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477)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477화(477/920)
#477
어떻게 할 것인가 (2)
“알다마다.”
베르너르 페네티안은,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똑똑히 알았다.
-끼이이익, 쿠우웅······!
귀빈실의 육중한 돌문이 느릿느릿 닫혔다.
남자는 그 모습을 빤히 보며 길고 얇은 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자신만의 공간을 갖게 되었다. 이제야 겨우 안도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이지 가까스로.
살았다.
“하······.”
‘털썩!’ 국서는 눈앞에 보이는 아무 소파에나 주저앉았다.
페네티안 왕성에 있는 것과 비교하면 몹시 딱딱하고 형편없는 가구였다.
내성 곳곳에서는 퀴퀴한 가난의 냄새가 났고, 음식은 본가의 하인들 식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바른(Baarn) 자작령의 오래된 영주성은, 외관뿐 아니라 내부의 대부분까지도 까맣고 단단한 바위로 만들어져 있었다.
섬으로 이루어진 영지이다 보니 풍수해와 마수 피해로부터 건물을 보호하는 것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이다.
복도에는 그 흔한 태피스트리 한 점 걸려 있지 않았다.
다루기 힘들고 관리가 까다로운 초상화며 은접시 따위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마법 조명 역시 턱없이 부족해, 대낮에도 이곳이 성인지 지하 감옥인지 분간이 힘들 지경이었다.
그저 사방이 돌, 돌······. 온통 돌무더기였다.
“쿨럭, 쿨럭! 콜록! 하아······.”
하지만 오는 길에 겪었던 일에 비하면, 이런 환경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남자는 한동안 팔뚝으로 눈가를 가리고 심호흡을 했다. 후우······.
“숨이 쉬어지오?”
흠칫. 걸걸한 음성에 베르너르는 재빨리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렇듯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게 수치스러울 법도 하건만, 그는 여러 죽을 고비를 넘기며 자존심보다 목숨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참이었다.
눈앞엔 낯익은 여인이 서 있었다. 아마 오늘 그의 경호를 맡은 부하일 터였다.
그녀는 베르너르와 함께 예리호 암시장에서 땅굴을 파고 올라와, 하룻밤 만에 북해 연안까지 진출한 용병 중 하나였다.
그렇다. 고작 ‘하루’ 사이에.
“······못 쉴 것은 무에 있느냐.”
그렇게 묻자, 여인이 허망한 눈을 했다.
“그리 많은 사람이 맨땅에서 죽어 나갔는데,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소?”
“네가 나를 괴물로 보는구나. 이 몸도 사람이다. 당연히 속이 쓰렸지.”
‘비위가 상하더군.’ 베르너르는 그날 밤의 장면이 떠올랐는지 설핏 인상을 찌푸리더니, 탁자의 주전자를 들어 물을 따랐다.
찻잔도 이가 빠져서 구색을 갖춘 것이 거의 없었다.
이곳 영주에게는 남편이 없다더니, 과연 안살림이 엉망이었다.
하기야 재혼을 하려고 해도 이런 구저분한 땅에 장가오려는 공자는 없을 것이다.
지참금을 받지 않는다면 모를까.
“······비위가 상했다고?”
삐걱삐걱하는 물음이 돌아왔다.
베르너르는 퀴라소(Curaçao)가 섞인 것이 분명한 잔을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당연한 것 아니냐. 서로가 살겠다고 서로를 죽이고 있는데, 그런 광경을 보니 메스꺼울 수밖에. 피가 낭자하더구나.”
“나는 지금 그런 말을 하려는 게 아니오. 당신이 말릴 수 있었지 않소!”
여인이 끝내 언성을 높였다. 북풍에 거칠어진 목소리가 쩍쩍 갈라졌다.
그러자 국서가 번뜩 고개를 들었다.
“······.”
“······.”
다시, 눈이 마주쳤다. 용병은 반사적으로 한 걸음 물러나며 마른침을 삼켰다.
저 남자의 뱀 같은 시선에 닿으면 까닭 모를 공포가 일었다.
한두 번이 아니라 매번 그랬다.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두려움이 샘솟고 입술이 딱 달라붙어, 감히 뭐라고 더 말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들이 북해로 나아 오던 밤처럼.
‘이봐! 그거 내 주머니에서 나온 쿠키 아냐?’
발단은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이름 모를 두 남자의 실랑이.
‘무슨, 바닥에 떨어져 있던 거야!’
‘그러니까 내가 떨어뜨린 거라고. 내놔!’
암시장에서 빠져나와 북행을 결심한 이들은, 어림잡아도 이백 명이 훌쩍 넘었다.
그중 절대다수는 불안과 망상에 사로잡힌 환자였다.
굶주림, 피로, 추위와 고통 등이 그들의 숨통을 단단히 움켜쥔 채 신경을 긁고 있었다.
달조차 기울어 컴컴한 때였으며, 그들을 중재하는 신은 없었다.
그리하여 싸움이 크게 번지는 데는 단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미 절반은 내 뱃속에 들어갔잖아! 그냥 주면 어디 덧나?’
‘난 그걸 챙겨온다고 목숨을 걸었어! 무너지는 저택에서 맨발로 뛰었다고, 이 쓰레기 도둑놈아!’
‘뭐, 인마? 네가 땅에 버린 걸 먹었는데 왜 내가 쓰레기야! 이 쓰레기보다 못한 새끼!’
‘아, 근데 이게!’
이어지는 주먹질엔 인정사정이 없었다.
두 사람은 마구 뒤엉켜 서로를 폭행하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둘을 말리던 이들도 체력이 없어 나가떨어졌다.
잘못 휘말렸다간 그들까지 맞아 쓰러질 판이었다.
그저 가냘픈 신음을 흘리는 것만이 구경꾼들의 최선이었다.
기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얼어 죽을 상황이었으니까.
아니. 과연 최선이었을까?
‘어이! 그만해, 둘 다!’
‘아악, 악! 커헉!’
-퍽, 퍼억! 푹! 푸욱!
‘크흐윽, 억!’
‘······.’
바로 그때, 베르너르는 ‘보제나’가 주는 신호를 보았다.
수레 끄는 여인의 신성한 계시를 받았다.
물론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에게 특별한 몸짓을 보내지도 않았다.
하지만 남자는 본능적으로 깨달음을 얻었다.
그토록 빛나는 발상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맙소사. 죽었잖아. 자네가 사람을 죽였어!’
‘세상에! 겨우 쿠키 하나 때문에······!’
마침내 빼빼 마른 남자가 바닥을 뒹굴었고, 피투성이 남자가 땅을 딛고 섰다.
베르너르는 헉헉거리는 그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특유의 차림새나, 주머니를 비집고 나온 지팡이 탓에 모를 수가 없었다.
마담 모르한의 저택에서 보았던 자였다.
‘안타깝게 되었군······. 자네가 저자의 남은 숨을 거둬주게.’
흑마법사.
자신의 마나가 아닌, 남의 생명력을 빨아 힘을 얻는 거머리들.
‘방금 뭐라고 하셨소?’
‘나리, 설마······.’
어안이 벙벙해진 구경꾼들이 베르너르를 돌아보았다.
국서는 몹시 슬픈 얼굴로 눈썹을 늘어뜨렸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목숨도 위태로운 판국이니 정식으로 저이의 장례를 치러줄 수는 없네. 허나 반대로, 망자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베풀 수 있지 않겠나.’
‘······.’
‘자신의 마지막 생명력으로, 여기 있는 숱한 생명을 살릴 수 있을 걸세. 온기를 내어주고 속도를 더하게 될 테니.’
‘······.’
그 말은, 비극의 도화선이 되었다.
인생의 대부분을 땅속에서 보낸 범죄자들은 쉬이 어둠에 물들었다.
정말로 거짓말처럼, 그렇게.
‘그렇게 치면······. 여기 북부까지 도달하지 못할 환자가 많아 보이는데. 아니 그렇소, 나리?’
‘이 자식! 말 한번 잘했다. 너 아까 땅 밑에서 나한테 뭐라 그랬어? 응?’
‘뭐야, 이거 안 놔?!’
‘나 같은 놈은 그냥 암시장에서 뒈지는 게 낫다고 했어, 안 했어!’
‘퍼억! 푹! 퍼어억!’ ‘흐아아악!’ 이어서 피 튀기는 소리, 끔찍한 비명이 밤하늘을 찢어발겼다.
삼백에 가깝던 인원은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그사이 베르너르는 기민하게 움직여 세 바퀴 수레 뒤편으로 숨었다.
그를 가호하던 여인, 보제나는 어느덧 안개처럼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는 확신했다. 이것이야말로 주신이 자신에게 내린 기회라고.
‘살려줘! 난 걸을 수 있어! 난 북해까지 갈 수 있어!’
‘가기는 개뿔!’
-콰악!
‘크흐아악!’
그녀가 남기고 간 수레가, 흐린 월광에 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다.
“······대체 이렇게 해서 얻는 게 뭐요?”
“뭐?”
상념에 빠져 있던 국서가 퍼뜩 현실로 돌아왔다.
눈앞의 용병은 주먹을 불끈 쥔 채 벌벌 떨고 있었다.
“맞소, 나라고 떳떳한 인간은 아니오. 그러다 밉보일까 무서워서 동료들을 말리지 못했고, 나까지 공격할까 겁나서 죽어가는 이들을 감싸지 못했으니까. 그러니 나도 지옥에 떨어질 죄인이 맞소. 한데 그쪽은 대체 뭐란 말이오?”
“······.”
“귀하신 분이. 누가 봐도 고귀하신 분이 어째서 그런 살육을 지켜보기만 하셨소? 그리하여 얻는 게 뭐가 있다고?”
“얻는 게 없기는. 내가 이리 멀쩡한 몸으로 북부의 영지 하나를 삼키지 않았느냐.”
“그게 다요?”
“······.”
베르너르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용병이 부들거리는 손끝으로 돌문을 가리켰다.
“저 바깥에 있는 내 동료들, 거기다 하급 흑마법사들. 기껏해야 마을 하나 점령할 법한 인력이오! 우리 같은 놈들로 북부의 땅 한 조각 얻어서 좋다는 말씀이오? 그걸 순순히 믿으라고? 내가 비록 글도 제대로 못 읽는 싸움꾼이지만, 여기가 망한 깡시골인 건 알고 있―!”
“나는 폐하께 갈 것이다.”
‘헉.’ 순간 호흡이 턱 막혔다.
진득한 초콜릿색 눈동자가 그대로 녹아 목구멍에 들이 부어지는 것 같았다.
갑자기 숨을 쉬기가 힘들고, 소리조차 마음대로 낼 수가 없었다.
여인은 화살 맞은 산짐승처럼 턱을 떨어댔다.
충격에 잠식된 성대가 미친 듯이 바들거렸다.
“그······. 그게, 그게······. 뭐······.”
“슬프게도 나는, 이제 아무도 믿지 못한다. 어여쁜 딸도. 내 누님도.”
그는 조금도 슬퍼 보이지 않았다. 용병은 사력을 다해 뒷걸음질 쳤다.
“허나 이렇듯 힘을 되찾았고 주신의 각별한 돌봄까지 받고 있으니, 앞으로는 거리낄 것이 있겠느냐?”
남자는 자신이 끌고 온 수레를 다정한 손길로 쓰다듬었다.
그 모습엔 싸르륵 소름이 끼쳤다.
“나를 지킬 수 있는 세력을 모아, 왕도로 갈 것이다. 그리고 폐하를 만나 뵐 것이다.”
“허어······.”
어느덧 문 앞까지 밀려간 용병이, 다급히 손을 뒤로 뻗어 문고리를 찾았다.
식은땀으로 축축한 손바닥은 자꾸만 목표물 근처에서 미끄러졌다. 빨리, 빨리, 빨리······.
“너희는 나를 보필하여 무사히 이곳까지 오게 하였으니, 훗날 기사 작위라도······.”
-끼이익, 쿠우우웅!
잽싸게 문을 열어젖힌 여인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베르너르는 피식 웃고서 천천히 술 섞인 물을 머금었다.
저 천것이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떠나도록 내버려 둘 것이다.
“······.”
그리고 그는, 착실히 왕도로 나아가 아내를 만날 것이다.
오직 그녀 앞에서 그간의 모든 진실을 밝힐 것이다.
자신이 예서 페네티안을 살해했고, 그것은 전부 국왕인 당신 때문이었다고.
당신의 부덕(不德)과 부정(不貞)으로 사랑스러운 아들이 끔찍한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고.
모든 것은 오롯이 당신과 미카엘의 업보이며, 자신은 온 세상의 핍박과 학대를 홀로 꿋꿋이 견디며 살아왔다고.
당신의 차디찬 무관심에도 시들지 않고 겨울을 나, 마침내 승리자로 귀환했노라고.
-휘익, 쨍그랑!
“코르넬리서를 데려가면 더욱 좋겠지.”
그리고 지켜볼 것이다.
그녀가 뒤늦게 후회하고, 저를 붙든 채 눈물을 흘리고, 용서를 빌며 비참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사랑하는 여자의 정신이 완벽히 부서지는 황홀경을.
“크리스타너······.”
그녀가 죽을 때까지, 저만을 바라보게 만들 것이다.
잔을 집어던진 베르너르의 의수가 휘황한 광채를 뿜고 있었다.
*
12월 15일 아침.
-뚜벅, 뚜벅, 뚜벅, 뚜벅······
지브릴 디오프는, 평소보다 조금 빠른 보폭으로 걸었다.
예리호 영주성은 새벽부터 매우 소란했다.
기실 군영이 도착한 이래 이곳이 조용했던 적은 없지만, 이번에는 사뭇 분위기가 비장했다.
남자의 기다란 자수정 귀걸이가 바쁘게 팔랑거렸다.
매일 이 시간이면, 귀빈실 1층 테라스에 나와서 바깥 공기를 마시는 사람이 있었다.
오늘은 반드시 가장 먼저 만나야 했다.
-뚜벅.
······그래, 저 녀석.
“에반.”
“······오라버니.”
낡은 흔들의자에 앉아 있던 마르그리트가, 나릿나릿 그를 돌아보았다.
날씨가 찬데 담요까지 두르고 나와 있는 꼴을 보니 좋기도 하고 싫기도 했다.
이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잔소리는 결국 제가 듣게 될 터였다.
하지만 블레즈 본 주교는, 동생이 바람을 쐬고 싶어 하거나 다른 풍경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좋은 신호라고 했다.
만약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다면 그건 더없이 긍정적인 지표라고 했다.
“어딜 보고 있었어?”
“가나엘 공자와 무테 경요.”
‘둘이 참 다정해서 예쁘거든요.’ 공녀의 목소리가 조용조용 바람을 타고 흘렀다.
지브릴은 그 시선을 좇아 멀리, 황폐한 정원에 시선을 두었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나는 북부로 간다. 너를 여기 두고. 그 대단하신 궁주님 호위로.”
“······.”
“괜찮겠어?”
‘네가 불편할 것 같으면 안 가.’ 그렇게 덧붙이자, 작은 웃음소리가 돌아왔다.
과연. 더없이 긍정적인 표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