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488)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488화(488/920)
#488
청춘☆ 바다용 무관학교 (3)
요한은 오랫동안 혼자였다.
‘우리 잠깐 얘기 좀 해요.’
‘뭐?’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둘만 따로. 아니지, 셋이. 당장.’
당연한 계산이었다. 남자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고아였다.
평생 부모의 얼굴은커녕, 목소리조차 모르고 살았다.
솔직히 알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요세피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지도 한 장 없이, 머리 누일 땅 한 조각 없이 전국을 떠돌았다.
그저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인생이었다.
페네티안 신국은 전체적으로 폐쇄적이고 비밀이 많은 나라였다.
그나마 어린아이였으니 망정이지, 그가 더 자란 뒤에 버려졌더라면 파리 목숨이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 없었다.
혹은 에테르 각성이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또는 그가 신관으로 발현했더라면.
매일이 위태로운 여정이었다.
‘빨리, 빨리.’
‘랑부예 경.’
‘감히 누구의 몸에 손을―’
‘궁주님 얘기예요. 사유는 어젯밤.’
“······.”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터 잡았던 마을을 잃은 요한은 다시 방랑했다.
이번에는 여리고 어린 아들과 함께였다.
그는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제 삶 같은 건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남자는 오직, 헤릿을 살리는 도구로서만 자신을 취급했다.
도중에 쾌락이나 재미를 누리는 것은 끔찍한 사치였다.
사랑이니, 우정이니 하는 허상의 단어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그런 것이 허락될 리 없었다.
제자의 온기 같은 것이 오래 머무를 턱이 없었다.
······그래도 좋은 삶이라면, 처음부터 그토록 가혹하게 시작했을 리가 없으니까.
-달칵
방문이 열렸다.
숨소리를 듣고 예상하기는 했으나, 손님은 정말로 의외의 인물이었다.
“······전하.”
“이른 새벽부터 미안하네, 태사.”
배정받은 숙소의 복도에, 거대한 노인이 호리호리한 마법사를 부축한 채 서 있었다.
언뜻 살핀 프랑수아는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흘러내린 갈색 머리칼이 그의 속눈썹을 몇 번이나 스치고 있었다.
요한은 소리 없이 뒤를 확인했다.
방의 양끝에 놓인 침대 중 하나에, 마법사 지브릴 디오프가 몸을 구긴 채 잠들어 있었다.
대관절 어디서 구해다 마셨는지 그의 몸에선 싸구려 술 냄새가 진동했다.
어쩌면 이곳까지 학생을 끌어들이지 않은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자네밖에는 부탁할 사람이 없었네. 아이들은 놀라고 당혹할 것이 뻔하니.”
“······.”
“나는 사냥을 나가기로 했다네. 누군가는 이곳 아이들을 든든히 먹여야 하지 않겠나.”
노공이 씁쓸한 음색으로 말했다.
요한은 크리스텔의 손이 닿았던 자신의 팔목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들었다.
“······그 시기입니까?”
“역시 알고 있구먼. 그럴 것으로 생각했네.”
선대 국서, 스타니슬라스의 눈썹이 슬프게 구겨져 있다가 잠시 피었다.
프랑수아 뒤엠은 매년 이맘때 호된 몸살을 앓는다고 했다.
세상 어느 곳에도 희망 따위는 보이지 않는 한겨울.
그가 부모님과 어린 동생을 잃고, 장례와 상속 절차를 마무리하고, 열아홉의 나이로 후작위에 오른 계절이었다.
요한은 그 이야기를 저의 주군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하지만 후작이 겪었을 일련의 고통만큼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잠시 침묵했다. 노인장은 그를 향해 슬며시 미소 지었다.
“자네는 프랑수아와 또래가 아닌가, 그렇지?”
“다섯 살 차이입니다.”
“숫자를 말한 것이 아니라네. 그간 마음에 쌓인 것들 말일세.”
그런 문장에는, 일순 말문이 막혔다. 요한은 살면서 어른을 만나본 적이 많지 않았다.
노공은 예의 인자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오렐리에게서 자네의 사연을 들었네. 내 딸이 자네를 썩 신뢰한다는 이야기도.”
“······일단 보건실로 데려가야겠군요. 약은 제게도 있지만, 환자를 보살피기에는 그쪽이 더 편할 겁니다.”
‘옳지, 그럼세.’ 소드마스터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요한은 자신의 짐에서 몇 가지 상비약을 꺼낸 뒤, 노인의 어깨에 눕다시피 한 프랑수아를 날래게 빼내 업었다.
그가 몇 번이고 괜찮다며 만류했으나 정중히 거절했다.
스타니슬라스는 요한이 충성하는 이의 아버지였으며, 복종하는 이가 존경하는 어른이었다.
그리고 아픈 사람을 가누는 일은 추기경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뚜벅, 뚜벅, 뚜벅······
그렇게 두 사람은, 환자 하나와 함께 새벽의 복도를 거닐었다.
컴컴한 길목엔 드문드문 촛대가 흔들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꺼질 듯 아슬한 빛이었다.
“프랑수아가 자원했네. 프레데리크와 카롤린이 말렸지만 듣지 않더군.”
“······.”
자신이 아플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마법사가 이곳 북부까지 동행한 경위였다.
요한은 묵묵히 앞만 보고 걸었다.
“올해는 정말 괜찮은 것 같다고, 크게 앓지는 않겠다고 했어.”
“······.”
“무슨 일이 있거든 제가 태자와 아이들을 데리고 단숨에 예리호까지 돌아오겠다고. 그러니 심려하실 것 없다고. 신하가 그리 주장하는데 황제가 어찌 버틸 수 있었겠나.”
한 장의 탄식 같은 말이었다. 둘 사이에는 다시 아무런 대화도 흐르지 않았다.
성기사는 자신의 목숨을 귀히 여기지 않는 마법사에 관해 생각했다.
-자박, 자박, 자박······
“태사. 보검 뒤랑달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아는가?”
문득, 노인이 질문했다. 요한은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뒤랑달은 프레데리크 황제의 검이자 리에스테르 황실의 유서 깊은 보물이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운철(隕鐵)이라네. 말 그대로 주신이 하늘에서 내린 자재였지.”
옛날이야기를 하듯 아득한 음성이었다. 성기사는 내내 무표정으로 움직였다.
“소드마스터인 나도, 운철을 휘두르는 프레데리크를 이겨본 적은 없네. 내 딸이어서가 아니라 뒤랑달이 그토록 단단하기 때문이었어. 그래서 모두가 그것을 ‘황제의 첫 번째 검’이라고 부른다네. 지금껏 수십 명의 황제를 모시고도 부러지지 않는 위대한 무기이니.”
“······.”
“허나 자네는 사람일세.”
흠칫. 민트색 눈동자의 중심이 크게 벌어졌다. 노공은 잠시 제자리에 섰다.
요한은 그보다 반걸음 앞에 멈추어 그를 돌아보았다.
색이 다른 한 쌍의 시선이, 남자의 속을 찬찬히 살피고 있었다.
“검이 아니라, 휘두르면 꺾이고 다치면 피를 흘리는 사람.”
“······무슨 뜻으로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사실은 안다.
“구릉지에서, 공주 아기가 자네와 세드리크를 데려가 하는 말을 들었네. 엿들으려던 것은 아니니 이해해주게.”
노인이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과연, ‘위대한 황혼의 반려’는 범상치 않은 어른이었다.
그는 진득하고 참을성이 좋았다.
요한은 그날 크리스텔이 저에게 쏘아댔던 말들을 떠올렸다.
‘궁주님이 우리를 무서워한다잖아요.’
‘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 얘기를 지브릴 디오프한테 들은 게 진짜 빡치는 부분.’
‘우리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는데, 오히려 그 반대인데 우리 때문에 궁주님이 압박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요. 설마 아니라고는 하지 마세요, 두 분 다.’
푸른 눈망울이 손에 잡힐 듯 생생했다.
그녀가 그런 식으로 말할 때, 요한은 가슴 속의 심지가 물렁해지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그는 엄한 선생이었지만, 제자들의 어떤 모습엔 약한 것일지도 모른다.
‘먼저 요한 샘.’
‘저요?’
‘네. 샘도 잘못하셨어요, 솔직히. 생각해 보니까 그래. 샘은 왜 샘 얘기를 안 하세요?’
“자네가 자기 얘기를 안 한다더군.”
“······.”
요한은 그 말대로 묵비권을 행사했다.
‘······제 이야기가 필요한가요?’
‘저희한테는 필요하죠. 궁주님한테는 절대로 필요해요. 우리는 친구잖아요!’
‘······.’
‘막 어려운 얘기 해달라는 게 아니고요. 요한 샘 취향, 요한 샘 하기 싫은 거, 요한 샘 사고 싶은 거. 그런 거 있잖습니까.’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은데요.’
‘악!’
“태사. 세상에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네.”
“아뇨. 그런 존재는 있습니다.”
“헤릿에게도?”
갑작스러운 이름에 입이 딱 다물렸다. 요한은 뻣뻣하게 굳은 혀를 깨물었다.
어떻게······.
“그 사랑스러운 아이에게도, 자네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인가?”
“······.”
“그래, 아니지. 자네가 제일 잘 알 걸세.”
노인이 수염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웃는 낯이었다.
그는 다시 아무렇지 않게 저벅저벅 앞서 걷기 시작했다.
추기경은 반 박자 늦게 뒤를 따랐다.
잠든 프랑수아의 이마에선 차츰 열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어느덧 보건실이 있는 복도에 들어섰다.
“자식과 손주가 있는 노인으로서, 감히 하나 묻겠네.”
“······.”
“자네는 헤릿의 세상을 자네에게만 묶어둘 셈인가?”
“······.”
요한이 즉시 스타니슬라스를 올려다보았다. 이건 태어나서 처음 듣는 질문이었다.
온화하기 이를 데 없는 눈빛이, 오롯이 그를 담고 있었다.
복도의 어둠은 차마 노인을 삼키지 못하고 뒷걸음질 쳤다.
“자네도 알다시피, 자식은 눈 깜빡할 사이에 자란다네. 비 온 뒤 죽순처럼 말일세. 그리고 자라나는 아이에게는 어른의 넉넉한 양분이 필요한 법이야. 마땅히 보호자의 세계가 아름답고 너를수록 좋겠지. 하지만······.”
마침내 두 사람은 보건실 앞에 느릿느릿 멈추어 섰다.
“헤릿은 자네의 세계를 사랑할걸세. 왜냐하면 자네를 사랑하니까.”
“······.”
그 말엔, 울컥하고 목이 잠겼다. 스타니슬라스는 여상하게 말을 맺었다.
“그러니 가꾸어주게. 자네의 세계도. 아직은 자네를 위해 그럴 수 없다면 귀한 아이를 위해서라도.”
“······.”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게야. 내 약조함세.”
노인은 조심스레 속삭이더니, 두 사람이 들어갈 수 있도록 보건실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요한의 하얀 가운 주머니에 꽂아 주었다.
남자는 시큰거리는 눈에 힘을 주어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
소중히 말린 장미 꽃다발이었다.
요한이 아들의 머리칼처럼 하얗게 숨어 있는 안개꽃을 발견했을 때, 스타니슬라스는 이미 복도를 떠나고 없었다.
*
······정예서 미친놈. 진심 역대급 멍청이.
어떻게 이걸 까먹을 수가 있어?
그렇게 앓던 모습을 직접 봤으면서 1년 만에 잊었다고?
아무리 그동안 정신이 없었어도 그렇지, 이게 말이 되냐?
“군영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긴장한 목소리가 쩍쩍 갈라졌다.
나는 프랑수아의 침대 앞에 조그만 의자를 끌고 와 앉아 있었다.
지금은 다행히 열은 없는데, 몸이 축축 늘어지고 약간의 어지럼증이 있단다.
본인 말로는 작년과 비교하면 가벼운 수준이라고 했다.
하지만 절대로 괜찮은 건 아니었다. 절대로.
“아아. 행여나 저를 쫓아낼 생각은 말아 주십시오, 길드장님.”
“이렇게 춥고 험한 곳에서 환자를 어떻게 혼자 보내겠습니까. 보내더라도 누군가 동행해야 할 테니 다른 길드원들과 논의를······.”
“여기 있겠습니다.”
마법사가 눈부신 미소와 함께 말했다.
촉촉한 연분홍색 눈동자가 나를 올곧이 바라보고 있었다.
커피 같은 머리카락은 우윳빛 베개에 아기자기한 라테 아트를 그렸다.
나는 순간 할 말을 잃고 입술만 달싹거렸다.
이런 거에 약해지면 안 되는데, 젠장······.
“프랑수아가 걱정돼서 그럽니다.”
“저 또한 여러분이 걱정되어 떠날 수가 없습니다. 그것뿐입니다.”
“······.”
그 소곤거림엔 너무나 분명한 진심이 깃들어 있어서, 나는 뭐라고 더 대꾸하지 못했다.
대신 고개 들어 헤릿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오늘 어딘가 조금 달라 보였다.
아침 수련 없이 푹 주무신 걸까? 그랬다면 다행이다.
“요한 경, 프랑수아를 잘 부탁드립니다. 접때 앙투아네트 공녀 말로는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게 해야 한다고······.”
“오. 헤인스 경이라면 믿을 만하지요. 제 사랑스러운 대자(代子)의 아버지이신 분 아니겠습니까.”
“그렇긴 한데······. 예?”
잠깐, 뭐라고?
“제가 지금 무슨 소릴 들은 겁니까?”
두 눈이 당장 용수철을 달고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이거 진짜야?
“하하하하.”
“아니, 거짓말 아니고 참말로? 저 놀리시는 거 아니죠?”
‘요한 경!’ 내가 벙한 얼굴로 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는 특유의 우아한 눈웃음을 지어 보일 뿐 별다른 답이 없었다.
어어, 나 좋아해도 되는 거야? 실제 상황이야?
“진짜 프랑수아가 헤릿 대부예요?”
-데에에엥······!
그 순간, 밖에서 크고 요란한 종소리가 울렸다.
나는 잠깐 정색했다가 입을 떡 벌렸다.
“헉, 1교시 시작종!”
“이런.”
와, 지각이다. 학생들 훈련 돕기로 했는데 첫날부터 지각이야!
“다녀오겠습니다! 이따 꼭 얘기해 주세요!”
나는 협탁 바구니의 빵을 아무거나 입에 물고, 미친 듯이 복도로 뛰쳐나갔다.
당혹과 부끄러움으로 벌써부터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미친, 나 학교 다닐 때도 늦어본 적이 없는데!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