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514)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514화(514/920)
#514
용왕직진(龍王直進)! (1)
“마수를 끌 만한 보물요······?”
학생 주임 레나 선생님은,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막사엔 잠시 당혹스러운 침묵이 흘렀다.
소맥 길드원들이 슬그머니 서로를 돌아보았다.
이들에게 어디까지 말해도 좋을지 가늠하는 표정들이었다.
나는 일 년쯤 숙성한 듯한 에담치즈 조각을 빵에 얹어서 크게 한입 깨물고, 혀와 입천장까지 넉넉히 감싸는 북해의 깊은 풍미를 만끽했다.
담백하면서도 짭짤하고, 언뜻 새콤하면서 고소한 향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거칠거칠한 빵과 보드라운 치즈의 질감이 절묘하게 섞이는 감각 또한 일품이었다.
맛나고 따뜻한 음식으로 배를 채우니, 잠깐이나마 피로가 잊히는 기분이 들었다.
진짜 진짜 맛있다. 조금 더 먹을 수도 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지. 나는 손수건으로 입가를 정리하며 대답했다.
“신물 아니겠습니까?”
할 일을 하자, 정예서. 아직은 한가하지 않잖아.
넌 일단 ‘길드장’이고.
“예에?”
“신관 하나에 성기사 셋. 거기다 상급 마법사와 검사까지 있는 조합입니다. 세상 모든 마수에게 만찬 같은 먹잇감이에요. 이런 저희를 그대로 지나쳤다면, 새로운 목표는 신물 정도가 되어야 할 겁니다.”
정확히는, 우리에게 신물이 다섯 개나 있었다.
아무리 지능이 높은 마수라도 이만한 유혹을 떨치기는 쉽지 않을 터였다.
아마 전설급까지도 불가능하리라 본다.
요컨대 ‘평범한 신물’을 뛰어넘는 목표물이, 그 늙은 그리핀을 충동질한 거겠지.
“신물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예를 들면?
이천 년 전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서로에게 크나큰 상처를 입힌 불구대천의 원수라거나.
불을 뿜고 시간의 흐름을 지배하던 어느 용이라든지.
“진심으로 하는 소리요, 신관님?”
“하이네켄 길드장님. 북부에 그런 귀한 물건이 있다면, 이 땅이 지금껏 이토록 척박할 까닭이 있겠습니까? 마수가 신물에 공격성을 드러낸다는 점이야 저희도 책을 통해 배웠습니다만······.”
셈 공자의 흉터투성이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화를 내는 것은 아니고, 그저 진정으로 내 말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는 태도였다.
시종일관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던 테스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의 반응 모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주신의 의지이자 능력의 현현(顯現)이라는 신물은, 온 대륙을 통틀어 가장 귀한 보물들이었다.
제국에서는 황실을 포함한 네 가문이 이를 오랫동안 엄격히 수호했다.
신국에서는 신물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으므로, 관련 이야기가 여러 전설의 형태로 구전되었다.
참으로 ‘신과 동화의 나라’에 걸맞은 방식이었다.
다만 양국이 공유하는 하나의 원초적 믿음은 있었다.
‘신물은, 대륙에서 가장 위대한 축복을 내리는 존재다.’
“테스 선생의 말이 맞습니다. 설마 아츠마에 신물이 있다는 말씀이시라면, 아츠마 남작이 이를 밝히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예. 만일 남작이 신물을 손에 넣었다면 그보다 큰 영광은 없지요. 왕실에서 대대적인 지원을 받아 오랜 부와 영예를 누릴 수 있을 텐데, 어째서 이제껏 입을 다물고······.”
“바로 그겁니다, 레나 선생님. 테스 선생님. 무언가 음습하고 더러운 꿍꿍이가 있으니까 밝히지 않는 겁니다.”
내가 프랑수아에게서 아니스 우유 잔을 받아들며 지적했다.
친구들이 나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만류하거나 뜨악하는 눈치는 아니었고, 그저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할지 궁금해하는 눈빛들이었다.
모두의 신뢰가 느껴져서 어쩐지 마음이 후듯해졌다.
나는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말꼬리를 붙였다.
“페네티안의 신물은 총 네 개입니다. 그중 하나인 역풍의 예기는 왕세녀 전하께서 친히 거두셨죠. 이란의 영령은, 소문을 듣자니 예리호 지하 암시장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물 속성인 빙잠의 보관은 제국 해군의 손에 들어갔다고 하더군요. 최근에요.”
“제국 해군요? 맙소사!”
레나 선생이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가인 씨는 염장 청어 샌드위치를 먹다 말고 별안간 천장의 얼룩을 세기 시작했다.
이곳이 전단 한 장 없이 고립된 지역이라 천만다행이었다.
“네. 그러면 하나가 남습니다. ‘사룡의 심장’입니다.”
-보스락!
그 타이밍에 정확히 맞추어, 작은 불도마뱀이 품 안에서 고개를 쏙 뺐다.
하마터면 웃음이 나올 뻔했다.
명색이 대륙의 신물이라면, 어느 정도의 쇼맨십은 갖추어야 하나 보다.
세 사람이 멍하니 꼬마의 잿빛 눈망울을 들여다보았다.
-······.
“······.”
약 5초 후.
“말도 안 됩니다, 신관님! 바다용의 후손을 희롱하려 하시오?”
“저 아이들은 아주 오랫동안 학교 운동장에 있었습니다! 얼어붙은 사계절을 저희와 동고동락한 힘없는 생명들이지요. 신물이라면 저희가 몰랐을 리 없습니다.”
“수백 년간 한 번도 어떠한 힘을 드러낸 적이 없는 동물들입니다. 그저 귀엽고, 안쓰럽고, 학생들의 정서 안정에도 좋을 것 같아서······!”
셈, 테스, 레나가 차례로 당황을 쏟아냈다. 온통 충격과 부정으로 물든 낯이었다.
촛불 너머의 세 얼굴은 각각 누르락붉으락하고, 바다처럼 파랗고, 밀가루처럼 허옜다.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들을 가라앉혔다.
“놀라시는 것도 이해합니다. 바다용이 신물이었다는 전승은 들어보신 적이 없을 테니까요. 갑작스러운 이야기겠죠.”
“예, 그것도 사룡의 심장이라니요? 그것은 불 속성 신물이 아닙니까! 어찌 이런 척척한 바다에······.”
“길드장님. 바다용 전설에 불꽃에 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백번 양보하여 설령 저 도마뱀 가족이 바다용이라고 해도······. 저희가 아는 모습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북부의 역사에 익숙지 않은 외지인께서 억측을 하시는 것은 아닐는지요.”
테스가 신중하게 지적했다. 솔직히 이 주장에는 반박할 말이 없었다.
‘도마뱀’과 ‘동양 용’이 엮이는 경우는 나도 살면서 접한 적이 없으니까.
슬쩍 신물을 내려다보자, 녀석이 움찔하더니 내 손바닥으로 토도독 기어 나왔다.
드디어 꼬마도 준비가 된 모양이다.
나는 친구들과 한 번씩 눈을 맞춘 뒤, 비장한 투로 입을 열었다.
“저희는 사실, 아츠마 남작이 수상한 밀실을 운영한다는 첩보를 받고 이곳까지 왔습니다. 그자와 비슷한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을 현장에서 두 차례 검거한 적도 있습니다. 물론 여러분을 돕겠다는 마음이 먼저였지만, 남작에게 속셈이 있다는 사실은 진작 알고 있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예?”
테스와 레나의 턱이 바닥에 닿을 것처럼 벌어졌다.
경악한 공자는 이제 커다란 몸을 신장대처럼 떨고 있었다.
사실 소금 늪 때는 제대로 된 검거를 못 했지만, 좌우간 그곳은 완전히 무너졌으니까 그런 것으로 치자.
“그놈들은 신국 전역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데, 실은 한 귀족의 명령을 따르는 범죄 조직입니다. 말하자면 전부 공범이에요. 그리고 놈들의 방식은······.”
나는 말끝을 줄이며 허공을 노려보았다.
찰나 수많은 가능성이 머릿속을 번뜩번뜩 스쳐 갔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세울 수 있는 가설은, 단 하나뿐이다.
생각해 보라.
사룡의 본체인 ‘피시스’가 줄곧 아츠마에 있었다면, 상식적으로 그리핀이 이제야 나타날 리가 없다.
신물 다섯 개를 패스할 만큼 강렬한 원한을 품은 놈이, 그토록 노쇠하고 지친 몸으로 뒤늦게 날아올 리가 없다.
물론 때맞춰 우리의 주인공들에게 맞서 싸울 만한 적수가 등장한 것일 수도 있다.
극적인 전개, 좋다 이거야. 하지만 그런 흐름에도 최소한의 개연성은 필요한 법이다.
이 근처엔 ‘리버스 던전’ 같은 것도 없다.
그러니까 아무런 인과관계도 없이, 이천 년 묵은 마수가 냅다 들이닥쳐서는 곤란하다.
적어도 <퇴사했더니 이계 공녀>는 그런 소설이 아니다.
브리지트는 그런 식으로 사건을 벌이는 작가가 아냐.
“······분명 최근에, 외지에서 사룡의 피시스를 옮겨 온 겁니다. 변경의 아츠마 남작이 마침내 중책을 맡게 된 거예요. 그자는 ‘사도’ 중 하나일 공산이 큽니다. 이 아이가 그리핀의 공격으로 잃어버린 여의마니는, 애초부터 놈들 손에 있었던 거죠.”
내가 번쩍 고개를 들며 발언했다. 프랑수아가 황급히 소매로 입을 가렸다.
지브릴 디오프는 호두를 깨물던 턱을 우뚝 멈추었다.
“주신 맙소사. 그렇다면 스타티아나 소금 늪에서 신물을 들여왔을 가능성도 있군요.”
“스타티아는 아닐 거예요, 기네스 님. 거긴 제국군이 내내 삼엄하게 감시하고 있었으니까요.”
가인 씨가 냉큼 말끝을 달았다. 요한 경은 처진 눈꼬리를 가늘게 접었다.
“과연······. 소금 늪에서 무너진 신방에 비밀이 있었군요.”
“확실히. 실험의 산물이 그 수준까지 도달하려면 신물이 필요했겠지.”
황태자가 낮게 속삭였다. 나는 재빨리 머리를 끄덕였다.
“예. 그때는 너무 경황이 없어서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는데, 역시 그랬을 겁니다. 그날 목격한 성기사들의 상태를 돌이켜보면······.”
“세상에, 이게 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소만!”
셈 공자가 불쑥 말허리를 잘랐다. 우리는 반사적으로 세 사람을 돌아보았다.
“신물이니, 실험이니, 대체······. 대관절 무엇 하는 분들이십니까? 처음부터 짐작은 했습니다만, 역시 평범한 용병 길드가 아니신 게지요?”
테스가 벌벌거리는 공자의 손을 꼭 잡아주며 물었다.
세 사람은 이제 거의 공포에 질린 낯빛을 하고 있었다.
나는 미안한 마음을 담아 쓴웃음을 지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저희의 정체는 차차 알게 되실 겁니다. 아츠마 남작이 밀실에서 어떤 실험을 하는지도, 조만간 알게 되실 테고요. 그리고 신물은······.”
나는 조심스레 손바닥을 들어 올리고서, 모두가 잘 볼 수 있도록 쭉 뻗었다.
불도마뱀은 조그만 머리를 까닥까닥하며 신호를 보냈다. 그러더니 곧장―
-퍼엉!
“허억!”
쪼끄만 불꽃으로 폭발했다!
-파스스······
고운 재가 마지막 불씨를 빛내며 내려앉자, 테스는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입술을 빵끗거렸다.
쇼크에 빠진 셈 공자의 눈알이 급속도로 충혈되고 있었다. 그때였다.
-보스락, 보스락
“어. 들어와.”
막사 입구에서, 천이 달싹이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쪽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싱긋하며 답했다.
학생 주임 레나가 넋 나간 눈빛으로 바닥을 훑었다.
“······.”
“······.”
-톡, 톡톡, 톡톡톡, 톡톡······
조금 전에 사라진 아이와 비슷한 무늬를 지닌 도마뱀이, 바지런히 걸어와 나의 무릎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이번엔 무려 세 마리였다.
“오, 주신이시여······.”
-풀썩!
마침내 레나가 혼절했다. 셈 공자와 테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북부의 새벽. 여명(黎明)이 밝기 직전의 어둠.
마수 전문 용병 길드, ‘소맥’ 길드원들이 막사 한가운데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그들은 이미 떠날 준비를 완벽하게 마친 상태였다.
대부분은 두세 시간쯤 눈을 붙였고, 그만하면 하루를 쌩쌩하게 보내기에는 별문제가 없었다.
짐도 꼼꼼하게 쌌으며 무기 또한 철저하게 점검했다.
마구간에서 휴식한 말들 역시 상태가 좋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신수들까지 쏙쏙 품에 챙기니, 당장 길을 떠나도 손색없는 차림이 완성됐다.
나중에 궁주님이 잔소리할까 봐 세안과 양치도 꼼꼼하게 했다.
“정정당당하게 합시다, 정정당당하게.”
하지만 아직 한 가지, 조율이 끝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가인은 커다란 눈동자를 서슬 퍼렇게 번득였다.
“가위바위보. 누가 뭐래도 이게 세상에서 제일 공정해요.”
“제자님은 그 놀이를 참 좋아하시네요.”
요한이 나긋한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세드리크는 소리 없는 한숨을 쉬었지만, 이제는 익숙하다는 양 왼손을 쥐었다 폈다.
연장자인 스타니슬라스가 아이들의 내기에 흥미를 보였다.
그러자 말괄량이 물방울이 다다닥 설명을 쏟아냈다.
“물론 추기경인 요한 샘이나 소드마스터이신 전하가 계시니까, 손을 아래로 내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저희는 샘한테 수를 전부 읽히거든요. 동체 시력 차이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서로를 등지고 서서, ‘가위바위보!’ 하면 하늘로 손을 들어 올립니다. 정확히 ‘보’에서 올리셔야 해요. 구호는 보통 제가 외칩니다.”
“과연, 광명정대한 방법이로구나.”
“그렇지요? 걸린 사람 두 명이 각각 궁주님이랑 후작님을 태우고 가는 겁니다. 어떠십니까?”
“허허허. 그것참 재미있겠다. 그리하자.”
“······.”
지브릴은 그 어이없는 꼴을 묵묵히 구경하다가, 다시 뒤쪽을 돌아보았다.
바닥에 누운 채 쿨쿨 잠든 비전투 후작 두 명―쥘리에트 궁주와 프랑수아 뒤엠이 눈에 들어왔다.
저러다간 아주 침낭과 한 몸이 될 기세였다.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세상모르고 곯아떨어진 모습이 한심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안 되는데.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군. 그냥 깨워서 데려가지?”
“인성 뭐야? 너 원래 그런 식으로 전쟁하니? 체력 달리는 비전투 인력 존중 좀.”
“······.”
“······.”
즉시 고드름처럼 날카로운 답이 날아왔고, 육촌과 태사는 그녀의 양옆에서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할아버님은 지브릴을 탓하지 않았으나 여론을 거슬러 그를 돕지도 못했다.
결국 번개 마법사는 오만상을 쓰며 한 걸음 나아왔다.
젠장. 뭐 하나 평범한 게 없어, 이놈의 집단은.
“알았어, 해보자고.”
사이좋은 척은 엄청 하더니. 남한테 벌칙 주는 거 되게 좋아하네.
“그럼, 궁주님 당번부터 정합니다. 뒤 도시고. 팔 준비하시고······. 가위바위보!”
‘척!’ 다섯 개의 팔뚝이 절도 있게 움직였다.
지브릴은 피식피식 헛웃음을 흘리며 머리 위를 확인했다. 어디 보자······.
나 혼자 보자기에, 나머지는 전부 주먹이네?
“좋았어. 그럼 난 빠지는 거지?”
샐쭉하며 등 뒤를 돌아보는데, 어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뭐야?
“······.”
“······.”
“······.”
왜 내가 또 만고역적 된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