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505)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505화(505/920)
#505
고해와 묵시 (5)
“여의마니는 사룡의 심장이라고 했어. 마수 떼는 본격적으로 그걸 노리기 시작했대.”
-싸르르, 싸르르, 싸르르르······!
첫 일출의 강렬한 빛이, 막사 전체를 느릿하고도 붉게 집어삼키고 있었다.
거센 파도 소리가 잠깐의 적막을 꿀꺽꿀꺽 들이켰다.
우리는 모두 조안의 이야기에 홀린 듯이 집중했다.
손바닥 위의 도마뱀은 이따금 바들바들 몸을 떨거나, 내 엄지를 꼭 잡은 채 고개를 박고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모든 전투와 고통을 생생히 기억하는 것처럼.
“참! 남부의 화산이 폭발했던 건, 사룡이 생각하기에도 자신의 권능이었다고 해. 용의 강림으로 인간은 무지막지한 재앙을 맞닥뜨린 거지.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
“그래서 누구도 사룡의 싸움을 돕지 않았대!”
조안이 크게 팔짓하며 설명했다. 나는 놀라서 눈을 깜빡였다.
수도원의 도시 예리호에서, 모르한 씨가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감히 어떠한 인간도 용을 도울 수 없었다.’
‘왜요?’
‘난들 알겠느냐. 전승이 그랬다니 그렇다고 하는 것이지.’
······맙소사. 그랬구나.
나는 서늘한 깨달음에 입술을 깨물었다.
-콰콰콰쾅······!
‘도망쳐! 동굴로 달아나라!’
‘누구도 용을 도우러 가서는 안 돼! 내륙으로 들어가!’
‘흐아아악!’
불에 대한 공포와 분노에 찬 고대 인간들은, 사룡을 돕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의 고난을 방조했다.
열을 다스리는 용의 권능으로 동해가 일 년 내내 적수온(適水溫)을 누리고, 어황이 좋아져 ‘풍요의 바다’라는 이름이 붙었는데도 그를 배신했다.
이는 오래도록 간직한 두려움이 신앙심을 이긴 결과였다.
어쩌면 긴 시간 쌓인 복수심이 정의감을 억누른 결과일지도 모른다.
또는, 신물의 권세와 자신들의 행운을 혼동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집채만 한 마수 떼가 바다로 들이닥치는데도, 그들은 신물을 도와 싸우지 않았다.
배가 가라앉고 보물이 강탈당하는 순간에도 인간은 더욱더 깊이 숨어들었다.
-끼루루루루!
‘아아아악! 또 마수가 옵니다!’
‘숨어라! 저들끼리 서로 싸우다 공멸하는 것이 옳은 길이다!’
-쿠구구궁―!
도리어 그 전투로 인하여 또 다른 이가 죽고 사라질 것을 걱정하면서.
“문제는 사룡의 심장이, 말 그대로 심장이었다는 거래.”
“헐······.”
가인 씨가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았다. 도마뱀은 네 다리에 힘을 빼고 축 늘어졌다.
“피시스. 그런 이름이라는데? 들으면 알 거라더라.”
“세상에.”
나는 황급히 꼬마와 눈을 마주했다. 잿빛 눈망울은 온통 상실과 슬픔에 젖어 있었다.
설마 했던 생각이 진실로 드러나는 기분은, 결코 시원하지도 유쾌하지도 않았다.
······이 애는 신물의 ‘본질’을 빼앗긴 거야.
“심장, 피시스? 여의마니? 에이, 심장 빼고는 다 어려운 이름이네. 아무튼 그리핀 일족은 바다를 제패하기 위해서 먼저 용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판단했대. 궁주님 말대로 워낙 지능이 높은 놈들이었나 봐.”
“······.”
“그래서, 심장을 뺏기로 했대.”
-콰과과광!
-크르르르르······!
사룡은 그렇지 않아도 열세였다.
주인 없는 신물의 힘에는 한계가 있는 데다, 무려 자신의 자유를 완벽히 박탈하는 ‘바다’에서 벌어진 혈투였다.
그에 비해 날개 달린 그리핀 무리는 하늘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마수라면 물과 불에 약한 것이 기본이지만, 신화급 마수쯤 되면 이미 피부조직과 두께부터 하급과는 엄청난 차이가 났다.
비행 속도며 재생력, 완력도 어마어마했다. 놈들은 애초에 다수이기도 했다.
반대로 용은 하늘을 날 수 있었으나, 물에 젖은 몸뚱이로는 멀리 달아나기가 힘들었다.
당연히 그리핀을 덮치고 물어뜯기도 쉽지 않았다.
신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였다.
바다를 사이에 둔 마수와 신물의 전투는, 그렇게 수십, 수백, 수천 일간 반복되었다.
-콰콰콰콰······!
마침내 물먹은 비늘과 꼬리가 화룡을 빙하 밑으로 끌어내리고,
-끼기기기깃! 끼기깃!
-끼루루, 끼루루루, 끼루루룩!
-끼야악, 끼야악, 끼야아악······!
피범벅이 된 그리핀 일족이 하늘을 선회하며 함성을 지르고,
-크러어어엉!
-······콰아아아아―!
본신(本身) 그 자체인 여의보주를 빼앗긴 용이, 외마디 비명을 토하며 북해의 섬으로 가라앉기 전까지.
-참방!
흠칫. 우리는 무언가가 물에 빠지는 소리에 현실로 돌아왔다.
이 빠진 찻잔에 불그죽죽한 덩어리를 넣고 계시던 할아버님께서, 일행을 보며 난감한 미소를 지으셨다.
“이런, 미안하구나. 황설탕돌모란의 촉수를 말린 것이 피로 해소에 그리 좋다 하여······. 너희에게 먹일 것을 준비 중이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오히려 감사드립니다.”
나는 어르신께 꾸벅 인사하고서 도마뱀과 다시 눈길을 마주했다.
녀석은 과거 이야기가 힘들고 치욕스러운지, 처음으로 나의 시선을 피했다.
가엾게도.
“아! 이제 알았다. 그래서 <이브의 대모험>에 나오는 사룡한테 구슬이 없었나 봐요.”
찰싹! 가인 씨가 자신의 무릎을 때리더니 손을 번쩍 들었다. 네?
“거기 보면 알렉상드르 전하께서 작업하신 삽화가 제법 있는데, 사룡은 그냥 귀여운 악어처럼 그리셨던 것 같아서요. 돌이켜 보니까 여의마니도 없었고 말입니다.”
“헉, 듣고 보니 그러네요. 심장이 중요하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설명도 없었습니다.”
내가 허공을 더듬어 보며 답했다.
그래, <와장창! 이브의 대모험>.
그 책은 확실히 제국보다는 신국 신물에 관한 설명이 불친절했고, 뒤로 갈수록 해설보다는 동화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초심자에겐 좋은 참고서지만 심화 학습용으로는 부족했던.
“네. 저 애가 거의 이천 년 전에 여의마니를 잃어버렸다니까, 인간들 전승에서도 잊혀서 결국에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그쵸?”
“그렇군. 누구도 싸움을 돕지 않았다면, 대양의 전투를 제대로 목격한 놈도 드물었을 테고. 여긴 안 그래도 외진 땅이니까.”
“너한테 말 안 했는데.”
“나도 혼잣말한 거야.”
지브릴 디오프와 가인 씨가 아웅다웅했다.
나는 조금 떨리는 손으로 도마뱀의 머리를 도닥여주었다.
“혼자서 많이 고생했구나. 그래서 네가 심장을 잃어버린 걸 아무도 몰랐어.”
-······.
“바다를 지키다 바다에 빠져 실종됐으니, 네 행적을 기록한 글이나 그림도 없고. 그저 구전으로만······.”
-······.
“본신인 심장을 잃어 그런 꼴이 됐나?”
툭, 옆자리의 황태자가 내뱉었다. 나는 온몸으로 경악하며 녀석을 돌아보았다.
야. 더 둥글둥글하게, 좀! 같은 말이라도 꼭 그렇게 해야만 속이 후련했냐!
-톡
“······.”
그랬더니 도마뱀이 덤덤하게 꼬리를 움직여 긍정했다.
누구의 눈에도 별로 상처받지 않은 듯한 태도였다.
자신의 과거 때문에 지쳤으면 지쳤지, 이런 말엔 끄떡없는 기색이었다.
나는 녀석을 일별했다가, 화성의 혜검을 쳐다보았다가, 마지막으로 혜검의 주인 되는 사내를 응시했다.
이제는 조금 어이가 없으려고 했다.
설마 불 속성들은 죄다 이런 화법에 익숙한 거야?
“허······.”
너희도 다 같이 MBTI 검사해봐야 하는 거 아니냐? 그때 공기 속성분들이랑?
“크흠. 여러분을 건드렸던 것도 그래서였다네? 잃어버린 심장을 다시 구축할 수는 없을까 싶어서. 그런 기적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지만, 좋은 그릇만 있으면 시도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대. ‘계절이 수상하여 그만큼 절박하였소······.’ 이게 뭔 말이야?”
“좋은 그릇이요?”
내가 목을 기울였다. 조안은 공중에 손을 건 채로 급하게 쪽지를 읽었다.
“어어, 내가 써놓은 내용에 따르면······. 아주 명필 나셨네. 아! 신물의 에테르가 응축된 피시스는, 그 자체가 본체이자 심장이자 그릇이래.”
“네.”
“응, 그걸 잃어버렸으니까 새롭게 만들면 어떨까 했대. 말도 안 되는 생각인 거 자기도 아는데, 이렇게 좋은 그릇들이 한꺼번에 이곳까지 온 적은 처음이라 조금 설렜다나?”
“허어······.”
나는 헛숨을 터뜨리며 도마뱀을 바라보았다. 꼬맹이가 민망한 듯 몸통을 휙 돌렸다.
그래서 프랑수아의 입술을 빼앗아 그릇을 탐하려 하고, 디오프 공자의 지팡이를 훔쳐서 그릇을 가늠했구나.
요한 경의 머리끈을 훔친 것도, 할아버님의 허리띠를 탐낸 것도 그래서였어.
전부 그릇의 깊이를 확인하려던 거야.
“그럼 크리스텔이나 태자님은? 이미 신물의 주인이라 접근하지 못한 거고?”
-톡
도마뱀이 거듭 꼬리로 손바닥을 두드렸다. 귀여운 대답 방식이네.
-삐삐삐이
그러자 내내 얌전하던 뚝심이가 목청을 올렸다.
움찔한 조안이 무언가 생각난 듯 ‘맞다!’ 했다.
“그것도 답을 써놨다, 이 말씀이야. 이것 봐. ‘하나는 이미 신성한 불의 주인이기에 접근할 수 없었고, 다른 하나는 내 연인의 물을 품었으므로 감히 손댈 수 없었소이다.’ 무슨 연극배우 말투라니까?”
“바다가 저 꼬맹이 연인인 거예요? 엄청 낭만적이네.”
가인 씨가 도마뱀을 보며 끌끌 웃었다.
꼬마 사룡의 등이 토마토주스처럼 빨갛게 물들었다. 하하하.
“그럼 도서관에선 왜 나를 기절시키셨대?”
“어? 아, 그때는 분홍 공주님이 신물을 흡수했다는 사실을 몰랐대. 그냥 물 속성 성기사인 줄 알고 대뜸 그릇부터 훔치려고······. 공주님 영혼 조각 하나 삼켰다가 진짜 소멸할 뻔했다는데?”
그 말엔 입이 떡 벌어졌다.
세상에, 난 그때 아무것도 모르고 도마뱀 등이나 두드렸는데!
“진심으로 다 걸고 미안하대. 잠깐 눈이 돌았었나 봐. 그리고 마지막으로, 꽃송이 궁주님에 관해서는 이렇게 말했어.”
“예?”
“······‘그분은 주신께서 간택하신 그릇이외다. 이 몸은 그저 경외하고 또 경외할 뿐이었소.’”
“그런 것치고는 내 도마뱀 녹틸루카를 되게 좋아했잖아. 그거 훔치려다 잡혔으면서.”
내가 중얼거렸다. 사룡은 이제 꼬리와 발가락 끝까지 홍옥처럼 빨간색으로 변했다.
“크흠. 아무튼! 저 도마뱀이 뚝심이에게 말하고, 뚝심이가 헤릿에게 말하고, 헤릿이 나한테 전해준 얘기는 여기까지야. 본체인 심장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사룡은 지금 신물인 동시에 신물일 수 없는 존재래. 용의 모습 역시 수만 조각으로 산산이 부서져서 되찾을 수가 없대.”
조안이 두 번째 두루마리를 펼쳐 보여 주었다. 후루룩, 착!
능숙한 동작으로 할아버님을 돕던 헤릿이 안타까운 표정을 했다.
“아······.”
촤아아아아―! 까만 심해로 추락하는 사룡의 몸이, 꼬리부터 붉은 파편으로 무너져 내리는 그림이었다.
물과 불, 검댕과 거품이 뒤섞인 광경은 몹시도 아름다웠고 그만큼 처참하게 느껴졌다.
나는 아까보다 크기가 훌쩍 작아진 도마뱀을 토닥토닥 위로해 주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치열한 싸움을 하고, 이후로 천 년이 넘도록 이곳에서 홀로 연명하고 있었다니.
“······.”
잠깐, 그럼 빼앗긴 피시스는 어디로 간 거지?
설마 드넓은 대양에 휩쓸려 가서 아무도 못 찾는 보물이 됐나?
“그럼 이제 궁주님 차례네요!”
달칵! 할아버님의 돌모란 약차를 받은 가인 씨가 밝게 말했다.
나는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저요?
“아까, 우리 일출 보러 나가기 전에. 이따가 말씀해 주실 게 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상한 꿈을 꿨는데 꿈이 아니었다고요.”
“참, 그랬죠.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으웨엑!’ 그즈음 약차를 한입 삼킨 주인공이 혀를 쭉 내밀었다.
몸에 좋은 만큼 어지간히 쓰고 맛도 없는 모양이었다.
할아버님은 껄껄 웃으셨지만, 세드리크 녀석은 대놓고 경멸하는 눈빛을 쏘았다.
짝꿍을 그렇게 보면 못 쓴다고 잔소리 한마디부터 해주려는데―
‘쿵!’
“어?”
턱, 나는 다급히 내 이마를 쓸어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당연했다. 머리장식도 하지 않았는데 뭐가 있을 리가······.
‘쿵!’
「세계의 유지자여.」
“헉!”
나는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눈을 크게 떴다.
이마 아래서 울려 퍼진 것은, 분명코 그 여인의 목소리였다.
그녀가 두 손가락을 가져다 댔던 부위가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휘이익! 입구에 서 있던 요한 경이 즉시 이쪽으로 날아왔다.
그의 하얀 머리카락이 눈앞에서 느릿느릿 중력에 순응하는 것이 보였다.
“궁주님?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아뇨, 저는 괜찮습니다.”
“세레니테.”
“정말입니다. 숨도 잘 쉬어지고,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에요.”
그러자 태자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또다시―
‘쿵!’
“윽······!”
「모든 것은 이미 예비되었으나, 선택에는 마땅히 대가가 따를 것입니다.」
“궁주님!”
달그락! 다시 눈을 떴을 때는, 가인 씨의 얼굴이 코앞이었다.
뺨에 닿는 그녀의 서느런 손길이 구원처럼 느껴졌다.
맑은 목소리가 이상하게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가 했다. ‘국서 전하, 궁주님을 학교로 데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
‘쿵!’
「부디 유념하십시오.」
“하······.”
통증이 동반되는 것도 아닌데, 찌릿찌릿하고 기묘한 감각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뚝심이와 도마뱀이 놀란 눈으로 나를 들여다보았다. 이게 뭐지?
이미 끝난 대화잖아. 왜 다시 경고하는 거야?
‘쿵!’
「남은 기회는 한 번뿐입니다.」
“뭐······?”
번쩍! 바로 머리가 들렸다. 동시에 깨끗하고 시원한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나는 어리벙벙한 얼굴로 사방을 돌아보았다.
친구들 모두가 걱정스럽고 당혹한 낯으로 나를 보고 있었지만······.
“어, 이제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나는 도로 말짱해졌다. 참말이었다. 그저······.
얘기하면 안 되는구나.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방금 내 입을 막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