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63)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63화(63/920)
#063 즐기시게 놔둬 (4)
기어코 야단이 튀어나왔다.
“너, 불장난하면 밤에 오줌 싸는 거 몰라?”
“······뭐?”
‘세이디’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진짜 어이없는 건 내 쪽이었다.
할 말이 있으면 낮에 정정당당하게 문으로 들어올 것이지, 밤에 잠입해서 실내에 불을 지르는 게 가당키나 한가?
도대체 어디서 배워먹은 예의냐, 네가 그러고도 황자야?
“도움이 필요하면 내 방에 오라고 했지, 내 방이 네 방이라고는 안 했다.”
-똑똑
그때 다급한 노크 소리가 났다. 나는 빠르게 세이디를 향해 눈짓했다.
입 모양도 크게 움직였다.
‘침대 밑에 숨어.’
소년은 눈썹 끝을 살짝 올릴 뿐 미동도 없었다.
분명히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을 텐데, 저게!
“왕자님? 괜찮으세요?”
문밖에서 걱정 가득한 가나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 불을 끄면서 큰소리 낸 걸 어쩌다 들은 모양이었다.
나가기 전까지도 내가 더위에 못 잘까 봐 전전긍긍했으니, 그 아이 성격에 침실 주변을 맴돈 것도 당연했다.
“어! 괜찮아. 그냥······.”
“제가 들어갈까요?”
가나엘이 물었다. 발각되기 직전이었다.
나는 데미를 바닥에 내려놓고, 더 잴 것도 없이 후다닥 세이디에게 다가갔다.
아이의 눈동자가 실시간으로 커지는 모습이 보였다.
귀하신 몸이라 침대 밑으로는 절대 못 들어가겠다는데, 직접 숨겨드려야지 별 수 있나.
“잠깐만 참아, 읏차.”
나는 아이를 번쩍 들어올렸다. 생각보다 가벼웠다.
은서는 요만할 때 더 무거웠지 싶은데.
“감히,”
“쉿!”
꼬맹이를 다그치며 후닥닥 발코니로 발을 옮겼다.
성격 더러운 소년은 그 와중에도 내 몸에 발길질을 했다.
힘이 제법 세서 멍이 들 것 같았다. 내 팔자야.
-달칵
문고리가 돌아가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발코니 커튼을 치며 다급히 외쳤다.
“안 들어와도 돼, 가나엘! 뭐냐, 모기가 있어서!”
“모기요? 세상에. 잡아드릴까요?”
“아냐, 잡았어. 방금 내가 딱 잡았어.”
그렇게 대답하며 시선을 돌리자, 어린 주황색 눈이 나를 태워죽일 듯 쏘아보았다.
내가 말해놓고도 괜찮은 비유 같았다.
늘 멋대로 들어와선 에테르를 빨아 가는데, 이게 모기랑 다를 건 또 뭔가 싶었다.
물론 내가 자발적으로 주긴 했지만.
“가서 쉬어, 가나엘. 번거롭게 해서 미안.”
“혹시 또 악몽을 꾸셨나 했어요.”
“그런 거 아니야. 걱정하지 마.”
‘악몽’이라는 단어에 세이디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이 녀석은 황궁에 맴도는 내 에테르 덕에 줄곧 숙면했을 테니, 설마 내가 그런 꿈을 꿀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터였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불러주세요, 왕자님.”
“그럴게. 고마워.”
나는 그러고도 1분쯤 숨죽인 채 가만히 섰다.
가나엘이 돌아갔겠지 싶을 무렵 고개를 들자, 어느새 발질을 멈춘 아이가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안 그래도 더운데 혼자 흥분하니 몸에서 뜨끈뜨끈 열이 났다.
나는 길게 숨을 뱉으며 세이디를 발코니 의자에 살살 내려주었다.
어느 틈에 따라 나온 데미가 내 발목을 꼬리로 감았다.
“들키면 어쩌려고 배짱을 부려.”
“왜 악몽을 꾸지?”
소년이 딴소리를 했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신관은 스스로에게 치유력을 못 쓰잖아. 그거랑 비슷한 거야.”
“······.”
내가 입궁한 뒤로, 주변 사람들은 전부 좋은 꿈을 꾸며 푹 잔다고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효과는 내겐 적용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매일 나쁜 꿈을 꾸는 건 아니었다.
그냥 보통 사람과 비슷한 정도였는데, 하루는 자다가 가위눌려서 고함을 지르는 바람에 뱅자맹과 가나엘이 잠옷 바람으로 달려온 적이 있었다.
민망한 경험이었다.
“너야말로 어떻게 된 거야? 왜······. 에테르가 부족한 건데?”
나는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혜검이 있는데 어쩌다 몸이 작아졌냐’고는 절대 물을 수 없었다.
“본 적이 있는 필체야.”
“계속 말 돌릴래? 아니, 그건 또 언제 가져갔어.”
식겁했다. 세이디가 어느새 손에 ‘수상한 편지’를 들고 있었다.
빼앗으려 했으나 내 손이 너무 느렸다.
아이는 품 안에 종이를 감추고 순식간에 발코니 난간 위로 뛰어올랐다. 젠장!
“‘로스나’는 그대의 중간 이름이겠군.”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런 추측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100% 확신할 순 없는 상황이었고, 설령 그게 맞는다 해도 황자인 저 녀석에게 알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순간 세이디의 두 눈이 어두워졌다.
“‘위실’이라는 자와 내통하는 건가?”
“하겠냐.”
후딱 대답하곤 마른침을 삼켰다.
눈앞의 아이는 내가 가끔 돌봐주던 꼬맹이인 동시에, 세드리크 황자였다.
괜한 의심을 사서 좋을 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식은땀이 맺힌 소년의 이마를 잠시간 바라보다가 성소를 전개했다.
-우웅!
발코니가 달빛보다 밝은 황금색 광채로 찬란하게 물들었다.
데미는 ‘끼이!’하며 서클의 문양 위로 이름 모를 꽃들을 피워냈다.
“만약 신국과 연락을 취하고 있는 거라면,”
[그런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 없어.]내가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갑작스러운 울림에 세이디는 조금 놀란 기색이었다.
[난 신국에서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야. 여기 와서도 죽을 뻔했고. 조용히 살아도 위험한 마당에 무모한 짓은 안 해.]“······.”
[맹세한다.]-사아아아······
신탁으로써 약속하자, 일순 성소가 환하게 밝아지며 은백색에 가까운 에테르를 쏟아냈다.
나는 머리부터 부어지는 에테르를 샤워하듯 고스란히 맞고 서 있었다.
시야가 하얗게 물들 만큼 강렬한 빛살과, 포근한 온기가 내 몸을 한 번 끌어안듯 감싸고 물러갔다.
잠깐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니, 소년이 아슬아슬하게 선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게 언약을 하는군.”
아이가 입을 열었다.
어딘가 만족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즐거운 것 같기도 한 무표정이었다. 불길한데.
“황실의 ‘사생아’에게 증명할 게 있나?”
제길······. 나는 인상을 있는 대로 구겼다.
어째 그 소리를 안 한다 싶었는데, 결국 내 흑역사를 들추는 발언에 귀 끝이 절로 홧홧해졌다.
나는 녀석과 데미에게 전해주던 에테르를 뚝 끊고 잽싸게 성소를 해제했다.
꼭 형광등을 끈 것처럼 발코니가 탁, 하고 어두워졌다.
-끼이잉
“미안, 미안. 이제 자러 가자.”
나는 보채는 데미를 품에 안아들었다. 레서판다가 까만 앞발로 내 어깨를 꾹 쥐었다.
“너도 이상한 소리 말고 들어가라.”
엄한 축객에도 소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와, 백이면 백 똑같이 행동하는데 그때는 왜 아들이라고 철썩 같이 믿은 거지.
근데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고 상식적이지 않냐?
나는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상념을 모두 쫓기 위해 침실로 걸음을 돌렸다.
돌이켜 봤자 심란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
“그대가 먼저 굴복하게 될 거야.”
쪼끄만 게 내 뒤통수에 대고 그런 말을 했다. 나는 욱해서 빠르게 난간을 돌아보았다.
“이······.”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하얀 월광과 까만 어둠, 그리고 서서히 불어오는 열풍만이 남아 있을 따름이었다.
안 그래도 더운데 성질나서 더 덥네.
*
“정말 잘 판단하셨습니다. 피서라니,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죽겠다.
“후작······. 죄송한데 소리 조금만 낮춰주십시오.”
이러다간 전쟁이 아니라 더위로 죽어서 로그아웃할 판이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왕자님, 폐하의 집무실은 이쪽입니다. 그쪽은 창문이라 퐁당, 하고 추락하시게 될 겁니다.”
나는 어지러운 시야를 바로잡으려고 애쓰며 비틀거렸다.
뒤를 따르던 뱅자맹과 가나엘이 화들짝 놀라 내 팔뚝과 어깨를 잡아주었다.
새벽부터 이마에 대고 있는 얼음주머니의 도움으로, 나는 겨우겨우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열풍이 불기 시작하니 황도는 지옥이 따로 없었다.
“더위에 많이 약하시군요. 사실 이 정도면 강한 열풍은 아닙니다만!”
“조용히 좀······.”
아침부터 내 부름에 응해 ‘생일 선물’을 주러 온 사람에게, 나는 짜증내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시종들도 후작도 크게 힘들어하지 않는데, 나만 이러는 게 억울하고 새삼 작가가 원망스러웠다.
도대체 어느 웹소설 조연이 하룻밤 새 ‘더위 먹고’ 이 지경이 된단 말인가?
보통은 막, 힘을 많이 써서 피를 토한다든지, 주인공 대신 칼을 맞고 쓰러진다든지.
아무튼 힘들어하더라도 사연 있고 멋있게······.
그냥 더위 먹은 게 낫나······.
“다 왔습니다, 왕자님.”
후작이 달래듯 말했다.
황제 집무실 근처까지 마중 나온 시종장 로라가, 나를 꽤 우려스러운 눈길로 살피고는 문을 두드렸다.
-똑똑
“폐하, 예서 왕자님과 프랑수아 뒤엠 후작이 왔습니다.”
“들여보내.”
나는 자세를 추스르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여하튼 해냈다.
그러고는 문이 열리자마자 실내로 발을 내딛었다.
“신국의 왕자, 예서 페네티안이 지상에 강림하신 태양을 뵙습니다.”
“듣던 것보다 심각한데. 다 죽어가는군.”
프레데리크 황제가 시니컬하게 대답했다.
나는 어찌어찌 절을 올리고, 누군가의 손길에 몸을 맡긴 채 소파에 풀썩 주저앉았다.
서늘하고 건조한 가죽의 촉감이 느껴지니 조금 살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제야 나를 이끈 사람이 부티에 추기경임을 알아보았다.
베이지색 눈동자에 걱정이 가득했다.
그녀가 시원한 손으로 내 뺨을 어루만지자, 몸에 힘이 쭉 빠지면서 소파가 나를 잡아먹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머릿속이 무겁고 지끈거렸다.
“전하······.”
“프레데리크, 당장 왕자님을 북부로 보내야겠어. 이러다간 실신하겠는걸.”
“왕자는 포털을 하루에 한 번밖에 못 탄다고 하지 않았나? 저 몸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황제가 혀를 찼다. 나는 멍해지는 의식 속에서 은서와 형을 떠올렸다.
이러다가 죽으면 집에 갈 수 있나? 아니면 설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는 건가?
“폐하, 전하. 제가 예서 왕자님의 신원을 보증하겠습니다. 이분을 여름별궁으로 보내주십시오.”
“난 찬성이야. 프레데리크?”
후작이 청을 올렸고, 추기경은 곧장 황제의 의견을 구했다.
눈꺼풀이 반쯤 감긴 탓에 그녀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얼음주머니가 자꾸만 얼굴로 흘러내렸다.
“이블린에 외부인을 들일 수는 없어.”
“프랑수아가 신원을 보증한다고 하잖아. 우리도 곧 올라갈 거고.”
“오렐리······.”
그 뒤의 대화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추기경 앞에서 긴장이 풀려, 잠깐 잠이 들었거나 정신을 놓았던 것 같았다.
하지만 황제가 의외로 빠르게 나의 별궁행을 허락한 건 확실했다.
눈을 떴을 때는 분위기가 꽤 풀어진 상태였고,
“로라, 이블린 공작에게 연통을 보내. 예서 왕자도 오늘 황실 포털로 이동한다.”
“알겠습니다, 폐하.”
그런 말이 오가고 있었다.
이블린이라면 <와장창! 이브의 대모험> 시리즈를 썼던 그 이블린 대공의 영지인 듯싶었다.
대공은 아마 황족일 테니 그곳에 별궁이 있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제국의 귀족이 어마어마한 숫자인 걸 고려하면, 내 추측이 완전히 틀릴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지만······.
어쨌든 또 한 번 살았다. 이번에는 빌어먹을 더위로부터.
“왕자의 시종들을 들어오게 해. 일단 데리고 나가야 포털을 탈 수 있을 테니.”
황제의 명이 떨어졌다. 그 순간에도 추기경은 내 입에 얼음물을 갖다대주었다.
내가 힘겹게 웃으며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동안, 하얗게 질린 뱅자맹과 가나엘이 집무실로 들어왔다.
두 사람은 황제에게 먼저 예를 차렸고, 그녀는 필요 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빨리 나부터 수습하라는 뜻인 것 같았다.
“저기, 하나 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가나엘의 도움으로 간신히 등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황제가 한쪽 눈썹 끝을 조금 들어올렸다.
황자 놈이 누구한테 그런 표정을 배웠나 했더니 모친이었다.
그런 헛생각을 하자 잠시나마 머릿속이 깨끗해지는 것도 같았다.
나는 목을 한 번 가다듬고,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폐하께서는 얼마 전 축하연에서, 제게 무엇이든 청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랬지.”
“허락해주신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그 청을 드리고자 합니다.”
황제가 헛웃음을 쳤다.
방금 전까지 반쯤 기절해 있던 놈이,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요구할 게 있다고 하니 기막혀 할 법도 했다.
그렇지만 내게는 훗날의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나는 어젯밤 세이디 녀석과 말을 섞으며 깨달은 바가 있었고, 지금은 그것을 실천으로 옮길 때였다.
추기경이 내 손에 차가운 컵을 꼭 쥐어주었다.
뱅자맹과 가나엘은 놀란 낯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허한다. 말해 봐.”
한쪽 관자놀이를 손으로 받친 채, 황제가 체리색 눈동자를 빛내며 씩 웃었다.
나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