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428)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428화(428/920)
#428
오랫동안 사귀었던 (2)
“하, 하이네켄 후작님.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영광입니다.”
-싸아아아······!
창밖의 야속한 빗줄기가 효과음을 제공했다.
토비 씨는 허겁지겁 내게 절했고, 네일리 씨도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릅느드.’ 나는 혀를 깨물며 부부의 인사를 받았다.
오늘만큼 간절히 집에 가고 싶었던 적이 드물었다.
어찌나 쪽팔렸던지 내 입으로 가명을 이야기하자마자 딸꾹질이 뚝 멎었는데, 그게 더 수치스러웠다.
정예서, 미친놈아. 도대체 그땐 무슨 생각으로 수입 맥주를 제일 먼저 떠올린 건데.
멀쩡한 네덜란드 사람 이름도 많잖아!
빈센트 반 고흐! 에라스뮈스! 히딩크!
“뜨흐흐흑······. 흐으크흐흑······!”
가인 씨는 <엑소시스트>의 한 장면처럼 온몸을 뒤틀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내가 다른 이름을 썼어도 상황이 크게 다르진 않았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황태자는 놀라운 평정심으로 그녀를 무시한 채 숟가락을 움직일 따름이었다.
몸놀림이 너무나 우아해서, 나는 순간 놈이 가는귀가 먹은 줄 알았다.
뚝심이는 그의 냅킨에 앉아 못 들은 척 점잔을 빼고 있었다.
엘리자베트 경은 맥락을 정확히 모를 텐데도 몹시 즐거워 보였고, 레서판다 삼총사는 카펫 위를 댁대구루루 구르며 나를 비웃었다.
와중에 가나엘만이 커다란 눈동자를 열심히 깜빡이고 있었다.
자신의 가명을 쥐어 짜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성실한 아이······.
“저, 저는 발렌틴이라고 해요.”
심지어 나보다 백만 배는 낫잖아!
“어이쿠, 발렌틴 자작가의 공자님이시군요.”
소년이 자기소개하자, 토비는 물론이고 네일리 씨와 요한 경의 눈까지 커졌다. 어?
“발렌틴 가문? 요한, 너 대공 전하 쪽에 줄이 닿은 거야?”
네일리 씨가 캐물었다. 헤릿 아버지는 가만히 웃으며 물잔을 들었다.
“글쎄.”
“시침 떼기는! 자작님이 대공과 교류하시는 건 우리 같은 사람도 알아. 아무렴 수십 년 전부터 그런 말이 돌았는데. 그럼 지금 헤릿도 그 댁에서 돌봐주셔?”
“헤릿은 대륙에서 가장 안전하고 따뜻한 곳에서 지내고 있어.”
두 사람의 대화가 쉬지 않고 오갔다. 나는 주뼛주뼛 다시 자리에 앉았다.
가인 씨가 촉촉해진 눈망울로 나를 바라봤지만, 너무 창피해서 시선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이따 가나엘에게 발렌틴 가문을 어떻게 알았는지나 넌지시 물어봐야겠다.
내가 그릇에 얼굴을 처박는 동안 네일리 씨는 계속해서 요한 경에게 질문했다.
“애 약은? 그땐 비싸서 구하기 힘들었잖아. 요즘은 좀 넉넉해?”
“이젠 아프지 않아, 네일리.”
“······뭐?”
벽난로에 겨자 수프 냄비를 걸던 토비 씨가 후다닥 요한 경을 돌아보았다.
민트색 눈동자가 두 사람을 돌아보며 부드럽게 휘어졌다.
“헤릿은 다 나았어. 통증이 없으니 키도 부쩍 자랐고.”
“······주신이시여. 그게 정말······.”
“또래들처럼 잘 자고, 잘 먹는 편이야. 아주 건강해.”
“세상에! 정말 잘됐다. 정말 잘됐어, 요한!”
토비 씨가 냉큼 냄비를 내려두고 요한 경에게 다가왔다.
그는 함박웃음과 함께 친우의 손을 덥석 잡더니, 몇 번이고 손등을 쓸며 눈물을 보였다.
네일리 씨도 울컥했는지 순식간에 눈가를 붉혔다.
나는 재빨리 품을 더듬어 그녀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여인은 보일 듯 말 듯 웃고서 입술을 달싹였다. ‘감사합니다.’
“이분들이셔? 이분들이 헤릿을 낫게 해주신 거야?”
-삐―뽀!
네일리 씨가 손짓하자, 뚝심이가 배를 빵빵하게 부풀리고서 벌떡 일어났다.
그 모습엔 나도 웃음이 터져 버렸다.
녀석은 ‘인간 나부랭이가 아니라 바로 나!’라고 말하듯 톡탁톡탁 식탁을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굴뚝새가 마음껏 행진할 수 있도록 잽싸게 포크며 나이프를 치워주었다.
조그만 날개까지 파닥파닥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보였다. 도도한 부리가 3mm는 더 높아진 것 같았다.
-삐르르르, 삐삐삐!
“우리들의 영웅이십니다, 정뚝심 님.”
내가 키들거리며 속삭였다.
하지만 당연히, 두 부부에게 사실을 전할 수는 없었다. 정말 미안하게도.
“그러고 보니 저희 소개를 안 드렸네요.”
‘크흠!’ 냅킨으로 입가를 정리한 가인 씨가 헛기침을 했다.
순간 모두의 눈길이 그녀에게 집중됐다.
우리의 주인공께서는 언제 어디서든 타인의 주목을 받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특히나 분위기를 환기하거나 화제를 돌리는 데는 아주 일가견이 있는 분이었다.
청회색 눈동자가 다시금 반짝반짝 총명한 빛을 냈다.
“저는 기사 스텔라입니다. 이쪽 남자분은 필스너르 공작님, 여기 단발 머리 여자분은 기사 블랑크 님이라고 합니다. 모두 신국 출신이에요.”
미친―
“아무렇게나 골라 담으셔도, 읍!”
쏙! 나는 가인 씨의 입에 마스담 치즈 조각을 던져넣었다.
그녀는 바로 오물오물하며 ‘맛있어요’했다.
가명으로 놀리기는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역시나 분홍 공주께서는 한국인답게 1절에서 그치지 않았다.
넷이 합쳐 만 원짜리로 만들다니 참말 대단한 재주네요!
“어어. 필스너르 공작님, 하이네켄 후작님, 스텔라 경, 블랑크 경······. 그리고 발렌틴 공자님. 벳하니 약종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토비 씨가 밝게 웃으며 다시금 인사했다.
눈물을 찍어낸 네일리 씨도 한결 가벼워진 표정이었다.
세드리크 태자는 말없이 턱을 까닥여 보였다.
벌써 후식을 맛보는 얼굴엔 여느 때와 같은 무게감과 잘생김이 넘쳐흘렀다.
나는 또다시 답 없는 불만에 휩싸였다.
졸지에 필스너가 됐는데 저놈은 왜 하나도 안 우습지?
왜 나만······. 젠장.
*
좌우간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달칵
‘그거면 비밀 유지에 식사와 숙박까지······. 괜찮을까요?’
나는 약종상 부부에게 조심스레 금덩이를 건넸다.
폐하께서 챙겨주신 용돈 일부였다. 경악한 두 사람의 턱이 쩍 벌어졌다.
네 개의 눈동자에 반사된 황금빛이 살랑거렸다.
‘······맙소사!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후작님!’
‘이거라면 연간 숙박도 가능하십니다.’
약종상 부부는 즉시 의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도 요한 경의 친구라는 이유로 많은 호의를 받았지만, 그때부터는 두 사람의 눈빛부터가 달랐다.
네일리 씨는 우리가 뜨거운 물 목욕을 하루에 세 번씩 해도 괜찮다고 발언했다.
토비 씨는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말씀만 하시라며 역제안을 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히 뜨거운 물로 목욕한 뒤 널따란 다락방에 모였다.
조그만 탁자엔 감기 예방에 좋다는 약차가 일행의 머릿수만큼 준비되어 있었다.
마나 없는 등불이 공간을 따스하게 밝혔고, 실내에선 어딜 가든 은은한 허브 향이 났다.
잠시나마 심신이 편안해지는 곳이었다.
-우다다다······!
-끼이이!
“데미, 여긴 꼭대기 층이니까 달리면 안 돼.”
-끼이잇!
“아이고, 레아가 그새 따라 한다.”
-왕! 왕!
“이 집 애까지 물들여 놨네.”
뽀송해진 신수들이 사방을 소란스럽게 뛰어다녔다.
부부의 반려견 바리(골든레트리버인 것 같다)는 신이 나서 레서판다들과 술래잡기를 했다.
나는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엘리자베트 경마저 녀석들과 장난치며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이런 평화는 아주 오랜만이었다.
이층집은, 부부가 직접 자재를 실어다가 한 칸 한 칸 정성스럽게 올린 공간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강풍에도 삐걱거림 한 번이 없었고, 창문도 아주 튼튼했다.
요한 경의 말대로 지나가는 나그네를 위한 객실도 있었다.
다만 개전 이후로는 손이 드물어져 모두 약초 보관실로 쓰이게 되었다고 했다.
침대는 모조리 다락으로 옮겨놓았다기에, 우리는 감사히 그곳에서 함께 지내기로 했다. 단체 숙박이야 이젠 익숙했다.
-펄럭, 펄럭!
“마침 얼마 전에 이불을 새로 빨았는데······. 그러길 잘했네요. 주신께서 이런 인연을 만들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탁탁! 탁! 친절한 토비 씨는, 창고에서 하얀 솜이불을 몇 채나 가져다가 깔아주었다.
가인 씨가 그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침대는 네 개뿐이라 바닥에도 이부자리가 마련됐다.
내가 밑에서 자겠다고 했지만, 엘리자베트 경이 눈에 불을 켜고 반대했다.
결국 요한 경과 그녀가 아래에 눕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영 마음이 불편했으나 두 사람은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용병과 군인인데 은근 닮은 구석이 있단 말이지.
-우르릉, 콰과광!
-아우우······
“괜찮아, 티테. 하나도 안 무서워. 저것보다 네가 훨씬 강하거든.”
-으우?
“응. 마음만 먹으면 우리 티테가 다 이길걸. 진짜로.”
나는 아기 신수의 등을 도닥이고서 다락 창가를 거닐었다.
하프물범이 내 마석 안경을 빤히 보며 코끝을 실룩거렸다.
다시 솔솔 잠이 오는 표정이었다.
부부의 집이야 끄떡없지만, 정원은 크게 망가질 것 같아 모두가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바깥 하늘엔 커다란 구멍이라도 뚫린 것 같았다.
퍼붓는 비는 도통 그칠 줄을 몰랐다. 이따금 까만 배경 저편이 번쩍번쩍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쏴아아아······
“네일리. 혹시 근처에서 이상한 소문은 못 들었어?”
그즈음, 요한 경이 약차를 마시며 가볍게 물었다.
일순 태자의 눈빛이 예리한 빛을 띠었다.
여인은 맨틀을 정리하다 말고 어깨를 으쓱였다.
“소문이야 많지. 물론 시골이라 소식이 좀 늦는 편이긴 한데······. 왜, 찾는 정보라도 있어?”
“아니. 주변 사정을 파악해 둬서 나쁠 것 없으니까.”
“흠. 뭐가 있더라······.”
“아! 그거 알아? 베르너르 국서 전하가 실종됐대. 엊그제 기름 장수가 와서 엄청 떠들고 갔어!”
팡, 팡! 베개를 두드리던 토비 씨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인 씨와 나, 태자의 시선이 빠르게 얽혔다. 우리는 조용히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왕세녀 전하가 직접 부하를 시켜 데려오게 했는데, 중간에서 귀신같이 사라졌대. 혼자!”
“재미있는 소문이네.”
“재미있긴! 그 사람 때문에 다시 전쟁이 났다고 하던걸.”
요한 경의 답에 네일리 씨가 톡 쏘아붙였다. 그러고는 화들짝 일행의 눈치를 살폈다.
우리가 신국의 귀족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경악한 기색이었다.
나는 서둘러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정말로요. 그쪽······. 노선은 아니거든요.”
“아아, 예에.”
여인이 자신의 입을 착착 때리며 다시 맨틀 정리에 집중했다.
토비 씨는 다음 이불을 곱게 펼쳤다.
“아무튼 기름 장수 말로는, 국서가 어딘가에 숨어 후일을 도모할 거라더라.”
“후일?”
“요한, 그 ‘전단’ 말이야! 우리도 중간 한두 장밖에 못 보긴 했지만, 예서 페네티안 왕자께서 부활하셨다는 소문이 전국에 쫙 퍼졌어. 그리고 국서가 왕자 전하를 미워했다는 사실이야 유명하잖아? 분명 그 사람이, 되살아난 전하를 다시 죽이려고 든다는 거지.”
‘복수하려고 사라졌대.’ 남자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복수 좋아하네.’ 가인 씨가 꿍얼거렸다.
나는 잠든 티테를 안고서 가만히 자리에 앉았다.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태자 녀석이 목을 기울였다.
“그자는 팔과 다리를 한 짝씩 잃었을 텐데. 어찌 거동하는 거지?”
“아, 그. 듣기로는 어마어마하게 화려한 의수와 의족을 달고 계신답니다. 그게 정교한 마도구라고 하더군요. 저희 같은 사람은 평생을 일해도 거기 달린 손가락 하나 못 살 거라고······.”
토비 씨가 소곤소곤 대답했다. 나는 흠칫하며 태자를 돌아보았다.
녀석이 국서의 팔다리를 베었다는 뒷이야기야 진작 들었는데, 그걸 본인에게서 확인받으니 기분이 묘했다.
놈이 뭘 꼬나보냐는 양 내 안경을 노렸다. 하여간 성질머리하고는.
“예리호(Jericho)는 좀 어때? 날이 개는 대로 가볼까 하는데.”
요한 경이 산뜻한 투로 화제를 바꾸었다.
벽난로에 찻물을 올린 네일리 씨가 냉큼 말을 받았다.
“말도 마. 네가 마지막으로 거기 가본 게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오래전에. 서너 번 경유한 게 전부야.”
“그럼 알아보지도 못할 거야. 예리호는 완전히 망했어. 영주조차 거길 버렸으니까.”
그 말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금시초문이었고, 무엇보다 아주 곤란한 소식이었다.
우리는 그곳에 가서 본격적으로 베르너르 페네티안의 단서를 찾을 생각이었다.
예리호는 스타티아 평야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였다.
중앙에 영주성과 신전이 있고, 빌헬미나 스네이더르의 영지도 아닌 데다, 요한 경 말로 변방에선 제법 규모가 있는 도회지라고 했다.
거기가 우리의 첫 단추인데······.
“망하다니, 어쩌다가요?”
뚝심이를 재우던 가인 씨가 슬쩍 물었다.
네일리 씨는 열심히 기억을 더듬는 얼굴이었다.
“그게······. 하늘이 찢어지던 무렵이었나. 제 기억으로는 ‘주신의 도검’이 떨어지기 시작한 뒤부터였습니다. 예리호에서 오는 손님들이 하나둘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어요. ‘세계’가 어떻고, ‘운명’이 어떻고······.”
“가끔 점성술사나 철학자라는 나리들이 그런 소리를 하긴 했으니까, 또 시작이구나 했는데. 점점 대화 내용이 심각해지더군요. 불그죽죽한 로브를 뒤집어쓰고, 눈이 뻘게진 사람들이 온종일 길을 돌아다니면서······.”
“맞아, ‘종말’.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대륙에는 곧 종말이 닥칠 거라고. 무슨 주문처럼 그걸 읊어댔지요.”
여인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가나엘이 고개를 갸웃했다.
“예리호가 망한 게 그 사람들과 무슨 관계가 있나요?”
“그자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결국 도시를 점령해 버렸습니다. 공자님.”
토비 씨가 대신 설명해 주었다. 소년의 황금색 눈이 크게 뜨였다.
당연히 우리도 깜짝 놀랐다.
“그게 무슨······.”
“‘황혼의 성도’인지 뭔지. 그들이 언제부턴가 예리호의 다수가 되어서는, 식당이든 극장이든 들어가서 주신이 대륙을 버렸다는 얘기를 퍼뜨리고 다녔대요. 당시엔 하늘 한편이 까맣게 찢어져 있었으니 믿는 사람이 무척 많았나 봐요.”
“멀쩡한 사람은 분위기를 못 견디고 전부 떠났답니다. 성도라는 자들만 남아서 무기력증에 빠지고, 대륙이 곧 멸망할 거라며 일도 하지 않고, 사람도 만나지 않고, 먹지도 않고······. 그런 식으로 도시 하나가 반년 만에 망해버렸어요.”
그렇게 말한 부부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엘리자베트 경이 눈썹을 찡그렸다.
“하늘이 여름에 다시 닫혔는데도 그리되었단 말인가?”
“예에, 블랑크 경. 그때는 너무 늦었던 게지요. 영주와 신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은행가들마저 그곳을 빠져나갔으니까요.”
“······.”
“저희도 처음엔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가장 가까운 도시가 망해버려서······. 그래도 시간이 흐르니 거기서 약을 못 구해 여기까지 오는 손님이 생기더군요. 여전히 예리호를 경유하는 손님도 가끔 있고요.”
“결국 어찌어찌 회복은 됐습니다.”
동시에 두 사람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지었다.
나는 혼란스러운 눈길로 요한 경을 바라보았다.
그 역시 이건 예상치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페네티안이 신앙에 많은 부분을 의지하는 국가라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으음.”
그럼 어떡하지. 예리호가 허탕이라면 곧장 다음 도시로 넘어가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