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438)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438화(438/920)
#438
악마의 발톱, 나락의 난파선 (2)
아침 식사가 끝났다.
-달칵!
객실 문을 닫고 들어온 엘리자베트는, 가만히 침대를 돌아보았다.
약혼자를 향해 부드럽게 빛나던 눈동자가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
“······.”
“······.”
몸을 둥글게 말고 누운 마르그리트 디오프 공녀가 보였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확히는 밤새 그랬다.
그동안 잠을 잔 것 같진 않았고, 안정을 취한 것 같지도 않았다.
식사는커녕 이곳에 온 뒤로 물 한 모금조차 마시지 않았다.
가리비처럼 입을 꼭 닫은 채 칙칙한 기운만 뿜어내고 있으니, 지켜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숨을 토할 법했다.
다만 엘리자베트는 예외였다. 그녀는 이 분야의 전문가였다.
“하룻밤이 지났습니다. 슬슬 입을 열 생각이 듭니까?”
“······.”
얼음처럼 냉랭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르그리트는 겁먹은 낯으로 자신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늘 오라비보다 어른스럽던 얼굴이 오늘은 이상하리만치 유약해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두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굳이 지브릴 디오프와 비교하자면, 마르그리트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외모였다.
따로 보면 고운 축에 들었으나 ‘황도의 제비’ 따위로 불리는 쌍둥이에 비하면 수수했다.
머리카락도 얌전한 밤색이었고, 붉은 눈망울은 검을 잡을 때나 오라비를 다그칠 때만 빛나곤 했다.
공녀의 상태를 확인한 부근위대장이 허리를 세우며 앉을 자리부터 찾았다.
칼날 같은 단발 사이로 가벼운 호흡이 흘렀다.
“하······.”
-덜커덩, 덜컹!
마르그리트가 입술을 깨물며 이불에 얼굴을 묻었다.
엘리자베트는 묵직한 원목 의자를 한 손으로 번쩍 들어올렸다.
혐의자를 신문하는 방법은, 에르베 대장에게서 수년간 직접 사사했다.
그리고 지금은 제가 그보다 뛰어나다고 자신했다.
근위대장은 부러질지언정 휘지 않는 대쪽 같은 성품의 사내였다.
그러나 바윗덩이 같은 겉보기와 달리 속이 무르고 다감한 편이었다.
겁박하는 방식의 심문을 즐기지 않았으며, 고문은 내심 힘들어했다.
단지 황제 폐하나 부하들 앞에서 절대로 티를 내지 않을 뿐이었다.
그런 면만큼은 정말로 프랑수아 아저씨를 빼닮았다.
하지만 엘리자베트는 달랐다.
그녀는 폐하의 명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그것으로 스스로를 갉아먹는 성정이 아니었다.
“지금 저에게 말씀하시는 편이 나을 겁니다. 그러면 자수한 셈이 되니까요. 폐하께서는 자백한 자에게 광명을 내리시는 분입니다.”
“······.”
‘털썩.’ 의자에 앉은 부근위대장이 덤덤한 투로 말했다.
그녀는 이제 마르그리트의 턱밑에 자리하고 있었다.
“허나 그분의 어전에서 죄를 밝히시는 일은 곧 군사재판이 됩니다. 즉결 처분 대상이죠.”
“······.”
공녀는 여전히 입에 아교라도 바른 것처럼 굴었다.
소백작의 눈이 잿더미처럼 어두워졌다.
근위대장과 부근위대장의 성향을 두고, 이것이 ‘이성적인 검사’와 ‘감성적인 마법사’의 차이라고 말하는 호사가들도 있었다.
‘제 손으로 베는 자’와 ‘마나를 빌리는 자’의 차이라고 지적하는 교수도 있었다.
더러는 북부 사람과 남부 사람의 기질 차이라고 재잘거리기도 했다.
엘리자베트는 그 모든 것이 편견에 찌든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적어도 에르베와 그녀에게는 그린 듯이 적용되는 표현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절묘하게 보완하는 한 쌍의 날개였다.
“디오프 공녀.”
군인의 음성엔 고저가 없었다.
“이대로 죽을 각오를 한 겁니까?”
흠칫. 그제야 여인의 눈동자가 번쩍 위로 올라왔다.
엘리자베트는 셔츠 소매 단추를 풀며 무뚝뚝하게 말을 이었다.
이쪽을 파고들어야겠군.
“폐하께서는 저희가 떠난 후 일주일간 어떠한 연통이나 지원군도 보내지 않기로 하셨다더군요.”
“아······.”
공녀가 새하얀 시트를 그러쥐었다.
부근위대장은 부러 그녀의 표정을 확인하지 않았다.
“그런데 디오프 공작가의 두 분이 오신 겁니다. 시기도 시간대도 애매했죠. 익히 아시다시피, 프레데리크 폐하께서는 아랫사람의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을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언제나 확실하고 명료한 방향을 선호하십니다.”
“······.”
“그러니 다시 묻겠습니다. 왜 왔습니까?”
그 말에 공녀의 눈동자가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꽁꽁 묶인 손목 아래가 벌겋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엘리자베트는 개의치 않았다.
그녀의 입술이 거듭 무감정하게 움직였다.
“디오프 공자의 말대로 폐하의 전언을 받아 오신 게 아니라면, 군영을 무단이탈하셨으니 이미 중죄인입니다. 황족이라고 해도 전시에 이만한 죗값은 피하기 힘듭니다.”
“······.”
“입을 다물고만 있으면 누구도 공녀를 도울 수 없습니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떠올려 보십시오.”
“······.”
“그게 어렵다면, 두 자녀를 한날한시에 잃게 될지 모르는 부모님을 생각하세요.”
‘서컹!’ 엘리자베트가 부츠에서 단검을 빼 들며 경고했다.
마르그리트는 크게 어깨를 떨며 그녀의 날끝을 바라보았다.
부근위대장은 담담한 태도로 다리를 꼬더니, 검집 뒤쪽에서 조그만 숫돌을 꺼냈다.
그러고는 그것으로 자신의 칼을 슥슥 갈기 시작했다.
의미하는 바가 참으로 적나라한 행동이었다.
‘좋다. 당신 마음대로 해라. 하지만 나는 여기 앉아 끊임없이 그쪽을 압박할 생각이다.’
-쓱, 쓱, 쓱, 쓱······
‘그리고 이것은, 당신이 겪을 죽음의 소리다.’
-쓰윽, 쓰윽, 쓰윽
“······제발.”
“말할 마음이 들었습니까?”
“제발······. 그만하십시오. 차라리 군영으로 돌아가 폐하께 진실을 말씀드리게 해주세요.”
“하나 묻겠습니다. 폐하께서 듣고 쉬이 용서하실 만한 죄입니까?”
“······.”
“그러면 제게 털어놓는 편이 백번 낫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저는 공녀의 지인이기 이전에 황실 근위대의 이인자로서, 두 분의 죄목을 모른 채 무작정 폐하께 호송하는 무책임한 짓은 할 수 없습니다. 최소한의 보고가 이루어지려면 앞뒤 상황은 알아야 합니다.”
잠시, 두 여인의 시선이 얽혔다.
마르그리트는 몹시 간절한 눈길로 엘리자베트를 바라보았다.
당연히 부근위대장은 꺾이지 않았다.
“생각이 바뀔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저는 시간이 많으니까요.”
“······소백작께서는!”
마침내 공녀가 아등바등 몸을 일으켰다. 후드득 서러운 눈물이 흩어져 내렸다.
“소백작께서는 저와 같은 처지에 놓이신 적이 없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모르시잖아요! 아무것도!”
이어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엘리자베트의 표정엔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저는 제국에 하나뿐인 변경백의 후계자이자 폐하의 두 번째 검입니다. 아무렴 죄인들과 같은 처지에 놓여서는 곤란하겠지요.”
“그런 말이 아님을 아시지 않습니까! 어찌 그리 겁을 주십니까. 저는 결국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는데 어째서 이미 대역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다그치십니까! 저는! 저는 아직······!”
“철없는 말씀 마십시오. 고귀하신 황태자 전하와 그분의 두 짝이 계시는 일행입니다. 무슨 짓을 해도 무사할 수 없음을 정녕 모르셨단 말입니까? 무장한 황족이 황위 계승자의 뒤를 밟는 일이 가당키나 합니까?”
“아아······.”
소백작의 얼굴은, 바늘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을 듯 견고했다.
너무나 냉혹하여 눈이 마주치기만 해도 얼어붙을 것 같았다.
마르그리트는 끝내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터뜨렸다.
하지만 아무도 달래주지 않았고, 아무도 그녀에게 왜 우느냐 묻지 않았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늘 그랬으니까.
익숙한 흐름에, 슬픔은 곱절이 되었다.
잠시간 여인의 흐느낌만이 침실을 가득 메웠다.
“흡, 흐윽······. 윽. 윽······. 읏.”
“······.”
“후······. 후우······.”
이윽고, 숨을 가다듬은 마르그리트가 비장한 눈빛으로 엘리자베트를 바라보았다.
순간 소백작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공녀의 부르튼 입술이 활짝 열렸다. 잠깐―
“안 돼!”
-우당퉁탕!
엘리자베트가 그녀를 덮쳤고,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
‘벌컥!’ 동시에 침실 문이 열렸다.
‘무테 경!’ 티테를 업은 가나엘과 신수들이 황급히 뛰어들었다.
데미는 잽싸게 침대로 도약해 넝쿨을 길러냈다. 빠드드득―!
-끼이이이!
“괜찮습니다! 괜찮아, 가나엘. 혀를 깨물려 했는데 막았어!”
“주신 맙소사!”
사색이 된 소년이 허겁지겁 손수건을 꺼내 건넸다.
엘리자베트는 날랜 솜씨로 마르그리트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으읍! 으브으으읍!’ 오열과 저항이 극심했으나, 애초에 공녀는 소백작을 힘으로 이길 수가 없었다.
마침내 그녀는 양손과 발목이 묶인 것으로 모자라 입까지 틀어막혔다.
‘탈싹!’ 이어 작은 어깨가 베갯잇 위로 나동그라졌다. 핏빛 홍채는 스르륵 눈꺼풀 너머로 숨어버렸다.
명백히 의식이 있는 상태였으나, 더는 깨어있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쏟아지는 눈물로 두 뺨이 흠뻑 젖어 들고 있었다.
가나엘은 떨리는 손길로 공녀의 이불을 덮어주었다.
놀란 신수들이 두 약혼자의 발치를 빙빙 맴돌았다.
-끼이, 끼이, 낑······
“너무 심려 마십시오, 신수님들.”
소백작이 한쪽 무릎을 꿇고 자세를 낮추었다.
삼총사는 후다닥 그녀의 다리를 짚고 일어섰다.
엘리자베트는 꼬마들의 머리를 쓸어주고,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더니······.
“지금부터는 가나엘이 해결할 겁니다. 상황이 예상보다 심각해지긴 했지만요.”
어린 연인을 올려다보며 들릴 듯 말 듯 속삭였다.
‘꾸?’ 신수들이 꼬리를 살랑거리며 의문을 표했다. 검사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눈길이 마주친 묘소년이 애써 웃어 보였다.
“여, 열심히 해볼게요.”
······‘좋은 근위대 나쁜 근위대’ 작전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할게요.
우리 궁주님처럼요!
*
그날 오후, 지하 암시장 대광장.
일행은 운 좋게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숙소를 잡았다.
하지만 밤중엔 자경단이 불심검문을 하는 데다, 워낙 사건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시간대라 누군가를 찾으러 나서기는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 새벽같이 밖으로 나온 참이었다.
국서의 흔적을 찾고, 겸사겸사 시장에 관한 여러 궁금증도 해결하기 위해서.
문제는······.
-왜오
“이상한 거 없어? 안 느껴져?”
-왜앵
“······자꾸 물어봐서 미안. 두 사람이랑 요한 경도 특이점을 못 찾겠대. 너는 신수니까 다르지 않을까 했어.”
아직까지는 허탕이라는 거다. 한숨 대신 미소를 짓자 신수가 입맛을 다셨다.
나는 로피와 함께 초거대 나무 ‘악마의 발톱’을 살피고 있었다.
세드리크 태자는, 녹슨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전부 노려보는 중이었다.
혹시나 국서와 인상착의가 비슷한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옆 벤치엔 징글징글한 육촌 형 놈이 자리했고, 가인 씨와 요한 경은 바로 앞 가판대에 점심을 사러 갔다.
‘인솔자의 자비’로 15분간 허리띠 거리 제한이 늘어나서(사용설명서에 진짜 그렇게 쓰여 있다), 지금 헤릿 아버지와 우리의 거리는 스무 걸음쯤 됐다.
나는 마력으로 연결된 친구들을 돌아보며 입을 실룩거렸다.
······이거 은근히 마음 놓이는데, 내가 이상한 건가?
스톡홀름 증후군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니었지?
-땡그랑!
그때였다. 별 모양 광장의 한쪽 모서리에서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일행의 시선이 동시에 움직였다.
-땡그랑, 땡그랑, 땡그랑······!
“하급 마석! 헌쇠! 못 쓰는 마도구 사요!”
“골치 아픈 마석 침출액! 우리한테 버리세요!”
“하급 마석! 헌쇠! 못 쓰는 마도구! 침출액까지 싹!”
나는 두 명의 고철상을 보며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도 그럴 것이―
“태, 아니지, 필스너르 님. 저기 보세요, 아이들입니다!”
말도 안 돼!
이제 열두세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꼬마들이, 낡은 고글을 쓴 채 수레를 끌고 있었다.
암시장에 내려온 이래 처음 보는 미성년자였다.
이렇게 밤낮으로 어둡고 위험한 곳에 어린이가 머무르고 있다니, 가슴이 철렁하고 걱정스러워 차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와중에 로피는 꼬리를 반짝 들고서 그쪽으로 총총 다가갔다.
아이고, 애물단지 6호님!
-냐오옹
“우와, 오빠! 고양이!”
“그럴 리가. 어지간한 짐승은 여기서 못 산다고 했는데······. 마수 아냐?”
“어, 고양이 마수 맞아.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
나는 허겁지겁 마석 안경을 추켜올리며 사과했다.
로피가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돌아보았지만, 그러게 누가 단독 행동을 하랬느냔 말이다.
그랬더니 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나에게 냉큼 말을 걸었다.
검댕 묻은 뺨엔 아직 젖살이 남아 있었고, 구슬처럼 동그란 눈은 호기심으로 빤짝거렸다.
목소리가 아주 맑았다.
“공자님 마수예요? 공자님이 직접 길들이신 거예요? 속성은 뭔데요?”
“음. 내 마수는 아니고, 이 녀석이 우리를 좋게 봐줘서 같이 다니고 있어. 말하자면 친구야. 속성은······.”
-매오오오
그즈음 태자가 기척 없이 옆으로 다가와 섰다.
나는 녀석과 로피를 번갈아 보며 고민했다.
속성은, 뭐라고 해야 잘 지어냈다고 소문이 나냐······.
“귀여움?”
“와아! 귀여운 게 무기예요? 진짜 그렇게 생겼어요!”
“바보야. 설마 속성이 귀여움이겠냐. 네가 너무 캐물으니까 그러시는 거지.”
“아.”
오빠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핀잔했고, 동생은 뒤늦게 입을 벌렸다.
나는 웃으며 양손을 내저었다.
“그런 건 아니야. 그냥 초면에 말하기는 낯뜨거운 재주라서······. 괜찮으면 나도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
“그럼요! 잘생기셨으니까 좋아요!”
장사를 하는 아이라 그런지, 벌써부터 입에 발린 말을 잘했다.
나는 싱긋하고서 조심스레 운을 뗐다.
“최근에 여기서 귀한 손님을 받은 흑마법사를 찾고 있어. 혹시 도움을 줄 수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