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352)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352화(352/920)
#352
불꽃 대 물꽃 (2)
스네이더르 공작령, 스타티아 평야.
어느덧 석양이 내리고 있었다. 밤이 낮보다 가까운 시각이었다.
-콰과과과······!
“흐아아악!”
“다시 온다! 전열 재정비!”
“방어 마법식 가동 준비! 잊지 마라! 너희가 제국의 방패다!”
지난한 싸움은 끝이 없었다. 광활한 녹색 벌판 곳곳에 붉은 얼룩이 졌다. 노을 때문만은 아니었다.
멀쩡한 땅이 갈라지고, 깊은 곳에서 흙더미가 치솟고, 쓰러진 풀은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제국군과 신국군은 서너 시간을 싸우고 각자 군영으로 퇴각했다가 돌아왔다.
일거에 모든 힘을 쏟아붓는 총력전이 아닌 이상 당연한 전략이었으나, 황태자를 비롯한 리에스테르 지휘관은 페네티안이 무엇을 의도하는지 알았다.
-파앗! 화르르륵―!
“아아악! 아아아악!”
“뜨거워! 뜨거워, 뜨거워, 끄아아악!”
온몸에 불이 붙은 적군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내달렸다.
세드리크는 그들에게 오랜 시선을 두지 않은 채 끊임없이 혜검을 놀렸다.
상대방의 검을 베고, 창을 빼앗아 던지고, 날아오는 화살을 세 동강 냈다.
‘퍼어억!’, ‘크하악!’ 갑옷을 걸친 샤를마뉴가 뒷발로 적을 걷어찼다.
‘지이이잉!’, ‘우우웅, 파아아아―!’ 사방에서 마법식 열리는 소음과 마나 폭발음이 작렬했다.
태자는 묵묵히 전황을 살피며 싸웠다.
살인이 쉬워지는 감각은 조금도 유쾌하지 않았다.
불현듯 익숙한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그, 괜찮으십니까?’
후작은 전방을 떠나기 전에 그리 물었다. 무엇이?
‘태자님은 이번 전쟁 전까지 아무도 죽여본 적이 없으시잖아요.’
무척 조심스러운 음색이었다. 갈색 눈썹이 아래로 늘어졌다.
‘몸도 그렇지만 정신적으로 많이 힘드실 텐데······. 영혼 치료가 필요하지는 않겠습니까? 바카리 군도 같이요.’
‘······.’
‘도움은 가까이에 있습니다. 언제든 편히 찾으셔도 됩니다.’
우습지도 않았다.
치유 신관에게 저의 그릇을 열어 보이고 영혼의 위로를 받으라는 헛소리를,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외상 치료야 얼마 전부터 받기 시작했지만 나머지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대모님이나 반려가 아닌 신관에게 속을 노출하는 일 따위는, 그가 눈 감을 때까지 없을 터였다.
전쟁이란 본디 이런 것이다. 그렇게 글로 익혔고 이제는 몸으로 배우는 중이다.
출전을 허한 어머니께서도 이를 모르시지 않았다.
이것이 불만이라면, 그자가 직접 이곳으로 오면 되겠지.
“전하! 여전히 추기경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저편에서 아군 지휘관이 쩌렁쩌렁 외쳤다.
세드리크는 헛생각을-쥘리에트 궁주가 최전방에 출현하는 일 따위-집어치우며 미간을 찡그렸다.
아주 멀리, 평야 저편에 진을 치고 있는 페네티안 군영이 보였다.
시야는 희미했으나 직감은 확실했다. 느껴지는 기운은 확실하건만 나타날 기미가 없다.
추기경급 성기사들이 온종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곳에서 제국군을 상대하는 이들은 모두 그들보다 몇 수 아래였다.
-푸우욱! 쓱, 쓱!
“크하아악!”
필시 블랑케르 공작과 변경백이 도착하기 전까지 시간을 끌어, 이쪽을 지치게 하려는 속셈이다.
대주교급 성기사들로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오만이 느껴져 이가 악물렸다.
그렇다고 전선을 물릴 수는 없으니 버텨야 했다.
세드리크는 핏방울 튄 뺨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다소 피로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서쪽 하늘에서부터 진한 남보라의 장막이 드리우고 있었다.
곧 달이 뜨고 어둠이 깊어지면, 그의 시간이 될 것이다.
제국군은 승리한다.
“죽어라, 태자여!”
어느 대지 속성의 성기사가 태자의 발밑을 노렸다.
‘쩌저저저적―!’ 그녀의 손끝을 따라 토양이 갈라지고 꽃은 먼지로 변했다.
대주교의 에테르는 날카롭고 맹렬했다.
크리스텔 랑부예와 대련하며 느꼈던 감각은 간지러운 수준이었다.
‘히히힝!’ 세드리크는 빠르게 샤를마뉴를 움직여 위험 구역을 벗어났다.
‘으아아아!’ 찢어진 대지 틈바구니로 아군과 적군이 가리지 않고 쏟아졌다.
신국 병사들은 제국군과 비교해 확실히 집중력이 떨어졌다.
전투가 길어져서가 아니라, 명백히 정신을 흩트려놓는 외적 요인이 있어서였다.
아마도 ‘전단’ 때문이리라.
‘태자님, 들어보십시오.’
‘제가 전략을 세우고 태자님의 지휘를 도우면―’
그렇게 돕고 싶다고 떼를 쓰더니, 성공했군.
“국서 전하를 그리 만든 죗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기사가 저렁저렁 위협하며 마구잡이로 팔을 휘둘렀다.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것을 보니 진심이었다.
세드리크는 틈을 노리는 병사들을 쳐내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홱, 홱, 홱!’ 여인이 손을 뻗는 곳마다 성인 몸뚱이 굵기의 넝쿨들이 솟아올랐다.
‘콰르르, 쿠르르, 콰르르릉!’ 그러나 사내에겐 익숙한 모양새였다.
제국엔 대지 속성의 신수가 셋이나 있었으므로.
“감히 고귀하신 분의 옥체를 상하게 하였느냐! 왕자 전하를 해친 것도 네놈들의 자작극이렷다!”
“끈끈이주걱과 파리지옥이 끝인가?”
태자가 쥘리에트 높이의 식물을 보며 한심하다는 듯 물었다.
기사는 약이 바짝 오른 얼굴로 채찍처럼 손목을 내둘렀다.
‘쩌어어억―!’ 아가리를 벌린 식물들이 뱀처럼 꿈틀거리며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메다 꽂혔다.
삽시에 포위당한 세드리크에겐 도망칠 곳이 없었다.
‘쌔애애액!’ 매서운 흙바람이 일고 새카만 머리칼이 빠르게 흩날렸다. 한 쌍의 가닛이 순식간에 가늘어졌다.
“사라세니아가 없다니 유감이군.”
“뭐,”
-탓!
안장 위 사내의 그림자가 사라졌다. 그리고 빠른 소리가 허공을 그었다.
-휙휙! 휙! 쌕!
‘화르르르, 콰아아앙!’ 피보다 붉은 불꽃과 함께 굉음이 터졌다.
칠흑의 검광(劍光)이 지나간 자리에서, 거대한 식충식물 다섯 그루가 조각조각 무너지기 시작했다.
‘꾸르르럭······.’ 진액이 끓는 아가리가 초석 잃은 탑처럼 와르르 쓰러지고, 성화는 밀물처럼 퍼져나가 적을 둘러쌌다.
삽시에 장갑을 벗어 던진 태자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양 인상을 썼다.
아무리 허황한 분노에 눈이 멀었기로서니, 대지 속성이 불 속성에게 덤벼드는 경우가―
“얕은 수작.”
-딱!
‘화르르륵!’ 그가 오른손가락을 튕김과 동시에 성기사의 발치에 불이 붙었다.
‘이후는 제게 맡기십시오!’ 잽싸게 등장한 마르그리트가 롱 소드를 쥐고 그녀에게 덤벼들었다.
세드리크는 즉시 왼팔의 혜검을 뒤로 휘둘렀다. ‘카가가강!’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저쪽이 물량과 덩치로 시선을 끄는 사이, 에테르 없는 검사가 등을 노렸다.
‘끼긱, 끼긱, 끽······.’ 맞부딪힌 날붙이 사이로 불씨가 튀었다.
주변은 온통 혼전(混戰)이었다.
“큿, 일국의 태자라는 자가 어찌 이웃의 국서를 벤단 말이오!”
“······.”
“왕자께서 부활하셨다고? 그런 망언을 퍼뜨리는 것이 두렵지도 않소이까? 돌아가신 분께 죄스럽지도 않으냐는 말이오!”
‘주신의 저주를 받을 것이외다!’ 노령의 여인이 우렁찬 고함을 질렀다.
기세를 확실히 죽일 줄 아는 자이니 상급이 틀림없다.
검에 오라가 맺히지 않으니 소드마스터는 아니다.
경륜이 느껴지는 자세엔 흔들림이 없으며, 날의 힘을 온전히 단전으로 떠받치고 있다.
따라서 저와 같은 8급이거나 이에 준한다.
체격 또한 엇비슷하니 검으로 맞서자면 쉬운 상대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드리크는 로메로 리에스테르의 증손주였다.
‘귀곡성의 마검사’라고 불리던 선황의 핏줄.
-우우우웅!
“크흑!”
“그토록 뒤틀린 믿음을 품고 있다니······. 경의 검이 아깝군.”
‘파아아앗!’ 태자의 몸에서 핏빛 마나가 솟구쳤다.
동시에 노장의 검이 삐걱삐걱 기울고 휘기 시작했다.
어찌나 분통했던지 여인의 치아 사이로 붉은 핏물이 배어 나왔다.
강력한 신력과 마력을 등에 업은 혜검이 느릿느릿 적의 무기를 갈랐다. ‘끼릭, 끼기긱―’
태자는 그녀가 죽음을 각오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저도 지쳤으나 상대 또한 추기경들을 대신하느라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투항을 권유하는 일은 노인에게 지독한 모욕이 될 터였다. 그의 눈매가 어두워졌다.
“읏, 크헉······.”
“예서 페네티안은 죽었을지 모르지.”
“그게, 무슨,”
“허나 세레니테는 아니야.”
-카가강!
검이 부러지기 무섭게 태자가 날랜 몸놀림으로 여인을 돌려찼다.
‘퍼어억!’ 주르륵 미끄러진 노인은 핏줄기를 떨구며 짧은 목검을 홱 뽑았다.
날끝에서 빛이 날 만큼 뾰족한 칼이었다.
세드리크는 혜검을 한 번 휘돌리며 다시금 싸울 준비를 했다.
그녀의 뒤편, 저의 뒤편, 온 천지에서 허무한 목숨이 스러지고 있었다.
단말마의 비명이 분 단위로 고막을 찔렀다.
제대로 맞서는 것은 서로에 대한 마지막이자 최소한의 예의였다―
-번쩍!
그때,
-우르릉, 콰가가강!
‘청천벽력’! 누군가의 특기가 여인을 향해 내리꽂혔다.
‘치이이익······!’ 순식간에 전깃불에 타버린 적수를 보며 세드리크는 와락 미간을 구겼다.
이는 저뿐만 아니라 전사한 이에게도 결례였다.
저자는 훌륭한 싸움꾼이었고, 저와 결투 중이었다.
노한 샤를마뉴가 앞발을 구르며 콧숨을 내쉬었다. ‘푸르릉!’
-탁!
하늘에서 가뿐히 뛰어내린 지브릴 디오프가 쌕 웃어 보였다.
황가의 루비를 박아 넣은 지팡이가 남자의 손아귀에서 흔들거렸다.
‘치직, 치지직!’ 붉은빛 금발은 전기가 올라 환히 빛나고 있었다.
“벌써 밤입니다, 전하. 명예니 허울이니 하는 것도 좋지만 전장에서는 속전속결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
“천만의 말씀.”
그가 우스꽝스레 절하고 지팡이를 휘두르며 멀어졌다.
춤추듯 전기파를 휘두르는 꼴이 짜증스러웠으나―
-카강! 콰과과광!
-푹, 퍼억! 푸슈슉! 서컹!
“덤벼라! 주신께서 제국의 태양과 달을 비호하신다!”
“와아아아아!”
“······.”
공자의 말이 옳았다. 어느새 하늘은 별의 서식지가 되어 있었다.
샤를이 빠르게 다가와 세드리크의 곁을 지켰다.
둘의 주변은 마르그리트와 다른 지휘관들이 철저히 엄호했다.
태자는 애마의 목을 두드리며 차분히 신검(神劍)을 내려다보았다. 과연.
-사아아아······
칼자루 끝에 박힌 혈색의 보석이, 황홀한 빛을 뿌리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모데스트 바카리의 예언이 정확히 들어맞았다.
혜검은 이따금 몹시 비범한 방식으로 주인에게 말을 걸곤 했다. 예컨대 지금처럼.
‘주군.’
두근.
‘기회.’
두근.
‘몰살.’
두근.
짧고 굵직한 단어들이 사내의 머릿속을 뜨겁게 울리고 지나갔다.
낮은 음성 또한 자신의 것이었다.
곧장 목덜미가 뜨끈해지고, 눈앞이 붉게 달아오르다 잦아들기를 반복했다.
이어 열화처럼 맹렬한 충동이 그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이는 세드리크가 혜검에 지배당하거나 이에 종속되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세상에서 가장 호전적인 이 신물은, 하나뿐인 주인을 군신(軍神)으로 추대하고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의 명에 무조건 복종하려 했으며 저의 신술을 드러내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다.
주인인 세드리크가 이를 모를 리 없었다. 혜검은 충직한 다혈질이었다.
‘형혹(熒惑).’
두근!
태자는 일순 새빨갛게 번지는 시야를 황급히 들었다. 드디어 나타났다.
“······.”
편히 누운 손톱달 옆에서, 붉디붉게 빛나는 행성이 보였다.
저것은 주신의 은반을 지키고자 떠오른 그녀의 홍옥이었다.
그를 보는 순간 심장이 격렬히 쿵쾅거리고 온몸에 열이 돌았다.
세드리크는 들뜬 호흡을 가까스로 다스렸다.
검은 망토와 머리칼이 하염없이 흔들렸다.
‘화성이 53년 만에 가장 가까워지는 밤입니다. 다음 접근은 대략 47년 뒤일 것입니다.’
‘혜검에 그런 이름이 붙은 데는 이유가 있겠지요. 교황청 추기경들은 신물이 그날 반드시 기적을 보이리라 믿고 있습니다.’
‘부디 옥체를 아끼고 승리하십시오.’
바카리의 음성이 머릿속을 윙윙 울렸다.
화성(火星). 태자를 수호하는 불의 천체.
“와아아아아······!”
퍼뜩 정신이 났다. 수중처럼 웅웅거리던 소리가 일시에 귓가로 쏟아져 내렸다.
“전하를 지켜라! 물러서지 마라!”
“마르그리트, 뒤!”
-푹, 푹, 푹! 콰과가강!
동생이 적군의 몸에 날붙이를 던져 꽂자, 오라비는 이를 피뢰침 삼아 번개 마법을 내리쳤다.
머나먼 페네티안 막사 쪽에선 투석기 몇 대가 움직이고 있었다.
전투가 너무 길어진다고 판단한 것이 분명했다.
세드리크는 이제 욱신욱신하는 왼팔을 내려다보며 고뇌했다.
혜검이 무엇을 바라는지는 명백했다.
지금이라면 확실히, 온 대륙을 놀라게 할 신술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쯧.”
그러나 당장 이곳엔 추기경들이 없었다.
기술의 영향력과 에테르 소모량을 가늠할 수 없는데, 함부로 혜검을 휘둘러서는 곤란했다.
제가 일격 후 나가떨어질지 모르니, 반드시 그자들이 눈앞에 있을 때 써야만 했다.
그러자면 버텨야 했다. 태자는 허공에 손을 뻗으며 입을 악다물었다.
혜검의 충동질이 갈수록 거세지는 탓이었다.
‘즉시.’
“큭, 적당히.”
잇새로 신음 같은 명령이 터져 나왔다.
세드리크는 에테르 대신 마나에 집중하고자 애썼다.
‘우우웅! 파바바박!’ 전사자의 몸에 박힌 도검을 뽑아 사방의 적들에게 쏘아대고, 널따란 방어 마법식을 펼쳐 부하들을 지켰다.
하지만 그의 그릇은 이미 임계점을 돌파한 상태였다.
‘주군.’
두근, 두근, 두근!
“입 닫아.”
안 된다. 곤란했다. 이런 순간에 쓸 수는 없었다.
태자는 비틀대는 몸을 말에 기대며 매서운 자극과 욕구를 악착같이 견뎌냈다.
목이 바짝바짝 타고 열 오른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파아아아······!’ 혜검이 선홍의 광채를 뿌리며 본격적으로 불티를 피워올리기 시작했다.
안 돼.
-사아아아!
“물······.”
사내가 나직이 속삭였다.
전장의 모든 소음이 다시 멀어지고, 이내 미칠 듯한 갈증이 일었다.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비를 갈구했다. 진심이었다.
는개라도 좋으니 작금의 열기를 식힐 수만 있다면―
-톡!
흠칫. 세드리크는 믿을 수 없는 촉감에 눈을 떴다.
그의 입술에 익숙한 성수(聖水)가 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