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474)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474화(474/920)
#474
할아버지와 북해의 눈보라 (6)
그렇게 도착한 영주성은, 이미 도떼기시장이었다.
“예서 궁주님, 어서 오십시오!”
“예. 고맙습니다.”
급하게 움직이던 병사들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우르르 다가와 말 고삐를 받아주었다.
나는 모르한 씨를 에스코트하며 바쁘게 주변을 돌아보았다.
바카리 군은 내 로브에 묻은 먼지와 빵 부스러기를 털어주느라 부산했다.
분위기가 왜 이렇게 번잡해졌지? 두어 시간 전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어서 태자 전하께 말씀을 올리거라. 서둘러야 한다!”
“예!”
“대장님, 변경백께 올릴 보고서가 준비되었습니다!”
“블랑케르 공작님이 먼저 한 차례 검토하실 테니······.”
“수도원 병동과 천막촌 구호소는 만실입니다! 신규 환자들을 어찌할까요?”
“길드 건물에 준비된 임시 병상이 있네. 지금부터 전부 가동하고······.”
새로운 환자가 있다고? 혹시 암시장에서 추가로 생존자들이 대거 올라왔나?
그것 외에는 모두가 이토록 혼잡스러울 까닭이 없어 보였다.
그즈음 플뢰르 드 리스의 단장이 지나가던 마법사 하나를 불러세웠다.
“거기, 자네.”
“헉, 단장님! 궁주님!”
가벼운 갑옷 차림의 여인이 빠릿빠릿 절을 올렸다.
전투 마법사인데도 비전투 대원들과 더불어 상황 수습에 투입된 모양이었다.
사태가 그만큼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다가온 그녀의 입에선 흐린 김이 뿜어져 나왔다.
“갑자기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어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설명해 보게.”
“예, 조금 전 예리호 북문으로 수백 명의 피난민이 들어왔습니다!”
“피난민이요?”
내가 눈을 깜빡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전쟁 중에 난민이 발생하는 거야 당연하지만, 이곳은 신국 땅이니 그들 역시 신국의 백성일 터였다.
제국군이 무서울 법도 한데 하필이면 이쪽으로 왔다니 놀랄 노 자였다.
단순히 길을 잘못 든 걸까?
현재 페네티안 본진은 예리호 북서쪽에 자리했고, 만약 동쪽에서 오는 난민들이라면 신국군 근거지보다 여기가 지리적으로 가깝기는 했다.
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쉬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신국의 심장부인 동부는 아직 제국군이 나아가지 않은 지역인데, 무슨 이유로 사람들이······.
잠깐, 피란민(避亂民)이 아니라 ‘피난민(避難民)’?
게다가 북문으로 들어왔다고?
“북해 인근에서 영주의 허락을 받고 대피한 이들이라 합니다. 그들의 대표라는 자가 지금 블랑케르 공작님을 만나 뵙는 중입니다.”
“북해 인근이라면······.”
바카리 군이 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나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전투 마법사에게 모르한 씨를 부탁했다.
“마법사님, 이분을 방으로 모셔 주세요. 저희는 바로 태자님께 가보겠습니다.”
“명 받들겠습니다, 궁주님. 그렇지 않아도 폐하의 군사 회의가 소집된 참입니다. 대회의실로 가시면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모르한 씨, 이따 뵐게요!”
“고생들 해라.”
정보상이 나릿나릿 고사리손을 흔들어 보였다.
나는 황급히 바카리 군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
예언자의 뒤통수만 보고 대회의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분위기가 한참 심각해져 있었다.
“오셨어요, 궁주님. 단장님.”
“고마워, 가나엘.”
입구에서 로브를 받아주는 가나엘에게 인사한 뒤, 병사들의 안내를 받아 바삐 자리를 찾았다.
바카리 군이 테이블 반대쪽으로 향했고 나는 쭉쭉 앞까지 나아갔다.
상석 근처에 서 있던 가인 씨가 나를 보고는 씽긋하며 몇 걸음 물러났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녀와 황태자 사이로 끼어들었다.
셔츠와 조끼 차림의 세드리크 녀석이―그사이 병사들의 훈련을 참관한 모양이다―내 쪽을 일별하더니 다시 탁자로 눈길을 돌렸다.
로피가 동글게 몸을 말고 누운 자리 밑에······.
-톡!
요한 경이, 흑색 마편으로 대륙 전도의 북서쪽을 가리켰다.
“아시다시피 이 지역을 ‘초승달의 머리’라고 합니다. 대륙 서편에 낫 모양으로 누워 있는, 신국의 북부라는 뜻이죠. 위니테 강의 발원지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일 년 내내 날이 흐리고 추운 편이에요.”
그의 어깨에 매달린 데미가 귀를 쫑긋거렸다.
다른 지휘관들도 진중한 표정으로 요한 경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다행히 우리는 설명 초반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레아가 다가와 졸린다고 보채기에 서둘러 품에 안았다. 쉬, 착하지.
-끼응
“그리고 신국 남부를 ‘초승달의 꼬리’라고 합니다. 특히 풍요의 바다를 낀 남동쪽은 연중 날씨가 온화하고 강수량도 넉넉해서, 흔히들 지상 낙원이라 부르죠.”
“그렇다면 북부에선 매년 난민이 발생하나?”
“그렇다고 말씀드릴 수 있지만, 저런 숫자는 저도 처음 봅니다. 보통은 열 명 안팎의 인원이 추위나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야반도주하는 경우였거든요.”
남자가 부드럽게 눈꼬리를 휘며 말했다.
스타니슬라스 전하는 가슴 아픈 표정으로 혀를 차셨다.
답을 들은 프레데리크 폐하의 미간이 설핏 구겨졌다.
“아버지의 말씀대로군. 필시 북쪽에 사달이 난 거다.”
“그래. 듣자니 영주의 아들이 직접 대피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던데. 전부 지켜줄 수 없으니 떠나라고 했다잖아. 누가 보면 내전이라도 터진 줄 알겠어.”
카롤린 무테 변경백이 반삭 머리를 긁으며 툴툴거렸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서 나름대로 열심히 짱돌을 굴렸다.
설마 피난민들의 영주라는 이가, 모르한 씨가 말한 그 영주일까?
‘그곳의 어느 자작이 고약한 성정을 지녔다는 풍문은 들었다.’
‘고향 땅을 살리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지.’
‘그리핀에게 맞설 군사를 키우는 한편으로, 놈에게 바칠 인간 제물을 준비한다더구나.’
······산 사람을 괴물에게 제물로 바치는 영주가, 동시에 영지민을 구하기 위해 그들을 멀리 내쫓아버릴 수도 있는 건가?
신화급 마수에게 맞설 군대를 키울 만큼 절박한 지도자라면 그런 행동이 전부 가능한 걸까?
“난민들이 증언한 ‘그리핀’에 관한 내용은?”
흠칫. 나는 폐하의 물음에 입을 스르륵 벌렸다.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것이 이대로 사실이 되는가 싶어 소름이 돋았다.
저들이 진짜로 신화급 마수 때문에 여기까지 도망쳐 내려왔다는 말씀이신가?
설마 아니겠지?
“그 부분은 확답을 드리기 힘듭니다.”
요한 경이 난감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천하의 태사님이 모르시는 게 또 있구나!
“몇 년 전까지 다양한 의뢰를 받아 해결했지만, 북쪽으로 파견될 일은 드물었거든요. 아마 그곳엔 권력자들의 견제를 받을 만한 귀족이 없었다는 뜻이겠죠. 저로서도 ‘바다용(龍)과 그리핀 전설’을 대강 알고 있을 뿐, 그 밖의 사실관계는 모르겠습니다.”
“바다용과 그리핀 전설?”
-아아, 그거라면······.
가만히 듣고 있던 하난 폐하가 불쑥 끼어들었다.
모두의 눈알이 그녀를 향해 쌕쌕 움직였다.
왕은 이자벨의 고운 이마를 살포시 찌푸리더니······.
-이런, 기억이 잡힐 듯 말 듯 하군. 미안하게 되었다.
“괜찮습니다.”
엘리자베트 경이 그녀의 등을 쓸며 위로했다.
곁에 선 바카리 군은 내게 즉시 신호를 보냈다.
나는 반짝 손을 들었다. 맡겨만 주세요!
“그건 제가 알고 있습니다, 폐하.”
“그대가?”
“궁주님이요?”
“정확히는 조금 전에 정보상 모르한 씨에게서 들었습니다.”
태자 녀석과 가인 씨가 동시에 나를 돌아보길래, 재빨리 해설을 덧붙였다.
그러자 폐하께서 바로 턱을 까닥이셨다.
프랑수아는 벌써부터 엄청나게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나는 레아의 등을 도닥이며 차분히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푸른 바다를 마음에 품은 고대의 용과, 바다를 지배하려다 용의 도발에 넘어가 버린 그리핀 일족.
눈보라가 치는 계절의 악몽 같은 밤들.
위대한 두 괴물의 기나긴 싸움이, 북부 특유의 척박한 환경과 사나운 소문을 만나 오늘날의 설화를 만들어냈다는 결론까지.
“북해 지역 토박이가 아니면 잘 모르는 민담이고, 모르한 씨도 음유시인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그곳에 정말로 그리핀이 나타난다고 믿는 사람은 극소수랍니다. 상식적으로 매년 그럴 수는 없으니까요.”
“······.”
접때 우리가 만난 그리핀은 몹시 특별한 경우였다.
그놈은 마수를 삼키고 더 강한 진화형을 내뱉는, ‘리버스 던전’의 산물이었으니까.
그곳 입구를 막고 있는 골렘 ‘아르만도’는 요즈음 어떻게 지내나 모르겠다.
카르메는 요새도 그 이름을 중얼거리고 다니던데.
나는 옆길로 새지 않으려 노력하며 마지막 문장을 꺼냈다.
“아마 다른 우족 마수의 습격으로 추측된다고 하더군요. 저도 개인적으로는, 철새처럼 북부로 돌아오는 중하급 무리가 아닐까 생각······.”
“그런데 피난민들의 영주라는 바른 자작은 정확히 ‘그리핀’을 언급했거든. 그건 어떻게 생각하시나? 척척박사님.”
툭. 맞은편의 지브릴 디오프가 지팡이로 탁자를 짚은 채 물었다.
뭐야, 또 시비 거는 말투.
갑자기 살가워지는 건 기대도 안 했지만 지난번 대화 이후로 달라진 게 없었다.
나는 턱에 힘을 꾹 주었다.
“글쎄요. 저는 척척박사가 아니라서 거기까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볼통하게 되받아쳤다. 쩝쩝박사 처음 보냐?
-끼이이익!
“폐하!”
그 순간, 대회의실 문이 열리며 기사 하나가 급히 들어왔다.
뭇시선이 순식간에 그녀에게 꽂혀 들었다.
기사 뒤편으로는 병사 네 명이 따라붙었는데, 그중 둘이 평민으로 보이는 여인을 밧줄로 묶어 연행하고 있었다.
놀란 페리가 후닥닥 가인 씨의 등을 타고 올랐다.
테이블 뒤편에서 묵묵히 시중들던 다비드는 그야말로 경악에 경악을 했다!
“주신 맙소사, 자네 이게 무슨 짓인가. 어느 안전이라고 그자를 예까지 끌고 왔는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다비드 님. 허나 이자는 피난민들의 대표인 행정관이고, 조금 전 신탁 아래 중대한 증언을 하였습니다. 이를 확인한 블랑케르 공작께서 바로 이곳까지 올려보내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폐하와 두 분 전하, 그리고 대회의실의 지휘관분들이 가장 먼저 아셔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공작께서?”
중년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에바의 모친인 블랑케르 공작은 일면 지나치다 싶을 만치 신중한 성격이었다.
아무렴 이런 식으로 일을 벌일 분은 아니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말을 했길래······.
“입을 열게 해.”
“예, 전하!”
태자의 얼음 같은 명이 떨어지고, 병사들은 잽싸게 여인을 무릎 꿇렸다. 털썩!
나는 피난민들의 행정관이라는 자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녀는 얼핏 환갑에 가까워 보였다.
강마른 몸이 공포로 벌벌 떨리고 있었으며, 동상에 걸린 손끝은 섬찟할 만큼 푸르딩딩했다.
아무리 이방인이라지만 저대로 둘 수는 없었다. 다급히 고개 들어 가장 높으신 분을 바라보았다.
“폐하, 제발 부탁드립니다.”
“······쯧. 내키는 대로 해라.”
“감사합니다!”
나는 로브 아래 받쳐 입은 코트를 부랴부랴 벗으며 다가갔다.
가인 씨가 냉큼 따라와 나를 지켜주었다.
행정관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겉옷으로 그녀의 등을 감싸고, 주머니에서 뜨거운 물 담긴 수통을 꺼내 주름진 손에 쥐여 주었다.
그랬더니 퀭한 눈동자가 부들부들 떨리며 위로 올라왔다.
홀쭉한 볼과 허옇게 질린 입술을 보니 마음이 쓰렸다.
“아, 아아······. 하······.”
이내 뻑뻑하고 갈라지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괜찮아요. 아무도 해치지 않아요. 그저 여러분의 사연을 알고 싶어서 부른 겁니다.”
“그, 그리핀······. 간신······. 시체, 시체······.”
“듣고 있습니다. 천천히, 숨을 쉬면서 말씀해 보세요. 아주 느려도 좋습니다.”
나는 활짝 웃고서 심호흡을 했다.
‘흐읍’하는 소리와 함께 과장스레 양어깨를 들어 올렸다가, 길게 공기를 뱉으며 다시 축 늘어뜨렸다.
그러자 멍하니 나를 보던 여인이 몇 박자 늦게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몸에 온기가 도는지 확실히 표정이 풀리고 있었다. 다행이다.
“그게, 그것이······.”
“네.”
“여, 영주님께. 웬 간신배가 붙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은 일입니다. 그자가 끔찍한, 아주 끔찍한 이야기로 그분의 눈을 흐리게 하여······.”
“간신배요?”
바로 그리핀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사람 이야기가 먼저네?
“예에, 공자님. 이렇게, 이렇게 화려한 의수를 쓰는 남자가······. 허, 허벅다리까지 오는 의족을 달았는데······.”
내 얼굴에서 웃음기가 서서히 사라졌다. 행정관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자가, 영주님을 조종하고 있습니다. 저희 공자님을 좀 도와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