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376)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376화(376/920)
#376
독성(瀆聖) (5)
“으응? 내, 내가 그런 걸 할 줄 알았던가?”
연기 허접해요!
“네! 그때 골렘을 뜻대로 움직여서 태자님과 요한 경을 도왔잖아요. 신화급 마수를 물리치던 밤에요. 어떻게 한 겁니까?”
‘뭐든 도울 테니 협조해 주세요!’ 나는 간곡히 부탁했고, 그 순간에도 초대형 골렘은 한 발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창백해진 카르메가 턱을 벌벌 떨며 놈을 올려다보았다.
“그냥, 그냥 도망치면 안 될까? 다들 무섭긴 마찬가지잖아!”
“저놈이 우리를 쫓아오다 어디로 샐지 모릅니다. 비무장한 신국 마을을 노릴 수도 있고, 제국군을 덮치면 일이 더 커질 거예요. 당장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니 가능하면 이곳에서 막아야 합니다!”
-쿠구웅!
마물은 덩치가 어찌나 큰지, 정수리가 구름에 걸리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블랑케르 공작령에서 마주친 녀석은 초등학생, 국경으로 가는 길에 만난 놈은 학부모.
저쪽은 그 댁 할머니쯤 될 성싶었다.
쿠우웅······! 쿠구구웅······! 느린 걸음이 땅을 파괴할 때마다 골이 울리고 귀가 아팠다.
‘주신의 심판자’씩이나 되는 존재가 왜 이리 흔한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파브리스는 혀를 깨물지 않고자 애쓰며 기도를 올렸다.
이를 악문 엘리자베트 경이 기사들을 지휘했다.
“우리는 달아나는 무리를 추적한다! 기절을 시켜서라도 끌고 와, 절대 놓치지 마라!”
“예! 부근위대장님!”
-콰가가강······!
그들이 일사불란하게 흩어짐과 동시에, 요한 경과 프랑수아가 쏜살같이 성지로 착륙했다.
나는 비틀거리는 후작을 재빨리 부축했다.
그와 성기사의 옷엔 선혈이 잔뜩 묻어 있었다.
찰나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불길하고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세상에. 다치셨습니까? 바로 치료해드릴게요. 성지를 해제할 순 없지만 구급약이 있습니다. 일단 상처를 보고,”
“아닙니다, 후작님. 다친 건 저희가 아니라······.”
식은땀에 젖은 프랑수아가 품에서 조그만 물건을 꺼냈다.
나는 대경실색하며 떨리는 손을 말아쥐었다. 아니, 이건 숨이 붙은 핏덩이잖아.
살아 있는 동물이라고.
“신수 같아요, 후작님. 기운이 너무 약해서 속성은 알 수 없지만요.”
먼저 제자들을 살핀 요한 경이 나를 보며 설명했다. 충격으로 말문이 막혔다.
프랑수아가 침착하게 뒷말을 받았다.
“지하에서 참혹한 실험이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구석엔 피실험자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골렘이 그쪽을 먼저 덮치는 바람에······.”
“예?”
“미쳤나 봐. 그게 무슨 소리예요, 자기?”
경악한 카르메가 입을 떡 벌렸다.
콰아앙, 콰과과강······! 완전히 성 밖으로 나온 골렘은, 이제 거대한 양팔을 휘둘러 성벽을 부수고 있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 공포에 질릴 만큼 포악하게.
천지가 진동할 만큼 요란하고 흉흉하게.
자신을 가두고 있던 감옥에, 화풀이라도 하는 양.
우리 쪽에 신물이 넷이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놀라운 행동이었다.
“실험에 쓰이는 약물을 확보했으니, 군영으로 돌아가면 어떤 약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생체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말씀이세요? 저기서 몰래?”
-쩌적! 콰아아앙!
무차별적인 소음 속에서, 내가 속삭이듯 물었다.
크리스텔과 황태자가 이쪽을 보며 귀를 의심하고 있었다.
제발 현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제발.
하지만 앞머리에 가린 연분홍빛 눈동자는 무척 슬퍼 보였다.
“예.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가장 어린 아이는 일곱 살쯤 되어 보였지요.”
“그럴 수가······.”
-콰콰콰쾅!
“신국에서 보기 드문 고위 마법사와 각종 마도구가 동원되었고, 설비 규모로 미루어 하루이틀 사이의 일은 아니었습니다. 자원이 넉넉해 보이더군요. 또한 ‘주군’이라는 자를 언급했습니다. 분명한 수뇌와 뒷배가 존재하는 겁니다.”
-쿠웅! 쿠우웅! 와르르르······!
나는 차가워진 손으로 프랑수아가 건네는 아이를 간신히 받아들었다.
두 손바닥에 폭 담긴 신수는 언뜻 새끼 고양이처럼 보였다.
작은 배가 가냘픈 숨으로 오르락내리락했고, 핏물이 엉긴 두 눈은 죽은 듯이 닫혀 있었다.
지나치게 끔찍하고 참담해 믿을 수가 없었다.
<퇴사했더니 이계 공녀> 세계관이 마냥 행복하고 아름다운 동화가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이건······.
-끼이이익, 콰과과광―!
이건 정말 너무하지 않은가. 이렇게 현실적으로 악할 필요가 있어?
“······내가 할게.”
그때, 등 뒤에서 단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일시에 카르메를 돌아보았다.
얼마나 세게 깨물었는지, 그녀의 입술에서 새빨간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새 물이 빠진 홍채는 대륙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갈색이었다. 나처럼.
“마나, 마나핵(核) 위치만 알면 돼. 그걸 빼내서 나한테 줄 수 있으면 더 좋고. 참, 구속구는 전부 풀어줘야 해요. 저만한 크기는 솔직히 조종하다 내가 죽을 것 같은데, 그래도 해야지 어떡하겠어요?”
덜덜거리는 목소리와 눈동자에서, 나는 그녀의 진심을 읽어냈다.
들풀처럼 자라난 분노가 원초적인 두려움을 이기고 있었다.
레서판다들이 내게 달려와 애처롭게 울었다.
나는 의식 없는 고양이(추정)에게 에테르를 불어넣으며 말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필요한 건 뭐든 지원하겠습니다. 핵 위치는 어떻게 압니까?”
“마나로 이루어진 놈이니 마나로 알죠. 마력을 엄청나게 쏟아부으면 반응이 있을 거예요. 핵이 있는 부위가 빨갛게 빛나거든? 그치만 공격은 절대 안 돼요. 그냥 순수한 마나로 저놈을 흠뻑 적셔야 답이 나온답니다.”
“그리하면 골렘이 마나를 흡수해 더욱 강해지지 않나?”
“당연하죠, 꿀단지.”
프랑수아가 물었고, 카르메가 눈 밑을 떨며 답했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마력을 소진해서 마나핵 위치를 파악하고, 골렘은 그걸로 힘을 얻고, 우리는 강해진 놈의 핵을 절단해서 당신 앞에 갖다 놓기만 하면 되는 거군요. 간단하네.”
간단하긴 개뿔! 내가 말해놓고도 눈앞이 캄캄했다.
핵이 골렘의 손이나 발 부분에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배나 등 쪽이라면 저놈의 마나가 바닥날 때까지 맞서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요한 경에게 전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친구들과 바삐 시선을 교환했다.
태자 녀석은 제 모습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고, 후작도 요 며칠 무리했다.
카르메가 마법사이긴 하지만, 그녀는 핵을 확보할 경우를 대비해 기운을 비축해야 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두 남자가 힘을 합친다고 하면―
“기회는 한 번뿐이겠군요, 전하.”
후작이 근사하게 웃으며 태자를 돌아보았다. 녀석은 묵묵히 턱을 까닥였다.
둘은 서로의 상태를 잘 알았다.
-쿠웅! 쿠웅! 쿠웅······!
“이제 이쪽으로 옵니다! 성은 다 부쉈나 봐요!”
‘두 분이 쓰러져도 우리가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크리스텔이 무시무시하게 안심되는 발언을 했다.
프랑수아는 붉게 물든 코트를 벗고 셔츠 차림으로 앞에 나섰다.
나는 마지막으로 태자를 보며 입 모양을 움직였다.
‘믿는다, 힘내.’ 미안하게도 그것밖에는 해줄 말이 없었다.
두 사람의 뒷모습 위로 빌딩처럼 웅장한 골렘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묵직한 발걸음에 바위땅이 쩍쩍 신음하며 갈라졌다.
이윽고 두 인형이 붉은 마나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파아아······!
‘끼이이, 끼이이.’ 나는 방울방울 눈물짓는 신수들을 달래며 입을 악다물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성안에 저런 마물이 도사리고 있었던 걸까.
설마 저걸 봉인해둔 건가?
이 고양이는 대체 뭘 잘못했다고 이런 꼴을 당해야만 했을까.
그곳에서 나와보지도 못하고 눈감은 사람들은, 그분들의 가족은······.
-콰르르르!
“조심하세요!”
나는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무너진 성의 잔해 일부가, 쿵쾅쿵쾅 언덕을 굴러 내려오고 있었다.
성지로는 막지 못하는 ‘악의 없는’ 재해였다.
내게 경고한 요한 경이 빠르게 손날을 움직여 칼날 같은 기파를 쏘아 보냈다. 파파파팟!
-오르르르······!
삽시에 파편으로 변한 바위들이 죽은 잔디 위로 나동그라졌다.
추기경이 카르메의 구속구를 파괴하는 동안, 나는 성지 안쪽까지 굴러온 돌을 흘끔했다.
부서진 이끼투성이 초석엔 화려한 양각이―
“잠깐, 저거.”
일순 전율이 일었다.
내가 잘못 봤나 싶어 몇 번이나 눈을 깜빡였다.
무언가 오해하고 있나, 다른 기억과 뒤섞였나 싶어 미친 듯이 머릿속을 더듬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몇 번을 다시 생각해 봐도 떠오르는 장면은 하나뿐이었다.
아름다운 미소. 달빛을 머금은 호수처럼 투명하고 푸른 머리칼.
눈물을 흘리며 조각조각 부서지던 여인.
「내 어머니의 야망은 신조차 모독할 만큼 크고 넓었습니다. 그런 마음이 쉬이 잠들 리 없습니다.」
율리터 스타티아.
그녀가 입었던 호사스러운 사제복 소매에, 분명히 저것과 같은 문양이 수놓아져 있었다.
스타티아 백작가의 문장(紋章)이.
“맙소사, 스타티아 백작가의 영주성인 것 같습니다!”
“네?!”
내가 외쳤고, 친구들이 기함하며 돌아보았다.
“율리터 사후 스타티아 평야는 스네이더르 공작가로 넘어갔다고 했습니다. 이곳이 드넓은 평야 일부고, 저기가 오늘날 공작가의 소유라면 모든 게 말이 됩니다! 그래서 율리터가,”
나는 잠깐 말을 멈추었다. 한발 앞서간 청회색 눈동자가 휘둥그레 커졌다. 그랬구나.
「페네티안 왕실을 조심하세요, 주신의 사랑을 받는 이여.」
당신은 그래서 그런 말을 했다.
‘스타티아 백작가의 쇠락에 페네티안 왕실이 얽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얽히지 않는 게 이상하겠죠. 율리터는 백작의 딸이자 양국 간 전쟁의 근원이었으니까요.’
‘몰락한 스타티아 가문의 이야기는 제대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왕자님.’
그래서······.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했다.
가공간의 끝, 균열 너머에 일부러 스타티아 영주성을 두었다.
당시 왕실에서 무엇을 꾀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려고.
그리고 어쩌면 현재의 스네이더르가, 그 유지를 이어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알려주려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서도.
“이걸 의도하고 우릴 여기로 보낸 겁니다. 골렘의 존재까지 알고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와, 어쩐지 듣도 보도 못한 데로 나왔더라니!”
가인 씨가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그즈음 전방의 거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함빡 젖은 채 마나 샤워를 하고 있었다.
-쏴아아아!
-우우우우······!
사방에서 쏟아지는 깨끗한 힘에, 이목구비가 없는 골렘이 노골적으로 ‘즐거워했다.’
육중한 몸뚱이 곳곳에서 붉은 기운이 풍풍 터져 나왔다.
희열에 취한 마물은 우리를 경계하지도, 공격하지도 않고 양팔을 벌린 채 서 있었다.
하지만 골렘을 기쁘게 해준 두 남자는 이제 한계인 것 같았다.
“윽.”
“프랑수아!”
마법사가 먼저 쓰러졌고, 나는 화드득 내달려 그를 받아 안았다.
그다음으로 의식을 잃은 태자를 크리스텔이―“아으, 너무 싫어!”―온몸으로 받쳐 바닥에 눕혔다.
고양이 신수를 걱정한 애물단지들이 튼튼한 나무줄기를 키워 나를 도와주었다.
그동안 높은 곳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사아아아!
“하, 정말로······.”
마나에 절다시피 한 골렘의 몸뚱어리에서, 눈부신 진홍의 빛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인간을 심판한다는 무서운 존재와는 어울리지 않는 찬란함이었다.
콰앙―! 크리스텔과 요한 경이 즉시 한몸처럼 튀어 나갔다.
자리에 앉은 나는 고양이와 친구들을 보듬고서 이를 갈았다.
마나핵이, 놈의 ‘정수리’에 자리하고 있었다!
“카르메! 보고 있습니까?”
“안 보고 싶어도 지나치게 잘 보여요, 자기!”
“두 분이 곧 목을 베어 떨어뜨릴 겁니다! 다시 본체에 붙으려고 할 테니, 잽싸게 달려가서 손에 쥐세요!”
“노력해볼게! 저렇게 큰 핵은 난생처음이지만!”
“염려 마세요.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저 골렘을 봉인한 건 당신의 선조들일 테니까요!”
“······뭐어!?”
놀란 여인의 음성이 짜랑짜랑 갈라졌다.
쌔애애액, 쿠웅! 허공에선 두 성기사의 협동 작전이 한창이었다.
이런 식으로 출생의 비밀을 알게 해서 미안해요!
“당신은 몰락한 스타티아 백작가의 핏줄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마법에 재능이 있던 가문 같습니다. 그러니 자신감을 가지세요!”
“세상에, 마상에! 나 지금 심경이 너무 복잡해!”
-콰카카카캉―!
그와 동시에 사포처럼 거칠고 날렵한 소음이 공기를 찢었다.
나는 후다닥 고개를 들었다.
날카로운 바람의 톱니를 두른 채찍이, 낫처럼 움직여 골렘의 목을 잘라내고 있었다.
요한 경이 제자의 무기에 자신의 힘을 불어넣은 결과였다.
이어 크리스텔의 얼음이 목덜미에 커다란 ‘가짜’ 머리를 만들어내 재생을 막았다. 쩌저저적―!
그러자 집채만 한 대가리가, 무너지는 빌딩처럼 서서히 기울었다.
우리의 눈동자가 튀어나올 듯 커졌다.
-끼이이익······
“떨어집니다, 카르메! 달려갈 준비 해요!”
“내가 백작가의 망나니가 되었단 말이야?!”
“진정하고 집중하세요!”
휘이이익! 중력을 거스르지 못한 머리통이 전속력으로 추락했다.
방향은 아주 좋았다. 거의 다 됐다, 저걸 잡기만 하면······!
-우우웅!
약 5m 상공에서, 골렘의 머리가 핏빛 기운을 뿌리며 멈춰 섰다.
제기랄, 회복이 너무 빨라!
-우우우웅······!
“안 돼, 안 돼, 안 돼.”
그러더니 다시 몸통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요한 경이 공기로 찍어눌러 막았지만, 놈은 만만치 않은 마력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나는 바쁘게 눈알을 움직이며 계산기를 두드렸다.
저만한 몸뚱이에 오랜 세월 고인 마나라면, 확실히 추기경의 일반적인 힘으론 짓누를 수 없을지 모른다.
최악의 경우엔 그가 성흔을 써야 한다.
하지만 그건 당사자에게 너무 힘든 일이고, 군영은 여기서 멀다.
요한 경이 지친다면 우리 모두의 안전이 위협받게 될 수도―
-번쩍!
그 순간 하늘에 번개가 쳤다. 내가 화들짝하며 신수들을 끌어안는데,
-콰르르릉! 쩌쩌쩍!
천벌처럼 떨어진 벼락불이 골렘의 대가리를 쥐어박았다.
-탁!
태어나 처음 보는 남자의 등장은 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