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615)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615화(615/920)
#615
대양을 향해 쏴라 (5)
“저 사람들······.”
가인 씨가 채찍을 그러쥐며 중얼거렸다.
본능적으로 불길한 예감이 드는 모양이었다. 나는 재빨리 대답했다.
“황궁에 살지 않는 제국 황족의 호위대입니다. 들어보신 적이 있을 텐데, 이름은 그랑 루주라고 합니다. 일반 병사가 있는 황실 근위대나 황도 수비대와 달리, 모든 구성원이 중급 이상의 기사이고······.”
“전부 기사라고요?”
“여간해서는 움직이지 않아.”
황태자가 낮게 덧붙였다. 즉시 모두의 눈길이 그에게 모여들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순식간에 모닥불을 거두고, 이제 그 불꽃을 눈동자에 담은 것처럼 시선을 활활 불태우고 있었다.
손아귀에 잡힌 혜검의 칼자루가 뽀드득 소리를 냈다.
로피는 냉큼 사내의 등으로 올라타더니 두 귀를 빳빳하게 세웠다. ‘야―오.’
“점조직처럼 흩어져 있고 우두머리가 따로 없으니, 평시에는 지키는 황족의 명을 듣지.”
“그런데 왜 여기에······.”
“황실의 꼭대기.”
“······.”
“저들의 지도자께서 칙령을 내린 모양이군.”
‘현장 사살이겠지.’ 사내가 칼자루 아래로 엄지를 움직이며 속삭였다.
이곳의 폐하께서 우리를 노리신다는 말에 심장이 철렁했다.
신검(神劍)의 새카만 검신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밀어닥치는 긴장감에 목울대가 위아래로 난동을 부렸다.
나는 황급히 몸을 숙여 그의 손목을 붙들었다. 태자가 내게 잡힌 부위를 빤히 노려보았다.
“잘 아시겠지만, 아무도 다치게 해선 안 됩니다. 태자님께서도 그럴 생각은 없으시잖아요.”
“이곳까지 급파된 것을 보면 상급일 텐데.”
‘쉽게는 안 죽는다’라는 뜻이었으나, 나는 냉큼 고개를 내저었다.
아까 형도 이야기해 주었지만 이곳은 이미 <퇴사했더니 이계 공녀>의 본래 궤도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더는 ‘원작’이라 부를 수 없는 원작이라고 해서, 이곳을 존중하는 일을 멈출 수는 없었다.
온갖 사고를 다 쳐놓고 인제 와서 무슨 존중이냐고 따져 묻는다면 할 말은 없는데······.
그래도 사람의 도리라는 게 있지 않은가. 우리가 진짜 악당도 아니고.
“가능하면 소란을 일으키지 말아야 합니다. 제 신탁도 적게 쓸수록 좋습니다. 아직 들키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들키지 않는 방향으로 가야 해요. 이곳의 크리스텔이나 태자님에게, 황실 어른들께 최대한 폐를 적게 끼치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
하도 손목을 째려보기에 슬쩍 손을 놓으며 소곤거렸다.
많이 불쾌했을까 싶었는데, 그는 별말 없이 묵묵히 검을 집어넣어 주었다.
내 움직임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주시하던 요한 경이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궁주님? 저자들은 우리를 청소하고 싶어 할 텐데요.”
포털 승강장을 청소하신 분의 표정은 너무나 산뜻해 보였다. 내 팔자야.
“······집이 깨끗하면 청소하려 들지 않겠죠. 아직은 먼지를 찾지 못한 것 같으니, 우리가 더욱 완벽히 숨으면 됩니다.”
“근데 여긴 진짜 황량해서······. 아니, 죄송해요. 제 말은. 자연환경은 정말 아름답고 멋진데 딱히 숨을 집이나 공간이 없지 않습니까? 오는 길에 동굴 같은 것도 안 보였고요. 그런 데 잘못 들어가면 오히려 위험해지기도 하고.”
가인 씨가 요한 경과 나를 번갈아 보며 속닥거렸다.
나는 뒤로 넘어가는 가가방을 앞으로 당기며 입술을 깨물었다.
실은 그게 제일 큰 문제였다.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수천 쌍은 달린 황궁, 수비대가 벅적벅적 돌아다니는 황도를 벗어난 것까지는 좋았는데 당장 우리에게는 그 이상의 계획이 없었다.
우리를 보며 한숨을 폭 내쉬는 스승님과 폐하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어쩜 그렇게 생각 없이 일을 치고 다니냐고 혼나도 할 말이······.
【이야, 그렇게 생각 없이 일을 치고 다니냐.】
아, 형은 아니지! 다른 사람 다 혼내도 형은 아니지!
“태자님, 정말 숨을 곳이 없겠습니까? 우리끼리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지낼 만한 장소요. 이곳 영주님이니 아시는 바가······.”
나는 급한 대로 다시 세드리크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한숨 같은 말을 뱉어냈다.
“······개방해야겠군.”
“네?”
돌아가면 뭐를 한다고?
“당장 떠오르는 곳은 없어. 영지 순찰 시에도 매번 노숙했으니.”
“아······.”
아이고. 나는 왕자님 앞에서 초조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돌아본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레아와 페리를 안아주고 있었다.
로브 안주머니에 숨은 성유물 팔찌가, 이따금 초록색 기운을 발그레 뿜어냈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율리터의 머리장식은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이 친구는 뭔가 좀 다른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에테르나 마나가 흘러나오는 것도 아니고, 딱히 불쾌하지도 않아서 일단은 잘 챙겨 두었다.
나는 주머니 위를 살살 쓸며 수풀 너머를 훔쳐보았다.
붉은 갑주를 걸친 기사들이 말을 탄 채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다행히 상황이 긴박한 느낌은 아니었고, 숲을 수색하다 여기까지 들어온 듯했다.
나는 짝꿍들 사이에 앉아 핑글핑글 머리를 굴렸다.
밤이 깊은 시각이건만 초긴장으로 잠이 싹 달아났다. 음, 음······.
“아, 오는 길에 깎인 절벽처럼 생긴 오르막이 있었습니다. 일단 불자리랑 이부자리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그 오르막 뒤쪽으로 몸을 숨겨서 자리를 피하고······.”
“되었네. 지금부터는 나만 따라오게.”
“예?”
임기응변으로 뭐라도 쥐어 짜내고 있는데, 이제껏 조용히 있던 슈 님이 불쑥 말씀하셨다.
그러자 왕자님과 애물단지들까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르신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피로해 보이셨는데, 주름진 눈가엔 그새 총기가 맺혀 있었다.
옆구리에 찰싹 붙은 염소 도토리는 흡사 리에스테르 군마처럼 용맹해 보였다.
“나는 이블린 여름별궁의 정식 사용인이고, 그중에서도 가장 이동 허가 범위가 넓은 사람이네. 일이 이리된 판에 노인네가 시침 떼고 있는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공연히 내숭 떨다가는 내 명줄이나 재촉하게 되겠지.”
“그 말씀은······.”
“가세. 크고 붉은 산도 감히 쫓아올 수 없는 바다로.”
노온이 얇은 숄을 두르고서 야무지게 지팡이를 짚으셨다. 처억!
우리는 동시에 어깨를 떨었다.
-메에엥
뜻밖의 지도자를 영접하는 순간이었다!
*
다음날 새벽.
이블린의 어느 해안 절벽 부근.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쏴아, 쏴아, 쏴아······
소중한 왕자 친구를 잃어버린 크리스텔은, 다소 가라앉은 기분으로 조랑말을 타고 있었다.
주인을 태운 꼬마 ‘죽창이’가 이따금 명랑한 울음으로 그녀를 웃게 해주었으나 묘한 감정은 기름 낀 그릇처럼 쉬이 씻기지 않았다.
멀리서 다가오는 파도 소리도 오늘만큼은 상쾌하게 들리지 않았다.
이블린으로 오자고 한 것도 저였고, 그전부터 왕자님을 직접 찾아보자고 친구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닌 것도 자신이었다.
그러니 수색할 때는 으쌰으쌰 힘을 내야 하는데, 최근 며칠은 걸핏하면 이렇게······.
-달그락······
“······.”
그래, 저놈의 깨진 목걸이가 엄청나게 신경 쓰였다.
크리스텔은 사내의 주머니에서 비죽 튀어나와 흔들리는 목걸이 줄을 열렬하게 바라보았다.
스스로가 너무 어리게 행동하고 있다고 자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린 몸을 빌려 쓰고 있으니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합리화했다.
대학 들어가고 서른까지는 성격이 크게 달라지지도 않았는데 새삼 어른스러울 건 또 뭔가 싶었다.
대판 싸우고 나서 제대로 화해하지도 못했지만, 어쨌든 아직은 황태자의 ‘피앙세’이기도 했다.
남자는 그녀의 눈길을 일찍이 눈치챘으면서도 고고한 태도로 모른 척하고 있었다.
그와 샤를마뉴의 새침한 옆얼굴을 보니 절로 욱하는 마음이 들었다.
“후······.”
세드리크 리에스테르가 저 목걸이의 주인을 찾고 있으며, 그자가 신관일 가능성이 크고, 어쩌면 태자에게는 몹시 중요한 인물이 될 수도 있다······. 는 사실까지는 이해했다.
문제의 벽보를 눈으로 보기도 했고 전해 들은 말도 있었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그······. 완벽히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무슨 개소리냐고 묻는다면 저도 깔끔히 설명할 자신은 없지만.
“······그대는 눈으로도 욕을 하는군.”
“아, 들렸습니까?”
“묻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
순백의 검으로 수풀을 헤치고 나아가던 황태자가 나른하게 말했다.
크리스텔은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
엘리자베트 경과 뒤엠 후작님과 앙드레 공자가 없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세 사람은 지금쯤, 절벽으로 이어지는 너른 숲을 꼼꼼히 살피고 있을 터였다.
“‘축복’이 있으시잖아요. 어째서 그 신관을 그렇게 찾으려고 하십니까?”
“······.”
“그 사람은 전하를 만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제가 그이라면 좀 무섭고 싫을 것 같은데.”
남자가 이번에는 대놓고 깊은숨을 내뱉었다.
그녀를 돌아보는 이마엔 ‘어이가 없군.’이란 글씨가 떡하니 쓰여 있었다.
“아니, 제가 무슨 다른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미 해결할 방법이 손안에 있는데 뭐 하러 그렇게 애를 쓰시는지 궁금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혹시 그······.”
“······.”
“이건 진짜 호기심, 그냥 호기심입니다. 다른 맘 있어서 여쭈는 게 아니고.”
“말해.”
“······종교적 반려를 구하시려고요?”
그 말에 태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코웃음 쳤다. 크리스텔은 정말 속으로만 생각했다.
‘새끼, 누님이 진지하게 묻는데 웃어?’
“궁금한 건 그게 전부인가?”
“뭐······. 그거랑 이제, 아침은 언제 드실지랑······. 샤를이 몇 살인지······? 아, 생일 선물로 받고 싶으신 건 아직도 생각 안 해보셨는지?”
“하.”
상대가 별 우스운 소리를 다 들었다는 듯 짧게 목을 울렸다.
그의 흑마도 뒤따라 콧숨을 흘렸다.
크리스텔은 약혼자의 잘난 면상 앞에 중지를 올리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새파랗게 어린 녀석이 이렇듯 세상의 모든 이치를 안다는 양 도도하게 굴 때마다, 그녀는 솔직히 뒷골이 당겼다.
하지만 아무리 재수 없어도 손가락은 곤란했다. 저런 반응이 원 투 데이도 아닌데 이자벨을 생각해서라도 인내해야 했다.
무엇보다 그는, 어지간하면 그녀가 묻는 말에 답을 해주는 편이었다.
저런 식으로 시간을 좀 끌어서 그렇지.
-다각, 다각, 다각······
“그자가 황가의 극비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어우, 그런 비하인드가? 마침내 열린 입술에 크리스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니 반드시 잡아서 심문하고 필요한 조처를 해야겠지. 종교적 반려는······.”
이어진 문장은 별로 중요한 내용도 아닌데, 괜히 두 귀가 쫑긋 섰다.
크리스텔은 죽창이의 고삐를 움켜쥔 채 커다란 눈망울로 약혼자를 올려보았다.
그의 입꼬리가 절벽을 따라 비스듬히 오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세드리크는 낡은 목걸이를 보란 듯이 꺼내 쥐며 그녀를 응시했다.
“······투기(妬忌)는 황후의 미덕이 아닐 텐데.”
“예?”
······뭐? 갑자기 뭔 소리임?
“그대는 더욱 수양해야겠군.”
“저요?”
공녀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자신을 가리켰다가, 마침내 태자의 말뜻을 파악하고는 순식간에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런 의미로 물은 말이 아니었는데 그런 의미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팍 상하고 열이 머리끝까지 쭉쭉 뻗쳤다.
야, 그게 뭔, 씨―!
“잠깐.”
“잠깐은 무슨 잠깐입니까. 꼭 제 차례에만 딴청 피우시는 건 알고 계십니까? 저 아직 시작도 안 했는,”
“저쪽에 뭔가 있군.”
태자가 삽시에 날카로워진 눈빛으로 절벽 끄트머리를 겨누었다.
동시에 바다를 담은 눈동자도 쌩하니 돌아갔다.
이곳은 긴급히 투입된 그랑 루주와 일선 제국군조차 함부로 밟을 수 없는 땅이었다.
절벽 전체가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라 철저한 검문 검색을 통과해야 했고, 별궁의 시종과 하인들도 감히 함부로 드나들지 못했다.
오직 세드리크 본인과 황제 폐하와 대모님만이······.
“······와. 저건 종탑입니까? 너무 예쁘게 생겼네요.”
“······.”
남자의 시선이 수풀 너머 하얀 종탑을 지나쳐, 그 뒤편의 건물로 향했다.
작고 빛바랜 신전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