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589)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589화(589/920)
#589
일기당천 왕자님 (2)
그래서 어떻게 되기는.
아주 그냥 난리가 났다!
“크흐흐흐······.”
“무테 경, 표정 관리를 하셔야겠습니다.”
“아아, 하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 봐서 말입니다. 그 고리타분한 위고 바카리 자작이 웬일로 이백이 넘는 귀족들 앞에서 광대놀음을 했는데―”
“약혼 발표요.”
“그에게는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소매에 눈물을 찍어내던 엘리자베트 경이 킬킬거렸다.
예서 왕자님은 결국 함께 웃음을 참으며 손수건으로 입가를 가렸다.
나는 어느새 복작복작해진 스위트룸을 둘러보고서 침을 꼴딱 삼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왕자님과 나만 있었다는 사실이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수많은 황실 근위대원이 복도를 빽빽이 채우고 있었으며, 가주인 바카리 자작을 제외하면 어지간한 양가 어른은 모두 모인 자리였다.
그는 수많은 손님을 맞아야 하기에 반드시 무도회장에 남아야 했고, 따라서 딸인 데지레 소자작에게 모든 권한이 일임되었다.
심각한 낯의 바카리 가문 종친들이 뒷짐을 진 채로 수군거리고 있었다.
곳곳에서 오색의 깃털 부채들이 그들 대신 파들파들 몸을 떨어댔다.
거실은, 여러 의미로 폭발 직전의 화약고 같았다.
“가짜라고? 성 퐁필리 부군의 성유물이?”
“그렇다고 하시지 않습니까. 아무렴 신국의 왕자께서 거짓말을 하셨겠소?”
“아니, 어찌 그런······!”
“귀하신 분이 명예를 걸고 말씀하셨어요. 우리로서는 무조건 진품이라고 주장할 수도 없는 노릇이에요.”
“그렇지마는 도저히 믿기 힘든 이야기입니다. 물론 마도구가 아니고 성유물이니, 우리야 지금껏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었지만······.”
“저것의 능력은 우리가 제일 잘 알지 않습니까.”
“맞아요. 왕자께서는 무엇을 보고 그런 판단을 내리신 거랍니까?”
“듣자니 왕족 신관이 성유물에 축복을 내리면, 몹시 특별하고 신성한 반응이 돌아와야 한답니다. 그런데 저 팔찌는 ‘국경의 전당포에 버려진 패물’처럼 조용했다더군요.”
“오! 참말 끔찍한 비유예요.”
“반응? 무슨 반응?”
“그거야 모르지요. 우린 왕족도 아니고 신관도 아닌데!”
“혹시 전쟁통에 뒤바뀐 건 아닐까요? 아니면 그새 도둑이 들었다거나?”
“어허! 그것참!”
분위기는 갈수록 격앙되어가는 것 같았고, 나는 풀 먹인 의복처럼 뻣뻣해졌다.
-끼이?
“어······. 좀 긴장은 되네.”
살면서 거짓말을 해본 적이 많지 않다 보니, 이렇듯 스케일이 커진 것이 살짝 겁나기도 했다.
하이스트 영화 속 주인공들은 어쩌면 그리 뻔뻔할 수 있는지 새삼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딱딱한 낯빛의 어른들을 보니 가슴이 울렁울렁하고 손끝도 간질간질했다.
나는 최대한 무감정한 얼굴로 왕자님의 커피 시중을 들면서, 흘끔흘끔 쥐디트 앙드레 자작을 관찰했다.
그녀는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무언가를 중얼중얼하고 있었다.
윗전의 식기를 정리하는 척하며 귀를 쭝긋 세웠다.
“······맙소사, 그래도 태자 전하 덕분에 우리가 살았구나. 주신께서 그분을 축복하시기를.”
“전하 덕분에요?”
아들인 데비 공자가 되물었다. 중년인은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생각해 봐라, 데비. 그분이 때맞춰 오시지 않았다면 저 가짜 성유물은 꼼짝없이 대중에 공개됐을 게야. 그러면 너는 또 그것을 받고 칠렐레팔렐레했겠지.”
“어머니, 칠렐레팔렐레까지는······.”
“네가 오늘 여기 도착한 순간부터 누구만 보고 있었는지,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다.”
“으음······.”
데비 공자가 벌게진 뺨을 하고서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그를 보필하던 하인들은 ‘도련님, 또 그러셨습니까?’ 하고 몰래 한숨지었다.
어, 나는 공자가 누구만 보고 있었는지 잘 모르겠는데······.
맥락상 데지레 소자작 이야기인 듯했다.
약혼 이야기가 나오기 전부터 저분을 좋아했던 모양이네.
“그나마 왕자께서 사전에 소란을 막아 주신 것을 감사히 여겨야지. 하마터면 우리 가문이 대대손손 웃음거리가 될 뻔했어.”
“예.”
“바카리 자작이 이를 알았을 것 같지는 않으나······. 혹시 모르니 그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야겠다. 설마 이쪽을 기만하려는 속셈이었다면 곤란해.”
앙드레 자작은 자신의 코트를 탁탁 털고서, 깃을 반듯하게 세웠다.
그녀의 하인이 서둘러 크라바트와 브로치의 모양을 다시 잡아주었다.
대화 내용을 들으면 들을수록 양심이 콕콕 찔렸다.
하지만 왕자님은 아무렇지 않은 태도로 카페 크리스를 머금을 뿐이었다.
진짜 왕족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내가 하는 꼴을 직접 보셨으면 뒤로 넘어가셨겠어······.
-끼으
그즈음, 데미가 나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겼다.
나는 황급히 눈을 들어 문밖을 살폈다. 그러고 보니 지금쯤이면 도착할 때가 되었다.
장내가 술렁술렁하거나 양가 사람들이 어딘가로 빠져나가는 기미가 보이면, 무조건 데려오기로 했으니까······.
“오, 바카리 단장까지 왔군요. 정말 큰일이 난 모양새입니다.”
강 건너 불구경하던 엘리자베트 경이 불쑥 말했다.
나는 너무 티 나게 목을 빼지 않으려고 기를 썼다. 사실은 그럴 필요도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에서 가장 강렬한 분홍색이 시야에 들어왔으니까.
가인 씨다!
“······점쟁이들의 단장까지 납셨군요, 세상에.”
“난 솔직히 저 공자님과는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아요.”
“쉿, 소리를 낮추세요.”
앙드레 쪽 사람들이 불쾌하게 수군거렸다.
하지만 나는 그따위 개소리에는 하나도 관심이 없었다.
중요한 건 가인 씨가 카미유 군과 베레니스 양을 데려왔다는 사실이다.
옆에서 무슨 소리로 부추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기까지 모셔왔다고!
“······누님. 무슨 일입니까?”
문밖에서 멀뚱히 서 있던 예언자가, 마침내 베레니스와 팔짱을 끼고 들어섰다.
둘은 몹시 건조하고 사무적인 표정이었다.
문간 너머의 가인 씨가 나를 향해 전매특허인 쌍 윙크를 보냈다.
하마터면 입술이 활짝 벌어질 뻔한 것을 황급히 말아 물었다.
데지레 소자작은 두 남녀를 보더니 고개를 까닥했다.
다시금 허리를 그쪽으로 숙이고, 부지런히 말소리를 주워들었다.
“어른들께서 말씀해주시지 않았어?”
“예.”
“우리가 약혼 예물로 제공하려던 성유물이 가품이래.”
“······예?”
카미유 군의 시선이 크게 흔들렸다.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얼굴이었다.
그야 당연하지, 그거 진품 맞으니까요!
“성유물에 축복을 내려주시던 예서 왕자님께서 몸소 확인하셨어. 아버지께서는 일단 내게 전권을 일임하셨고, 나는 지금 어른들의 말씀을 들어보는 중이야.”
“어떻게······. 하지만 누님께서 보물을 직접 확인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그 이후로는 줄곧 내가 지니고 있었고.”
“······.”
“너도 보았고. 장서실에서.”
“······.”
그러자 카미유 군이 입을 딱 다물었다. 데지레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는 이 난리통에도 홀로 무심한 낯빛이었는데, 보아하니 원래 감정 기복이 적은 성격인 듯했다.
목소리의 높낮이에도 큰 변화가 없었다.
나는 왕자님이 소리 없이 밀어주신 물잔을 꿀떡꿀떡 받아 마셨다.
그제야 심장이 찬물을 맞은 것처럼 침착해졌다. 후우······.
드디어 내 차례다.
“······왕자님. 혹시 오늘 오신 손님 중 보석 감정을 하는 분은 안 계실까요?”
천만다행히 평온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남자는 천진한 낯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보석 감정?”
나에게만 들리는―아니, 엘리자베트 경에게까지는 충분히 들릴 법한 속삭임이었다.
훌륭했다.
“예. 제가 듣기로, 제국의 보석은 워낙 귀하고 종류도 많아서 귀족분들이 감정사로 일하시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합니다.”
“음.”
“두 분 자작님이 존귀한 손님을 많이 부르셨으니, 혹시나 그분들 가운데 보석이나 보물을 볼 줄 아는 분이 계시지는 않겠습니까?”
“아아······.”
왕자님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연기력 대박이다―옆에 선 엘리자베트 경을 올려다보았다.
그녀가 즉시 목을 기울였다.
“보석 감정사를 찾으실 생각이십니까, 왕자님?”
됐다, 됐어!
“네. 저 때문에 커진 일이니, 두 집안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경께서 아시는 분이 있을까요?”
“왕자님께선 오늘 운이 좋으십니다.”
부근위대장이 경쾌하게 대답하고는 저쪽을 턱짓했다.
올리브색 머리칼이 나의 리본과 더불어 부드럽게 찰랑거렸다.
우리는 ‘아무것도 몰라요’하는 얼굴로 조르르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마침내―
“저기, 오늘 바카리 단장의 짝으로 참석한 영애가 보이십니까? 멘디 공작가의 차녀인 베레니스 공녀입니다.”
“네.”
나는 짜릿한 전율을 느끼며 볼살을 씰룩거렸다.
이제 진짜 다 왔다!
“그리고 저 아가씨의 조부이신 제무르 경이, 제국 사교계는 물론 제후국까지 널리 이름을 떨친 보석 감정사이십니다. 은퇴를 앞두셨지만 아직도 국내외에서 물밀듯이 의뢰가 들어온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저 댁 분들이······.”
“바카리 단장님, 송구하지만 함께 들어온 영애는 배웅해 주시지요. 작금의 사태는 우리 두 가문 사이의 일이 아닙니까?”
엘리자베트 경의 말끝이 누군가의 시비에 묻혔다.
하지만 그녀는 씩 웃고서 문장을 말끔히 이어붙였다.
“저 댁 자제들이 걸핏하면 할아버님의 명예를 건다니까요. 그만큼 맡은 일 하나는 확실하고 빈틈없이, 정확하게 해낸다는 뜻입니다.”
“아하.”
적당히 반응한 왕자님이 베레니스에게 미소를 보냈다.
발길을 돌리던 영애의 뺨은 군고구마처럼 발그속속하게 불타올랐다.
그사이 나는 과거의 어느 날을 회상하며 속으로만 감탄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공녀. 잘 해내실 수 있도록 저희가 힘껏 돕겠습니다. 여기까지 동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멘디 공작가의 영광입니다. 제가 힘내서······.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힘, 힘내겠습니다!’
그때의 그 파격적인 각오가, 그런 뜻이었구나.
벌써 몇 번째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꾹 억눌렀다.
*
밤이 깊었다.
-휘이이이······
선선한 호수 바람이, 기분 좋게 머리카락을 쓸고 지나갔다.
코끝으로는 익숙한 물 내음과 백합 향기가 번지는 듯했다.
나는 특실 발코니의 난간을 양손으로 꾹 쥐었다. 지금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예서 왕자님은 엘리자베트 경의 추천을 받아 조아킴 제무르 경을 보석 감정사로 지목했고, 양가는 ‘제무르’라는 성을 듣자마자 군말 없이 동의했다.
마침 무도회에 참석 중이던 노신사는 두 자작의 비밀스러운 의뢰를 기꺼이 받아들여 주셨다.
손녀인 베레니스가 직접 부탁한 일이니 거절하기가 어렵기도 했을 것이다.
다만 밤이 깊은 데다 감정에 필요한 도구가 없는지라, 노인장께서는 댁으로 사람을 보내 손가방을 가져오겠다고 하셨다.
당장은 조금 취하여 작업이 어렵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그리하여 그의 사위인 플로리앙 멘디 공작과 베레니스까지 모두, 이곳 선실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감정은 내일 아침 첫닭이 우는 대로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그동안 초록색 성유물 팔찌는, 왕자님의 스위트룸 거실 한복판에 상자째로 자리를 잡았다.
일종의 ‘중립 지대’에서 황실 근위대의 철통같은 보호를 받게 된 셈이다.
“······작전은 이제부터 시작이지.”
-끼허
비장하게 중얼거린 말에, 데미가 샤를마뉴처럼 앞발을 구르며 답해 주었다.
녀석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큰 힘이 되는 응원이었다.
나는 피식 웃고서 난간 너머를 내려다보았다.
무도회 손님 절반은, 기분 좋게 먹고 마신 뒤 백마법의 호수를 떠난 시점이었다.
대부분은 다음 야회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무리였다.
피에르에게 듣기로 황도 귀족들은 유달리 보양식을 좋아한다던데, 어쩌면 하룻밤 사이 여러 파티에 참석하고 싶어서 그렇게 챙겨 먹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하하하하!”
“근사하네요! 저도 ‘라 데뷔탕트’에서 여행 가방을 사려고 하는데······.”
나머지 손님들은 세 척의 커다란 배 위에서, 느릿한 박자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었다.
거나하게 취한 사람이 많다 보니 온갖 잡담이 질서 없이 여기저기로 흘러들었다.
우리가 탑승한 제1 모선은 가장 높은 하늘을 날고 있었고, 그로부터 오른쪽 대각선 밑에는 제2 모선이 자리했다.
그리고 제2 모선에서 왼쪽 대각선 아래로 쭉 내려가면, 제3 모선이 둥둥 떠 있는 모양새였다.
앙증맞은 조각배엔 빨갛고 파란 옷을 입은 사공들이 타고 있었는데, 그들은 이따금 허공에 노를 저으며 근사한 노랫가락을 뽑아내곤 했다.
모르긴 몰라도 앙드레 자작이 오페라 극장에서 데려온 배우들이 분명했다.
“창가로 와주세요, 나의 사랑이여. 오, 이곳으로 와서 나의 슬픔을······♬”
아름다운 노래였다. 꼭 해외 휴양지에 관광을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왕자님이 목욕하는 동안 잠깐의 휴식을 즐겼다.
그때였다.
“······전하, 마지막으로 세 명의 신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곳으로 오라 전할까요?”
흠칫. 발코니 바로 아래서, 조곤조곤한 다비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내리고야 말았다.
“······.”
“······.”
그리고 문제적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헉!”
재빨리 난간 밑으로 몸을 낮추었고, 이게 더 수상해 보인다는 사실을 1초 뒤에야 깨달았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