다.
스팟! 용오름 중심에 희미한 인형이 나타났다.
매서운 바람결에 가려 또렷하지 않지만, 나부끼는 백발과 옥빛 코트를 보고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쌔애애앵―!
-키에에엑!
······추기경이 곧 성흔을 쓸 것이다. 한쪽 날개가 접힌 신화급 마수를 상대로.
“읏.”
-탁!
“얜 또 왜 이래.”
나는 갑자기 비틀거리는 태자를 받치며 식겁했다.
터엉! 혜검이 다시금 땅바닥을 굴렀다.
손이 축 처지는 걸 보니 일부러 떨어뜨린 게 아니라 놓친 거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다급히 안색을 살폈다.
“······.”
“아이고. 하느님, 부처님.”
사아아아······. 사내는 빠른 속도로 어려지고 있었다. 어느새 십 대 후반의 얼굴이었다.
키와 덩치도 아까보다 확실히 줄었고, 주황색 눈동자는 투지 없이 부옇기만 했다.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이마를 보니 철렁하고 위기감이 들었다.
녀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괜찮아. 이제 쉬자.”
지쳤어. 더는 못 버티는 거야. 요한 경을 보고 안심해서 긴장이 풀렸어.
“트로사르트에, 던전이······.”
내가 아는 것보다 어린 음성이었다. 나는 순식간에 공포를 잊고 단단히 섰다.
말 그대로 미쳐 돌아가는 상황이었다.
저편에선 세기의 맞짱이 라이브로 펼쳐지고 있었고, 요한 경은 하늘에서 필살기를 장전 중이며, 근처에선 인신매매범이 마물을 조종하고 있는 데다, 코앞엔 부상병들을 태운 마차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런데 심지어 태자가 녹다운 직전이었다.
여기서 나까지 성흔이 겁난다며 벌벌거릴 수는 없었다. 절대로!
“트로사르트 영지에 던전이 열렸어요? 그래서 마수들이 나온 겁니까?”
침착하게 물었다. 발음도 최대한 정확히.
“봉쇄해야······. 내륙.”
“응. 입구를 막아야 신국 내륙으로 진출할 수 있구나. 어떻게?”
“······그대가.”
툭. 그리고 청소년의 머리가 힘없이 떨어졌다.
나는 전력으로 꼬마를 받쳐 든 채 허망하게 섰다.
내가 어쩌라고? 몸으로 동굴을 막으라고?
“세이디?”
“······.”
새근새근 잠든 십 대는 무겁고 과묵했다.
빠르게 포기하고 낑낑거리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후송 마차에서 빠져나온 방주가, 팔랑팔랑 마차와 말들을 감싸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성흔의 후폭풍에 대비하는 모양새였다. 후닥닥 저쪽 하늘을 살폈다.
쏴아아아―! 지평선이 가려질 만큼 장대한, 재해 같은 소용돌이가 백색 에테르를 뿜어내고 있었다.
요한 경이 투명한 활시위를 당기는 것이 보였다. 잽싸게 시선을 내렸다.
콰가가강! 골렘의 끊임없는 바위 치기에 기어코 금 간 부리가 보였다.
‘아르만도, 지지 마!’ 범죄자는 마나핵을 조이스틱처럼 움직이며 골렘 조종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순간, 번뜩이는 상념 하나가 스쳤다.
“요한 경!”
나는 즉시 목이 터져라 천공을 향해 외쳤다.
거리가 너무 멀어 표정이 보이지 않았고, 그가 나를 알아봤을 거라는 보장도 없지만―
“골렘은 건사해주십시오! 저놈이 쓸모가 있을 것 같습니다!”
상대가 요한 헤인스라면 믿을 수 있었다.
그가 분명 이해하고 받아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인신매매꾼은 우리를 번갈아 보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몰아치는 바람과 괴수들의 소음으로 귀가 먹먹했다.
나는 그녀를 향해 소리소리 질렀다.
“그쪽도 부탁드립니다! 어려운 요청인 건 알지만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우우우웅······!
동시에 용올림의 크기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절로 환한 웃음이 걸렸다.
추기경이 내 말을 들어준 것이다. 여인은 하얀 이를 꽉 깨물며 나를 노리더니,
“꼭 풀어주는 거야, 자기야! 약속!”
그렇게 고함을 지르고는 마나핵을 머리 위로 쳐들었다.
상황은 그렇게 순식간에 벌어졌다.
쿠웅! 골렘이 그녀의 자세를 흉내 내듯 양팔을 들며 뒤로 물러났고,
-끼에엑, 크러어어어―!
분노에 찬 신화급 마수가 즉시 날아오르며 노성(怒聲)을 토해냈다.
뻔쩍― 쩌저저적! 무시무시한 번개와 벼락이 요한 경을 향해 떨어졌다.
동시에 눈이 시릴 만큼 새하얀 실바람을 입은 신의 화살이 쏘아져 나왔다.
언젠가 들었던 신탁과 함께.
[홀로 황혼이 되어라. 템페스타스tempéstas.]-쌔애애액!
콰아아아앙! 감히 저항할 수 없는 압도적 광휘와 폭발의 연쇄였다.
나는 태자를 업다시피 하고 있었음에도 충격파에 튕겨 나갔다.
대주교의 두 번째 서클인 성지는, 성소와 마찬가지로 나를 ‘해하고자 하는 힘’이 아니라면 막아내지 못했다.
몸이 붕 떠서 날아가는 와중에도 나보다 큰 세이디를 꽉 붙들었다.
안 돼, 애 놓치면 안 돼, 머리라도 부딪히면······.
-털퍼덕! 털썩!
“아읏! 윽, 으으······.”
푹신! 나는 청소년과 함께 매트리스 위에 널브러졌다.
벨벳처럼 푸근푸근한 천이 눈앞에 일렁거렸다.
진둥한둥 허리를 일으켜 꼬마의 상태를 확인했다.
천만다행히, 녀석도 나도 크게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았다.
놀란 등 근육이 펄떡대긴 했지만 정말로 멀쩡했다. 주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아?”
아니, 잠깐만. 매트리스라고?
그제야 미친 사람처럼 바닥을 더듬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다시 보니 우리를 받아준 건 평범한 물건이 아니었다.
“꽃이잖아······. 맨드라미 같은데.”
아주아주 크고, 아주아주 폭신하고, 닭 볏을 꼭 닮은 송이였다.
나는 아연해서 입을 벌렸다.
그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눈길을 돌렸다.
별안간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기적은 마치 거짓말 같았다.
-끼이이!
황실 마차 방향에서, 데미와 레아와 페리가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세 녀석의 뒤로는 티테를 안은 산트와······.
“뱅자맹!”
-끼아!
-끼잇!
-끼후!
내게 언제나 자상했던 중년인이 보였다.
나는 품으로 뛰어드는 레서판다들을 와락 끌어안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작고 다정한 온기들이 나를 마주 안아주는 게 벅차고 행복했다.
‘끼이, 끼이, 끼이―’ 눈앞이 뿌옇게 흐려질 때마다, 데미가 뺨과 속눈썹을 핥아주었다.
그래서 꿈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형도 보고 싶었어······.”
고마웠다. 전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