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518)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518화(518/920)
#518
용왕직진(龍王直進)! (4)
“······혹시 북부는 민심이 좀 사나운 편인가요?”
가인 씨가 셈 공자와 테스 선생을 돌아보며 물었다.
담뱃잎을 말아 정리하던 테스는 즉시 고개를 저었다.
“외지인을 경계하는 성향이 짙기는 하지만, 나쁜 사람만 아니라면 다들 온정을 베푸는 편입니다. 못 본 체했다가 상대가 얼어 죽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요.”
“북부에서는 은혜도 원수도 잊지 않는다는 말이 있소. 날씨야말로 가장 큰 적이니, 사람끼리는 쇄빙선처럼 단단히 뭉쳐야 살아남는 법이지요.”
“물론 그만큼 배반자에게는 거침없는 편입니다만······.”
선생이 누워 있는 알레인을 보며 말끝을 흐렸다.
당연히 두 사람 모두 그녀와는 초면이라고 했다.
이름도 처음 들었고, 어느 마을에서나 흔히 만날 수 있는 인상 같다고도 했다.
나는 침낭 두 겹을 두른 채 곤히 잠든 환자의 뺨을 살살 닦아 주었다.
악몽을 꾸는지 그녀가 드문드문 눈물을 흘리고 있어서였다.
몇 시간 전부터는 미열도 있었다.
대관절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으나, 볼수록 안타깝고 마음이 쓰였다.
이마의 상처, 낡고 찢어진 옷. 텅 빈 주머니와 밑창이 해진 신발······.
왠지 평범한 도둑 같지는 않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느낌이 그래.
“단순히 도둑이라고, 용병들이 떼로 화살을 쏘며 달려드는 동네는 아니란 말씀이네요.”
아니······. 어쩌면 도둑조차 아닐지도.
“예. 그런 추격을 당하려면 못해도 회의소 금고를 털거나, 그 용병들의 대장을 살해하거나, 코앞에서 영주를 모욕하는 정도의 죄를 지어야 할 겁니다. 한데 이자에게선 주머니칼 하나도 나오지 않았지요.”
테스가 신랄한 투로 말했다.
공범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으니, 이렇게까지 한 사람을 쫓는 일은 그녀의 눈에도 가혹하게 보인 모양이었다.
현장엔 화살 수십 대가 떨어져 있었고, 그런 공격 속에서 알레인이 살아남은 건 누가 봐도 기적에 가까웠다.
답을 들은 가인 씨는 두 다리와 두 팔을 쭉 뻗으며 환자를 흘끔거렸다.
그녀에게 안긴 티테도 이따금 고개를 갸웃갸웃했다.
“그런데. 회의소에 들어갈 때는 이름표를 붙여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나?”
불쑥, 지브릴 디오프가 물었다. 나는 잽싸게 머리를 끄덕여 같은 의문을 표했다.
너 질문 한번 잘했다. 나도 그게 궁금하던 참이었어.
“회의소는 모든 길드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상업 교류의 장이라고 들었습니다. 한데 매번 저렇게 이름표를 받아서 달고 다녀야 하는 건지······.”
“그 점은 나 또한 기이하다고 생각하던 차였소. 다만 어릴 때 한 번 와 본 뒤로는 회의소를 출입한 적이 없으니······. 요즘 같은 세상엔 새로운 규칙이 생긴 것일지도 모르지요.”
‘회의소의 일은 어지간하면 영주가 관여하지 않소.’ 셈 공자가 뺨을 긁으며 대답했다.
그 문장을 끝으로 일행 사이에는 긴 침묵이 흘렀다.
적막을 깬 것은 내내 구구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아버님이었다.
“······한데, 떨어진 화살의 간격이 이상하더구나.”
“예?”
내가 눈을 깜빡였다. 어르신께서는 수염을 가다듬으며 낮게 말씀하셨다.
“그저 비거리가 짧았던 모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만, 모든 화살이 한자리에 떨어져 있는 것은 어색하지 않으냐. 보통 추락하는 지점은 제각기 다른 법이니 말이다.”
“아······.”
세상에, 정말로 그랬다.
나는 팔뚝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후다닥 알레인을 돌아보았다.
그때는 쓰러진 환자를 업느라―최종적으로는 디오프 공자가 책임지게 되었지만―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돌이켜 보니 참말 기괴하고 이상한 장면이었다.
이분에겐 방패는커녕 몸을 보호할 갑주조차 없었는데······.
꼭 무언가로 한 번에 막아낸 것처럼, 화살이 거기에만 우르르 몰려 있었어. 뭐지?
“으, 으으······. 브란! 브란디······! 안 돼!”
“알레인 씨?”
그때, 환자가 머리를 부들부들 떨며 누군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입가에선 고통 어린 신음이 흘러나왔고, 눈자위에서는 다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놀란 가인 씨가 수통을 들고 앙금앙금 다가왔다.
나는 부랴부랴 찬물에 수건을 적셔 알레인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느새 그녀의 두 볼과 목덜미도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반대로 입술은 푸르게 질린 채 가쁜 숨을 내뱉는 중이었다. 큰일이다!
“맙소사, 열이 심해졌어요.”
“제가 해열제 더 센 거 찾아드릴게요.”
“부탁드립니다.”
내가 재깍 눈짓했고, 가인 씨는 능수능란하게 가가방을 뒤졌다.
그동안 포대기에 싸인 티테는 알레인을 보며 자꾸만 입을 방긋거렸다.
순간 묘한 예감이 들었다.
아이가 왜 저러지?
“티테, 왜 그래? 알레인 씨가 이상해?”
-우응
아기가 지느러미발을 팔랑이며 울었다.
저것은 분명코 긍정의 반응이었고, 단순히 고열 환자를 목격한 신수의 당황은 아니었다.
나는 잽싸게 고개 돌려 황태자를 찾았다.
그의 우묵한 두 눈이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기름해졌다.
“······과연. 거슬리는군.”
“예? 뭐가요?”
“에테르.”
“어어?”
잠깐, 뭐 때문이라고?
로피를 재우던 프랑수아도, 예상 밖의 단어에 당혹한 눈치였다.
나는 바쁘게 움직이던 손을 뚝 멈추고 알레인을 내려다봤다가, 다시 멍한 얼굴로 세드리크 태자를 바라보았다.
다만 그 역시 확신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매끈한 이마가 불만스레 내 천 자를 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다른 일행들이 불안한 눈빛으로 우리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사내는 빠르게 눈알만 굴려 가인 씨를 노렸다.
“어떻지?”
“저도 설핏설핏 느껴지기는 해요. 그런데 너무 약해서, 이게 이분의 에테르가 맞는 건지 어떤지도 헷갈리는데.”
“알레인에게서 에테르가 흘러나온다고요?”
기겁한 턱이 쩍 벌어졌다.
태자 녀석이 ‘거슬린다’고 표현했으니, 지금 두 사람이 느끼는 건 순수 에테르가 아니라 특수 에테르일 터였다.
조금도 예상치 못한 흐름이라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혹스러웠다.
전혀 몰랐어. 알레인이 성기사였다고?
“거의 로피 처음 만났을 때 수준? 무슨 속성인지 알쏭할 정도로 약합니다.”
-웨오오오
“그럼 부제급이나 사제급이었을까요? 혹시 그것 때문에 쫓기고 있었다거나······.”
“아뇨, 각성열이에요.”
그 순간, 동굴 입구 쪽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휘리릭 움직였다.
그저 산책을 마친 것처럼 산뜻한 걸음걸이의 요한 경이, 한 손으로 로브 단추를 툭툭 풀며 다가오고 있었다.
밤의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던 이목구비가 불빛에 느릿느릿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가 어디 다치지는 않았나 유심히 살피다가, 언젠가 읽어본 적이 있는 단어에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잠깐, ‘각성열(覺醒熱)’?
“두 분은 겪지 않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앓으셨을 테니······. 각성열 환자를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시겠네요.”
추기경이 목을 기울이며 말했다.
그가 우리에게 한 걸음씩 가까워질 때마다, 눈처럼 하얀 옆머리가 무심하게 흘러내렸다.
태자 녀석은 잠시 스승을 노려보았다가, 포르르 날아오는 뚝심이를 향해 말없이 시선을 흩어냈다.
와중에 나는 남자의 손끝에 빨간 물이 든 것을 발견하고 홀로 기함했다.
헤릿 아버지, 또!
또 어디서 피를 묻혀 오셨어요!
“에델바이스 님, 손에서 피가 납니다.”
“아. 제 것은 아니에요.”
제가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겁니까?!
“걱정하시는 번거로운 일도 없었어요. 그보다······. 이쪽은 상태가 나빠 보이는군요.”
저벅. 알레인의 머리맡까지 걸어온 요한 경이 자세를 낮추었다.
아! 나는 곧장 혀끝에 걸린 문장을 와르르 쏟아냈다.
“저, 책에서 읽었습니다. 성기사의 각성열은 사람마다 증세가 판이하고, 앓는 기간도 천지 차이라고요. 운이 좋은 성기사들은 아예 각성열 없이 각성하기도 한다던데요.”
“잘 알고 계시네요.”
환자의 경동맥을 짚은 그의 손길은 덤덤하기만 했다.
“그럼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상태가 나빠 보인다고 하셨는데, 정확히 얼마나 나쁜 건가요? 스텔라 님 말로는 이마의 상처 외에 다른 외상은 없다고 합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죽을 수도 있겠어요.”
뚝. 그런 말이 비수처럼 귓가에 꽂혀 들었다.
온도 없는 민트색 눈동자는 마치 흑백처럼 보였다.
가인 씨가 서둘러 티테의 귀를 가리고서 하얀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나는 차마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거렸다.
‘교과서’에는, 그런 설명이 쓰여 있지 않았다.
“죽는다니······.”
“각성열은 주신이 종의 그릇을 시험하는 ‘최초의 고난’이에요. 가벼운 감기처럼 지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쪽처럼 불운한 사람에겐 신관의 에테르가 끊임없이 공급되어야 하죠. 안정적인 환경과 극진한 간호도 필요하고요. 환자는 짧으면 하루, 길게는 일주일쯤 시달릴 거예요.”
“······.”
“하지만 무엇보다도, 살아남겠다는 본인의 의지가 제일 중요해요. 이 고통을 이기고 생존하겠다는 마음 말이에요.”
“······.”
“평민 성기사가 드문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죠. 애초에 적게 태어나는 데다, 이렇게 증세가 심해도 제대로 된 처치를 받지 못하니까요.”
‘보통 각성열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거든요.’ 덧붙은 말은 자연 다큐멘터리의 해설처럼 무감정했다.
이어서 그가 나를 어르듯 속삭였다.
“그러니 길드장님의 책임은 아니에요.”
“······.”
그제야, 요한 경이 무슨 말을 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는 어쩌면 우리가 아침에 맞을 비극의 무게를 미리 덜어주려 하고 있었다.
이런 일은 가끔 일어나고, 그러니 지나치게 발버둥 치거나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혹여 일주일이나 알레인을 데리고 다니며 ‘사서 고생할’ 생각은 버려도 된다고.
우리에겐 더욱 급한 용건이 있다는 사실을 애써 망각할 필요가 없으며, 이름밖에 모르는 사람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할 까닭도 없다고.
마음을 가볍게 먹으라고.
“······.”
나는 울컥해서 입을 악다물었다.
전부 거짓말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잖아요. 왜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십니까?”
“······.”
“에델바이스 님도 어릴 때 각성열을 겪으셨겠죠. 당시에 그런 마음이셨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요한 경의 눈이 잠시 커졌다가, 이내 사르르 접혔다.
못 이기겠다는 태도에 절로 이가 갈렸다. 오늘은 진짜 조금 밉다!
“저희에게 선택지를 주시려는 마음은 정말 감사하지만, 다음부터는 그런 말씀 입에 올리지도 마십시오. 이건 꾸지람입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맹세하세요.”
“밤하늘의 달에 걸고 맹세합니다.”
추기경이 선선히 답을 내놓았다.
가인 씨가 그를 냉큼 째려보고는 ‘더 혼나셔야 돼!’ 했다.
그동안 나는 재빨리 엉금엉금 움직여 다른 일행들 앞에 섰다.
그리고 무릎을 꿇은 채로 말했다.
“······저분을 꼭 살리고 싶습니다.”
“······.”
“저희 용무가 급하다는 건 잘 압니다. 저분에게 수상한 구석이 있다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러니 무조건적인 양해를 구하지는 않겠습니다. 그저 한두 분만 저와 남아주시면, 알아서 뒤처리까지 깔끔하게 하고 따라가겠―”
“쓸데없는 말이 많군.”
태자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잠깐 말문이 막혔다.
“네?”
“그대는 길드장 아니었나?”
“아······.”
황족의 주홍색 눈동자가, 그의 어머니와 같이 어둠을 꿰뚫으며 빛나고 있었다.
“그럼 명령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