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548)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548화(548/920)
#548
콜드부팅 (2)
‘우우욱!’
‘세상에!’
······그렇게 구토를 하고, 그대로 기절할 수는 없으니 깨끗이 씻고,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일단 눈을 붙였다.
경고창과 그 밖의 상황에 대한 논의는 날이 밝으면 차차 이어가기로 했다.
사실 어떻게든 버티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정신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정신력이 바닥나니 체력까지 크게 달리는 기분이었다.
내가 먼저 쉬고 싶다고 하자, 두 짝꿍은 제법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마 평소처럼 으등부등 참아내는 꼴을 예상했을 것이다.
물론 그중 티를 내는 건 한 명뿐이었지만.
그게 1월 11일 밤의 일이다.
“으······.”
잠들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환자가 되어 있었다.
온몸이 침대에 눅진눅진 들러붙는 감각이 생경했다.
기운이 전혀 없어 손끝 하나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또 얼마나 쓰러져 있었던 거지?
지금이 낮인가? 아니면 여전히 밤이야?
“아······.”
-찰박, 찰박찰박······
누군가의 곱고 기다란 손이, 내 이마에서 수건을 거두어가 물에 담갔다.
가만히 있어도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고 목이 탔다.
나는 흐린 시야에 최대한 힘을 주고서 한 군데 초점을 맞추고자 노력했다.
속으로는 3초쯤 형을 원망했다가 털어냈다(정현서, 가만 안 둬).
참말 어이가 없지만, 내 몸뚱이라면 언젠가는 이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성기사도, 전투 마법사도, 고강도 훈련을 받은 군사도 아니니까.
기어이 몸살이 났군.
“······다행히 열이 많이 떨어졌군요. 그간 무리하셨으니, 궁주께서 이토록 갑작스레 앓아누우신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나긋하면서도 특유의 기품이 느껴지는 것이, 분명 프랑수아의 목소리였다.
나는 목울대를 꿀꺽이며 느릿느릿 눈알을 굴렸다.
바로 곁에 앉은 그가 멀찍이 선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러자 저쪽에서 곧장 대꾸가 날아왔다.
“치유 신관들은 뭘 하는 거지? 제국군의 의료 수준이 고작 이 정도였나?”
······일단 이건 태자 녀석이고. 왜 그렇게 화가 났어, 너는.
“전하. 아시다시피 이런 몸살이나 감기가 그들에게는 가장 까다로운 질병입니다. 특히나 정신적인 충격이 동반된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지요. 듣자니 그릇이 동요하면 치유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고 합니다. 궁주께선 지난밤 크게 당혹하신 듯했으니······.”
“죄송해요, 후작님. 전하께서 오늘 유독 까칠하시네요. 그걸 모르스는 븐드 으는드.”
이어서 가인 씨가 냉큼 대답했다.
어쩐지 아웅다웅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미루어 둘이 또 싸우는 듯했다.
입가엔 설핏 미소가 걸렸다. 다행히 이번에는 정상적으로 하룻밤만 잔 모양이다.
나는 천천히 팔꿈치에 힘을 주고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으쌰······!
-털썩!
“아이고, 못 일어나겠다.”
-끼이이!
“궁주님!”
그것이 신호가 되었는지, 밑에서 얌전히 있던 애물단지들이 오르르 침상으로 올라왔다.
특히나 겁이 많은 레아는 내가 토하는 것을 보면서 귀를 바들바들 떨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녀석이 바쁘게 나의 뺨을 핥아주었고, 데미와 페리는 뜨끈한 품을 꾸역꾸역 파고들었다.
티테와 로피는 어디 갔나 했더니 각각 가인 씨와 세드리크 태자에게 안겨 있었다.
커플이 나란히 막사 입구에 서 있는 모습을 보자 부스스 웃음이 났다.
거리두기 열심히들 하시네. 내 에테르가 아직도 난리인가?
“허억, 대박.”
나와 눈이 마주친 가인 씨가 잽싸게 손바닥에 얼굴을 묻는 것이 보였다.
두 눈알만 빼꼼 내놓고, 귀 끝까지 벌게진 모습엔 나까지 당황해버리고 말았다.
아······. 당장은 수도꼭지 틀어막을 기운조차 없으니 에테르 누수가 심할지도 모르겠다.
죄송해요. 하루이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주신 맙소사. 갑자기 일어나시면 곤란합니다. 제가 한 병약 해서 압니다만, 그럴 때일수록 행동거지를 더디 하셔야 하는 법입니다.”
으음, 이걸 참고를 해야 하는 건지······.
-끼이! 끼응!
“응, 형 이제 괜찮아. 저는 괜찮습니다, 프랑수아. 잠깐 일으켜 주시겠어요?”
“아뇨. 당분간은 누워 계시는 게 좋겠어요.”
-삐르르
이번 답변은 머리 위쪽에서 울렸다.
힘겹게 물을 받아마시던 나는 시선만 움직여 상대를 돌아보았다.
여느 때처럼 하얀 머리카락을 내려 묶은 요한 경이, 어깨엔 뚝심이를 얹은 채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기척이 전혀 없어서 사람이 있는지도 몰랐다. 대체 언제부터······.
아니, 이런 질문은 무의미하지. 나는 대신 더 중요한 말을 꺼냈다.
“하지만······. 크흠,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있지 않습니까. 앉아서라도 좀 도와드리고 싶은데요. 큼, 뚝심 안녕?”
-삐삐!
“모든 것이 차근히 진행되고 있어요. 궁주님께서는 전쟁을 수행하는 주체가 아니시니 과도하게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
그 지적엔 조금 욱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엄밀히 따지면 사실이었으므로 할 말이 없었다.
나는 프레데리크 폐하의 명으로 이곳에 와 있었고 일행을 이끄는 사람도 아니었다.
‘길드장’이라는 허울 좋은 직함이 있었지만, 그 역할극은 이미 끝났고 실질적인 총책은 황태자인 세드리크 녀석이었으니까.
거기다 스타니슬라스 전하도 계시고 해서 내가 주도적으로 할 일은 거의 없었다.
바른 영주성 쪽 상황도, 엠마 코를레오네 제독이 있으니 어떻게든 해결될 터였다.
요컨대 북부의 소란은, 이제 완연히 정리 단계로 들어선 시점이었다.
“······규는요? 그 애는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신물께서는 하루 대부분 시간을 하늘에서 보내십니다. 한참이나 바다 방향을 바라보곤 하십니다만, 그쪽으로 가시는 일은 없더군요.”
프랑수아가 나에게 다시 물을 먹여주며 상냥하게 답했다.
나는 이천 년 만에 자유를 얻은 사룡이 여전히 바다를 그리워한다는 사실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대충 받아들인 눈치입니다. 자기가 바다로 가면 그곳 사람들이 위험해질 수 있고, 그러니 아무리 사랑해도 놓아줘야 한다는 걸요. 아마도 포기하려는 것 같아요.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으으응
그사이 표정을 수습한 가인 씨가 또랑또랑하게 부연했다.
얼음 쪽쪽이를 입에 문 티테의 울음도 따라왔다.
결국은 그렇게 됐구나. 전설 속의 용도 변하게 되는구나······.
나는 조용히 숨을 고르고서 태자에게 눈길을 돌렸다.
와, 그냥 누워 있기만 하는데도 머리가 띵했다.
정현서 진짜 가만 안 둬. 집에 가면 6년 된 지금 폰 버리고 형 카드로 새로 살 거야.
한 달 동안 닭 다리는 나랑 정은서만 먹을 거고, 같이 곱창집 가면 형한테는 양 하나도 안 줄 거라고.
감자탕 볶음밥도 우리 것만 볶고, 후식 아이스크림도 우리 것만 푸고······.
하아, 됐다.
“베르너르 페네티안은 어찌 됐습니까?”
“······아직 바른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더군. 회의소 주변에서는 수상한 행적이 보고된 바 없으니.”
“그럼 제독이 생포할 가능성이 크네요. 북쪽에서부터 함대 단위로······. 밀고 내려올 테니까요.”
“어느 쪽이든 그대는 신경 쓸 것 없어.”
-냐아아
사내가 꺼칠하게 말했고, 로피가 동의하듯 울음을 얹었다.
쪼끄만 꼬리로 널따란 어깨를 톡톡 내리치는 모습이 몹시 불만스러워 보였다.
나는 두 꼬마를 향해 입을 비죽인 뒤 찬찬히 눈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요한 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프란시스카는 좀 어떻습니까?”
“······영지의 지배권을 포함한 모든 권리를 전하께 양도하는 각서에 정식으로 서명했어요. 공녀는 아츠마 남작의 유일한 직계 비속으로서 적법한 후계자였습니다.”
“그 아이 상태는요?”
내가 다시 물었다. 헤릿 아버지는 뒷짐을 진 채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중이죠. 시신을 화장했거든요.”
“······.”
“어머니의 죗값도 받아들이고 있고요.”
“······.”
그 말은, 어쩐지 나에게도 적용되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스르륵 눈을 감았다가 나릿나릿 떴다.
뿌옇던 시계가 잠시나마 또렷해지는 감각이었다.
“제가······. 제가 어제 떨어뜨린 책은 어디 있습니까?”
“오, 수필집이라면 여기에 두었습니다.”
프랑수아가 나의 머리맡에서 <주신께서 내게 주신>을 들어 보였다.
그것을 보니 절로 숨이 콱 막혔다.
“······.”
하지만 친구들에게도 말해야 한다.
지금, 당장.
“······예전에······. 예전에 저 혼자 뚝심이의 방주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천막의 하얀 천장을 올려다보며 비장하게 내뱉었다.
조금 쉰 소리가 났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미룰 시간 따위는 없었고, 그랬다가 훗날 상황이 꼬여서 말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도 않았다.
갑자기 달라진 분위기에 친구들이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들에게는 갑작스러운 흐름이겠으나, 나는 피부로 전해지는 레서판다들의 온기 덕분에 간신히 용기를 내고 있었다.
형의 얼굴을 떠올리면 괜히 열받으니 오늘은 정은서를 생각하기로 했다.
“그때······. 안내자 ‘니키’를 처음 만났습니다.”
“아! 기억나요. 전에 우리끼리 몰래 사막 가는 마차 탔을 때, 뚝심이 대신 알렉상드르 국서 전하 모습으로 계셨잖아요. 긴 생머리 그분. 미모로 대륙 뒤집어 놓으시는 분!”
-삐―뽀!
“네.”
나는 쩍쩍 갈라지는 목으로 마른침을 꿀떡 삼켰다.
얼핏 나를 내려다보는 뚝심이의 콩알 눈에는 애틋한 감정이 스쳤다.
저절로 쓴웃음이 피어올랐다.
괜찮아. 우린 대화를 해야 해.
이건 숨긴다고 될 일도 아니고, 그건 오히려 내 친구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게 될 테니까.
접때 한 번 크게 실수했으니 이번에는 잘할 수 있어. 차근차근 이야기하는 거야.
정말 하나하나씩······.
“그날, 그날 니키는······.”
······정예서. 정말로 아끼고 좋아한다면 말해야 해.
이불 아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처음부터 그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첫 번째로는 크리스텔로 변신했다가, 그다음에는 태자님이었고······. 세 번째엔 뱅자맹의 모습을 취했습니다.”
“저랑 전하랑 뱅자맹이요?”
가인 씨가 낭랑하게 되물었다.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천진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상황을 완벽히 파악하지 못한 프랑수아는, 홀로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며 애쓰고 있었다.
당연히 그에게도 너무 죄스러웠다. 나는 신음하듯 한숨 쉬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친해진 인간의 모습을 베끼는 것이라 여겼는데, 아니었습니다. 니키가 말하기를······. 그건 그분들이 모두, ‘주신의 단서’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주신의 단서? 아하. 무슨 말인지 알겠네요. 그 소설 생각하면 뭔지 알겠다.”
“그렇다면,”
“니키는 제외입니다, 태자님. 국서 전하께서는······. 특별히 예외적인 존재가 되신 거라고 들었습니다.”
“······.”
나는 온몸의 힘을 끌어모아 두 남녀를 돌아보았다.
불씨를 품은 주홍빛 눈동자가 고요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이어질 말을 기다리는 시선이었다. 명백히.
“두 분은 이 세계의 주인공이니, 거기까지는 쉬웠습니다. 하지만 뱅자맹은 이해가 잘되지 않았습니다. 뒤이어 니키가 또 다른 주신의 단서를 보여주었는데······.”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자, 혀가 딱딱하게 굳고 주변 온도가 뚝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가슴이 묵직해져 속의 문장을 끄집어내기도 힘겨웠다.
데미는 나의 손목을 꼭 끌어안아 주었다.
“그건 제 동생의 식탁 의자였습니다.”
“······네?”
멈칫. 가인 씨의 푸른 눈동자가 일렁거렸다.
나는 비겁하게 눈꺼풀을 내리까는 대신 그녀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다.
“제 동생 은서가······.”
지금까지 충분히 피했으니까. 더는 그래선 안 돼.
“은서가, 매일 앉아서 밥을 먹는 지정석이 거기 있었습니다. 분홍색 돼지 모양 방석이 깔리고, 체크무늬 담요가 있는······. 니키는 그것도 주신의 단서 중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더 자세한 내용은 그조차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잘 모르겠어요. 처음 듣는 얘긴데. 은서 씨 의자는 왜 갑자기 나온 거고, 뱅자맹 님은 또 왜······?”
희고 동그란 이마가 한순간에 와락 구겨졌다. 나는 잠긴 목소리에 애써 힘을 실었다.
“저도 그 이유를 몰랐는데, 어젯밤에야 알았습니다.”
“······.”
“이 책에 쓰인 뱅자맹의 서명이······. 저희 형의 서명과 정확히 일치하거든요.”
······그러니까, 어쩌면 우리 형이 ‘작가’일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