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546)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546화(546/920)
#546
신묘하고(玄) 상서로운(瑞) (4)
ㄱㅏㅌㅇᅟᅳᆫ 시각¿┃
□□서□ □┃
□현□의 방.┃
정현서의 방.┃
-♩♪♬······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움찔. 남자는 익숙한 벨 소리와 진동에 잠에서 깼다.
잠시간 이불 뒤척이는 소음만이 침대 위를 가득 채웠다.
아직 까마득히 어두운 밤이었다.
새벽이라고 하기에는 푸른 기운이 거의 없었고, 그는 사실 한번 눈을 감으면 제법 깊이 잠드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 소리에는 반드시 일어나야 했다.
그는 일부러 특정 번호에 특정 벨과 진동을 지정해 두었다.
그리고 그 음악과 떨림이 자신을 부르면, 무슨 일이 있어도 전화를 받았다.
천재지변이 발생하든, 중요한 미팅이 있든. 그곳이 지하철 안이든 어디든 상관없이 무조건 받았다.
벌떡 허리를 일으킨 남자가 협탁을 바쁘게 더듬었다. 툭, 툭툭······. 덥석.
갑작스러운 빛에 눈살이 찌푸려지고, 쨍한 폰 화면이 떠올랐다.
3월 23일 오전 3시 23분.
‘금경 요양병원’.
‘이종희 요양보호사님(상주)’.
“네. 정현서입니다.”
그가 빠른 손놀림으로 무테안경을 찾아 썼다.
-안녕하세요, 보호자님! 여기 요양병원입니다. 어머님이요.
“예, 선생님. 무슨 일 있습니까? 바로 갈까요?”
-아니요, 막 심각한 상황까지는 아니고요. 아까 자정 넘어서부터, 어머님이 남동생분을 찾으시면서 계속 우시거든요. 사진이랑 동영상도 보여드리고 달래봤는데 멈추질 않으시네요. 1인실이라 소음은 괜찮아도, 이러다 탈수 오실까 봐 걱정이라. 물이고 음료수고 안 드셔요. 혹시 예서 씨 지금 통화 가능할까요?
“예서요? 엄마가 왜 갑자기 예서를······.”
일인용 소파에 걸쳐둔 재킷을 걸치고, 바쁘게 차 키와 지갑을 챙기던 현서가 멈칫했다.
오늘처럼 우는 날이면, 엄마는 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찾았다. 자식들을 부르는 일은 몹시 드물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후로 마음의 병이 심각해졌으니 그럴 법도 했다.
정신이 온전하실 때는 항상 저나 동생들에게 미안함을 드러내셨으므로, 현서는 그녀의 깊은 죄책감이 무의식중에도 남매를 찾지 않게끔 억누르는 것이리라 여겼다.
비록 제가 의사는 아니지만 말이다.
“잠시만요. 예서 금방 깨워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에. 그래도 아까보다는 많이 좋아지셨어요. 아이고, 이제 졸리시나 봐······.
여인의 수더분한 목소리가 폰 너머로 멀어졌다.
옆에서 엄마의 뜻 모를 웅얼거림이 들렸다.
‘예, 감사합니다.’ 현서는 빠르게 전화를 끊고 방 불을 켰다.
어둠에 익은 까만 눈이 다시금 찡그려졌다.
삼 남매의 엄마 선아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증세가 상당히 호전되어 있었다.
주치의 선생님들은 물론이고 그녀를 매일 보는 간호사 선생님들 역시 그런 이야기를 했다.
‘최선아 환자분은 예후가 점점 좋아지시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뇌에 자극을 주는 취미 생활을 계속하시니까. 정서적으로도 안정이 되고, 그게 또 약물 치료나 재활 프로그램에 꾸준히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고.’
‘일 년 가까이 이렇게 좋아지기만 하는 케이스가 흔치는 않거든요.’
‘일단 지켜봅시다.’
협진하는 신경외과와 정신과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희망을 속삭였다.
엄마의 병이 기적적으로 완치되리라는 기대는 십 대 시절에 접었지만, 쏟아지는 일련의 정보는 현서와 집안 어른들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은서에게는 따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예서에게만 살짝 귀엣말을 해두었는데, 녀석은 눈물까지 보이며 기뻐했다.
케이크를 사 들고 가자는 것을 겨우 말린 게 지난달이었다.
“후우······.”
그리고 희망이 꺾이기 시작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었다. 정확히는 지난주부터였다.
엄마는 다시 상태가 나빠져 걸핏하면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고, 널뛰는 감정 폭을 주체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함께한 요양보호사님을 전혀 알아보지 못해서 한두 차례 난동을 피우기도 했다.
현서는 잠시 단서가 될 만한 무언가를 떠올렸다가 흩어냈다.
그 생각을 하면 머리가 아프고, 본인도 조금은 지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는 곤란했다. 그는 지치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월요일부터 바쁘네, 정예.”
쓴웃음 섞인 중얼거림. 도로 재킷을 벗은 현서가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갈 때였다.
등 뒤에서 기묘한 소음이 들렸다.
-위이잉······
“응?”
그의 작업용 데스크톱이, 느닷없이 혼자 켜지고 있었다.
본체 전원 버튼에 보라색 불빛이 들어온 것을 확인한 남자가 미간을 구겼다.
난데없이 뭐야?
“저게 원래 보라색이었나.”
······아니지, 평소엔 그냥 노란색이었는데. 진한 눈매가 순간적으로 날카로워졌다.
아무리 원고 마감에 찌든 그라도, 몇 년을 쓴 컴퓨터 전원 색깔까지 헷갈릴 수는 없었다.
동시에 경고와 같은 감각이 남자의 등골을 찌르르 자극했다.
어쩐지 입안이 마르고 싸한 기분이었다. 내가 저녁때 컴퓨터를 제대로 안 껐나?
“······윈도 업데이트인가?”
그 말은 분명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 쥐어 짜낸 것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아니다’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마치 수족관에 홀로 들어온 것처럼, 세상과 동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예고 없이 들이닥쳤다.
이어서 며칠 전에 있었던 ‘그 사건’도 번뜩 머릿속을 스쳤다.
이는 회상보다는 예지에 가까운 감각이었다.
‘아, 또 한글 오류 났네. 왜 같은 창이 두 개······. 허아악!’
완벽히 그의 손에서 벗어나, 침묵하는 키보드를 무시한 채, 새하얀 한글 파일 위를 미친 듯이 내달리던 새카만 커서(cursor).
남자의 눈앞에서 수십, 수백, 수천 개의 글자가 화면에 떠오르고, 스스로 간격을 벌리고, 줄을 바꾸어가며 끊임없이 생명력을 얻고 있었다.
속독에 능한 현서조차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충격적인 기현상에 그는 감히 대처할 방법조차 헤아리지 못했다.
심장이 격렬하게 내뛰며 호흡을 까꾸로 콸콸 쏟아냈다.
투명한 안경알 위로, 모니터 속의 날벼락은 계속해서 몰아치고 있었다.
「······실은 은서의 등굣길을 배웅하고, 형과 아침을 먹고, 양치한 뒤에도 폰을 확인했다.
그런데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대로 덮고 설거지를 했다.
손이 자연스럽게 움직여 수납공간을 찾고 인덕션을 닦았다.
1년이나 집을 비웠는데도, 평생 지니고 산 습관과 행동 양식은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었다.
어쩌면 육체는 그대로이니 그런 것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또 딴생각.”
내가 불쑥 중얼거렸다. 아까부터 계속 이랬다.
‘퇴계공’을 생각하면, 그곳에 두고 온 친구들을 떠올리면 가슴이 무겁고 갑갑했다.
너무 많은 걱정이 한꺼번에 밀려와 편히 숨쉬기도 힘들었다.
‘진짜’ 나에 관한 이야기는커녕,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왔으니까.
그런 식으로 집에 돌아올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소름이 끼쳤다. 현서의 목덜미가 땀으로 축축해졌다.
일개 바이러스나 질 나쁜 해킹이라고 하기에는, 모든 문장이 지나치게 구체적이었다.
그는 이야기를 지어 먹고사는 전업 작가였다.
장난으로 끼적인 낙서와 몰입하고 쓴 글의 차이쯤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게 다 뭐냐고.
「······지금까지는 내가 칼에 맞고, 한 번 죽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라 ‘그다음’을 상상하지 못했다.
나를 추스르느라 바빠 저쪽 상황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인제 보니 사태가 너무 심각했다······.」
퇴계공 이야기는 왜 나와.
지금 정예서 시점으로 쓰고 있는 거야?
‘아니, 대체······.’
설마 걔가 겪은 얘기는 아니지?
‘형, 왜! 어디 박았어?!’
그때, 그의 비명에 놀란 예서가 우당탕퉁탕 방으로 뛰어들었다.
현서는 재빨리 한글 창을 닫는 것으로 상황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경악한 심장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당연한 이치였다.
세기말 공포영화도 아니고, 자신이 만들기는커녕 저장한 적도 없는 파일이 홀연히 나타나 글을 써 내려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실은 이게 악몽인지 생시인지도 분간이 힘들 만큼 얼떨떨했다.
깔깔한 목울대는 쉼 없이 제멋대로 꿀렁거렸다.
‘막 귀신 화면 같은 거 떴어?’
그 비슷했지.
‘······넌 언제 적 얘기를 하냐. 후우.’
그렇지만 대충 둘러대고서 마른세수를 했다.
들려준다고 쉽게 믿을 만한 이야기도 아닐뿐더러······.
‘유자차 끓여줘? 많이 힘들어?’
‘그런 건 아닌데, 좀 놀랄 일이 있어 가지고.’
‘왜. 파일 날아갔어? 원래 실시간으로 동기화하잖아.’
‘파일이 날아가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다.’
그는 여간해서는 그런 농담을 하지 않으나, 당시의 상황을 봤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말했을 터였다.
그러자 예서가 정색하며 형의 얼굴을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무슨 끔찍한 소리야.’
그 표정이며 태도가 평소와 똑같아서, 현서는 결국 킥킥 웃고 말았다.
별안간 현실로 돌아온 감각에 전신의 힘이 쭉 풀리며 나른해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역시 잠깐 졸았나 싶기도 했다.
알게 모르게 피로가 쌓였을까.
동생 녀석을 유자차 핑계로 내보낸 뒤, 그는 침착하게 해야만 하는 일을 했다.
혹시나 자신의 소설 파일들이 손상되거나 날아가지는 않았는지 빈틈없이 확인하고, 유료 프로그램을 결제해 바이러스 검사를 실행했다.
불필요한 앱이며 오래된 캐시도 깨끗이 삭제했다.
덕분에 구형 데스크톱이 한결 가벼워진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분명히 그랬는데······.
-위이이잉!
“······.”
지금, 그의 컴퓨터 본체가 생경한 보랏빛을 뿜으며 윙윙거리고 있었다.
문가에 서 있던 현서는 가만히 안경을 벗고 손바닥에 두 눈을 묻었다.
짧은 흑발이 베개에 눌려 삐죽빼죽 엉망이었다.
이럴 시간도 없고 마음이 급한데, 왜 자꾸 그날의 사건이 떠오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정말로.
“하, 진짜······.”
······실은, 그게 짧은 악몽이나 자신의 상상 따위가 아니었다는 걸 잘 알았다.
그토록 생생한 감각이 무의식이라는 이름으로 뇌를 속일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었으니까.
무엇보다 정예가 멀쩡히 대화하다가도 허공을 보며 멍을 때리고, 식사 시간에 젓가락을 놓고 깨작거리며, 이따금 울적해 보이는 건······.
그의 앞에 놓인 차가운 현실이었으니까.
하지만 현실을 ‘아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이제 정은서 대신 내가 상담받으러 다녀야 하나.”
남자가 짙은 한숨과 함께 등을 돌렸다.
거실에서는 차디찬 밤공기가 밀려와 그의 이마를 쓸어주었다.
현서의 막냇동생 은서는, 열여덟 살 때까지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녀석은 활달하고 학교생활도 원만한 아이였지만 내면에 깊은 우울감이 있었다.
밖에서는 멀쩡하게 지내면서도 집에만 오면, 정확히는 제 방에만 들어서면―그 애는 말없이 펑펑 울거나 그대로 쓰러져 잠들고는 했다.
전문의는 아이가 받는 스트레스가 겉보기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친구들이나 오빠들 앞에서 ‘괜찮은 척’하는 것에 과도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설명도 잇따랐다.
그 말은, 은서를 포함한 모두에게 큰 상처였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현서와 예서는 하나뿐인 여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둘은 그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 아이도 오빠들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었다.
주변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기적이었다.
가까운 어른들의 손길은, 세 사람이 더욱 단단히 버틸 수 있는 지지대가 되었다.
덕분에 은서는 빠르게 좋아졌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식을 마치고 돌아온 날, 오빠들에게 먼저 이렇게 말했을 정도로.
‘나 이번 겨울부터는 상담 안 받아도 될 것 같아.’
‘이제 별로 안 지치고, 별로 안 힘들어. 고3 되는 것도 솔직히 좀 기대됨.’
‘아, 진짜! 허세 아니고 진짜!’
-우우웅······!
흠칫. 심상치 않은 소음에 현서는 다시 눈을 돌렸다.
기어이 그의 모니터까지 환하게 불이 들어오고 있었다. 놀란 심장이 덜커덩거렸다.
어제저녁 이후로 컴퓨터 근처에도 간 적이 없는데―
“아예 고장 난 거야, 뭐야.”
남자는 다급히 책상으로 다가가 마우스를 움직였다.
그러자 너무나 익숙한 한글 창과, 반대로 난생처음 보는 경고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찰나 숨이 막혔다.
‘······이 폴더를 아래의 폴더와 합치시겠습니까?’
뭐라고? 갑자기?
“······.”
무슨 개소리야.
이름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폴더를, 우리 이야기와 합치겠냐고?
이거 지금 누가 원격으로 조종하는 건가? 내가 누군가에게 원한을 샀나?
‘아니요(N)’.
-딸깍
현서는 급하게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이대로 당장 컴퓨터 전원을 끄고, 플러그까지 깔끔하게 뽑아버릴 참이었다.
그런데―
-우우우웅······
“······뭐?”
경고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의 모니터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황금빛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남자는 기겁하며 콘센트에 연결된 전선을 전부 뽑아버렸다.
어느새 이마가 비지땀으로 축축했다. 그는 이제 완전히 패닉 상태였다.
요양병원과 엄마의 일이 까맣게 잊힐 만큼.
-파아아아······
“허억.”
그러나 기계는 약간의 광채도 잃지 않은 채 말짱했다.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밀어닥쳤다.
현서는 황급히 손으로 입을 가리며 거실로 뛰쳐나왔다.
즉시 싸늘한 바깥 공기가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피부에 닿는 모든 것이 오싹할 만큼 차디찼다.
-휘이이이······
“······.”
그는, 거실 베란다의 바깥 문이 활짝 열려 있음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