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629)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629화(629/920)
#629
색깔 맞추기 (3)
나는 즉시 마른세수를 하며 사과했다.
“······아니야. 소리 질러서 미안. 너무 당황해서 말이 세게 나왔어.”
이래서는 안 된다.
당장 형에게 화를 낸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실은 형도 형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조금 원망스럽기는 하지만 여기서 감정적으로 대처한다고 뭐가 더 나아질 판은 아니었다.
그러자 상태창이 씰룩씰룩하더니 어깨를 으쓱했다(이상한 표현이지만 정말 그런 느낌으로 움직였다).
【뭐, 네가 미안할 일은 아니지. 사실 나 같으면 시원하게 욕 한 판 했을 거다.】
“그걸 아는 사람이······.”
다시 한마디 하려다가, 한숨을 푹 쉬고는 신전 바깥을 바라보았다.
이러는 나도 형한테 잘못한 게 많았다.
그러니 일단은, 당장 코앞에 펼쳐진 새로운 국면부터 해결해야 했다.
우리가 퀘스트 달성 보상으로 ‘무지개다리’를 받은 직후, 비렴의 방주는 마침내 손아귀를 느슨하게 하여 일행을 놓아주었다.
여전히 집게다리들이 창살처럼 박혀 있기는 했으나 신물은 우리가 자유롭게 안팎을 드나들도록 했다.
돌바닥이 축축하고 질척하긴 했지만, 태자가 깨끗하게 말려 주어서 지금은 아주 뽀송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고 하니······.
-톡톡
“어, 구구 왔어? 아까는 고생 많이 했어. 정말 고마워.”
-톡!
신물 ‘화성의 혜검’과 ‘사룡의 심장’.
거기에 불 속성 신수인 로피까지 대활약하면서, 신전 바닥은 온통 물바다로 변했다.
어째서 잿더미가 아니라 물바다인가 하면―그들의 뜨거운 불로부터 모두를 지키고자, 가인 씨와 티테와 ‘빙잠의 보관’이 내부에 어마어마한 물의 장벽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덕분에 누구도 화상을 입거나 다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방주에게 삼켜지고 난 뒤로 실내는 한동안 무진장 습했다고 한다.
그렇게 부서지고, 무너지고, 불에 타고, 물에 젖고, 신력으로 건조된 실내는 이제 거의 전쟁터나 다름없어 보였다.
그리고 기어이 무지개다리가 놓인 이블린의 백악 절벽으로 말할 것 같으면······.
-콰아아아아······!
-우르르릉!
“······.”
이곳은, 계속해서 옅게 진동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어떠한 색도 섞이지 않은 순백의 빛기둥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꽂힌 채, 끊임없이 신성한 기운을 발산하는 중이었다.
다행히 다리의 위치는 종탑과 신전 사이여서, 추가로 파괴된 건물이나 상처 입은 사람은 없었다.
내내 컴컴하던 심야의 해안은 이것 때문에 아주 대낮처럼 밝아진 상태였다.
당연히 나도 양심이란 게 있는 사람이고, 왕자님을 훔칠 때부터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을 각오하기는 했다.
하지만 설마하니 이렇게―
-쏴아아아아······!
“으음.”
이렇게 엄청난 것이 소환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무지개다리는 크기 자체가 압도적이지는 않았으나(지름이 십 미터 정도) 그 원천이 너무나도 아득해 보였다.
요컨대 날씨만 좋다면 페네티안 국경에서도 관측할 수 있을 만큼 선명하고 찬란한 기현상이었다.
온 제국을 발칵 뒤집어놓는 것도 이미 충분히 무서운 일인데 말이다.
물론 엄밀히 따지자면 왕자님은 신국 사람이니, 이분을 납치한 게 이미 대륙을 뒤흔들 만한 대사건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래도······.
-쿠구구궁······!
“역시 저건 좀······.”
뉘앙스라는 게 있지 않은가.
그냥 왕자님이 사라지신 것하고, 왕자님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성서에도 기록되지 않은 이적’이 일어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처음부터 이런 걸 생각하고 있었어? 형의 상상대로 구현된 건가?”
내가 넋을 놓고 중얼거렸다. 만약 그렇다면 최고의 작가 인정합니다······.
【음, 일단 내가 그동안 확인한 걸 너한테 설명해 줘야겠다.】
【그리고 일이 초장부터 상당히 꼬였다는 점도.】
【플러스로······. 이런 웹 소설의 법칙도?】
상태창이 덩달아 차분한 빛으로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와중에 고해소에서 나온 왕자님은 나에게 군고구마며 구운 오징어 다리 같은 것을 쥐여 주었다.
깜짝 놀라서 이런 것도 드시느냐고 물으니, 크리스텔 공녀에게 배웠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실 신국 요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고, 오히려 이런 이국적인 주전부리가 입맛에 맞는다는 새로운 정보까지 얻었다.
품위 있게 오물거리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라 나도 그냥 웃고 말았다.
【······야, 내가 낳았지만 진짜 너랑 닮았다.】
하나도 안 닮았는데 뭐라는 거람.
그리고 이제야 말하는 건데, 형은 ‘낳은 사람’보단 ‘조산사(助産師)’에 가까운 존재 아니야?
【그렇긴 한데, 초고의 저 녀석은 지금보다 어둡고 음울한 캐릭터였어. 그때는 훨씬 다루기 힘들었지. 그런 부분은 변주가 필요할 것 같다는 피드백도 있어서, 내가 임의로 네 성격을 살짝 섞었거든.】
······.
【이것도 미안하다.】
······됐어, 괜찮아. 형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을 테니까.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제가 너무 말이 많았나요?”
아차차.
“아뇨, 아뇨. 그냥 왕자님이 보기 좋아서요. 잘 먹겠습니다!”
저희 형은 신경 쓰지 마세요. 물론 안 보이시겠지만요.
노릇노릇 익은 고구마를 받아들고서, 나는 부지런히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그러자 혼란스럽던 머릿속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참 신기하지. 왕자님의 이런 면을 볼 때면, 아무리 사태가 막장으로 치닫고 있어도 이상하게 후회가 되지 않았다.
그날, 죽음을 피해 다니는 삶에 지쳐 모든 생기를 잃어버린 왕자님에게 손을 내민 것이······.
‘감히 제가, 존귀하신 분께 제안 하나를 드리고자 합니다.’
‘네, 말씀하세요.’
‘저희랑 같이, 무지개를 찾으러 가시겠습니까?’
조금도 후회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시간을 돌릴 수 있다고 해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군고구마와 구운 오징어를 좋아하시는 분이니, 앞으로는 달고나, 풀빵, 어묵과 물떡도 드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뒤를 이었다.
내가 아는 크리스텔이라면 언젠가는 반드시 해낼 테니까.
왕자님이 오래도록 곁에만 있어 준다면, 그녀는 정말로 전부 만들어낼 사람이니까.
“예서 씨, 조금 전에······.”
“네?”
“조금 전에 해주신 말씀, 고마웠습니다. 잊지 않을 겁니다.”
“······아.”
그사이 고구마 하나를 맛있게 해치우고 두 번째 고구마를 까는데, 왕자님이 예고도 없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어쩐지 쑥스러워하는 낯빛이라 나까지 볼이 확 달아올랐다.
나는 둘째 고구마를 한입에 절반 넘게 삭제하고서―“오, 대단하네요.”―전속력으로 우물거렸다.
내가 그의 행복을 바란다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던 것을, 당사자는 아주 인상 깊게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러니까 우리가 마지막 무지개를 획득할 수 있었겠지만!
엄청 민망하네!
“그럼, 저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편히 불러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쉬십시오, 왕자님.”
물도 없이 고구마를 꿀떡꿀떡 삼키고, 손등으로 뺨을 식히며 인사했다.
왕자님의 여린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는데 정현서가 다시 커서를 움직였다.
이따금 레아와 페리가 내 가가방을 톡톡 치며 장난을 걸었다.
【잘 들어.】
【······우선 나는, 너희가 앞으로 어떠한 사고도 일으키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무지개 찾기 퀘스트를 만들었다.】
······응.
【그때까지는 제법 그럴듯한 계획이었지. 실제로 너희는 아직 주인공들의 주요한 흐름에 엮이지 않은 시점이었고, 신물은 이미 다섯 개나 있었으니까.】
으흠.
【그러니까 근본적으로 잘못한 사람은, 누구와의 상의도 없이 멋대로 왕자를 부추기고 훔쳐내기까지 한 네 일행이거든. 그런데 이 상황에서 형도 할 말은 없는 게.】
그건 맞지······. 음?
【······나는 그 보라색 칸을 처음부터 비워놓고 시작했어.】
······뭐?
“뭐!”
하마터면 큰 소리를, 아니―정말로 황당해서 큰 소리를 냈다!
뒤통수가 뎅뎅 울리고 하마터면 혀를 왕창 깨물 뻔했다.
멀찍이서 데미에게 물을 먹이던 요한 경이 나를 보며 다가왔다.
나는 재빨리 오징어 다리를 휘저어 보였다.
“궁주님?”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경은 더 누워서 쉬셔야 합니다.”
“꽤 피로하기는 하지만, 아직은 잠들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예?”
“‘추기경인 그대가 지켜주세요.’”
“······.”
“방주에서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어쩌면 꿈속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남자가 은은하게 미소하며 답했다.
그것은 아주 예전에도 니키가 그에게 했던 부탁이었다.
나는 뭐라고 설득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요한 경과 함께 집게다리를 등지고 앉았다.
오징어 다리 몇 개를 내밀자 그는 목을 갸웃하면서도 의심 없이 받아먹었다.
불도마뱀들이 추기경의 무릎을 타고 올라 냉큼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제법 친해 보이네, 구구랑 요한 경.
【······.】
나 아직 안 까먹었다. 아까 보라색 칸을 비워 뒀다는 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당장은 써먹을 설정이 없었어. 그래서 공백으로 둔 거지.】
“그게, 크흠.”
그게 무슨 소리냐고! 나는 최대한 눈을 무섭게 치떴다.
상태창이 우거지상을 하고서(진짜로) 계속 설명했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잘 생각해 봐라. 보라색이라고 하면 보통은 비렴의 방주나 예서 페네티안을 후보로 두겠지. 너희라면 더더욱 그럴 거고. 하지만 나는 그 둘 중 무엇도 쓸 생각이 없었어. 이 동네 신물을 건드리든, 왕자를 건드리든, 좌우간 너희는 너무 큰 사고에 휘말리게 될 테니까. 그럼 어느 세월에 집으로 돌아가겠냐. 응?】
······그건 맞는 말이었다. 진실로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고 당장 떠오르는 다른 성유물은 없으니, 일단 빈칸으로 두고 밀어붙인 거지. 설정집을 전부 뒤지기에는 시간도 부족하고. 여차하면 중간에 힌트를 줘도 되는 거니까.】
“근데 형, 실제로 중간에 우리한테 힌트를 줬잖아. ‘언제나 당신의 숨결을 지키던 존재입니다.’ 형이 그렇게 썼잖아.”
내가 오징어 다리를 질겅거리며 말했다.
어디선가 정현서의 장탄식이 들리는 듯했다.
【그게 바로 내 잘못이라는 거다.】
【내가 초장에 보라색 무지개를 비워놓고 시작했더니, 너는 그 칸을 알아서 채우기 시작했어.】
【무슨 말인지 알겠냐, 정예?】
흡, 나는 추잡스럽게도 침을 흘릴 뻔했다.
뭐라고?
【······유령 작가라는 놈이 별수 없이 설정에 구멍을 내놨더니, 너희가 어느 순간부터 그걸 메꾸고 있더란 말이다. 제발 신물이나 왕자에게는 가지 않기를 바라면서 땜빵으로 만들어 놓은 걸, 너희의 행동과 믿음과 감정이 대신 메우기 시작했다고. 내가 절대 바라지 않던 방향으로 알아서 수레바퀴를 굴리면서.】
······어?
【······하. 그게 소설이라는 거겠지. 크게 보면 인생이 다 그렇고.】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아니, 잠깐만. 그러니까······.
“왕자님을 무지개로 만든 게 우리라는 소리야?”
내가 지금 제대로 해석한 거야?
맞아?
【정확히는 네가 그렇게 만든 거지. 어쨌든 여기서 가장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너잖아.】
무슨―
【내가 뒤늦게 무지개 설정을 수정하려고 해봤지만, 이미 입력은 안 되는 상황이었다. 아마 ‘개연성’에 맞지 않는 짓이었겠지. 노선은 진작 달라졌으니까. 너희가 벌써 분위기를 굳혀 가고 있었으니까.】
······.
【······자연스레 네게 주는 실마리도 모호해질 수밖에 없었어. 이블린에 도착한 뒤에는, 이야기 흐름에 따라서 방주가 무지개로 선택될 수도 있는 판국이었고. 나는 어느 쪽으로도 해석 가능한 글을 즉석에서 지어내야 했고.】
【후우. 그리고 또 하나가 있는데······.】
현서창이 한참이나 망설였다.
나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초조하게 오징어만 잘근거렸다.
그러자 요한 경이 살짝 꽁다리를 잡으며 그러다가는 턱이 다칠 것이라 경고했다.
【네가 아까 읽은 상세 설명. 그거 전부 내가 쓴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