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448)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448화(448/920)
#448
악마의 발톱, 나락의 난파선 (12)
-쿠구구구······
“노에 씨요?”
요한 경이 문틀을 잡은 채 되물었다.
못 믿는 눈치는 아니었고, 그저 내가 어떻게 정보상의 ‘성인 모습’을 알고 있는지 궁금한 듯했다.
지브릴 디오프는 머리를 벅벅 문지르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눈앞으로 끊임없이 다가왔다가 멀어지는 복도들을 일별했다.
어느 복도엔 흉상 수십 개가 양옆으로 죽 늘어서 있었으며, 또 어떤 복도는 화려한 샹들리에와 붉은 카펫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저기 위로 불쑥 치솟아 사라진 복도는 꼭 폐가처럼 섬찟했다.
잘 꾸며진 온실처럼 보이는 통로도 있었다.
“네, 그게······.”
총체적으로는, 무슨 SF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약간 공포 영화 같기도 하고.
“저도 제가 어떻게 확신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무의식중에 노에 씨 생각을 계속하고 있어서 그렇게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 밖엔 우리에게 이렇다 할 실마리가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맞는 말씀이네요.”
-고오오오······
그가 나직이 대답하고는 뻥 뚫린 문짝 너머를 돌아보았다.
날아다니는 복도는 모두 각양각색이라, 어디서 단서를 얻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것들의 공통점이라고는 길목이 모두 이쪽을 향해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나머지 공간은 온통 시커먼 암흑이었는데, 이따금 녹조처럼 불쾌한 녹색 기운이 흐느적흐느적 허공을 유영했다.
무슨 마나 해파리도 아니고.
“······여기서 누군가의 접근을 기다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습니다. 그사이 베르너르 페네티안이나 마담 모르한이 무슨 짓을 벌일지도 모르고요. 키나와 빌럼과 발톱이에겐 일분일초가 급한 일입니다. 무엇보다 여기까지 와서 방어적인 전략을 쓰는 건 앞뒤에 맞지 않죠. 남의 요새에서 몸 사릴 구석이 있겠습니까?”
“먹는 게 조금은 머리로 가긴 하나 봐?”
진짜 짜증 난다. 나는 제발 그 입 좀 다물라는 눈빛으로 디오프 놈을 마주 노려보았다.
게다가 난 심하게 많이 먹는 편도 아니다. 우리 형이 더 먹는다고.
집에 냉장고 두 대, 김치냉장고 두 대 있는 거 알면 뒤로 넘어가겠네.
“궁주님은 그렇게 봐도 전혀 안 무섭다는 걸 언제쯤 알까.”
-데에엥······!
그때, 등 뒤에서 고막을 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우리는 깜짝 놀라 화드득 뒤를 돌아보았다.
창고의 복층에 매달린 커다란 태엽에서, 웅장한 소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는 벌써 새벽 2시가 되었나 싶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로피도 귀를 쫑긋 세우고 발톱을 반쯤 꺼냈다. 그런데―
“어?”
-데에엥, 데엥······!
시계는, 25시 36분 같은 애매한 숫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세상의 어느 기준으로도 종이 울릴 시각이 아니었다.
어쩐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기계는 알람을 멈추지도 않았다.
-데엥, 데엥, 뎅······!
박자가 점점 빨라지는 느낌이었으며, 분침이 37을 가리킬 무렵에도 종소리는 멎지 않았다.
로피가 등을 휘더니 온몸의 털을 고슴도치처럼 세우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디오프는 내 등을 떠밀며 제대로 서라고 핀잔했다.
바쁘게 눈을 깜빡이고서 그와 요한 경을 올려다보았다.
······젠장, 빌어먹을!
“저거 아무래도 경고음 같습니다!”
-뎅, 뎅, 뎅, 뎅······!
“마침 의견이 통했네요. 실례할게요, 궁주님.”
휘우우! 헤릿 아버지가 공기의 힘으로 가볍게 나를 들어올렸다.
디오프 역시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마법사는 이를 박박 갈며 창고 전체를 날렵한 시선으로 훑었다.
이윽고 가장 먼저 어둠으로 나아간 그가 험악한 욕설을 뇌까렸다.
검은 로브는 이제 찐득한 진액처럼 팔랑거리고 있었다.
“제길, 창고 전체에 경보(警報) 마법 비슷한 걸 씌웠군. 하지만 정상적인 주문은 아니야. 도저히 마법식을 추산할 수가 없어!”
-뎅뎅, 뎅뎅, 뎅뎅, 뎅뎅!
“공자, 뒤쪽이에요!”
내가 흑색의 공중으로 나아가며 외쳤고, 그는 홱 허리를 숙였다.
구구구궁······! 동시에 거대하고 길쭉한 다실 복도가 남자의 정수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공자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지팡이를 찾다가, 그게 요한 경에게 있는 걸 깨닫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마지막으로 헤릿 아버지가 창고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뎅뎅, 뎅뎅뎅!
“······.”
“······.”
“헉, 하아······.”
심장을 떨리게 하던 소음이, 귀신같이 사라졌다.
나는 아직도 등을 구부리고 있는 로피의 뒷머리를 열심히 문질러주었다.
가까워지는 순백의 머리칼만이 평화로운 곡선을 그릴 따름이었다.
요컨대 문이 열리고 나서 일정 시간 동안 아무런 출입이 없으면, 창고는 그것을 침입으로 간주하고 경보를 울리는 모양이었다.
실로 무시무시한 요새였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아까 거기, 으아악!”
-쿠구구궁······!
나는 별안간 발밑에서 밀어닥치는 복도에 몸을 휘청거렸다.
요한 경이 잽싸게 낚아채 주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저기 지붕에 쓸려갈 뻔했다!
“일단 서로 떨어지지 않고, 조금 전의 그 복도를 찾아보는 게 좋겠군요. 다른 단서가 있다면 그쪽도 빠르게 검토해보도록 하죠.”
“네. 제 말이 그 말이었습니다!”
내가 잽싸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비웃음을 사기 딱 좋은 타이밍이었지만, 디오프 놈은 이번에야말로 정색했다.
더는 그럴 여유가 없었고 상황도 따라주지 않았으니까.
-쿠구구궁······!
와악, 이번엔 집채만 한 게 온다!
나는 로브 자락과 가가방을 품에 꼭꼭 끌어안고, 로피를 품속 가장 깊은 곳에 숨겼다.
그러고는 요한 경을 따라 헤엄치듯 열심히 다리를 움직였다.
꼭 심해의 대왕오징어 떼를 피하는 니모 친구들이 된 기분이었다.
이게 맞는 비유인가?!
“저건 또 뭐야, 장례식장 복도야?!”
-냐아아오
“다들 조심하세요!”
내가 쩌렁쩌렁 외쳤다. 일단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
아마도 그즈음.
크리스텔과 세드리크는 선술집 지하에 내려와 있었다.
‘고백자 환영’.
눈앞의 문짝엔 그런 글씨가 선명했다.
그전에는, 엘리자베트와 긴 대화를 나누었다.
가나엘과 레아와 페리에겐 서로를 잘 부탁한다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칭얼거리는 티테를 안고 자장가도 여러 곡 불러주었다.
선술집 주인장에게는, 특등실이 있는 층 전체를 빌리고 싶다며 금화를 건넸다.
야심한 시각에 깨운다고 투덜거릴 때는 언제고, 노인은 불룩 나온 배를 두드리며 몹시 기뻐했더랬다.
거기까지 해결하고서 둘은 뚜벅뚜벅 지하로 돌아갔다.
후드를 벗고 있으니 존재감이 충분히 흐려지지 않는지, 이따금 다른 객실 손님들이 은근한 눈길로 그들을 보며 지나갔다.
하지만 남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신혼이냐며 능글거리는 새끼도 하나 있었는데 가볍게 무시했다.
요한 선생님이 함부로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고 그랬다.
그러는 선생님은 잘만 죽이는 것 같았지만, 아무튼 둘은 제법 점잖은 학생이었다.
-똑똑똑
“······.”
“······.”
그렇게 다시 노에 씨의 방에 노크했는데, 어째 반응이 느렸다.
‘끼이?’ 데미가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두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까만 콩알 눈이 묘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아웅.’ 잠이 홀라당 깬 포대기 속의 티테도 수염을 꼼질거렸다.
그들의 짝꿍인 쥘리에트 궁주라면 진작 알아들었겠으나, 아쉽게도 두 남녀는 신수어(語)에 그만큼 능통하지는 못했다(그런 게 존재한다면 말이다).
결국 가인이 살포시 인상을 구겼다.
어르신 주무시나? 분명 24시간 영업한다고 들었는데.
몸이 아주 어렸으니까 수면 시간도 유아 수준으로 돌아간 걸까?
“······한심하군.”
무에야?
물빛 눈동자가 즉시 위쪽을 째려보았다. 두 쌍의 눈길이 피지직 날카롭게 부딪혔다.
가인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솔직히 예전에는 대놓고 흘기지 못했는데, 한 8개월 전부터는 마음대로 하게 됐다.
말도 반쯤은 놓고 들어가는 편이었고 필요하면 망설임 없이 호통도 쳤다.
불만이 있으면, 네가 찌른 누구의 옆구리를 생각하라는 태도로 세게 나갔다.
그랬더니 의외로―진짜 의외로―사내는 더 강하게 나오지 않았다.
뭐, 황태자 역시 저에게 한결 막 대하는 면이 있었으니까. 샘샘이라 쳤다.
“이런 불법 도박장이 일 년 내내 운영되는 꼴이라니.”
“아, 그쪽이에요?”
난 또. 가인이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문고리를 돌아보았다.
어둑어둑한 지하 복도엔 끊임없는 도박쟁이들의 고성이 울리고 있었다.
‘콰아앙!’ 굳게 닫힌 문 너머로 간간이 탁자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거구의 청년들이 누군가를 끌고 나가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비매너 참가자는 확실히 걸러내는 모양이었다.
역시나 그들의 세레니테 후작이었다면 어깨를 떨며 놀랄 광경이었으나, 두 사람은 덤덤하기만 했다.
제국군은 이제 하루이틀이면 예리호에 당도한다고 들었다.
저놈들은 곧 업보를 돌려받을 것이다.
-아우으
“어엉, 우리 티테도 저 사람들 한심해용? 역시 누나 닮아서 똑소리나네엥? 앉아서 노름 못 하게 궁둥이 한 번씩 다 까주고 다닐깡?”
-애우웅
“······.”
“그나저나 노에 씨, 잠은 딴 데서 주무시나? 아예 반응이 없네요.”
“경도 한심하군.”
죽을래?
-똑똑똑똑, 똑똑똑
태자는 그대로 커다란 손을 뻗더니, 묵묵히 일곱 번 노크했다.
그제야 크리스텔의 머릿속을 번개같이 스치는 음성이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서 왼쪽으로 두 번, 오른쪽으로 두 번. 복도 끝 방이오. 문은 일곱 번 두드리시오.’
아! 그거 내가 먼저 기억했어야 하는데!
“······.”
-끼아?
“······.”
-아우?
그러나 문 너머에서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주홍빛 눈동자가 ‘영업 중’이라고 쓰인 팻말을 불태울 듯 노려보았다.
크리스텔은 소리 죽여 킬킬거리다가, 불현듯 제가 이길 필승의 패를 기억해냈다!
-벌컥!
그래서 냅다 ‘고해소’ 문을 열어젖혔다.
그때 우유와 아드보카트를 가져다주었던 주인 할아범처럼 말이다!
“계세요? 저희 재방문했습니다!”
“······맙소사, 무슨 일이냐?”
그런데 목소리가 제법 높은 곳에서 들렸다.
물꽃과 불꽃은 동시에 천장을 올려보았다.
좁디좁은 공간의 꼭대기에, 사다리를 놓고 오른 작은 인영이 보였다.
신관은 아마도 찬장에 꽂힌 책을 살피던 참인 듯했다.
곳곳을 밝힌 마법 조명 두엇이 썩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책상의 촛대는 그윽한 온기를 더했다.
크리스텔은 위쪽을 향해 양팔을 크게 흔들어 보였다.
“노에 씨, 안녕하세요. 늦은 시간에 실례합니다!”
“너희는 암시장으로 내려간 아이들 아니냐. 언제 다시 올라왔지?”
“궁금한 게 있어서요. 그거 해결하려고 일단 둘만 올라왔어요.”
“쯧······. 요즘 젊은것들은 인내심이 부족하다더니 사실이구나. 그렇다고 새벽 2시에 불쑥 노인을 찾아와?”
가인이 샐쭉 웃으며 콧등을 긁었다.
저도 마음 같아선 그냥 누워 자고 싶지만, 지하 암시장엔 도움이 절실한 신물과 아이들이 있었다.
그러니 어쩔 수가 없다.
“죄송해요. 피곤하실 테니까 바로 본론 말씀드릴게요. ‘악마의 발톱’에 관해 아는 바가 있으세요?”
-터어엉!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정보상의 손에서 책자가 추락했다.
‘끼이이!’ 놀란 데미가 화다닥 세드리크의 다리를 타고 올랐다.
사내는 신수가 제대로 자리 잡은 것을 확인한 뒤, 순식간에 책상으로 접근했다.
그야말로 육감에 따른 움직임이었다. 머리 위에서 노에가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그건 내 물건이다, 꼬마야. 그냥 거기 둬!”
‘덥석!’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책자를 집어 살폈다.
크리스텔이 후다닥 곁으로 다가와 까치발을 들었다. 뭐야, 뭔데?
“엇······?”
어라? 그건 책자가 아니라 액자였다.
붉고 푸른 두 쌍의 눈동자가 일시에 가늘어졌다.
손바닥 두 개를 합친 크기의 액틀엔, 딱 그만한 크기의 초상화가 담겨 있었다.
빛이 바랜 데다 조금 찢어졌으나 못 알아볼 수 없는 낯이었다.
이내 가인의 입술이 동그랗게 벌어졌다.
“노에 씨, 실례지만 이거 노에 씨예요? 신관 옷 입었고 되게 귀엽게 생긴 사람. 앉아 있는 사람! 이십 대 초중반 얼굴!”
“······.”
늙고도 어린 신관은 긴 한숨을 내쉬더니, 사다리를 잡고 한 칸 한 칸을 내려왔다.
그동안 세드리크는 초상화 속 두 여인을 꼼꼼히 관찰했다.
그중 의자에 자리한 사람은 분명코 정보상이었다.
비록 지금은 어린아이의 모습이 되었다고 하나 이목구비가 상당히 닮았고, 사제복을 차려입은 점과 머리색도 일치했다.
이어 진중한 눈길이 서 있는 사람 쪽을 살폈다. 이자는······.
“뒤엣 분은 누구예요? 언니? 동생? 친구?”
“······.”
상대적으로 평범한 옷차림, 길고 구불구불한 적갈색 머리카락. 주근깨가 많은 얼굴.
꼭 잡은 의자 등받이.
화가를 향해 환히 웃고 있는 노에와 달리, 그런 노에를 보며 미소하고 있는 여자.
“······악마의 발톱은 어찌 묻느냐? 암시장의 정보는 여간해선 흘러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 텐데.”
‘탁.’ 드디어 지상에 도달한 정보상이 차분히 말했다.
가인은 냉큼 다가가 공손하게 허리를 굽혔다.
“발톱이가 아주 아파요, 노에 씨. 그곳의 흑마법사들이 신물의 생명력을 전부 빼앗아가고 있대요.”
어린 얼굴이 삽시에 시신처럼 굳었다. 아무리 봐도 뭐가 있는 듯했다.
성기사는 열심히 뒷말을 이었다.
“저희는 거기서 어린아이들을 만났어요. 키나랑 빌럼이라고, 암시장에서 자란 열두 살 쌍둥이 남매예요. 지금으로서는 그 애들이 유일하게 신물을 지탱하는 존재 같아요. 저희도 잘은 모르지만······.”
“······.”
“들어보니까, 신물이 어떤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수백 년 동안.”
노에는 황급히 소매로 입을 가렸다.
그러고는 커다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가, 바쁘게 발을 놀려 책상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
가인은 덤덤히 할 일을 계속했다.
“누렇게 비쩍 말라서 다 죽어가는데, 정말 근근이 버티고 있어요. 아무리 신물이라도 저 상태로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싶어요.”
“오, 세상에······.”
애처로이 앓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세드리크의 눈끝은 그의 검보다도 예리하게 섰다.
“······나무를 배신했다는 신관. 그게 당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