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35)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35화(35/920)
#035 신국의 난봉꾼 (1)
“인터뷰라니, 무슨······.”
“설마 <격주간 리에스테르>입니까?”
당황한 나 대신 엘리자베트 경이 질문을 꺼내들었다.
뱅자맹의 심각한 얼굴이 그녀에게도 조금 번지는 모양새였다.
<격주간 리에스테르>라면, 내가 이곳에 온 뒤로 제일 열심히 읽은 사교계 잡지였다.
제국의 귀족 절반이 정기구독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정기구독 하는 친구와 함께 읽는다는 그 출판물.
“그렇습니다. 편집장인 사라 벨리아르 경이 정식으로 폐하께 예서 왕자님의 인터뷰를 요청했고, 폐하께서 승인하셨다고 합니다.”
뱅자맹이 차분하게 설명하며 티 테이블 위로 코코넛 케이크를 서빙했다.
나는 포크를 집어 들면서도 머릿속을 채우는 여러 의문을 떨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웬일인지 모르겠군요. 지금까지 조용했잖습니까.”
“실은, 조용하진 않았습니다.”
내 말에 뱅자맹이 신중하게 말문을 열었다.
나는 푹신한 케이크를 한 입 떠먹다말고 그를 바라보았다.
“잘 아시겠지만, 왕자님께 오는 귀족들의 사적인 서신은 황제궁에서 전부 걸러내고 있습니다. 선물 역시 어떤 의도일지 몰라 황실 금고에 보관해두고 있지요.”
“네, 그렇죠.”
“언론의 접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격주간 리에스테르>는 왕자님께서 입궁하신 날부터 줄곧 단독 인터뷰를 청해왔습니다. 최근까진 폐하께서 모두 물리셨지요.”
역시 그랬군. 뭐, 나야 관심에서 멀어질수록 좋으니 고마운 일이었다.
“태도를 바꾸신 이유가 궁금하네요.”
내가 대답했다.
좀 당황스럽긴 하지만 인터뷰라면 못 할 것도 없었다.
물론 살면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노동이긴 하나, 시키는 대로 대답 잘하고 곤란한 건 모르쇠로 일관하면 될 성싶었다.
황제궁에서 내게 원하는 바가 있다면, 무리한 게 아닌 이상 나는 고분고분 따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삼시세끼 밥 잘 나오고 등 따수운 곳에서 돈 받으며 지내는데, 내 목숨줄을 쥐고 있는 사람이 까라면 까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다만 갑작스레 인터뷰를 하게 된 배경이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프랑수아 뒤엠 후작 때문입니다.”
뱅자맹이 한숨을 섞어 답변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엘리자베트 경이 ‘그렇게 된 거군요’ 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는 그녀와 뱅자맹을 한 차례씩 돌아보았다.
프랑수아 뒤엠 후작이라면, 뒤엠 근위대장의 형이자 ‘마수 대토벌’의 주최자였다.
신물 ‘화성의 혜검’을 이번 대회의 우승 상품으로 내걸겠다고 선언해서 추기경의 속을 뒤집어놓은······.
아.
“혹시 화성의 혜검 관련 보도를 미루는 대신, 제 인터뷰를 허락하신 겁니까?”
“맞습니다.”
곧장 돌아온 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와 관련해선 추기경의 설명을 들은 적이 있었다.
잡지책의 증보판을 발행해서라도 뒤엠 후작의 발표를 알리고 싶어 했다던 사라 벨리아르 경이 떠올랐다.
후작이 이미 우승 상품을 떠들어댔다고 해도, 그것이 제국 최고의 영향력을 지닌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과 그냥 소문으로 도는 것은 천지차이일 터였다.
“평소 폐하께서는 귀족들을 느슨히 풀어두시는 편입니다. 그편이 덜 성가시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이지요. 귀족들도 어지간하면 폐하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한에서 자유를 누립니다.”
“이번 언론 통제가 특별한 경우라는 말씀이시군요.”
“예. 이런 적이 거의 없으니, 보상을 주는 쪽이 깔끔하다고 판단하신 듯합니다.”
그리고 그 보상이 나였다.
여지를 남겼다가 자꾸 귀찮게 구는 꼴을 보느니, 원하는 떡밥 하나 던져주고 벨리아르 경을 조용하게 만들겠다는 의지였다.
“인터뷰 날짜는 언제인가요?”
내가 물었다.
“내일 오후 2시에 황제궁에서 진행된다고 합니다.”
빠르네. 나는 속이 노랗고 달콤한 케이크를 입안에서 부지런히 녹였다.
하긴, 백수인 볼모를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써먹겠나 싶었다.
마수 대토벌은 내가 가겠다고 나선 것이기도 하니 애써 머릿속에서 제외했다.
“왕자님, 벨리아르 경을 조심하십시오.”
맞은편에 앉은 엘리자베트 경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나는 케이크를 공격하던 손을 멈추고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다.
“저도 몇 달 전에 그분에게 크게 털릴 뻔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부근위대장이 자신의 왼손을 들어보였다.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가 다사로운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엘리자베트 경을 처음 만나던 날에도 봤던 장신구였는데, 가운데에는 화려한 보석이 박혀 있었다.
“옐로 다이아몬드입니다.”
“신기하네요.”
진짜 예서 왕자라면 살면서 자주 접했을지 모르는 보옥이지만, 나는 처음이었다.
내 반응에 그녀가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약혼은 어디까지나 사생활인데도, 제가 무테 백작가의 후계자라는 이유로 어떻게든 파헤치고 싶어 하더군요. 상대하기 편한 분은 결코 아닙니다.”
역시 약혼반지였구나.
상대가 누구인지 궁금하긴 했지만, 엘리자베트 경이 먼저 말하지 않는 걸 캐묻기도 조금 그랬다.
아무튼 내가 살던 곳이나 여기나 유명인을 쫓는 언론의 태도는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애초 ‘퇴계공’의 작가가 한국인이니 당연한 건가 싶기도 했다.
나는 며칠 전 신전 고해소에서, 날카로운 눈매로 내게 말대꾸하던 세이디를 떠올렸다.
‘다른 사람의 고해 성사를 함부로 들어선 안 돼. 그건 비밀로 하는 거야.’
‘사라 벨리아르는 그런 배려를 받을 자격이 없어.’
그건 무슨 의미였을까.
꼬마의 세찬 반응도 그렇고, 인터뷰가 ‘나쁜 소식’이라고 전하는 뱅자맹도 그렇고, 엘리자베트 경이 시달렸다는 말도 그렇고.
그냥 벨리아르 경이 흔한 ‘기레기’라는 뜻인가?
‘······감사합니다.’
여인의 나이든 목소리가 여태 귓가에 생생했다.
그녀는 아픈 손자가 있고, 그것 때문에 딸 내외와도 사이가 멀어졌다는 사람이었다.
물론 사연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허물이 덮여서는 안 되지만······.
그래, 마음을 어느 한쪽으로 기울인 채 누군가를 만나선 안 된다.
나는 그 사실을 잊지 않고자 케이크를 꼭꼭 씹었다.
“어려운 질문은 모른다고 잡아떼고, 쉬운 질문도 최대한 단답으로 응하겠습니다. 그럼 되겠죠.”
내가 씩 웃으며 말했다.
엘리자베트 경이 ‘바로 그런 자세입니다’ 하며 나를 추켜세웠다.
뱅자맹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거리면서도 다소 심려하는 낯빛이었다.
-끼이
그때쯤, 정원의 관목 사이에서 데미가 뽈록 솟아났다.
신나게 뛰어놀다 허기를 느낀 모양이었다.
나는 녀석에게 작게 썬 망고 조각을 내밀며 머리를 비웠다.
어제 마수를 다섯 마리나 잡았고 궁에 돌아와서는 또 내내 공부만 했는데, 내일의 일 정도는 내일의 내가 해결하게 두고 싶었다.
*
어제의 나는 진짜 안일한 놈이었다. 넌 왜 네 생각만 하냐?
“딱히 화장이 필요하신 얼굴은 아닙니다. 화려한 색상도 잘 소화하시는 편이고.”
“그렇군요, 피부가 워낙 깨끗하셔서.”
커다란 붓 같은 걸 손에 쥔 황궁 분장실 실장님과, 봄 무도회 때 만난 적이 있는 의상실 실장님이 나를 높은 의자에 앉혀놓고 이러쿵저러쿵 토론을 시작했다.
황제궁의 수많은 빈방 중 하나가 내 시중을 드는 이들로 그득했다.
진짜 부담스럽다······.
아침 댓바람부터 쥘리에트 궁으로 우르르 몰려온 황제궁 사람들은, 나를 욕조에 넣고 빨래하려고 눈에 불을 켰다.
사라 벨리아르라는 언론계 명사가 황실 군식구의 인터뷰를 따냈다는 소식이, 아무래도 내 생각보다 훨씬 큰 파장을 일으킨 모양이었다.
나는 ‘혼자 씻게 해주지 않으면 오늘 종일 굶겠다’고 말하고 나서야 모든 시종이 내게서 떨어져나가는 기적을 경험했다.
당연히 배곯을 생각은 없었지만 그 으름장이 먹혀 천만다행이었다.
“예서 왕자님 피부는 그거죠. 여름 쿨톤.”
소파에 앉아 난리통을 구경하던 크리스텔이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했다.
이거 분명히 은서도 몇 번 언급한 적이 있는 단어 같은데, 무슨 의미였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났다.
대충 ‘여름에도 시원한 피부’ 아니면 ‘여름에 더 괜찮아 보이는 피부’인 듯했다.
어쨌든 지구에서나 통하는 말일 테니 나는 모른 척 화제를 돌렸다.
“댁에 안 가보셔도 됩니까?”
왜 여기서 시간 죽이고 있습니까, 집에 가세요.
그런 의미로 꺼낸 말이었으나 크리스텔은 조금도 밀려나지 않았다.
“원래 수업 빼고 하는 거면 뭐든 재밌잖아요.”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입을 다문 나를 보고 쌕 웃더니, 의상실에서 골라온 내 옷들을 흥미롭게 구경했다.
오후 2시 인터뷰면 당연히 점심 먹고 시작하는 건 줄 알았다.
오전부터 다들 유난을 부릴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고, 이번만큼은 뱅자맹과 가나엘도 꽤 놀란 눈치였다.
앞으로는 황제가 개입하는 일이면 무조건 야단이 날 걸 상정해야 할 듯했다.
추기경과의 금요일 수업은 취소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텔이 놀러온 게 오늘의 사소한 불행 중 하나였다.
“제가 저택에만 있으면 어머니께서 걱정이 많으시거든요.”
“······.”
주인공이 불쑥 내뱉었다.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저한테 잘해주시는 분이 마음 아파하는 걸 보는 게 쉽지 않습니다. 어머니에 관한 기억이 별로 없는데도요.”
‘그러니까 나올 수 있으면 나와 있는 겁니다’ 하고 그녀가 말을 맺었다.
이자벨 드 사르네즈 공작 부인은, 여전히 딸에 대한 근심을 내려놓지 못한 모양이었다.
어떤 부모가 그걸 해낼 수 있겠느냐만······.
그 말에서 크리스텔의 성격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그녀는 은서에게 들은 대로 잔정이 많고, ‘언니 같은’ 인물에게 약한 모양이었다.
빙의한 사람이 이십 대 회사원이라고 치면 삼십 대의 공작 부인을 언니처럼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말 잘 듣는 생머리라서, 그냥 빗기만 하면 되겠습니다.”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는데, 내 머리를 조심스럽게 넘겨보던 분장실 실장님이 대단한 발견을 한 양 선언했다.
아니, 무슨 아이돌도 아니고······. 됐다, 화장 안 하는 게 어디냐.
그거 지우는 것도 일이라고 은서가 엄청 귀찮아했는데.
*
“이쪽으로는 처음 와 보는데, 진짜 화려하네요.”
크리스텔이 천장 벽화를 올려다보며 감탄하듯 말했다.
어쩌다 보니 황제궁에서 나와 함께 점심을 먹고, 인터뷰 장소까지 동행하게 된 그녀는 몹시 즐거운 기색이었다.
어머니 얘기를 하며 어두운 안색을 하는데 도저히 더는 축객할 수가 없었다······.
“그렇군요.”
나 역시 추기경 집무실과 식당 외에는 드나들지 않아, 황제 집무실 근처까지 와 본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우리는 길을 안내하는 황제궁 시종 하나를 앞세우고, 뒤에는 뱅자맹과 가나엘을 대동한 채 황제궁의 널찍한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이 분은······.”
크리스텔이 벽지의 문양을 유심히 관찰하는 사이, 나는 황제 집무실 정면의 거대한 초상화와 눈이 마주쳤다.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못 알아볼 수가 없는 얼굴이었다.
“알렉상드르 국서 전하이십니다.”
뱅자맹이 내 의문에 답했다.
알렉상드르 리에스테르. 공작위를 버리고 사랑을 택했다는 남자.
세상을 떠난 황제의 남편은 이제 배우자의 방 앞에 그림으로만 남아 있었다.
전체적으로 세드리크 황자와 꼭 닮은 외모였으나, 검은 머리칼이 허리까지 내려오고 눈은 심해처럼 짙푸른 색이라는 점이 달랐다.
‘전율의 대마법사’······.
“전하.”
그때, 가나엘의 황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부티에 추기경이 나타났나 싶어 뒤를 돌았다.
인터뷰를 참관하겠다는 말은 없었는데.
“······.”
“······.”
그러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추기경이 아니었다.
“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내 옆에 선 크리스텔이 먼저 인사를 올렸다.
잠시 당황해 있던 시종들도 서둘러 예를 차렸다.
고요히 우리를 바라보는 초상화와 달리, 천천히 걸어오는 그의 눈은 선명한 노을빛이었다.
나는 세드리크 황자와, 그보다 한걸음 뒤에서 발소리를 내고 있는 여인에게 침착히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황자님. 벨리아르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