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333)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333화(333/920)
#333
자유 리에스테르의 자유로운 후작 (1)
-퍽, 툭! 퍽, 툭!
“가죽은 전부 보존 처리해야 하네. 그래, 발가락까지 말이야!”
-치이이익······! 싸아아!
“대장님! 독액 중화제와 해독제 합성이 늦어진답니다. 마법사분들 일이 밀려서······.”
-쓱싹쓱싹, 쓱싹쓱싹······
“그렇지, 그렇지. 결을 따라 절단해야 품질을 유지할 수 있어.”
오전의 천막 바깥은 무척 소란스러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지원군 지휘관들은(사실 늦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황태자가 너무 빨랐던 거니까.) 사태를 파악하고 사색이 됐다.
후송 마차의 여정은 일시 중단됐고, 치유 신관들이 우르르 투입되어 부상병들의 상태를 살폈다.
천운으로 중환자가 발생하진 않았다.
나는 모두를 위해 애써준 뚝심이를 열심히 쓰다듬어 주었다.
무려 신화급 마수가 심장을 꿰뚫려 죽은 자리엔, 밤사이 제국군 임시 막사가 들어섰다.
흙바닥이 질척했는데 전문가의 손길이 오가니 그럴듯한 거처가 생겼다.
마수 시체는 너무 크고 귀해서 바로 화장하지 않고, 지금은 부산물을 챙기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또 뭐가 있더라?
“백작께서 현재 골렘 위치는 괜찮으냐고 물으십니다, 대장!”
-깡! 깡! 깡! 깡!
“어어, 좋아. 통행 방해만 안 되면 됐지!”
맞다!
골렘을 조종하던 인신매매범 ‘카르메’는, 요한 경의 증언으로 그 자리에서 정식 체포됐다.
‘풀어준다며? 자기야, 풀어준다며!’
‘어허! 가서 조사부터 받으면 될 일이네!’
‘저 남자 이제 보니까 백여우잖아?!’
여인이 아름다운 얼굴을 구기며 항의했지만 제국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마나핵은 당분간 요한 경이 맡기로 했는데, 그는 아예 그녀가 보이지도 않는 양 굴었다.
나는 젖은 얼굴을 닦으며 모든 상황을 열심히 머릿속에 집어넣었더랬다.
꿈이 아닌 걸 알아도 바뀐 현실에 적응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두꺼운 천 너머에선 기사와 병사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호닝에서 전갈이 왔습니다, 대장님! 당장 나오는 건 중급과 하급 마수들뿐인데, 거기 있는 병력으로 충분히 처리 가능하다고 합니다. 인명 피해는 없고 외곽 막사 몇 개가 부서졌답니다.”
“주신의 은총이군. 진실로 그래.”
“예, 그렇지요. 또한 군영에 폐하의 급보가 도착해서······.”
정말로 은총이었다.
트로사르트 ‘던전’에서 상급 이상의 마수가 나오지 않는 것도 그렇고······.
실은 세드리크 태자의 어려진 모습이 들킬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요한 경이 그를 자신의 코트로 덮고 업어주었다.
‘감사합니다.’ 조그맣게 인사했더니 그가 눈웃음을 지었다.
나를 알아본 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힘을 많이 써서 그런지 그의 손등에 우둘투둘 핏줄이 돋았던 기억만 났다.
이후엔 다비드가 와서 태자를 챙긴 듯했다.
현장이 북덕북덕해 확실하진 않았지만 그의 정수리를 봤다.
“하아······.”
떨리는 한숨이 막사 공기를 울렸다. 나는 화들짝하며 중년인의 손을 감쌌다.
옆에 앉은 뱅자맹이, 손수건으로 연신 눈가를 찍어내고 있었다.
간밤엔 소리 없이 펑펑 우셔서 내 마음이 다 아팠는데, 아침이 되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포옹했을 때는 어깨가 들썩일 만큼 흐느끼시기에 나도 좀 울고 말았다.
산트는 밥도 거르고 눈물범벅으로 끅끅거리는 중이었다.
내가 직접 수프를 떠다 먹이니 그제야 겨우 몇 숟갈 들었다.
팅팅 부은 어린 얼굴엔 속없이 웃음이 났다.
“뱅자맹, 울지 마세요. 저는 진짜 괜찮아요.”
“어찌 괜찮으시겠습니까. 어찌······.”
“······사실 되게 무서웠는데요. 뱅자맹을 뵈니까 감쪽같이 괜찮아졌습니다. 산트랑 애물단지들까지 만난 게 기적 같아요.”
내가 순수한 진심을 전했다. 그러자 뱅자맹이 눈을 감았다.
한스러운 숨을 뱉으며 나의 손등을 쓸기도 했다.
살 내린 뺨과 어두운 눈 밑을 보니 가슴이 아릿했다.
그동안에도 레서판다들은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무릎을 전세 낸 레아, 어깨에 매달린 페리.
품에서 나갈 생각을 안 하는 티테와 데미 덕에 온몸이 뜨끈하고 움직이기 힘들었다.
내가 더위를 많이 안 타서 천만다행이었다.
뚝심이는 정수리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듯했다.
가끔 기우뚱하는 몸통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산트. 괜찮습니까?”
“흐으, 이렇게 부활하실 줄은······. 주신께서는, 정녕 신비로운 방식, 끅······. 참말로 기적입니다, 왕자니임······. 신의 기적입니다하아······!”
아이고. 나를 빤히 보던 산트가 다시 통곡하기 시작했다.
나는 화다닥 냅킨으로 그의 뺨을 닦고, 깨끗한 면을 접어서 코앞에 댔다.
“흥, 하세요. 흥.”
“흐으으응······. 어허어엉······!”
말 잘 듣는 울보를 보니 나도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정확히는 ‘부활’이 아니고, 나는 ‘왕자’도 아니라는 걸 언제쯤 얘기하면 좋을까.
더는 망설이지 않을 생각이지만 좋은 타이밍을 잡는 게 문제였다.
비록 어마어마하게 충격을 받긴 했으나, 두 사람은 내가 나라는 사실을 무척 빠르게 받아들였다.
그건······.
-끼잇!
“어, 우리 데미 혼자 뒤집기도 잘하네. 데미로 전 부쳐도 되겠다.”
-끼아?
“하하하.”
레서판다들과 티테의 덕이 컸다.
어젯밤 데미는, 거실만 한 맨드라미를 키워 태자와 나를 구해주었다.
레아와 페리는 진탕에 보라색 튤립을 수백 송이나 피워냈다.
하프물범은 나를 보자마자 방울방울 바닷물을 흘리며 울고 보챘다.
급한 대로 카디건을 벗어 앞 포대기를 해주니 그제야 색색 조용해졌다.
그 뒤로는 넷 다 내게서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건강하게 잘 지내셨어요?’
그리고, 목소리가 같았다.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뱅자맹과 산트는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그때부터 우리는 줄곧 함께였다.
임시 막사에서 같이 잠을 잤고, 이른 아침도 같이 먹는 중이었다.
산트가 기도를 올릴 때는 모두가 눈을 감고 기도했다.
아까는 뱅자맹의 옷시중을 완곡히 거절했는데, 그의 안색이 어두워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도움을 받았다.
하루빨리 내 신분을 알려드려야 할 것 같다.
“더 드세요. 전시인데 한 그릇은 비우셔야 든든하죠.”
나는 뱅자맹 앞에 수프와 빵을 듬뿍 밀어주었다.
당연히 쥘리에트에서 먹던 것보단 못 하지만, 황궁 손님을 맞는 음식답게 맛이 뛰어나고 재료도 좋았다.
중년인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숟가락으로 그릇을 몇 번 젓고는 다시 내 얼굴만 보셨다.
머리, 눈썹, 눈동자. 차례로 눈에 새길 듯 꼼꼼히 관찰하시는 게 머쓱하고 쑥스러웠다.
한편으로는 그게 어떤 기분인지 너무나 잘 알았다. 그래서 실없이 미소만 지었다.
묻고 싶은 게 참 많았다. 크리스텔은 잘 지내고 있는지.
함께 사막으로 떠났던 이자벨과 조안, 자작 부부는 무사한지.
가나엘과 엘리자베트 경은 어떤지. 황궁 식구들은 잘 추스르고 있는지.
헤릿과 에바는, 폐하와 스승님은 좀 어떠신지. 뒤엠 가족은 건강한지.
아녜스와 밤톨이는······.
“가가방이 찢어졌다고 하셨지요.”
“아, 네. 제가 뛰다가 떨어뜨려서요. 마을 주민분이 배낭을 하나 빌려주셨는데 거기에 넣어 다니고 있습니다.”
“금방 바느질해 드리겠습니다. 감쪽같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내 대답에 뱅자맹의 눈주름이 깊어졌다. 보기 좋았다. 그때였다.
“전하.”
익숙한 목소리였다. ‘끼응!’ 나는 애교 자판기가 된 데미를 어르며 입구를 돌아보았다.
천막을 걷고 들어온 요한 경이 여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음성.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처럼 단정한 차림새.
깔끔하게 묶은 백발과 차분한 민트색 눈동자.
“태자 전하께서 찾으세요. 세 분 모두 지금 오기를 원하시네요.”
“네, 바로 가겠습니다.”
우리는 즉시 입가를 정리하고, 애물단지들을 챙겨 일어났다.
바쁘게 막사를 벗어날 무렵에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한 경이 방금 나를 ‘전하’라고 불렀지. 그럼 내가 누구인지 안다는 거잖아.
“······.”
그런데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건, 어쩐지 신기했다. 나는 그를 몰래 힐끔했다.
*
천막 밖으로 한 걸음 나왔을 뿐인데, 상황은 어제와 완전히 딴판이었다.
우리 막사 근처가 보초로 빽빽한 건 두말할 것도 없고······.
“저분이셔, 저기 나오신다!”
“빨리 엎드려! 아, 빨리!”
“응? 저건 봉사자님이잖아. 우리가 엊그제까지 뵙던 분 아닌가?”
수군수군, 조선 수군.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시선이 몰려 얼굴이 뜨거워졌다.
“이보게, 간밤에 기적을 봤다는 놈만 열다섯이 넘어!”
“자넨 여태 내 말을 엉덩이로 들었나? 저분이 부활하신 예서 왕자님이라고! 지금 소문이 아주 황도까지 닿을 기센데!”
“뭐어? 저분이?!”
놀란 음성이 삐죽 솟구쳤다. 으악.
“저길 좀 봐, 이 친구야. 똥 푸던 조르당이 하루아침에 튤립 담당 되어서 팔자 폈다니까.”
“산만한 마수를 때려잡았지, 우리가 머무는 땅엔 보라색 튤립이 피었지. 심지어 마차에 타고 있던 친구들이며 기사님들이 전부 무사하시다잖아. 이번 전쟁은 우리가 이긴 거나 다름없어!”
“돌아가신 분이 살아나셨는데 아무렴!”
“아니, 어쩐지······. 어쩐지 우리하고는 몸태가 다르시더라고. 말투도 나긋나긋하시고. 이야, 그것참!”
“저게 튤립이에요? 수국 아니고요?”
“꼬마야, 너는 세상 살기 안 힘드냐?”
“그러면. 그러면 폐하께서 여기에 궁이라도 지으시려나? 그러시겠지?”
“궁이 문제야? 한 번 죽었던 분이 깨나셨다니까!”
“눈이 똑같이 보라색이시라는 게 사실이여?”
“글쎄, 그것도 다 사연이 있다는데. 들어 봐.”
“주신이시여, 망극합니다요······.”
차오르는 신앙과 감동으로 눈물짓는 병사도 여럿이었다.
나는 꿋꿋이 앞만 보며 티테를 안고 걸었다.
모두가 이쪽을 향해 한마디씩 하고 있었다.
한 사람당 한 문장이라고 해도 벌써 수백이었다.
옹성옹성, 법석법석. 아무도 아니었을 때는 편했는데 다시 주목받으려니 못내 부끄럽고 불편했다.
지나가던 기사들은 깍듯이 예를 보였다.
나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모습으로 미루어, 그새 태자 녀석의 명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저벅, 저벅, 저벅
그렇다고 내가 뚝딱 왕자가 될 순 없는데······.
신국 입장에서도 나는 아예 남인데. 진짜 큰일 났다.
하지만 초조하고 불안한 건 나뿐이었다.
레서판다들은 쏟아지는 관심과 뭇시선을 만끽하며 꼬리를 반짝 세우고 행진했다.
“어서 오십시오.”
헉, 다비드다! 나는 길목까지 마중 나온 중년인을 향해 반사적으로 허리를 굽혔다.
그러자 그가 당황하며 나를 만류했다. 산트도 몹시 놀란 기색이었다.
“왕자님.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용서를 빌어야지요.”
“아니······.”
나는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벙긋거렸다.
다비드의 두 눈이 퉁퉁 부어 있었고, 목은 뱅자맹보다 심하게 잠겨 있었다.
설마 우셨어?!
“이리 길바닥에서 사죄드릴 일이 아닙니다만······. 감히 귀하신 분을 알아뵙지 못하고 이용하려 한 죄는 평생을 갚아도 모자랄 것입니다. 반드시 신전에서 고해하겠습니다.”
그가 머리를 떨군 채 깊이 뉘우쳤다. 나는 어른의 등을 쓸어드리며 작게 웃었다.
언제나 태자에게 충직한 이분이, 무슨 생각으로 나를 채용하셨을지 짐작 가는 바가 있기는 했다.
너무 놀라게 해드린 것 같아 오히려 이쪽이 죄송했다.
아무렴 죽은 사람이 다른 모습으로 살아 돌아오리라고, 그 누가 쉽게 생각할 수 있었을까.
내게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을 하셨다고 해도 나는 용서해드리고 싶었다.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다비드. 저한테 둘도 없이 귀한 기회를 주셨는걸요. 덕분에 태자님과······.”
‘그분은 좀 어떠십니까?’ 내가 후다닥 볼륨을 낮추어 물었다.
다비드는 흠칫 고개를 들더니, 근처에 우리뿐인 것을 확인하고는 모기만 하게 속삭였다.
“침대에 누우시자마자 여섯 살로 변하셨습니다.”
“어후.”
나는 앓는 소리를 내며 옆을 확인했다.
뱅자맹은 분명히 태자가 어려진 걸 보고도 모른 척하는 것 같았고, 요한 경도 마찬가지였고, 산트는······.
우리 사제님은 진짜 모른다. 짱.
“예······. 의식을 잃은 뒤에도 본능으로 버티신 듯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전하의 영혼에 새겨진 강박이지요.”
“······.”
“밤새 열이 끓어 고생하셨습니다. 현재는 제 모습을 되찾으신 상태입니다.”
소리 없는 한숨이 넘어갔다. 다비드는 이해한다는 양 머리를 주억였다.
이내 우리는 커다란 막사 앞에 섰다.
초고속으로 지은 것 치고는 구색을 제대로 갖춘 천막이었다.
철컹, 척, 척! 갑주를 입은 기사들이 절도 있게 예를 차리고 입구를 열어주었다.
그 몇 걸음을 걷는 동안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빙의 사실은 크리스텔이 함께 있을 때 털어놓고 싶으니 제외한다 치더라도······.
일단 여기서 밝힐 수 있는 걸 전부 밝히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태자의 평민 친구? 안전을 생각하면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성약은 당연히 말도 안 되는 거다.
내가 리에스테르 사학자는 아니지만, 황위를 이을 사람이 평민과 반려 맺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았다.
게다가 나는 언젠가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왔군.”
움찔. 멋들어진 중저음이 들렸다. 나는 반짝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어슬어슬한 막사 안엔 우리뿐이었다.
중앙에 놓인 거대한 식탁에는, 누가 봐도 아침부터 먹기 과한 산해진미가 펼쳐져 있었다.
돌아와서 배불리 먹어본 적이 없다 보니 절로 침이 고였다.
황족은 보신도 끝내주게 하는구나.
그리고 가장 높은 자리엔, 암적색 캐노피 커튼이 침상을 가리고 있었는데······.
“후작.”
태자의 목소리는 그곳에서부터 들리고 있었다.
인제 보니 떡 벌어진 그림자가 설풋 비쳤다.
밖으로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아직 상태가 나쁜 모양이었다. 그럼 더 쉬지는.
“전하께 인사를 올려주시지요.”
그때 뱅자맹이 조심스레 속닥였다. 나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눈을 끔뻑였다.
‘번거롭군.’ 태자 녀석은 인내하지 않았다.
“앉지. 세레니테.”
씹어 뱉는 투였다. 이쯤 되니 진심으로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뭐라고?
“그게 황궁 밖에서 드는 마지막 식사일 테니.”
······어? 저건 내 아침밥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