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551)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551화(551/920)
#551
숨 참고 헬 다이브 (1)
“······.”
그 짧은 순간, 지브릴은 자신이 단단히 잘못 걸렸음을 직감했다.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제 실수였다.
남자는 미간에 빠짝 힘을 주고서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병사를 불러세운 것은 지극히 충동적인 일이었다.
워낙 주변의 변화에 민감하고, 이상이 있으면 빠르게 감지하는 성정이다 보니 이번에도 그만 본능적으로 행동하고 말았다.
저 망할 목걸이의 반짝임이 지나치게 튀었던 탓이다. 또는 그의 기억력이 지나치게 좋았거나.
“하아······.”
빌어먹을 지브릴 디오프. 황태자의 패물 따위가 뭐 대수라고.
“공자님?”
이놈의 눈썰미는 대체 언제쯤 나빠지는 거지? 그냥 좀 무시하면 덧나나?
또 일을 사서 하는군그래.
-크르르릉······
유유자적 하늘을 나는 사룡마저 그를 비웃는 것 같았다.
“······그건 내가 챙겨야겠다. 내놔.”
“예에? 이건 쓰레기인데요?”
난데없이 떨어진 명령에, 해군 병사들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서 그를 바라보았다.
무리가 웅성거리는 동안에도 지브릴은 그저 불퉁한 표정이었다.
그중 자루를 들고 있던 이가 애써 침착한 투로 말했다.
“디, 디오프 공자님. 죄송합니다. 하지만 높으신 지휘관님들의 폐기물은 무조건 말끔히 태우는 것이 군법······.”
“아, 내놓으라니까. 그거 그대로 버리면 골치야.”
“예?”
놀란 고개들이 모로 기울었다. 지브릴은 이때다 싶어 성석 목걸이를 덥석 쥐었다.
고귀하신 주인이 화로에 던져버렸는지, 군데군데 재를 묻힌 꼴이 기가 막혔다.
“여기 은은하게 마나 흐르는 거 안 보여? 이 목걸이에 상급 보존 마법이 걸려 있다고. 이런 건 여간해선 불에 타지도 않고, 잿더미에 숨었다가 적의 손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골치 아파져. 폐기하기 전에 마법을 푸는 게 우선이다.”
“······.”
방금 지어낸 개소리지만, 제가 생각해도 꽤 그럴듯했다.
어쨌든 7급 보존 마법이라면 어지간한 불꽃을 막아내는 건 맞으니까.
게다가 세상천지에, 이만한 마법이 걸린 물건을 함부로 버리는 마법사는 맹세코 한 놈도 없었다.
그의 육촌을 제외하면.
“아아!”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주신 맙소사! 저희는 그런 물건인 줄도 모르고······!”
“공자님, 참말 대단하십니다.”
“황공합니다!”
“알았으면 이건 내가 가져간다. 몰랐다니 한 번은 눈감아주지.”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희게 질렸던 낯들이 다시 환하게 밝아졌다.
지브릴은 혀를 차고서 안주머니에 목걸이를 대강 쑤셔 넣었다.
대체로 순박하고 어린 병사들이라 천만다행이었다.
머리 굵은 기사가 하나라도 끼어 있었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게 열 개 남짓한 입을 완벽히 막아낸 뒤, 남자는 성큼성큼 황태자 막사로 걸어갔다.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거슬리는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지나치는 해군 신관들의 면면이 묘하게 시선을 끌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그들은 어쩐지 산만하고 들떠 보였다.
까닭 모를 불안이 비치기도 했고······.
-저벅, 저벅, 저벅
“······아니, 진짜야. 전하께서 궁주님을 찾지 않으신다던데?”
“에이, 설마. 그냥 에테르가 넉넉하신 건 아니고?”
“너 그분 옥안 못 뵀지?”
“아예 궁주님 언급도 안 하신대. 식사며 잠자리도 직접 살피지 않으신다나 봐.”
“자네 소문 못 들었어? 두 분이 크게 다투셨다잖아. 어쩌면 우리에게도······.”
“아서라. 네가 아무리 집안이 좋아도 부활하신 왕족만 하겠니?”
“왜, 당장 랑부예 경도 두 분 사이를 어쩌지 못하신다는데. 꿈은 꿀 수 있는 거 아냐?”
“하이고. 글쎄다······.”
“······.”
막연한 기대감이 한두 숟갈 섞인 낯짝들. 방정맞고 경박한 말투.
정말이지 한심하기 짝이 없는 대화였다.
때가 어느 땐데 다들 저렇게 빠져서는 말이다.
평상시 궁정에서 벌어지는 암투도 한심하게 여기는 지브릴로서는, 해군 소속이라는 자들이 전시에 저따위 한담이나 나누는 꼴에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태자와 궁주가 모종의 이유로 대판 싸우고, 서로 얼굴도 마주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야 그도 익히 알았다.
하지만 그까짓게 뭐라고? 지금 그게 중요한가?
마법사는 미미하게 인상을 쓰며 천막 입구를 걷었다. ‘펄럭!’
“어서 오거라, 지브릴.”
“안녕하십니까! 4분 늦었군요, 디오프 공자.”
“······.”
불량하게 턱을 까딱인 남자가, 스타니슬라스와 세드리크에게 대충 예를 차렸다.
프랑수아는 회중시계를 품에 넣으며 다시 지도를 살폈다.
이어서 얼마간의 침묵이 흘렀다.
대(對) 신국 북부 전략이 바뀌었으니 급히 새로운 진형을 궁리해야 한다고 하여 왔는데, 어딘가 허전하고 조용한 느낌이었다.
탁자 뒤편으로 늘어선 기사들은 석상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지브릴은 느릿느릿 내부를 훑어본 후에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머릿수 하나가 비는 것 같은데.”
그 궁주가 없었다.
태사와 분홍 공주는 하늘 정찰을 나갈 예정이라 했으니 그렇다고 쳐도, 이 자리에 쥘리에트가 불참한 것은 기이한 일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즉시 맞은편에서 날카로운 눈빛이 꽂혀 들었다.
숨 막히는 적막이 좌중의 숨통을 쥐어짰다.
“······.”
“······.”
누가 보면, 공자가 황위 계승자의 존전에서 반역이라도 입에 담은 줄 알 것이다.
태자는 그가 말 한마디라도 잘못했다간 경을 칠 것처럼 굴고 있었다.
스타니슬라스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두 아이를 번갈아 살필 뿐, 평소처럼 말을 얹지는 못했다.
프랑수아가 옅은 한숨을 쉬었다.
지브릴은 상대의 불타는 눈동자를 똑바로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별 뜻 없습니다. 한데 쥘리에트 궁주는 여태 전하와 함께 여러 전술을 구상하지 않았습니까.”
“······.”
“길드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유치한 연극은 그만두지.”
허. 공자가 소리 없는 헛숨을 뱉었다.
노인장이 시원한 물잔을 밀어주었지만 들이켤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리에스테르의 태자로서 성심성의껏 길드장 투표까지 참여한 주제에, 이제 와 저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둘의 싸움을 공적인 영역까지 끌어와 불편한 분위기를 만드는 건 대단히 성숙한 태도인가 보지?
지휘관의 갈등을 아랫놈들까지 알게 하는 게, 제왕학에서 가르치는 군주의 귀감인가?
생각할수록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가 흘렀다.
다만 지브릴이 그 모든 불만을 소리 내어 말하지 않은 이유는······.
“신물 비렴의 방주를 통한 서신 전달은?”
“······.”
태자의 상태가 영 좋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세드리크 리에스테르는, 일주일쯤 굶은 사람처럼 뺨이 말라 있었다.
탁자에 기댄 자세 또한 평소처럼 견고하지 않았다.
얼굴은 군데군데 음영이 진 데다 꺼칠했으며, 깊은 눈 그늘까지 드리워 전체적으로 칼날처럼 위태로운 느낌을 주었다.
얼룩덜룩한 주홍빛 눈동자에 생기라고는 없었고, 흰자위는 드문드문 핏줄이 터져 붉게 보였다. 반면 입술엔 조금도 핏기가 없었다.
한껏 잠긴 음색은, 마치 몸뚱이에 바위를 감고 호수로 뛰어든 짐승의 울음 같았다.
아무렇게나 접어 올린 셔츠 소매 역시 잔뜩 구겨져 있었다.
“조금 전 완료했습니다, 전하.”
······요컨대 그는, 술에 찌들어 아침 6시에 귀가하던 지브릴보다 상태가 나빠 보였다.
그리고 예서 페네티안의 죽음으로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보다도 음울해 보였다.
그야말로 최악이란 소리다. 아주 가지가지 하시는군.
“폐하께는 이곳의 상황 설명과 함께 추가 지원군을 청하는 서신을 올렸고, 오렐리 전하께는 교황청에 전할 견해를 따로 정리하여 올렸습니다. 작전 규모가 ‘잠입’에서 ‘점령’으로 확대된 만큼, 빠른 회신이 필요하다는 요청을 함께 적었습니다.”
후작의 보고를 들은 태자가 턱짓했다.
지브릴은 그의 목덜미가 텅 비어 있음을 곧바로 눈치챘다.
“······국서의 생포 건은 어찌 되었습니까.”
“아직 엠마에게서 전서구가 없구나. 아무래도 북부의 반란 규모가 커지는 모양이다. 다만 제국 함대가 상륙하면 전열(戰列)을 일렬로 촘촘히 전개하여 남하한다고 했으니, 우리 병사들 역시 꾸준히 그렇게 북진하고 있단다. 전투 마법사는 무조건 선두에 배치하여 제국 청년들의 피해를 최소화한다고 하고······. 지브릴?”
“······예에. 일단은 그런 전략입니다. 침공이 아닌 수색 작업이니 괜히 보병을 희생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손이 부족한 상황이고요.”
“그렇다는구나.”
지브릴이 툴툴거리듯 답하자, 노인이 상냥하게 말을 받았다.
가엾은 어르신은 작금의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계셨다.
시립한 기사들은 1월의 날씨에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비록 이 과정에서 베르너르 국서를 찾지는 못했으나, 구릉지와 골짜기에 갇힌 피란민 수백을 구조하는 데 성공하였다고 한다. 귀한 목숨을 여럿 살리게 되었으니 축복 아니겠느냐.”
“······.”
태자는 잠시 침묵하더니, 조부를 돌아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전하께서는 군사 일백과 프란시스카 아츠마를 데리고 아츠마 영주성으로 진군하셔서, 폐하의 지원이 당도할 때까지 그곳의 정세를 안정시켜 주십시오. 지도자가 없는 땅이니 불안정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주변 영지의 정찰도 필요합니다.”
“······그리하마, 아가.”
“오! 깜빡했군요. 전하, 얼마 전 말씀하신 마르티어 제일스트라 경의 수색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아직 단서는 없지만, 아군 마법사 중 황궁에서 그녀의 인상착의를 본 이들이 있습니다. 하니 살아 있다면 모습을 드러낼 것이고, 그렇다면 반드시 생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랑수아가 지도 곳곳에 무언가를 표시하며 첨언했다.
전투 신관 제일스트라는 엘리서 왕세녀의 오른팔이었고, 셈 바른의 증언에 따르면 바른 영주의 죄인이었다.
그곳 지하 감옥에서 반란이 있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이번 사태와 연관이 있을 터였다.
세드리크는 다시금 턱을 까닥이고서 손바닥에 이마를 묻었다.
그러고는 막사 한편에 놓인 화로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
······다음 주제로 넘어가야 하는데, 당장이라도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그릇이 통째로 흔들리는 오래된 감각에 속이 울렁거리고 욕지기가 치밀었다.
영혼이 새어나가는 지독한 불쾌감은, 아마 죽을 때까지 익숙해지지 않을 듯싶었다.
그는 아플 수 없는 자리에 있는데도.
“화로에 보물이라도 숨겨 두셨나 봅니다.”
툭, 예고 없는 빈정거림이 날아들었다. 태자의 홍채가 파르르 떨렸다.
그러나 지브릴은 거침없이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저도 보고 하나 올리겠습니다. 쥘리에트 궁주께서 박살 내신 흑마법 전용 수정구에 관한 내용입니다.”
“듣고 싶지 않군.”
“송구합니다만, 육촌 전하. 적군의 수뇌라는 자가 이용하는 수단이니 우리로서는 그 기능을 명명백백히 밝힐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궁주님의 존체에 잠재적으로 어떤 위해를 끼쳤는지도 알아야 하고 말입니다.”
“······위해?”
굵은 손가락 사이로, 사내의 꺼먼 동공이 맹수처럼 번뜩였다.
그는 이제 거의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지브릴은 지금쯤 해초처럼 축 처져 있을 어느 신관을 떠올렸다.
최근 며칠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데, 어쩌면 침상에 엎어져서 추하게 질질 짜고 있을지도 모른다.
요사이 골골댄다는 소문이 파다했으니까. ‘그 책’을 보고 거하게 구토한 뒤로.
“아니면 이미 버린 자에게는 썩 관심 두지 않으십니까?”
“뭐?”
“귀하신 분께 시비 걸려는 것은 아니고. 그냥 궁금증입니다.”
지브릴이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빙글거렸다.
프랑수아는 그를 향해 느릿느릿 고개를 저었다. 제발 그만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마법사는 당연히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 또한 로메로 리에스테르의 핏줄이었으므로.
“제가 오다가 패물 하나를 주웠는데.”
“······.”
한번 불이 붙으면, 쉽사리 꺼지지 않는.
-펄러덕!
그 순간―
“태자님! 저랑 얘기 좀 합시다!”
남자보다 수십 배는 뜨겁게 빛나는 달덩이가, 넝쿨째 천막으로 굴러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쏜살같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