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560)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560화(560/920)
#560
우리 구면인가요? (2)
이러다가 눈 뜨고 도둑이라도 맞을까 봐 심장이 철렁했다.
나는 아이들을 안고 발딱 일어나 그에게로 걸어갔다. 뚜벅, 뚜벅, 뚜벅······!
“전부 제 겁니다! 그냥 두세요! 버리는 물건이 아닙니다······.”
-끼이이······
처음에는 목소리가 제법 쩌렁쩌렁 나왔는데, 가까워질수록 남자의 덩치도 커져서 자연히 쫄면 사리가 됐다.
‘그냥 두세요, 세요, 세요······!’ 쓸데없는 메아리만 몇 번이고 허공을 울렸다.
그랬더니 그가 홍옥처럼 붉은 눈동자를 슬쩍 휘었다.
‘이거 웃기는 놈이네?’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제야 우리가 초면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어······?
“잠깐. 잠깐만요, 선생님? 혹시······.”
아니지. 이걸 구면이라고 할 수가 있나······?
나는 이분을 조금 아는데, 이분이 나를 알 리는 없지 않아?
「너희에게는 신세를 졌다.」
“예? 저희한테요?”
갑자기요? 나는 스스로를 가리키며 입을 떡 벌렸다.
당혹스러워서 달리 반응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대관절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신 어른이었다.
「그래. 에타가 그런 이야기를 하던데.」
그래서인지 남자는 목소리조차 없었다.
한 붓으로 그린 듯한 옥순(玉脣)이 여러 차례 달싹였으나 그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문장은 또렷이 나에게 들리고 전해졌다.
샛노란 머리카락이 황금처럼 번쩍거렸다.
“허어······.”
대 리에스테르 제국의 가장 유명한 전쟁 군주이자, 신국 왕실로부터 ‘귀곡성의 마검사’라는 칭호까지 얻은 희대의 강자.
비극의 연인 살해자.
금발의 미황제(美皇帝).
로메로 클레르 리에스테르.
“······‘에타’요? 설마 율리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어쩔 셈이냐?」
그가 빙글빙글 웃으며 나의 성장을 빙글빙글 돌렸다.
당황한 나는 선황의 손짓을 따라 애타게 고개만 움직였다.
황궁에 걸린 로메로의 초상화는 몹시 근엄한 인상이었는데, 실제로 만난 그는 다소 철이 없고 가벼운 느낌이었다.
품에 안긴 신수들이 앞발을 쥐엄쥐엄 하며 울었다.
-끼응, 끼잉, 낑!
“율리터가 폐하께 저희 이야기를 했다고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두 분은, 망크란스에서 영영 사라지신 게 아니었습니까? 혹 여기서 재회하셨습니까?
어떻게요? 나는 거기까지 말하려다 말고 문득 혀를 멈추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이번에는 느릿느릿 눈동자를 굴려 사방을 돌아보았다.
최대한 침착하게······.
“아······.”
눈이 시릴 만치 새하얀 공간이 시야에 들어왔다.
천장도, 벽도, 바닥도 없이 온통 하얗기만 한 세상.
언젠가 와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걱정 마세요, 예서 씨.」’
‘「당신에겐 큰 신세를 졌습니다.」’
내가 친구들을 만나러 돌아오던 날, 환승역처럼 잠시 거쳤던 장소였다.
유령처럼 보이는 인파가 물리 법칙을 무시한 채 걸어 다니고, 아무도 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던 공간.
그중에서 오직 예서 왕자만이 예외였다.
“세상에······. 제가 어쩌다 여기로 다시 온 겁니까? 설마 그 버튼 하나 눌렀다고 이렇게 됐습니까? 정말로요?”
「처음이 아니라고? 몰랐는데. 보기보다 배짱이 두둑한 녀석이군.」
“대답 좀 해주십시오, 폐하. 부탁입니다! 다른 친구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상황이 너무 긴박해 심장이 쫄깃쫄깃하고, 걱정은 턱 끝까지 차올라 숨쉬기가 힘들었다.
신수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인지 꼬리를 팔딱이며 몹시 힘들어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건 선황이 어떻게 이곳에 있는지 따위가 아니었다.
그가 단순히 귀신이든, 부서진 로메로의 설정 조각이든 뭐든 이제는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흩어졌다.」
“······예?”
남자가 마침내 성장을 돌려주며 말했다.
나는 가가방을 챙기다 말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친구들이 어떻게 됐다고요?
「처음이 아니라면, 네가 더욱 잘 알지 않느냐? 이곳이 어떤 곳인지.」
“······.”
모른다고 대답해야 하는데.
전혀 모르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설명해 달라고 부탁드려야 하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치는 문장이 있었다.
방울방울 눈물 흘리던 율리터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 선명했다.
언젠가 망크란스에서―
‘「세계를 떠나 방황하는 혼을 만나려면······. 거대한 힘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주신을 흉내 낼 수 있을 만큼 위대한 힘이······. 나도 순백의 성간(星間)에서 들은 이야기랍니다.」’
······아니야. 말도 안 돼.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급전개라고······.
“아니, 정현서 진짜 미쳤나······.”
「뭐?」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생각할 시간 좀······.”
와······. 갑자기 속이 메슥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워 똑바로 서 있기가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도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애물단지들의 존재 덕분이었다.
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무조건 차분해야 했다.
정신 놓지 말고, 냉철하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해······.
쉬지 말고 계산기 돌리자. 답이 나올 때까지.
“그러니까 여기는, ‘순백의 성간’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하나 맞혔군.」
“세계를 떠나 방황하는 혼들이 모여 있고.”
「두 개.」
“제 친구들도 ‘아니요’ 버튼 하나 잘못 눌렀다가······. 정확히는 버튼이 눌릴 때 그 시공간에 있었다는 이유로, 어떤 현상에 휩쓸려서 세계를 떠나게 됐습니다. 맞습니까?”
「아마도 세 개.」
“······그래서 다들 여기에 흩어진 겁니까? 제가 찾으러 가면 찾을 수는 있습니까?”
「······그건 틀렸어.」
자신의 칼자루를 툭툭 건드리던 남자가, 유감스럽다는 표정으로 턱을 까닥였다.
묘하게 지브릴 디오프를 닮은 얼굴엔 어쩐지 울컥 열이 올랐다.
기어코 큰소리를 내려는데, 그가 먼저 말머리를 잡고 들어왔다.
「네 동료들은 여기에 없다.」
“······예?”
-낑?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이왕 돕기로 하였으니, 친히 설명해 주마. 짐이 이곳에서 우연히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너뿐이다.」
“······.”
「나머지는 모두 주신의 창(窓)에 휩쓸렸으니······. 소멸했을 공산이 크고.」
“뭐요?”
「혹은 밖으로 떨어졌거나.」
“밖?”
말이 점점 짧아지는 게 스스로도 느껴지는데, 더는 눈에 뵈는 것이 없다 보니 정정할 정신머리조차 없었다.
선황은 그런 나를 구경하는 것이 썩 즐거운 모양이었다.
「허나 심려 마라. 너와 같이 신물이나 신수의 가호를 받는다면······.」
“보내주십시오.”
「흠?」
말허리를 잘린 남자가 설핏 미간을 찌푸렸다.
저 표정은 역시 리에스테르 황가의 트레이드마크인 모양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와다닥 뒷말을 쏘아붙였다.
“저도 친구들이 떨어진 곳으로 보내주십시오.”
「······곤혹하여 판단이 흐려진 모양이군. 짐이 너를 구했다는 말을 못 들었느냐?」
“들었습니다.”
「이 몸은 너를 대륙으로 돌려보내 줄 것이다. 비록 이 조각은 스러지겠으나, 그로써 빚을 갚을 것이니······.」
“마음 써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지만, 저는 친구들이 있는 장소로 가겠습니다. 그게 안이든 밖이든 상관없습니다. 제발 그렇게 해주십시오. 제발요.”
「······.」
“······이렇게 간청드립니다. 폐하.”
-끼아!
나는 선황 앞에 깍듯이 고개 숙이고, 내가 아는 가장 정중한 제국식 예를 차렸다.
이것 외에는 정말로 어떠한 가능성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을 몽땅 잃어버린 채 나 혼자 대륙으로 돌아간다니, 꿈에서라도 듣기 싫은 끔찍한 소리였다.
몇 시간이 됐든 며칠이 됐든, 나는 무조건 모두를 만나서 함께 귀환해야만 했다.
다른 친구들이라도 반드시 서로를 위해 그렇게 해줄 터였다.
반드시.
“······.”
「아아······. 동료애라.」
‘짐에게도 한때는 그런 것이 있었지.’ 남자가 무언가를 회상하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그가 옛 친우인 잉그리드 베랑을 떠올리고 있는지 궁금했다.
오직 선황의 표정을 보고 싶다는 작은 호기심에, 조심스럽게 눈길을 드는 찰나―
-스릉!
그의 허리춤에서 눈에 익은 보검이 뽑혀 나왔고,
“엉······?”
「원한다니 보내주마.」
예?
-쌔애애액!
“으아아악!”
-끼아아!
-콰콰콰콰콰―!
나는 그대로, 위대하신 마검사님의 검기를 정통으로 맞았다.
다시금 시야가 순백으로 물들었다.
*
벌떡!
“흐아아악!”
-끼어어어!
우당탕퉁탕! 우리는 그대로 침대에서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기겁한 레서판다들이 나에게 대롱대롱 매달려 울고불고 난리를 했다.
어이구, 삭신이야. 나는 바득바득 이를 갈며 정현서의 욕을 속으로 세 바가지쯤 퍼부었다.
눈앞이 까매졌다가, 또 하얘졌다가! 죽은 줄 알았다가, 난데없이 생 쇼크 탈출 찍었다가!
아무리 안 아팠다지만 방금은 뒤랑달을 맞았네! 이게 도대체 몇 번째냐고, 어!?
게다가 잘못 떨어져서 허리 너무 아파, 지금!
“아오, 진짜 골병들겠네······. 얘들아, 괜찮아? 너희 안 다쳤어?”
-끼이, 끼이! 끼이!
-끼우응!
-끼후!
다급한 손길로 한 마리씩 들어 뱃살을 만져보고, 네 다리와 코끝과 귓불까지 꼼꼼하게 살폈다.
다행히 아무도 피를 흘리거나 아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실내가 컴컴해서 제대로 된 확인은 힘들었다.
거기다 사방이 조용한 걸 보니, 아무래도 늦은 시간 같은데······.
“아, 내가 협탁 서랍에 쓸 만한 거 넣어 뒀을 거야.”
-끼응
“그리고 이쯤에 있는 마법 조명을 켜면······.”
나는 쿡쿡 쑤시는 허리를 부여잡고 조심조심 일어나다가, 문득 싸한 느낌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잠깐만?
“근데 여기······. 여기 쥘리에트 궁 아닌가?”
-끼으
“그치? 쥘리에트 맞는데.”
이상하다. 내가 왜 쥘리에트 궁으로 왔지?
나 분명히 친구들한테 가겠다고 했는데······?
기사님도 그쪽으로 태워주신다고 했는데.
-탁!
그 순간, 누군가 마법 조명을 밝히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침실 한편이 은은히 밝아지며 시야가 부드럽게 트였다.
애물단지들과 나는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이제 불을 켜준 사람이······.
“······밤손님들이 오셨네요.”
침대에 앉아 있었다.
일순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펄쩍 뛰어올라 머리통을 천장으로 덩크슛할 뻔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야말로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온몸이 쩡하고 굳어 밀리미터 단위로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게 뭐야?
“······안녕, 안녕하세요? 저희는······.”
아니, 진짜로. 이거 지금 무슨 상황이야?
“······.”
“······.”
-끼이······
말 그대로 숨이 멎는 기분이었다.
충격적인 전개에 식은땀이 쏟아지고, 다리에서는 힘이 쭉쭉 빠졌다. 반대로 입안에는 쩍쩍 가뭄이 났다.
남자의 손에 들린 침대 장식 줄이 또렷하게 보였다.
나는 저것의 용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한 번 당기면 마법 조명을 켤 수 있지만, 두 번 당기면 바깥의 시종을 호출할 수 있는 물건.
그리고 현재 우리는, 누가 봐도 이곳의 침입자였다.
“어, 저희는······. 그러니까······.”
“······.”
신의 실수로 지나친 아름다움을 품고 태어난 남자가, 답을 기다리며 살며시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나는 잠시간 넋을 놓고 말았다.
달빛으로 은사(銀絲)를 꿰어 수놓은 듯한 피부와, 어둠 속에서 고아히 태양빛을 반사하는 금발.
신비롭다 못해 인간의 것처럼 보이지 않는 보랏빛 눈동자.
“······우리 구면인가요?”
왕자, 예서 로스나 페네티안.
나는 이 남자 또한 알고 있었다. 어쩌면 너무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