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635)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635화(635/920)
#635
성간분자(星間分子) (2)
-푸우욱!
그리고 낫이 빠져나갔다.
먹물도 아닌 것이 끝내 반대쪽 뺨까지 척척하게 적셨다.
“어······.”
나는 텅 빈 얼굴로 부군을 올려다보았다. 사방에서 진득한 잉크 냄새가 진동을 했다.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재까닥 이해되지 않았다.
뇌가 멈춘 탓에 목소리조차 허무하게 잃어버리고, 생각은 겁먹은 안개처럼 뿔뿔이 달아났다.
남자의 눈동자에서 까만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잠시 허공을 더듬었다가, 무언가를 찾듯이 헤매다가, 이내 나에게로 툭 떨어졌다.
마치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읏······.」
-쩌저적!
“아, 아아······.”
도자기처럼 하얀 얼굴에 깊은 균열이 일었다.
하얀 이마부터 긴 목까지 반으로 갈라진 모습에, 전신을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나는 턱을 벌벌 떨며 그에게로 손을 뻗었다. 부군 또한 바들거리는 손끝으로 나를 가리켰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에서는 이미 빛이 꺼지고 있었다.
기다란 손가락 일부가 사금파리처럼 부서져 내렸다. 파사삭, 파사삭······.
마지막으로 입술이 움직인다.
「발레리, 나의······.」
-콰드드득!
그리고 심장을 찍어 내리는 소음과 함께, 니콜라 퐁필리 부군은 산산이 조각났다.
낫을 쥐고 있던 자가 손잡이로 그의 몸통을 가격한 탓이었다.
그의 눈동자를 품은 조각이 신발 밑창에 닿는 순간 나는 경기하듯 튀어 올랐다.
허파가 아플 만큼 커다란 숨을 들이켜며, 허겁지겁 새장을 온몸으로 감쌌다.
호흡이 칼날처럼 날뛰어 목구멍을 긁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울렁거리는 속은 당장이라도 욕지기를 올릴 것만 같았다.
철커덩철커덩! 철창에 갇힌 불사조가 크게 날갯짓하며 나를 보듬으려 기를 썼다.
나는 한 손으로 창살을 부서뜨릴 듯이 쥐고, 다른 손으로는 잽싸게 성장을 잡아 겨누었다. 휘이익!
“저리 꺼져! 우리 형한테는 손끝 하나 못 댈 테니까!”
잠긴 목소리가 듣기 싫게 쩍쩍 갈라졌다.
죽어도 떨고 싶지 않았으나 반사적으로 어깨가 벌벌거렸다.
낫을 든 상대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대로 눈이 마주쳤다.
“윽, 허억, 헉······.”
찰나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자는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노인이었다.
「귀하신 분을 뵙습니다.」
“당신. 당신······.”
‘보제나’.
세계의 개연성을 수호하는 세 자매.
【정예, 침착해. 가만히 있어.】
“싫어. 싫어.”
【어차피 널 해치지는 않을 거야. 나도 그렇고.】
“아냐. 그런 문제가 아니, 아닌······.”
나는 천하의 멍청이처럼 말을 더듬으며 무너지는 자세를 바로 했다.
몇 번이나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지만, 이를 악물고서 부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동안 노파는 느린 동작으로 자신의 낫을 세워 들고 로브 후드를 벗었다.
동시에 그녀는 서서히 젊어지고 있었다.
둥그렇게 굽었던 허리가 일자로 곧아지고, 하얗게 세었던 머리는 어떤 빛깔을 띠기 시작했다.
얼굴의 주름이 사라지며 움푹 들어간 눈매는 한층 날카롭게 변했다.
언젠가 신국의 북녘 해안에서 보았던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광인처럼 그녀에게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고,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입속에선 연거푸 신맛이 났다.
바닥으로 흩어진 부군의 조각들은 시나브로 가루가 되어 어딘가로 날아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눈에 담지 않고자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두 눈시울이 화로처럼 펄펄 끓었다.
“부군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미 죽은 사람이 무슨 대단한 죄를 지었다고 당신이 이딴 식으로 사람을 해쳐, 당신이 뭔데!”
「귀하신 분께서 무언가를 착각하시는 것 같군요. 이곳은 아무 부스러기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아닙니다. 우리는 질서를 유지해야 합니다.」
보제나의 뺨에도 검은 물이 잔뜩 튀어 있었지만, 나와 달리 그녀는 시종일관 차분하기만 했다.
방금 ‘부스러기’라고 했어?
-휘리릭!
나는 즉시 성장을 견착하고 서서쏴 자세를 취했다.
지팡이가 나의 의지에 따라 발광하며 순식간에 길이를 줄였다.
날카로운 조각달은 보제나의 목울대를 똑바로 겨냥했다.
시야가 뿌옇고 다리도 볼품없이 후들거렸지만, 이대로 한 방 정도는 확실하게 날릴 수 있을 터였다.
상대에게도 무기가 있으니 강하게 나가야 했다.
“제대로, 내가 알아들을 때까지 제대로 설명해. 아니면 여기서 쏠 거야. 바닥이든 천장이든 무조건 구멍 낼 테니 각오하는 게 좋아.”
【정예.】
“내 성장은 세계수의 뿌리로 만들었고······. 내 에테르는 소원의 성반에서 나온다. 그리고 나는 그쪽이 직접 언급한 ‘고귀한 혈족’이야. 듣자니 내가 주신의 의지를 이어받았다는 소문도 있던데.”
「······.」
“그게 이곳에 무슨 영향을 미칠지는, 나보다 잘난 당신이 더 잘 알겠지. 안 그래?”
두 눈을 부릅뜨고서 맹렬하게 노려보자, 보제나는 마침내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이곳은 단순히 죽은 자들이 떠나오는 저승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고차원의 세계이지요.」
“알아듣게. 말하라고.”
내가 이를 갈며 쏘아붙였다. 호흡은 전혀 안정되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눈꺼풀을 내리깔았다.
「‘순백의 성간’은, 주신의 시선이 닿은 과거의 조각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한 단어 한 단어 뜯어서 해설해.”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대륙에서 목숨이 다한 이들은 숱하게 많으나, 그중 신의 눈길을 받은 자는 극소수입니다. 로메로 리에스테르와 같이 끊임없이 언급되며, 현재의 세계선에도 영향을 주는 인물이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
무슨 뜻인지 대강은 알 것 같았다.
요컨대 원작자가 두고두고 써먹는 과거의 인물, 또는 그들의 설정 조각은 전부 이곳으로 흘러들어 와 따로 관리를 받는다는 의미였다.
발치를 굴러다니던 신관의 흔적은 그사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그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 연신 목젖이 떨리고 소름이 끼쳤다.
나는 자세를 풀지 않으며 계속해서 을러댔다.
“그게 니콜라 부군을 해친 정당한 이유가 돼? 사람의 사정이나 변론은 들어보지도 않고! 이딴 식으로 고인을 모욕할 이유가 되냐고! 당신 생각엔 그래?”
「예.」
“······.”
말이 목구멍 끝에 턱 걸렸다. 나는 커다랗게 뜨인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섰다.
보제나는 덤덤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우리 자매는, 니콜라 퐁필리의 영혼이 세계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었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자는 원전에 언급조차 없는 인물입니다. 아마 있었더라도 스쳐 지나가는 이름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
「그런 자가 사적인 욕심을 품고 이곳에 머무르게 둘 수는 없습니다. 성간은 신성한 장소이며, 우리는 세계의 틀을 지키는 존재입니다.」
“······그러면······.”
말소리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작아졌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목이 자꾸 막히는 탓이었다.
“그럼 주신의 품으로 보내주기는 한 거야?”
「······.」
“부군을 주신의 품으로 보내주긴 했냐고. 대륙 사람들은 전부 그 신앙을 믿어! 죽으면 주신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녀의 돌봄을 받으면서 편히 쉴 거라고······!”
「우리는 사신(死神)이 아닙니다.」
“하······.”
가슴 한편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대로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자매는 니콜라 부군을 완전히 파괴하여, 다시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린 게 분명했다.
그는 이제 발레리 선황과 재회할 수 없고, 영원한 안식을 꿈꿀 수도 없게 되었다.
나는 한참이나 말을 잃고서 입만 벙긋거렸다.
새장 안의 불사조가 나를 올려다보며 조심스레 날개를 펄럭였다. 안타까워하는 몸짓이었다.
「저도 하나 묻겠습니다. 세드리크 리에스테르가 두 번째 신술(神術)을 깨우친 것은 어찌 아셨습니까?」
“······지금 그게 중요해?”
「예. 중요합니다. 그에 관해서는 단서가 지극히 적었고, 우리에게는 모든 행간의 필연(必然)을 확보해야 할 의무가 있으니 말입니다.」
“유감이네. 난 당신네한테 대답해 줄 의무 없거든.”
씹어뱉듯이 대꾸하고서 후들후들 지팡이를 내렸다.
그녀가 나를 물끄러미 보든 말든, 바쁘게 등을 돌려 허공에 매달린 새장을 살폈다.
출입문이 달려 있지 않으니 어디로 어떻게 새를 넣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불사조가 긴 꼬리를 정리하는 동안, 나는 철창을 단단히 잡고 세게 한 번 흔들어 보았다. 찰카당!
【살살 해라, 살살. 형님 지금 연약하다.】
“······뭐야. 이것도 까맣게 묻어 나오네.”
새장을 놓은 나는, 손바닥을 시커멓게 물들인 정체불명의 물질을 보며 인상을 썼다.
역시나 진한 잉크 냄새 같은 것이 났다.
하지만 이런 종류라면 나에게는 이미 쉬운 해답이 있었다.
언젠가 망크란스에서 ‘주신의 도검’을 역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한 적도 있지 않은가.
신의 피조물이 아닌 나는, 이따위 것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형, 잠깐만 뒤로 물러나 봐. 이거 그냥 한 번에 깨질 테니까 놀라지 말고.”
【어이쿠······.】
불사조가 서둘러 나래짓 했다.
나는 여전히 떨리는 숨을 쉬면서도 망설임 없이 성장을 잡았다. 그러고는―
-콰가가강!
【허어억!】
단번에 조각달을 휘둘러 새장을 바수었다.
기함한 불사조가 위로 솟구쳤다가 재빨리 나의 어깨로 내려앉았다.
형이 다치지 않았다는 것을 꼼꼼히 확인한 뒤―형 또한 처음부터 다칠 일은 없었겠지만―흘러내리는 가가방을 다시 메고, 땀이 배어 나오는 손바닥도 문질러 닦았다.
울거나 뛴 적도 없는데 자꾸만 숨이 찼다.
나는 한 번 더 성장으로 보제나를 겨누었다.
“우리 형을 여기 가둔 것도 당신이야? 왜?”
「아직 저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으셨습니다.」
“······.”
담담한 말투, 떳떳한 태도가 조금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번에는 성장을 불쑥 치켜들어 천장을 겨누었다.
사람이나 동물을 위협하는 짓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못 하겠지만, 공간을 위협하는 일이라면 몇 번이고 더 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 자매에게 농락당하느니, 차라리 나를 도박판에 거는 편이 낫다.
무엇보다 용서하고 싶지가 않다.
“지금 대답할래? 아니면 내가 여기 구멍 하나 뚫을까?”
【진짜 미친놈······.】
「······불사조께서 무모한 짓을 하려 하시기에, 어쩔 수 없이 우리의 권능으로 제어하였습니다.」
“자세히 부연하는 편이 좋을 거야. 난 당장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태니까.”
일부러 팔을 한층 높이 치켜들며 쏘아붙였다.
정현서가 한쪽 날개로 자신의 눈알을 가렸다.
그러자 보제나는 보일 듯 말 듯 미간을 찌푸리더니―내가 목격한 최초의 표정 변화였다―한참 후에야 다시금 입을 열었다.
「······세계선을 창조하는 것은 본디 주신의 권능입니다.」
「지고한 힘을 흉내 내실 수는 없는 법입니다.」
「아무리 성스러운 불사조이시라 해도, 제아무리 신성한 피를 타고나신 분이라 해도······. 결코 예외는 아니지요.」
「그러한 시도는 오직 비극으로 끝날 것입니다.」
탕! 그녀가 낫으로 바닥을 한 차례 두드리고는 엄숙하게 말을 맺었다.
그 여파로 새하얀 발밑이 옅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말뜻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고 이맛살을 찡그렸다.
형 또한 비슷한 반응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스스스스······
몇 시간 전의 환상에서 보았던 노란 경고등이, 커다랗게 바닥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나는 무언가에 삼켜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비틀거렸다.
이윽고 거대한 창(窓)이 펼쳐졌다.