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626)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626화(626/920)
#626
해방 (5)
-반짝, 반짝반짝······
“······.”
“공작님! 어서 움직이셔야 합니다······!”
‘콰콰콰쾅······!’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하는 공간 한편에서, 세드리크 리에스테르는 가만히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흐린 시야가 마구 번져 나갔으나 그의 눈빛은 오직 한곳에 못 박힌 채 움직이지 않았다.
안내자의 모습이 가느다란 실타래처럼 흩어지고, 그의 길고 검은 머리카락은 연보랏빛 바람 줄기가 되어 스러졌다.
어쩌면 그 최후의 흔적과 눈이 마주쳤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러자 삶의 마지막 숨을 내뱉는 순간까지도, 자신을 보며 미소 지었던 얼굴이 떠올랐다.
마침내 물거품을 일으키며 수면 위로 올라온 닻처럼.
아버지.
‘······세이디. 네 잘못은 하나도 없다.’
그는 이따금 아들에게 그런 말을 했다.
소년이 밖으로는 결코 힘든 티를 내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홀로 몰래 눈물을 훔치는 날이나, 억울함에 분을 삭이며 잠들지 못하던 밤에도 마찬가지였다.
알렉상드르는 홀연히 어린 아들을 찾아와 함께했다. 그리고 그의 신비로운 아홉 마법식처럼 빛을 내며 머물렀다.
남자는 보물 같은 아이를 품에 안고서 가만가만 속삭였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그러니 자책하지 말아다오.’
-반짝반짝, 반짝반짝······
“······.”
-쿠구구궁!
“공작님! 세드리크!”
연보라색으로 빛나는 작은 조각들이, 방주의 신력을 타고 어딘가로 사라지고 있었다.
이는 소실(消失)보다는 흡수에 가까운 작용으로 보였다.
그것은 언뜻 곱게 부서진 사금파리를 닮았고, 리에스테르 황궁 내벽을 장식한 금조개 껍데기의 자취 같기도 했다.
하지만 정답은 그중 어느 것도 아니었다.
세드리크는 신성한 주신의 달에 맹세코 저것을 본 적이 있었다.
‘나는 괜찮아. 네게 미안하구나.’
‘태의, 당장 태의를 부르겠습니다. 조금만!’
영원히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과거의 파편들이, 그의 머릿속 어둠을 헤치고서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다.
갈기갈기 찢어졌던 핏빛 화포(畫布)를 꿰매며, 아스라이 흩어졌던 소리를 불러들이고 있었다.
까맣게 지워져 있던 배경을 다시 지어서, 하얗게 날아가 있던 다음 장면을 새겨 넣는다.
‘-지이이잉!’
그날의 풍경과 꼭꼭 숨은 이야기를, 거침없이 한 붓으로 그려나간다.
기억은 그렇게 복원된다.
‘-쏴아아아······!’
꽃잎처럼 겹쳐진 아홉 개의 마법식이, 차가운 돌바닥 위에서 주인의 피를 삼키며 마지막으로 발광하고 있었다.
이는 처절하고도 애타는 최후의 몸부림이었다.
또한 열한 살의 황자는 어떠한 마법서에서도 본 적이 없는 복잡하고 치열한 유도식(誘導式)이기도 했다.
어린 세드리크는 초점 없는 눈으로 황급히 아버지의 몸을 더듬었다.
하지만 피가 너무 많았다. 아버지의 코에서도, 귀에서도, 입술 틈에서도······. 새빨간 혈액이 쏟아지고 있었다.
아이의 작은 손으로는 결코 막아낼 수 없는 재앙이었다.
‘이리 상처 주려던 게 아니었는데······. 착한 우리 아들, 윽.’
‘아아······. 아버지. 아버지······. 눈 좀 떠보세요······.’
여린 신음과 함께, 알렉상드르 리에스테르는 의식을 잃었다.
붉은 마법식이 거짓말처럼 소멸하고, 푸른 눈동자는 그대로 사라져 아이를 담아내지 못했다.
세드리크는 시뻘겋게 물든 손아귀로 그의 눈꺼풀이며 뺨을 짚었다.
여물지 않은 지문과 절절 끓는 눈물이 아버지의 얼굴을 흠뻑 적셨다.
뜨거운 숨이 터져 나올 때마다 조그만 등이 크게 출렁였다. 울렁거리는 머릿속에는 어떠한 생각도, 어떠한 명령도 맺히지 않았다.
무서웠다. 하지만 아이는 행동해야 했다.
‘거기 누구 없느냐! 다비드! 뱅자맹!’
‘주신 맙소사, 황자 전하!’
‘빨리! 제발! 도와줘―!’
목청이 터져라 악을 쓰는 소년의 절규에, 멀찍이서 기다리고 있던 시종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다비드 카퓌송은 두 사람의 모습을 발견한 시점부터 이미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남자는 피투성이가 된 윗전을 보며 단 한 문장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벌벌 떨리는 양팔로 대마법사의 축 늘어진 몸을 부축하고, 그의 고개나 다리가 꺾일 때마다 자신의 몸이 부서지는 것처럼 아파했다.
기어이 그를 업고는, 구두가 벗겨지는 것도 모른 채 내리막길을 내달렸다.
세드리크는 그날 자신의 마법 지팡이를 영영 잃어버렸다.
그리고 다시는 찾지 못했다.
‘흑, 으윽, 흑······!’
‘조금만 버텨 주십시오, 국서 전하! 곧장 별궁으로 모시겠습니다!’
알렉상드르가 마법식을 전개한 곳은, 이블린 북단에 자리한 절벽의 백색 종탑 내부였다.
‘키야아아악······!’ 꼭대기에 걸린 신물이 고통스레 날갯짓할 때마다 비명 같은 풍성(風聲)이 공기를 찢어발겼다.
연보라의 섬광은 흡사 죽음을 가리키는 등대처럼 번쩍거렸다.
귀한 보물을 모신 탑이라, 황실 근위대는 물론이고 황족을 지척에서 보필하는 시종조차 허락 없이는 접근할 수 없는 곳이었다.
황자는 눈물과 피로 범벅이 되어 다비드의 뒤를 쫓았다. 피투성이 동료를 포착한 다른 사용인은 사색이 되어 여름별궁으로 달음박질쳤다.
국서를 모시는 샤르팡티에 궁의 시종, 뱅자맹 지라르댕이었다.
‘전하! 오렐리 전하! 나탈리, 어서 전하를 불러!’
‘오, 주신이시여! 로라 님―!’
‘대문을 활짝 열어라! 어서!’
고즈넉하고 아름다웠던 별궁의 밤. 비극은 예언도 없이 들이닥쳤다.
황제의 시종장 로라 멘디는, 혼절하지 않으려고 팔뚝에 생채기를 내어가며 버텼다.
황제를 모시고 북행한 태의와 치유 신관들이 몇 시간이고 국서의 곁에서 그를 살려내고자 애썼다.
애간장이 끊어지는 마음과 눈물 대신 땀을 쏟는 온몸으로, 제국의 애서(愛壻)를 지켜내고자 발악하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세드리크는 알 수 있었다.
매연이 낀 것처럼 뿌옇고 흐린 머리로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반짝, 반짝반짝······’
이제 두 번 다시는 아버지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전하, 일단 방으로 돌아가시지요. 목욕 시중을 들어드리겠습니다.’
‘······.’
상처투성이 다비드가 쉰 목소리로 속삭였으나, 소년은 멍한 눈빛으로 복도 너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깨진 유리처럼 작게 빛나는 존재들이 아버지의 방문을 넘어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자신뿐인 듯했다.
피로 물든 수건과 쟁반을 들고나오는 이들은 물론, 자신의 어깨를 감싸고 무릎 꿇은 시종 또한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벌컥!
아이가 그것의 정체를 파악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방문이 열리며 나이 든 태의와 치유 신관이 바쁘게 걸어 나온 것이다.
‘······어찌 되었느냐.’
그사이 시체처럼 해쓱해진 프레데리크가 물었다.
의원은 황제의 발치에 납작 엎드려 울음을 터뜨렸다.
‘폐하, 신을 죽여주십시오······. 국서 전하께서는 오늘 새벽을 넘기지 못하실 것입니다.’
‘······.’
‘전하의 그릇이 산산이 조각났습니다, 폐하.’
황제의 붉은 눈동자가 망가진 인형 부품처럼 굴렀다.
신관은 바들거리는 양손을 꼭 쥔 채로 심장을 짜내듯이 말을 이었다.
‘저희로서는······. 당대의 의술과 치료술로는 언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타격을 받으셨습니다. 내상이 중대하신 것과 별개로, 이를 강제로 회복시킨다고 하더라도 이미 영혼의 유실(遺失)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결국은 우리를 떠나겠지.’
프레데리크가 중얼거렸다. 그 순간 황자는 희미하게나마 깨달았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의 눈앞을 은하수처럼 흘러가는 저것은, 어쩌면 뿔뿔이 흩어진 아버지의 조각일지도 모르겠다고.
아이는 텅 빈 낯으로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다비드의 시선이 그를 따라 움직였다.
‘-사르르르······’
그러나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일면 당연한 일이었다.
세드리크는 이대로 자신이 미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늪에 잠긴 듯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방법을.’
‘······.’
‘······너희는, 국서의 고통을 덜어줄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자 신관이 그녀 앞에 넙죽 엎드렸다. 마른 어깨가 끊임없이 바들거렸다.
‘성심을 다하여······. 귀인께서 가시는 길을 보필하겠습니다.’
······바로 그것이, 비어 있던 낱장의 진짜 이야기였다.
-빤짝빤짝, 빤짝······
이후의 기억은 대모님의 피눈물과 저주로 이어진다.
겁에 질린 사제들이 엉엉 울며 그녀를 방에서 억지로 끌어냈고, 황제는 자신의 또 다른 반려를 품에 가둔 채 홀로 버텨야만 했다.
그녀는 제국의 모든 권위를 한 몸에 지니고 있었으나, 오직 무너질 자유만은 얻지 못하였으므로.
-휘우우우······
“아버지의 그릇 조각을······.”
-콰콰콰쾅······!
네가 품고 있었어. 황태자는 소리 없이 입술만 달싹거렸다.
대륙의 모든 생명은, 숨이 다하는 그 날 주신의 품으로 돌아간다고 배웠다.
그녀는 지친 영혼을 거두어 자신의 창백한 뜰에 내려두고서, 영원토록 돌보아 준다고 했다.
망자에게 더는 어떠한 고난과 아픔도 없도록. 이제 설움은 잊고 내내 행복하도록.
태자는 주신을 증오하면서도, 오랫동안 그녀의 자비를 바랐다. 비참했다.
-휘이이잉······!
“세드리크! 제발 정신 차려! 우린 돌아가야 해!”
그런데 아버지의 영혼은 세계를 넘어 뿔뿔이 흩어졌다.
차마 주신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여 깨지고 말았으나, 마침내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진실로 자유로워졌다.
이 방주가 신의 눈을 피하여 숨긴 조각은 그중 몇 개나 될까.
스스로를 봉인하고 잠들면서까지 간직해낸 아버지의 일부는, 지금 이곳에 얼마나 녹아 있는 것일까.
세드리크는 끊임없는 상념에 빠져들었다. 일순 눈앞이 아뜩해지며 기진한 몸뚱이를 지탱하던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렇다면 자신은······.
-찰싹!
“야! 그만 울고 누나 봐!”
흠칫! 사내는 얼얼한 감각을 느끼며 눈을 깜빡였다.
고개가 한참이나 아래로 훅 떨어졌다.
부리부리한 물빛 눈망울이 자신을 사납게 쏘아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갈래갈래 흩어지던 시야가 순식간에 한 방울로 또렷이 얼어붙었다.
예고 없이 얻어맞은 두 뺨은 차게 식으며 이성의 끈을 붙들었다.
“이놈 자식!”
‘함가인’이었다.
“너 여기서만 울 거 아니잖아! 나가서 또 울어도 돼. 울고 싶으면 아무 때나 울어도 돼! 그러니까 지금은 움직여!”
“······.”
그녀가 분홍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아버지가 지켜보고 계시잖아! 그럼 씩씩하게 잘 컸다고 야무진 모습 보여드려야지. 누나 말 맞아, 틀려!”
-쩌저저적―!
기어코 바닥이 검게 갈라지고, 천장을 이루던 장막은 녹은 얼음처럼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세드리크는 가인의 손목을 잡아 내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버지의 책걸상이며 동화책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세드리크! 내 손 잡아!”
요한 헤인스를 부축한 쥘리에트 궁주가, 발개진 눈을 하고서 자신에게 한쪽 팔을 뻗고 있었다.
태자는 본능적으로 그의 손을 맞잡았다.
대마법사의 영혼 조각들은 어느새 멀리 흘러가 보이지 않았다.
-탁!
동시에 궁주의 발밑이 쩍 하고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큿!”
“으아아악!”
“어어억! 떨어진다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