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416)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416화(416/920)
#416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서 (5)
비슷한 시각, 중립 지대 사막의 심장부.
-다그닥, 다그닥······
“워어, 워.”
‘히히힝.’ 호사스러운 황실 마차 행렬이 모래 위에서 속도를 늦추었다.
말들은 모두 암적색의 값비싼 천을 두르고 있었다.
대열을 호위하는 군마들은 또 하나같이 번쩍번쩍 빛이 나는 갑옷을 걸쳤다.
황실 근위대는 딱딱하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전방을 주시했다.
그들의 번뜩이는 병장기와 갑주를 발견한 사막 주민들이, 크게 술렁거리며 이편으로 달려왔다.
신전 앞은 문전성시였다.
대부분은 파괴된 건물을 보수하는 인력과 그들의 보조였다.
드문드문 신관들이 바쁘게 발을 놀리기도 했다.
“물러나시오! 추기경 전하께서 행차하십니다!”
“어이쿠, 맙소사!”
“리에스테르 제국의 추기경께서 행차하셨소!”
저렁저렁한 목소리에 숱한 시선이 쏠렸다.
이내 마차가 완전히 정지하고, 창밖은 크게 소란해졌다.
오렐리 부티에는 고요히 바깥을 살폈다.
나뭇가지처럼 부러져 꺾인 성전 기둥을 보니, 하나뿐인 제자를 잃었던 그날의 기억이 돌아와 마음이 소란했다.
경계의 신전은 무척 오랜만이었다.
생각해 보면 프레데리크와 성약을 맺고, 이곳에서 성장(聖杖)을 제작한 이후로 와 본 적이 없었다.
소식을 듣고 나온 교황청 병사들이 마차 앞으로 질서정연하게 늘어섰다. ‘척, 척척!’
“와아······.”
“사막이 처음은 아니지, 헤릿?”
소년의 탄성, 그리고 가나엘의 상냥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오렐리는 턱을 끄덕끄덕하는 헤릿을 보며 설핏 웃었다.
교황청의 인사 제도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저 아이를 구했던 시절도 있었다.
아프고 굶주린 핏덩이가 살고자 대륙을 가로질렀던 날들이 있었다.
그 역시 예서의 공이었다. 본인은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삐삐삐?
“네, 뚝심 님. 다 왔습니다. 여기가 경계의 신전이에요. 원래는 이것보다 훨씬 멋진데, 그때는 내내 주무셨으니 못 보셨습니다아.”
-아우웅
“티테 님, 이제 일어나셨어요?”
산트가 포대기로 안은 신수를 어르며 파안했다.
오렐리는 찻간에서 내리기 전 아이들의 상태를 찬찬히 확인했다.
가나엘을 데리고 온 것은 예서의 애마인 아름하르트를 위해서였고, 또 저에게 일손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시종장 로라와 나탈리에게는 선대 국서를 부족함 없이 보필하고 있으라 신신당부하고 나왔다.
산트는 한때 교황청 소속이었던 사제이니 도움이 될 법하여 데려왔다.
그러나 헤릿만큼은 완벽히 예외였다.
아이는 오렐리가 황궁을 떠나는 것이 확실해진 시점부터, 자신도 같이 가겠다며 떼를 썼다.
아무리 말려봐도 소용이 없었다.
‘헤릿, 그곳은 아주 위험할 수도 있단다. 우리는 네가 안전하고 따뜻한 곳에서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라.’
‘으으응.’
‘싫어? 여기엔 에바도 있고 조안도 있는데, 싫으니?’
‘으응.’
소년은 절대로 싫다며 고개만 저었다.
제 아비의 성정을 닮았는지 한 번 결심한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꺾는 법이 없었다.
그나마 에바의 설득엔 흔들리는 것 같았지만, 그 아이가 일정으로 먼저 궁을 떠나자 눈송이는 금세 돌멩이처럼 단단해졌다.
‘네가 넘어져서 생채기라도 나면, 네 아빠가 우리를 무척 미워할 거란다.’ 작은 코를 톡 두드리며 속삭인 말에도 끄떡없었다.
헤릿은 오렐리의 손바닥에 차근차근 손가락 글씨를 썼다.
‘이제는 뚝심 님이 있으니까 넘어지지 않아요.’ ‘제가 전하를 지켜드릴게요.’
그런 말에는 이길 방도가 없었다.
결국 오렐리는 나탈리에게 헤릿의 짐도 챙기라는 명을 내렸다.
전투 지역이 아니었으니 망정이지, 만약 사막에서도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면 꼬마를 울리는 한이 있더라도 두고 나왔을 것이다.
-똑똑
“전하. 문을 열겠습니다.”
밖에서 에르베의 저음이 들렸다. ‘달칵.’ 이어 건조한 사막의 공기가 들이닥쳤다.
오렐리는 근위대장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아주 오랜만에 모래를 밟았다.
뒤이어 아이들이 조심조심 찻간에서 내렸다. ‘휘이이이······.’
-저벅
“저쪽 천막촌은 거처를 잃은 근방 주민들의 피신처로 쓰이고 있습니다. 리에스테르 군영은 바로 뒤에 보이는 하얀 막사 구간입니다. 본진이 최전방으로 옮겨간지라 현재는 인원이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그렇구나.”
사내가 차분히 설명을 올렸다. 추기경은 그에게 눈웃음을 보내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가을의 중립 지대는 은근히 스산했다.
하늘 중앙에 오른 태양이 강렬한 빛을 쏟아내는데도, 찌는 듯한 열기나 답답함은 없었다.
신전 가까이엔 제법 규모 있는 저잣거리가 형성되어 있었다.
멀리 지평선 방향으로 끝없이 펼쳐진 천막촌이 시야에 들어왔다.
“······.”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더라면 저리 생활해야 하는 이들도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제국군이 제대로 돌보고 있는지, 추기경의 방문에 납죽 엎드린 면면이 야위지는 않았으나······.
“고, 고매하신 추기경 전하를 뵙습니다.”
“중립 지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전하!”
“······고마워.”
속이 편치 않았다. 역시 전쟁을 완전히 종식하는 편이 가장 좋았다.
“아아······.”
“응, 헤릿이 마지막으로 왔을 때만 해도 멀쩡했을 텐데······. 아쉽다아.”
“조금 무섭다, 그렇지?”
오렐리는 가만히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산트와 가나엘이, 계단 아래까지 굴러떨어진 조각상의 머리를 보며 당황하고 있었다.
지나치게 생생히 깎은 대리석은 언뜻 창백한 시신처럼 보였다.
덜컥 겁먹은 헤릿이 두 형님의 뒤에 꼭꼭 숨었다.
굴뚝새가 포도동 날아 에르베의 머리 위에 앉았고, 티테는 기어코 방울방울 울음을 터뜨렸다.
사제가 허둥지둥 뒤돌아 아기 신수를 달래기 시작했다.
“괜찮습니다아, 티테 님. 저건 진짜 사람이 아니에요. 사람처럼 만든 건데 부서지고 말았답니다. 좋아하시는 크리스텔 경이 직접 깨뜨린 거예요. 아하하하, 바로 그치시네요.”
“······.”
우연인지 필연인지, 머리 조각은 역대 교황 중 한 명인 이레너 스네이더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렐리는 한결 어두워진 눈을 들어 신전을 올려다보았다.
새하얗게 질린 대리석 지붕 절반이 처참히 주저앉아 있었다.
이를 받치던 칠흑의 세계수 뿌리는 죽은 뱀처럼 여기저기 널렸고, 계단을 이루던 굵직한 잔가지들이 허물처럼 축 늘어져 있어 보기 흉했다.
황궁을 압도할 만큼 거대했던 ‘교황의 집’은 이제 반절이 숨을 거둔 폐허였다.
저쪽 지하에선 인부들이 검게 그을린 바윗덩이를 함께 지고 나왔다.
추기경은 잠시 사랑하는 대자를 떠올렸다.
“······아니, 아니! 이쪽으로 가져와! 그건 바로 수레에 싣자고!”
“이게 마지막이야?”
“마지막은 무슨! 아직 한참 남았을걸.”
이곳은, 그날의 살인 사건으로부터 여전히 치유되지 않았다.
8개월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는데도.
“······어서 오십시오, 부티에 추기경 전하.”
반짝, 신관의 시선이 움직였다.
소리 없이 나타난 눈앞의 노인을 보자 은은한 분노가 일었다.
그러나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녀는 오렐리 아당 부티에였다.
황제가 남편을 맞기 전부터 반려였던 대귀족.
프레데리크 리에스테르를 이루는 세 조각 중 하나.
“뤼퍼르트 총대리 전하. 실로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예, 환영합니다.”
남자가 우아하게 인사했다. 총대리의 표정 역시 어떠한 정보 값도 지니지 않았다.
“교황청 도서관 방문 목적으로 오셨다지요. 익히 연락을 받았습니다.”
“예. 하여 귀애하는 아이들도 함께 왔습니다.”
“그렇습니까.”
노인은 무심하게 눈썹을 한 번 까딱이고는, 산트를 보며 ‘로세하르더 사제.’하고 인사했다.
그리고 느릿느릿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곧장 도서관으로 안내할 모양이었다.
오렐리는 기품 있는 자세로 그의 곁에서 나란히 움직였다.
에르베가 아이들을 이끌고 뒤를 따랐다.
단안경 아래 눈동자가 순간순간 서늘한 빛을 반사했다.
“보수 공사는 어찌 되어가고 있는지요.”
“보시다시피 외관의 피해가 심각하나, 주신의 축복으로 건물 기초에는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로비를 비롯한 주요 내부 또한 성석이 지탱하고 있어 온전합니다.”
“······.”
“잔해물 수거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속도가 붙을 것입니다. 무너지거나 취약해진 부분을 재건축하는 데는 앞으로 이 년 정도 걸리리라 예상합니다. 소속 성기사들이 힘을 보탤 계획이지요.”
“수고로우시겠습니다. 제국에서 도울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연통을 주십시오, 전하.”
“감사합니다.”
감정이라고는 티끌만큼도 묻어나지 않는 대화였다.
어른들의 고저 없는 목소리에 산트가 침을 꿀꺽 삼켰다.
어리디어린 헤릿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지만, 사제와 가나엘은 두 추기경이 내뿜는 위압감에 고개를 들기도 힘들었다.
총대리를 따라 나온 부제들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에 면역이 있는 것은 에르베뿐이었다.
이윽고 일행이 정문을 지나 신전 내부로 진입했다.
-또각, 또각, 또각······
-따각, 따각, 따각······
웅장한 로비를 통과할 무렵, 오렐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산트는 그녀가 발언하는 매 순간이 너무나 적절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미궁 라비린투스(Labyrínthus) 역시 그대로 보존되어 있겠군요.”
“예. 그리 확인하였습니다. 소원의 성반 또한 무사합니다.”
“요즈음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그곳에 출입하는 이가 있습니까?”
“······.”
찰나 소름 끼치는 침묵이 흘렀다.
‘뚜벅, 뚜벅, 뚜벅.’ 성석 바닥에 닿는 발소리만이 써느런 공기를 가득 메웠다.
헤릿은 가나엘과 에르베의 손을 꼭 잡았다. 오렐리가 얼핏 웃음 같은 숨을 내쉬었다.
“거짓을 말하지 못하는 성정이시니, 부답은 부정의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전하. 교황청은 이미 모든 조사에 성실히 임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저는 오직 순수한 궁금증으로 여쭌 것입니다. 그 후에도 같은 사건이 있었는지요.”
그녀가 부드럽게 답하며 총대리를 바라보았다.
노인의 무생물 같은 낯에 그늘이 졌다.
“베르너르 페네티안 국서께서 미궁에 침입하신 일은 유감이오나, 그날 지하실을 지키던 보초들은 그분을 목격한 적이 없다고 진술했습니다. 익히 아시지 않습니까.”
“예. 당시의 보고서는 종이가 닳도록 읽었습니다. 허나······.”
‘또각.’ 추기경이 모퉁이를 돌며 걸음을 멈추었다.
일행이 도착한 곳은 장엄한 도서관 입구였다.
너무나 웅대하여 당장이라도 쏟아질 듯한 대리석 문이, 뻣뻣하게 선 채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특이한 복식의 교황청 기사들이 깍듯이 고개 숙여 귀빈을 맞았다.
돌아본 베이지색 눈동자엔 언뜻 살기가 스쳤다. 순식간이었다.
“전하와 저 모두, 신관이 인간의 정신을 조종하는 방법에 관해 깊이 알고 있지요.”
“부티에 추기경 전하.”
그러자 총대리가 즉시 반응했다.
오렐리는 지금, 교황청이 페네티안 신국의 사주를 받아 국서를 들여보낸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품고 있었다.
키 큰 노인의 목이 꼿꼿하게 섰다.
“병사들을 신문한 이가 다른 누구도 아닌 저였음을 아실 겁니다.”
“예.”
“또한 저에게는 교황청을 변호할 의무와 권리가 있습니다.”
“······.”
“전하께서는 오직 성전의 결백에 관하여 논하고 싶으신 듯하나, 국서께서 정식으로 미궁을 통과하여 수호령의 시험을 이겨내셨다는 점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교황의 집을 관리하는 우리가 어찌 주신의 뜻을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에르베가 으득 이를 악물었다.
헤릿은 고사리손으로 달래듯 그의 주먹을 쓰다듬었다.
다시 기나긴 적막이 흘렀고, 누구도 먼저 입술을 달싹이지 않았다.
두 추기경은 묵묵히 서로를 응시할 따름이었다.
그들의 머리 위로 뇌우가 쏟아지고 벼락이 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적어도 가나엘은 분명히 그렇게 느꼈다.
“······.”
“······.”
-삐르르르!
결국, 보다 못한 신물이 우렁차게 울었다. 오렐리는 그림처럼 미소 지었다.
“안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총대리 전하.”
“예. 또 뵙지요, 전하.”
연극처럼 정중한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이별했다.
뤼퍼르트는 고상하게 묵례한 뒤, 어린 부제들을 데리고 복도 저편으로 총총 사라졌다.
제국 일행은 그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좋은 책을 찾아야겠구나.”
“응?”
헤릿이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오렐리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자애롭게 눈꼬리를 휘고서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쪽.
“반드시.”
반드시, 이곳에서 페네티안 왕실의 어둠을 비추어 보리라.
구석에 남겨진 가장 사소한 글줄마저도 그들에게는 단서가 될 것이다.
첫눈에는 별것이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끝내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 올 한 올의 실마리가 모여 거대한 진실을 이루게 되는 날······.
“예서와 우리를 위해서.”
바로 그날, 베르너르 페네티안과 그의 배후는 처절히 몰락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